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87화 (185/293)

187화

4.

빅토리안 공작은 웃었다.

“놈들이 걸려들었군.”

자신이 생각해도 훌륭한 계획이었다.

“멍청한 제이머스 후작. 그러니까 그 꼴로 남는 거지.”

제이머스 후작.

그의 움직임은 진즉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파악할 수밖에 없다. 제이머스 후작의 세력이 큰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몇몇 귀족들만 감시하면 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빅토리안 공작에게는 어둠을 넘나드는 괴물들이 있었다.

그들을 이용하면, 제이머스 후작 파벌의 움직임을, 비밀을 알아차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당연히 들었다.

“결사대라고? 우스운 놈들.”

결사대!

자신의 영지를 치기 위해 결사대를 조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이머스 후작은 나름 극비리에 진행한 일이었지만, 빅토리안 공작 앞에서는 무의미한 비밀이었다.

그 계획을 알아차린 빅토리안 공작은 그 순간 역으로 계획을 세웠다. 오히려 제이머스 후작에게 크게 한 방 먹일 계획!

자신의 영지를 친다고?

좋다.

까짓것 영지 따위 얼마든지 줄 수 있다. 어차피 영지에 금은보화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도 아니다. 영지의 병력도 얼마든지 빼돌릴 수 있다. 영지민? 빅토리안 공작이 그런 걸 신경 쓸 위인인가?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다.

‘그래, 어차피 때가 왔다.’

시기도 적절했다.

카라카크, 그와 약속했던 시기가 왔다.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콩탄 왕국의 주인이 바뀌는 전쟁이다. 거대한 땅, 고고한 자리의 주인이 바뀌는 전쟁이다.

그 앞에서 영지 따위는 사소한 결과물에 불과하다.

‘왕위에 오르는 순간 모든 걸 정리할 것이다.’

왕위!

콩탄 왕국의 주인이 된다면, 빅토리안 공작령은 그저 자신이 가진 땅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계획을 세웠다.

오히려 제이머스 후작이 병력을 모은다면, 기회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제이머스 후작령과 다른 영지에 주둔하는 병력이 줄어들 테니까.

‘왕도로 몰아친다.’

왕도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영지를 공격하는 거다.

제이머스 후작이 빅토리안 공작령이란 미끼를 물고 있는 순간, 움직이는 것이다.

그 계획에 앞서 다크나이트를 왕도로 보냈다.

목적은 하나, 왕의 암살이었다.

꼭 암살이 성공하지 않아도 좋다. 실패해도 상관없다. 어쨌거나 암살 시도가, 그곳도 굉장히 유효한 암살시도가 있었다는 사실만 인지시켜주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왕도에 경각심을 주고 싶었다.

누군가는 물어볼 것이다.

굳이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할 필요가 있을까? 그게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전쟁에서 전술이란 건 언제나 상황에 맞게 달라지는 법이다.

왕에 대한 암살 시도.

성공하든 실패하든 왕도는 봉쇄된다. 왕을 지키기 위해서 왕도는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몸을 웅크리게 되면 외부에 대한 반응이 늦어진다.

또한 왕도 주변에 퍼진 병력들 중 일부가 왕을 지킨다는 이름 하에 왕도에 모일 터.

자연스럽게 왕도 자체의 병력은 몰라도, 그 주변의 병력은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다.

준비해둔 병력을 더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게 된다.

빅토리안 공작 역시 속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무엇보다 빨리 왕도를 쳐들어가 전쟁을 끝내야 했다.

이유?

뻔하지 않은가!

흑마법을 이용한 공격이니까.

카라카크가 만들어낸 데스나이트는 누가보더라도 정상적인 병기가 아니다. 사악한 흑마법으로 만든 괴물이다. 그런 괴물을 이용해 장기전을 치른다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빅토리안 공작 역시 아히만트 백작의 비호를 받고 있지만, 흑마법을 썼다는 게 들키면 아히만트 백작은 도마뱀 꼬리 자르듯 단숨에 빅토리안 공작을 버릴 것이다.

