190화
5.
이제르트 자작은 고뇌하고 있었다.
‘기어코…….’
며칠 전.
문수르는 다급하게 드래곤 파이터를 이끌고 영지를 떠났다. 이제르트 자작은 그런 문수르로부터 사정을 들었다.
“왕도가 위험합니다.”
갑작스런 말이었다.
이제르트 자작이 되물었다.
문수르가 다시 대답했다.
“빅토리안 공작이 모든 전력을 이끌고 왕도로 향하고 있습니다. 빅토리안 공작의 목적은…… 왕도 함락입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
왕도 함락?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문수르의 입에서 나왔다. 이제르트 자작도 이번만큼은 문수르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도 함락이라니?
빅토리안 공작이 대반역을 저지른단 소리 아닌가?
아니, 그렇다고 치자.
그 사실을 문수르는 대체 어떻게 안단 말인가? 지금 제이머스 후작은 빅토리안 공작을 잡기 위해 모든 병력을 빅토리안 공작령으로 보낸 상황이다. 모든 이들이 빅토리안 공작이 자신의 영지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문수르만이 빅토리안 공작이 왕도로 향한다고, 반역을 저지르려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쉽게 납득이 안 되는 일이다.
“이제르트 자작님!”
그러나 상황이 너무 긴박한 탓에 문수르는 이제르트 자작을 설득할 시간이 없었다.
당장 떠나야 한다.
더군다나 이제르트 자작 역시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 이제르트 자작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다.
‘지금 당장 왕도에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이제르트 자작가의 기가스들이다!’
아이언히트!
보통 기가스보다는 출력이 약하지만, 아이언히트에게는 기동력이란 가장 큰 장점이 있다.
지금 중요한 건 그 기동력이다.
그 누구보다 빨리 왕도에 가서 빅토리안 공작을 막아야 한다. 그걸 할 수 있는 건 아이언히트뿐이다.
문수르는 설명했다.
빅토리안 공작이 왕도를 향하는 이유, 그리고 그걸 자신이 아는 이유! 그걸 설명한 게 아니었다.
이제르트 자작의 역할, 그의 손에 걸린 콩탄 왕국의 미래에 대해서 말을 해줬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이제르트 자작은 고뇌했다.
문수르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또한 사안의 중대함 역시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왕도가 함락된다니…….’
걸리는 건 이제르트 자작의 마음이다.
이제르트 자작은 움직일 것이다. 이미 아이언히트를 대기시켰다. 영지가 위험하겠지만…… 만약 이제르트 자작에게 콩탄 왕국의 미래와 영지의 미래,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그 어떤 고민 없이 왕국의 미래를 택할 것이다.
그는 그런 귀족이다. 영주의 의무와 역할에 대해서 모든 걸 걸 수 있는 자다.
하지만 그 순간 이제르트 자작은 보고 말았다.
결단을 내리는 순간,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 있는 마음을, 필로스 왕을 향한 적의심을 말이다.
이제르트 자작은 그 마음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왕국을 구한다.
그건 곧 필로스 왕을 구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금 이제르트 자작의 마음속에는 필로스 왕을 향한 적의심이 있다.
이게 옳은 것일까?
이게 바른 것일까?
그 고민이 이제르트 자작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들은…… 전장으로 향하게 될 병사들, 기사들에 대한 걱정으로 변했다.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바치며,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을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신의 마음 속에 불충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시련이군, 시련이야.”
한숨이 커졌다.
그때였다.
“영주, 계시오?”
“음? 가누스 경?”
갑작스런 가누스의 방문에 이제르트 자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일어날 필요 없소.”
“아닙니다. 가누스 경은 탈라트 부족의 가장 높은 전사분 아니십니까?”
“지금은 이제르트 자작령의 일개 영지민일 뿐이오.”
“아닙니다. 그렇게 자신을 낮추실 필요 없으십니다.”
이제르트 자작은 가누스를 정중히 대했다. 가누스는 그런 이제르트 자작의 태도가 언제나 감사하면서도 부담스러웠다. 이제 스스로를 이제르트 자작령의 영지민으로 생각하는 가누스에게 이제르트 자작의 과도한 대접은 아무래도 좀 그랬으니까.
