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88화 (186/293)

188화

8.

정찰대는 말했다.

“그게…… 빅토리안 공작령은 비어있습니다.”

제이머스 후작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보통 때의 제이머스 후작이었다면 정찰대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너무 놀랐다. 너무 놀란 탓에 제이머스 후작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정찰대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사실 정찰대원, 본인도 믿을 수 없었다. 목숨을 걸고 은밀하게 빅토리안 공작령 안으로 침투했다. 간신히 침투했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들키지 않은 건 그들이 운이 좋거나, 실력이 좋거나, 그래서 그런 게 아니었다.

“빅토리안 공작령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영지민와 영지 치안을 위한 소수의 병력을 제외한 모든 병력이 빠져 나갔습니다.”

쿵!

그 순간 제이머스 후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동안 멈추었던 그의 머리가 빠르게 움직였다.

‘설마?’

제이머스 후작.

콩탄 왕국이 낳은 최고의 기사다. 잠시 놀랐을 뿐이다. 너무 당황해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을 뿐이다.

그 머리가 돌아갔다.

제이머스 후작은 단숨에 상황을 파악했다.

“왕도다!”

제이머스 후작의 갑작스런 말에 기사들이 움찔했다. 대체 왜 지금 여기서 왕도가 언급되는 걸까?

제이머스 후작이 다시 소리쳤다.

“왕도다.”

“후, 후작 각하.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모든 병력에게 전달해라. 당장 왕도로 이동한다. 당장! 지금 당장 왕도로 향한다!”

“각하? 대체 무슨 이유에서…….”

기사들의 계속되는 물음.

그건 기사들의 충성심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정말 주군에게 충성을 받치는 기사란, 중요한 순간에 충언을 아끼지 않는 기사다.

주군의 능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주군이 한 번만이라도 더 생각할 수 있도록 의문을 던져줄 줄 알아야 한다.

그로 인해 본인이 피해를 보더라도, 달콤한 말보다는 쓴 말을 뱉을 줄 알아야 한다.

기사들은 지금 그렇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이머스 후작의 말은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간신히 빅토리안 공작령 앞까지 왔는데, 왜 지금 여기서 병력을 돌린단 말인가?

하물며 지금 빅토리안 공작령이 비어있다고 하지 않은가?

절호의 기회다.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땅을 차지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이 기회를 앞두고 왕도로 간다고?

기사들은 납득할 수 없었다.

제이머스 후작은 그런 기사들의 물음에 입을 다물었다. 기사들에게 실망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기사들의 행동은 이해가 간다. 그들은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입을 다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가 멍청했다.’

스스로를 향한 질책!

‘내가 멍청했어!’

빅토리안 공작가가 너무 조용했던 이유! 다름 아니라 왕도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병력을 빼돌린 것이다.

그리고 겉으로 가만히 있는 척을 한 것이다. 그 상황에서 제이머스 후작의 결사대를 기다린 것이다.

이유는 하나!

제이머스 후작과 그를 따르는 영주들의 병력이 자신의 영지로 달려들 수 있도록!

그로 인해 왕도를 향하는 길목의 병력에 공백이 생기도록!

“빅토리안 공작이 노리는 건 왕도다. 그가 필로스 전하를 노리고 있다.”

“예?”

기사들은 그제야 무언가가 떠오른 듯 두 눈을 번쩍였다. 그 후에는 모두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빅토리안 공작이 병력을 이끌고 왕도를 노리고 있다? 필로스 왕을 노리고 있다?

반역!

진짜다.

빅토리안 공작이 진짜 반역을 일으킨 것이다. 태양을, 하늘 위의 태양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스스로를 태양으로 만들고자 한다!

“당장, 당장 움직이겠습니다.”

기사들이 움직였다.

제이머스 후작은 그중 한 명을 붙잡았다.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라. 모든 병력의 머리를 왕도로 돌리라고, 빅토리안 공작이 왕도를 노리고 있다고!”

“알겠습니다!”

9.

불스 백작은 제이머스 후작 쪽에서 온 연락에 침음을 흘렸다.

“빅토리안 공작…… 이걸 노린 건가?”

염두에 두긴 했다.

빅토리안 공작이 모든 걸 도외시하고 왕도를 노리는 경우…… 그러나 불스 백작은 그 경우의 수를 배제했다.