왕위를 찬탈해도, 페스로 제국의 비호를 받지 못하면 허울뿐인 왕위다.

흑마법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는 빨리 전쟁을 끝내야 한다. 그래서 일부러 왕도에 사람들을 꽁꽁 묶이게 만들고자 했다. 한 곳에 몰아 넣어서 처치하는 게 더 효율적일 테니까.

‘준비는 끝났다.’

그리고 지금, 결사대가 움직였다.

빅토리안 공작은 그 타이밍까지 가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맞추어 카라카크의 데스나이트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빅토리안 공작이 움직일 차례다.

“올해가 가기 전에 태양이 바뀌겠군.”

5.

드래곤 파이터가 달리고 있었다.

그 거대한 육신이 대지를 가르고, 숲을 뛰어넘으며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멍청한 새끼.”

드래곤 파이터 안에 탑승한 문수르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멍청한 새끼!”

그건 다름 아니라 본인 스스로를 향한 욕이었다.

문수르는 눈치 챘다.

‘애초에 빅토리안 공작가가 함정이었어!’

빅토리안 공작가의 움직임이 너무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빅토리안 공작가는 문수르가 제대로 된 조사를, GPS시스템을 이용한 전면 감시를 하기 전부터 이미 병력을 빼두었다.

이유?

제이머스 후작이 어떻게 나올지 파악한 것이다.

‘그 여우 같은 자를 그대로 놔두다니.’

빅토리안 공작.

여우마저도 속여 넘겨 제 뱃속에 넣을 자다. 그런 그를 고작 조용하다는 이유로 그냥 놔두다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아니다.

문수르의 실수다.

문수르는 빅토리안 공작을 감시하고 있었다. GPS시스템이라는 사기에 가까운, 게임으로 따지면 치트키에 가까운 행위로 감시하고,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어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문수르가 이런 판단을 진즉에 하지 못한 건 문수르가 무능력하다는 의미다.

무능력은 실수나 다름없다.

아니, 실수보다 더 좋지 못한 것이다.

‘지켜야 한다.’

빅토리안 공작의 목적은 하나다.

왕도 함락!

그것도 그냥 함락시키는 게 아니다.

속전속결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시일 내에 왕도를 무너뜨릴 속셈이다.

이유는 뻔하다.

‘흑마법을 들키기 싫은 거겠지.’

단순하다.

흑마법을 감추기 위해서다.

흑마법을 이용해 왕위를 찬탈할 경우, 그 어느 나라도 그 왕위를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다.

특히 페스로 제국!

페스로 제국은 오히려 기회로 삼을 것이다.

흑마법사가 왕위에 있는 나라라니?

그런 나라를 공격하는데 명분 따위가 필요할까? 당장 페스로 제국이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올 것이다.

‘어쩌면…….’

어쩌면 페스로 제국이 원하는 모양새는 그게 아닐까?

빅토리안 공작이 흑마법을 이용해 왕위에 오른다면? 그러면 페스로 제국은 콩탄 왕국을 그냥 제 입에 넣을 수 있다.

사실 까놓고 말해서 필로스 왕도 페스로 제국에 우호적이지만, 필로스 왕은 정치를 할 줄 아는 인물이다.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페스로 제국과 적당한 선을 지킨다. 페스로 제국 입장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상대하기 힘들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이니 뭐라고 하긴 힘든데, 그렇다고 꼭두각시도 아니니까.

‘젠장!’

정말 이 모든 배경에 페스로 제국이 있다면, 그들이 정말 원한 게 이거라면 콩탄 왕국의 위기다.

그냥 빅토리안 공작이 단순히 반역을 일으키고 왕위를 찬탈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니까.

그렇기에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

빅토리안 공작을 막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왕도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쿠틀러 백작가를 수성하는 것이다.

이 모든 상황에서 그나마 최대한 빠르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건 문수르와 드래곤 파이터뿐이 없었다.

‘제발!’

문수르의 운명이 그렇게 달리기 시작했다.

6.