“그보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야기를 들었소.”
“예, 곧바로 왕도로 떠날 겁니다. 이제르트 자작가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움직일 참입니다.”
“그 부분 때문에 찾아왔소.”
“말씀하시지요.”
“아무래도 나는 이번 전투에 참가할 수 없을 것 같소.”
문수르는 말했다.
가누스를 비롯해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동원하라고!
그런데 가누스가 지금 빠지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르트 자작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족장님께서 테블스 산의 분위기가 좋지 못하다 하셨소.”
“폐욤 족장님께서?”
“확실한 건 아니나…… 이대로 모든 전력이 영지를 비우는 건 좋은 생각 같지가 않소.”
폐욤 족장.
그는 수백 년을 살아온 엘프 마법사다. 또한 한 부족을 이끄는 우두머리이기도 하다.
그런 폐욤 족장이 가진 지식의 깊이는 이제르트 자작도 탄복할 정도로 깊다.
무엇보다 최근 메르디아 삼왕녀를 조용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이제르트 자작가에 우호적으로 만든 이 역시 폐욤 족장이다. 그는 이미 이제르트 자작의 큰 은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그의 말을 이제르트 자작이 무시할 리 만무하다.
또한 흑마법사를 비롯해 테블스 산에 대해서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었다.
“알겠습니다.”
폐욤 족장이 그리 말했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송구스러울 따름이오. 내 힘이라도 도와야 하거늘…….”
“아닙니다. 오히려 영지의 모든 치안을 가누스 경과 폐욤 족장, 두분께 맡겨드리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가누스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제르트 자작 역시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후 이제르트 자작은 포비어를 불렀다. 포비어는 이미 왕도로 떠날 준비를 끝낸 상황이었다.
1배 급 이상의 기가스는 전부 배제하고, 아이언히트만 준비했다. 기동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왕도로 향하는 길에 이제르트 자작이 참가했다.
그건 문수르와도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일이었다.
6.
문수르는 소설을 쓸 때, 주인공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로 시련이란 걸 만들었다.
개중에는 주인공이 강해지기 위해서 일부러 스스로를 혹독한 시련에 집어넣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그런 글을 쓸 때면 속으로 웃었다.
사서 고생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다 죽으면? 그렇게 해서 죽으면 과연 그게 정말 가치있는 죽음일까, 아니면 그냥 의미없는 개죽음일까?
글을 쓰는 작가 입장에서는 죽지 않은 걸 알고 있기에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문수르는 소설의 작가가 아닌, 그 주인공과 같은 처지에 빠진 당사자가 되었다.
“후우!”
- 주인님, 심박수가 비정상입니다. 계획을 고려해심이…….
“아니야. 이번이 기회야.”
- 주인님, 위험합니다.
“알아. 위험하니까…… 위험하니까 수련이 되는 거야.”
문수르는 절망하고 있다.
주변 환경?
아니다. 그가 처한 환경이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솔직히 그의 주변에는 훌륭한 이들이 너무 많다.
과할 정도다.
너무 과해서 분에 넘칠 정도다.
이제르트 자작도 그렇고, 포비어 경부터 시작해서 폐욤 족장, 가누스까지…….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
문수르의 주변을 채우고 있는 이들은 전부 훌륭한 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부족하다고, 그들 때문에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절망하는 것은 문수르, 본인에 대한 것이었다.
가누스는 말했다.
실력이 발전하지 않고, 정체되는 건 곧 퇴보하는 거라고. 검사는 나날히 실력이 발전해야 한다고.
가누스의 가르침, 심장이 새겼다. 머리에 심었다.
그러나 온갖 이유 때문에 문수르는 계속해서 발전하지 못했다. 퇴보만 계속했다.
그리고 결국 실력의 부족함에 절망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순간, 결국 문수르가 믿을 수 있는 건 그 무엇도 아닌 본인의 능력이었다.
그런데 그 능력이 부족했다.