잃을 게 너무 컸으니까.

‘내가 오판을 했군.’

빅토리안 공작이 제 아무리 욕심을 부린다고 해도, 최후의 보루쯤은 만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왕도를 노린다고?

최후의 보루를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소리다.

더군다나 콩탄 왕국의 왕위는 본인 스스로가 얻고자 해서 얻을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페스로 제국의 비호를 받아야 한다.

현재 필로스 왕은 페스로 제국의 실력가 중 한 명인 슈페언 백작의 비호를 받고 있다.

필로스 왕을 공격한다는 건 슈페언 백작에게 정면으로 칼을 들이밀겠다는 이야기.

‘페스로 제국의 다른 귀족과 접촉했던 거군.’

어렴풋했던 추측이 사실이었나 보다.

빅토리안 공작의 배후에 페스로 제국 소속의 다른 귀족이 있다.

‘제국이 왜?’

여기서 드는 의문.

제국이 어째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어째서 페스로 제국의 귀족들이 콩탄 왕국을 이용해 반목을 하려는 걸까?

‘그래, 그게 중요하지.’

그 순간 불스 백작의 머릿속이 반짝였다.

일단 불스 백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이머스 후작이 왕도를 지키러 떠난다고 했다.

“왕도 함락이 쉽지는 않을 터.”

빅토리안 공작이 무엇을 준비했건, 왕도는 왕도다.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하루 빨리 왕도에 가야 한다. 왕도에 가서 왕도의 군대와 함께 빅토리안 공작을 무찔러야 한다.

더불어 그 전쟁이 끝나게 되고, 빅토리안 공작이 패배하게 된다면 제이머스 후작과 함께한 귀족들은 왕으로부터 엄청난 선물을 받을 것이다. 제미어스 후작은 그 자리에서 빅토리안 공작을 대신해 공작의 작위를 받을 수도 있겠지.

어떤 의미에서 여전히 기회는 존재한다.

그러나 불스 백작은 보험 하나를 들어두기로 했다.

“패먼 경 있나?”

“있습니다.”

“자네는 지금 당장 빅토리안 공작령으로 들어가도록.”

패먼 경.

불스 백작이 휘하에 둔 기사들 중에서 가장 날쎄고, 은밀한 자다. 암살자 출신이기도 하다.

보통 암살자 출신을 기사로 받아들이는 자는 없다. 암살자 같이 추잡한 이에게 기사라니? 그걸 납득해주는 영주는 없다.

그러나 불스 백작은 아니었다. 그는 암살자와 같은 능력을 가진 기사가 한둘 정도는 있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제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빅토리안 공작가에서 모든 걸 가져오게.”

지금 지금 이 순간.

“지금 빅토리안 공작가가 텅텅 비었으니, 무엇이든 가져오는 건 어렵지 않을 터.”

“명을 받들겠습니다.”

무주공산이나 다름 없는 빅토리안 공작가.

그곳을 그냥 놔두고 가는 건 미련한 짓이다.

무너뜨릴 순 없어서, 구멍을 몇 개 뚫어놓는 것쯤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빅토리안 공작이라면…… 아니, 만약 슈페언 백작이 아닌 다른 제국의 귀족이 빅토리안 공작과 손을 잡았다면, 빅토리안 공작의 작전이 실패한다고 해도 그에겐 충분히 도망칠 구멍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구멍을 통해서 가져올 것이다.

‘그때 빅토리안 공작이 숨긴 무언가가 그의 가문에 종지부를 찍어줄 비수가 되겠지.’

10.

쿠틀러 백작령은 흔들리고 있었다.

“무너진다!”

“외성 성벽이 무너진다!”

“대피하라!”

몬스터 데스나이트, 그들의 공격은 엄청났다. 기가스에 버금가는 공격력을 가진 놈들의 공격은 기가스를 상정해 세운 성벽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무엇보다 숫자가 많았다.

30여 기, 그 어마어마한 숫자가 계속해서 진행하는 공격은 막아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기어코 외성 성벽 일부가 무너졌다.

일부가 무너진 거면 충분했다.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이 쿠틀러 백작령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말이다.

기사들은 기가스를 이끌고 내성으로 대피했다.

‘젠장!’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성으로 가도 답이 보이진 않았다.

