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86화 (184/293)

186화

<55화. 어둠이 움직이다.>

1.

깊은 숲속.

바람 한 점 스며들지 못하는 그 땅에 검은 갑옷을 입은 거인들이 은밀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쿠우, 쿠우!

잘 만들어진 갑옷이다. 딱 봐도 보통 수준이 아니라, 나름 뛰어난 장인의 솜씨가 보이는 갑옷이다.

그러나 단언할 수 있다.

그 갑옷을 입은 자는 절대 인간이 아니다.

덩치부터가 인간과는 궤를 달리했다. 신장이 제각각이긴 했지만, 대부분 그 신장이 3미터를 훌쩍 넘겼다.

더군다나 검은 갑옷을 입은 무리들의 입에서는 짐승조차 까무러치게 만들 정도로 소름끼치는 소리가 나왔다.

일가견이 있는 자라면 당장 눈치챌 것이다.

검은 갑옷을 입고 있는 무리들이 그 무엇도 아닌 몬스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눈썰미가 더 뛰어난 자라면 그 몬스터가 보통 몬스터가 아님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자이언트 트롤, 오우가와 같은 종류들! 특히 맨몸으로 어지간한 기가스와 맞짱을 뜰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포악한 오우거가 갑옷을 입고 있다니? 말해도 믿지 못할 것이다. 두 눈앞에 데려와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제 눈을 의심할 것이다.

그 무리들의 숫자가 보통이 아니었다.

대충 가늠해도 서른이 훌쩍 넘어갔다.

쿠르, 크르르!

더군다나 그 포악한 몬스터들은 마치 암살자의 그것처럼, 거대한 숲의 고요함을 이용해 이동하고 있었다.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2.

“결사대. 그런 느낌이 좋겠지.”

제이머스 후작은 빅토리안 공작가를 치기 위해 모인 병력들 앞에 결사대란 이름을 붙였다.

결사대의 병력은 1배 급 기가스 21대, 2배 급 기가스 11대 그리고 제이머스 후작이 소유한 2.4배 급 기가스를 포함해 총 34대의 기가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더불어 이 기가스 병력 외에 63명의 기사들과 2천 명의 보병들이 추가됐다.

강력한 전력이다.

특히 기가스 전력만 34대라는 건 엄청난 전력이었다. 빅토리안 공작가가 자력으로 이 병력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빅토리안 공작의 전력만이라면 제 아무리 성을 두고 수성전을 치른다고 해도 이틀 안에 빅토리안 공작가를 함락시킬 수 있다.

‘남은 건 움직이는 것뿐!’

이미 병력들은 이동 중이었다.

각지에서 출발한 기가스와 병력들이 빅토리안 공작령 주변에 마련한 포인트로 이동 중이었다.

제이머스 후작 역시 움직일 것이다.

‘속전속결.’

사실 제이머스 후작은 이렇게 빠르게 공격을 감행할 생각은 없었다. 좀 더 정보를 모으고,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빅토리안 공작은 그리 쉬운 상대가 아니니까.

하지만 왕도에서의 소식을 들은 이후 생각이 달라졌다.

이대로 있다가는 빅토리안 공작의 세력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게 뻔했다.

커지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

물론 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나무 기둥 같은 존재지만, 어쨌거나 처치해야 한다.

그리고 그걸 위해선 얼마 정도의 희생은 감수할 생각이었다.

‘절반이 죽어도 좋다.’

아니, 절반 이상의 피해도 염두에 두었다. 10여 대가 넘는 기가스가 대파되더라도, 빅토리안 공작가를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감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전장에서 갈고 닦은 감이 말이다.

“아쉽군.”

동시에 그 감은 아쉬움을 표현했다.

“시간이 있었다면 문수르, 그와 무를 겨루었을 텐데.”

사안이 긴박했다.

당장 움직여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문수르를 제이머스 후작령에 계속 붙잡을 수는 없었다. 그게 아니라 본래 계획대로라면 대련을 했어도 몇 번은 했을 것이다.

무인의 감이 아쉬움을 표현했다.

‘어쩔 수 없지.’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정.

빅토리안 공작가를 무너뜨리는 건, 제이머스 후작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을 위한 공적인 일이다.