쿠틀러 백작가에는 3기의 기가스가 전부였다. 그것들도 전부 1배 급 기가스들…… 물론 주력이긴 주력이지만, 솔직히 요즘 정말 전장에서 활약하는 건 2배 급 기가스다. 1배 급 기가스는 점차 구식으로 취급 받고 있다.

무엇보다 쿠틀러 백작은 3기의 기가스를 가장 실력이 뒤쳐지는 기사들에게 맡겼다.

실력이 뛰어난, 특히 강철 기사단 전부를 이끌고 빅토리안 공작령으로 향했다.

쿠틀러 백작은 그런 영주였다.

적을 칠 때 전력을 다하는 자! 토끼를 사냥할 때도 전력을 다하는 사자 같은 자였다.

덕분에 쿠틀러 백작은 30여 기의 데스나이트가 지척까지 도달하기 전까지 아무 것도 몰랐다.

콰앙!

거대한 굉음!

성벽이 부셔질 듯한 굉음소리가 전쟁의 효시였다.

“무슨 일이냐?”

그나마 다행인 건 이 갑작스런 사실에 기사들의 대응 그리고 병사들의 대응이 잽쌌다는 점이다.

평소에 열심히 병사들과 기사들을 훈련시킨 덕분이다.

“적습입니다!”

“적습?”

“적의 숫자는?”

“30여 기 정도로 파악됩니다.”

“30여 기? 기가스란 말인가?”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가스 정도의 덩치와 위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기가스에 버금가는 덩치와 위력?”

기사들은 병사들이 가져온 소식에 놀랐다. 그러나 답을 내리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적의 습격, 기가스에 버금가는 위력의 존재, 30여 기라는 숫자.

이 모든 걸 조합하면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니까.

“모두들 움직여라. 기가스를 작동시켜라!”

지금 쿠틀러 백작령에 있는 3기의 기가스를 바로 움직여야 한다. 성벽이 무사할 때 움직여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쿠틀러 백작령의 성벽이 기가스와의 전투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는 점이었다.

상대가 기가스에 버금가는 전력이라면, 적어도 어느 정도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빨리 움직여라!”

쿠틀러 백작령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7.

“얼마나 남았나?”

제이머스 후작의 말에 기사 한 명이 대답했다.

“내일이면 곧바로 전투에 돌입합니다.”

“내일이군.”

사실 제이머스 후작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만큼 왔는지, 빅토리안 공작령과의 거리가 얼마인지.

그럼에도 물어봤다.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다.

기사들에게?

‘내일이군.’

아니다.

경각심을 주려는 대상은 기사들이 아니라 제이머스 후작, 본인이었다.

전쟁이다. 그 누구도 아닌 제이머스 후작, 그가 진행하는 전쟁이다. 계획은 불스 백작이 세웠다고 해도 그 계획을 받아들이고, 승인하고, 다시금 새로이 계획을 세운 건 제이머스 후작이었다.

모든 책임은 그에게 있다.

승리를 하든, 패배를 하든…… 어떠한 결과물이 나오든 그 결과물은 제이머스 후작이 짊어지고 가야 한다.

‘정신 차리자.’

이렇게 경각심을 주는 건 어설픈 위로가 아니었다.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행동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였다.

제이머스 후작은 알고 있다.

전쟁에선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정신이란 것을, 육체의 기능보다 정신의 힘이 어느 때보다 강력해지는 장소가 바로 전장이란 것을.

“정찰대는 어찌 됐나?”

“아마 지금쯤이면…….”

그때였다.

빅토리안 공작가의 정찰을 위해 미리 파견했던 정찰대.

“정찰대가 도착했습니다.”

그들이 막 도착했다. 제이머스 후작이 눈빛을 빛냈다.

‘시작이군.’

빅토리안 공작가의 상황을 보고 준비해둔 계획들 중에서 한 가지를 실행할 것이다.

정찰대가 가져온 정보가 전쟁의 효시인 것이다.

'빅토리안 공작, 이제 지루한 전쟁의 끝을 보자.'

그때까지 제이머스 후작은 몰랐다.

자신 앞에 놓인 상황이 어떠한 상황인지 말이다.

그리고 정찰대가 들어왔다.

그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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