‘버린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내성 내에 위치한 쿠틀러 백작가의 식솔들과 기사들의 식속들을 데리고 도망치는 것뿐이다.

이미 계획은 세워졌다.

2기의 기가스가 시간을 벌 것이다. 남은 1기는 요인 호위를 하며 왕도로 향할 것이다.

쿠틀러 백작가의 기가스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병사들도 준비를 했다.

병사들이 기가스 혹은 그에 버금가는 존재 앞에서 할 수 있은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방책을 세운다고 해도 잠시 시간을 지체할 뿐이다.

더군다나 기가스를 염두에 두고 만든 그 방법들은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기가스와 비슷한 몸집을 가졌지만, 몬스터 데스나이트와 기가스에는 신체적 차이가 다수 있었다.

기가스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결국 기계다. 그 움직임이 투박하다. 특히 관절의 움직임은 제한적이다. 반면 몬스터 데스나이트는 그런 것이 없다. 데스나이트의 특징 중 하나가 시체로 만들어졌음에도 관절 등 신체 부위가 살아있을 때처럼 부드럽다는 것이다. 아니, 살아있을 때보다 더 유연하다. 살아있는 것들은 고통이란 것 때문에 자신이 가진 유연함을 백퍼센트 활용하지 못하지만 데스나이트에게는 그런 게 없으니까.

이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방해물을 설치해도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은 쉽게 피했다특히 직선적인 기가스의 움직임과는 다르게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의 움직임에는 곡선이 포함되어 있었다.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은 엄청난 속도로 내성의 성벽을 향해 달려왔다. 병사들의 목숨을 건 방해도 그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순식간이었다.

단숨에 내성의 성벽 앞까지 도달한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은 곧바로 내성 성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무기를 들고 성벽을 두드렸다.

그들이 가진 무기는 대부분 검이었다. 하지만 검이라고 하기에는 그 크기가 무식하게 컸다. 검의 날에는 이가 잔뜩 빠져 있었지만 성벽을 두드리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아니, 오히려 이가 빠져서 톱마냥 변해버린 탓인지, 더 쉽게 성벽을 긁어냈다.

쿵, 쿵!

성벽이 울렸다.

그 순간 2기의 기사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하나가 되어,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몬스터 데스나이트 한 마리를 노리고 들어갔다.

쿠웅, 쿠웅!

기가스 2대가 단숨에 돌격을 시도했다.

기가스의 돌격은 무시무시하다. 기마대의 그것과는 비교 자체를 불허할 정도다.

한 번의 차지(Charge)로 성벽을 출렁거리게 만들 정도다.

전력을 다한 차지였다.

꽈릉!

몬스터 데스나이트에 부딪쳤을 때, 그 소리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몬스터 데스나이트가 굉음과 함께 날아갔다. 그 거대한 몸뚱이가 하늘에 붕 떴다.

쿠웅!

그리고 추락했다.

기가스는 추락한 몬스터 데스나이트를 향해 거대한 검을 휘둘렀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었다.

두 개의 벼락이 내리쳤다.

콰광!

두 개의 벼락은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갑옷에 부딪치며 굉음을 터뜨렸다.

파각!

갑옷이 박살이 났다.

그뿐이었다.

“이런!”

“맙소사!”

기가스 파일럿들은 갑옷만 박살나고 속은 멀쩡한 것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기가스의 전력을 다한 공격에 고작 갑옷이 파괴된 게 전부라고?

물론 사실 그건 아니었다.

기가스의 공격은 위력적이었다. 더군다나 위에서 아래로, 낙하하는 공격이었다. 기가스의 공격 중 가자 위력적인 공격이다. 무게를 한계까지 실을 수 있는 공격이니까.

효과는 있었다.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단단한 피부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 아래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근육이 끊어졌다.

그러나 데스나이트 아니가?

출혈은 없다. 장기 파열도 없다. 단지 근육이 찢어졌을 뿐이다. 그것이 외부로 드러나지도 않았다.

결국 몬스터 데스나이트는 이 엄청난 공격을 받고도 움직였다.

그 순간 기가스 파일럿들은 전투 의지를 잃었다.

그리고 그런 기가스 파일럿들을 향해, 다른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이 공격을 날렸다.

검이 날아왔다.

기가스가 움직였다.

그러나 그 전투는 누가 보더라도 패배가 자명한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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