‘좋아.’

마음을 가다듬은 제이머스 후작이 검을 허리에 찼다.

제이머스 후작, 그가 빅토리안 공작령을 향해 떠났다.

3.

맥 빠진 여행이 됐다.

최소한 제이머스 후작령에서 보름 정도는 지내게 되리라 예상했는데, 제이머스 후작령에서 머문 시간은 하루에 불과했다.

상황이 너무 긴박한 탓이었다.

줄 것만 주고 왔다.

“쩝.”

그 부분이 문수르는 내심 아쉬웠다.

‘그 향신료들…… 잘만 하면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었을 텐데.’

제이머스 후작가에 준 선물들은 이 세계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다.

더군다나 후추!

케르빈 월드에도 향신료가 있다. 후추와 비슷한 것도 있다. 더불어 굉장히 비싸다. 물론 비싸긴 해도, 어스 월드의 역사 속에서처럼 후추가 금과 똑같은 무게에 거래가 된다는 건 아니다. 그래도 비싸긴 비싸다. 귀족들이 아니면 제대로 쓸 수 없을 정도로.

그러나 솔직히 별로다.

문수르가 생산한 후추는 품종 개량을 걸쳐 사람 입맛에 가장 잘 맞고 만들어진 놈이었다.

잘만 하면 콩탄 왕국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올 수도 있는 놈이다.

제이머스 후작에게 그 후추를 주어서, 퍼뜨리려고 했다. 제이머스 후작이 즐겨 찾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변 귀족들이 즐겨 찾게 될 테고…… 그 부분에 대한 사업구상을 했었다. 아무래도 이제르트 자작가는 여전히 콩탄 왕국에서 왕따 비슷한 취급을 받는 중이다.

사업을 하려면 인지도와 신뢰도가 중요하다. 이제르트 자작가 혼자서는 일을 진행하기 힘들다.

하지만 제이머스 후작을 등에 업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돈은 언제든지 부족해.’

당장 돈이 급한 건 아니었지만, 돈이라는 게 많아서 나쁠 건 하나도 없다.

‘아쉽군.’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그보다 기가스 전력이 3대나 빠져나가면…….’

한편 결사대에 보낸 병력 공백을 걱정하기 시작하던 문수르.

- 주인님.

“응?”

그런 그를 로이드가 불렀다.

“무슨 일이야?”

- 데스나이트의 움직임이 파악됐습니다.

“뭐?”

왔다.

데스나이트, 콩탄 왕국의 정세를 단숨에 바꿀 수 있는 가장 위력적인 변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야? 테블스 산? 진로는? 목적은?”

- 그게…… 테블스 산이 아닙니다.

“그럼?”

- 쿠틀러 백작가입니다.

“쿠틀러 백작가?”

그 순간 문수르의 머릿속이 빠르게 움직였다. 사전에서 단어를 찾듯, 문수르는 제 머릿속에서 쿠틀러 백작가란 단어를 찾았다.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미 인연이 있는 가문이니까.

‘사이저 쥴리언.’

사이저 쥴리언.

모를 리 없다.

쿠틀러 백작의 최측근이며, 쿠틀러 백작가가 보유한 기사들 중 가장 강력한 기사!

쿠틀러 백작 휘하의 기사단 중 가장 강력하다는 강철 기사단의 기사단장인 자다.

“그래, 쿠틀러 백작가.”

그런 사이저 쥴리언을 문수르는 구해준 적이 있었다.

루이 노믹스가 사이저 쥴리언의 목숨을 노리고 일부러 왕도에서 도발했을 때, 그래서 결투가 벌어졌을 때.

문수르가 개입했다.

그때 이후 인연이 옅게는 이어져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때 인연 때문에 이제르트 자작가가 제이머스 후작 파벌에 들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쿠틀러 백작은 제이머스 후작의 최측근 중 한 명이니까.

“가만, 왜 데스나이트가 쿠틀러 백작가를?”

그래서 이해가 안 간다.

테블스 산에서 튀어나온 데스나이트가 지금 쿠틀러 백작가를 공격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숫자가 얼마나 되지?”