더 이상의 변명은 무의미하다. 정말 힘이 필요한 순간에,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적이 그 변명을 들어줄 것인가?
어림도 없는 소리다.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아니, 이번 기회가 아니면 더 이상 여유가 없어.”
문수르.
지금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앞을 가로 막고 있는 크고, 거대하고, 두꺼운 벽을 뚫어야만 했다.
물론 아무런 것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갑작스레 벽을 뚫는답시고 벽을 향해 머리를 날리는 건 결코 아니다.
조짐을 느꼈다.
무어라고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무(武)를 연마하는 무인들이 느낄 수 있는 조짐이다.
육감(六感)이라고 해야 할까?
그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라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다면 벽을 뚫을 수도 있을 거라고.
로이드는 모를 것이다.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로이드에게는 단지 주인이 위험의 구렁텅이를 향해 몸을 던진다고만 생각할 것이다.
“후우!”
숨을 고른 문수르.
“로이드, 해가 뜨기 전까지 얼마 남았지?”
- 1시간 13분 남았습니다.
“1시간 13분이라…… 13분 후부터 전면전이다.”
- 주인님, 계속해서 말하는 거지만 위험합니다. 아직까지 파손 정도가 미비합니다. 다시 포위망을 벗어난 후에 치고 빠지는 식의 전투를 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충고.
문수르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와이어를 잡아 당겼다.
‘넘는다.’
문수르, 지금 그는 좋은 방향이든 바쁜 방향이든 변화하고 있었다.
7.
카라카크에게는 정확히 129기의 몬스터 데스나이트가 있었다. 여기에 추가로 카라카크에게는 또투라는 오러 마스터의 능력을 가진 오크를 비롯해 3만에 이르는 오크를 휘하에 두고 있었으며, 100여 마리가 넘는 오우거와, 1000여 마리가 넘는 자이언트 트롤도 다룰 수 있었다.
카라카크가 다루는 몬스터 전력은 하나의 국가를 충분히 전복시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다.
카라카크는 그 엄청난 전력을 분산했다. 그리고 그 모든 전력을 이동시켰다.
왕도로?
아니었다.
카라카크가 왕도로 보낸 것은 몬스터 데스나이트가 전부였다.
나머지 몬스터 전력들은 국경으로 보냈다. 페스로 제국과의 국경선을 말함이다.
카라카크와 빅토리안 공작은 합의를 했다.
몬스터 데스나이트는 왕도 함락에 도와준다. 하지만 그 외의 몬스터 전력은 페스로 제국과의 국경에 보내달라고.
빅토리안 공작은 바보가 아니다. 몬스터 데스나이트는 아무래도 보통 몬스터와 궤를 달리 한다. 기가스에 가까운 덩치와 능력을 보여준다. 갑옷도 입고 있다.
때문에 몬스터가 아니라고 속인다면 충분히 속일 수 있다. 시체의 수거도 간단하다.
하지만 보통 몬스터는 아니다.
만약 보통 몬스터 군단을 대리고 왕도를 함락시키면? 빅토리안 공작이 흑마법사와 결탁했다는 걸 자백하는 꼴이다.
몬스터 군단을 이용할 수는 없다.
그런 몬스터 군단을 국경선에서 움직이게 만드는 건 시선을 끌기 위함이었다.
또한 국경선 근처에는 강력한 영주들이 있다. 당연하다. 혹시 모를 외침에 대비해 국경선에 강한 군사력을 가진 영주를 배치하는 건 전략의 기본, 국정의 기본이다. 그래서 변경백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대부분 왕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이들이다. 만약 문제가 생길 경우, 그들이 병력을 이끌고 왕도에 모이거나 혹은 따로 세력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걸 막기 위해, 몬스터로 하여금 그들의 눈을 가리고자 한 것이다.
카라카크는 빅토리안 공작과의 합의를 준수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몰랐다.
빅토리안 공작의 그 계획이 어떤 결과를 불어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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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시작되고, 이제 야구시즌도 시작됐군요.
슬슬 햇살도 따뜻해지는 게 춘곤증이 몰려와서 너무 힘드네요.
모두들 몸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