- 현재까지 파악된 건 32기입니다.

“대충 데스나이트를 100기로 잡는다면, 3할에 가까운 전력이 쿠틀러 백작가에 파견됐다는 의미인데…….”

- 지금 막 파악된 데스나이트의 이동경로 및 현재 콩탄 왕국의 정세 상황을 표시할까요?

문수르는 대답 대신 멀티 글라스를 착용했다.

곧바로 지도가 떴다.

지도 위로 빨간 점들이 이동 중이었다. 더불어 파란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빨간 점은 데스나이트다.

파란 점은 기가스다.

파란 점의 숫자는 셋이 전부다.

반대로 빨간 점은 그 숫자가 32개에 다다랐다.

‘못 막는다.’

이 상황을 보고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건 무차별적인 학살이란 단어였다.

막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적은 30여 기의 데스나이트다. 이제르트 자작가조차 곤란하게 만든 놈들이다. 한 기가 기가스에 버금갈 정도로 강력한 놈들이다.

그런 놈들을 고작 3대의 기가스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쿠틀러 백작이 상상 이상으로 전력을 많이 뺐군.’

사실 쿠틀러 백작가가 보유한 기가스는 10대나 된다. 2배 급 기가스는 5대나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전력 대부분이 결사대에 투입됐다.

제이머스 후작의 최측근인 쿠틀러 백작이 제이머스 후작이 진행하는 대사(大事)에 어설픈 지원을 할 리 만무하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거다.

나중은 없다.

“아니, 잠깐.”

그러나 그 순간 문수르는 데스나이트의 동선을 보다가 무언가 이상한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동선대로라면…….”

테블스 산에서부터 시작된 데스나이트의 동선, 그 동선을 기점으로 로이드가 예측한 동선 위에는 두 곳이 있었다.

하나는 제이머스 후작령이었다. 그런 제이머스 후작령을 거친 후에 목적지는 다름 아니라 왕도가 있었다.

‘전력을 분산해서 적당히 영지들을 파괴한 후에 왕도에서 전력을 집중시키는 전략인가?’

전력을 분산하는 건 전략의 기본이다.

전력을 감추기에 용의하며, 공격을 당하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물론 반대로 전력을 뭉칠 때보다 더 약하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모든 전술과 전략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문수르의 감이 말해줬다.

데스나이트의 최종목적지는 왕도다.

‘왕도로 가는 길목을 미리 뚫어두겠다는 의미로군!’

참고로 왕도로 가는 길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주요 길목에는 영지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영지의 주인들은 대부분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전략적 요충지에 핵심 전력을 배치하는 건 전술의 기본이다. 그저 무작정 땅 위에 성을 세우는 바보는 없다. 전략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짓는 게 성이라는 놈이다.

쿠틀러 백작령과 제이머스 후작령은 왕도에 도달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관문 같은 곳이다.

그리고 기가스를 막기 위한 어느 정도의 대책도 있다.

그렇다면 데스나이트를 막는 데에도 어느 정도 용의할 터!

만약 문수르가 데스나이트의 주인이라면, 그리고 그 목적이 왕도의 공격이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전력이, 제이머스 후작가와 쿠틀러 백작가의 전력 상당부분이 공백 상태인 지금!

이 기회를 놓치는 바보가 있을까?

‘설마…….’

이 순간 떠오르는 한 가지 가설.

‘빅토리안 공작의 함정인가?’

이제까지 진행된 모든 일, 어쩌면 이 모든 걸 빅토리안 공작은 알고 있지 않을까?

“로이드, 빅토리안 공작령의 상황은?”

- 이러다할 특이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젠장…….”

모르겠다.

‘왕의 침묵이 시작된 순간부터 판이 뒤집혔어.’

보통 경우라면 답을 내놓았을 것이다. 문수르는 수시로 정보를 수집하고, 새로운 답을 내놓으니까.

그러나 필로스 왕에 대한 암살 시도 이후 이어진 필로스 왕의 침묵이 이제까지 문수르가 짜놓았던 모든 판을 망가뜨려 버렸다.

혼돈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나 결정은 내려야 한다.

문수르는 고민했다.

그리고 문수르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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