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85화 (183/293)

185화

11.

제이머스 후작령으로 가는 길은 평탄했다.

사실 조금의 걱정은 있었다.

‘이제르트 자작가에 대한 견제세력이 습격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문수르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 그가 염두에 둔 최악의 상황은 빅토리안 공작가가 이제르트 자작가의 정보를 파악한 후에 제이머스 후작가로 향하는 세력을 치기 위해 병력을 보내는 것이었다.

극단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기에 문수르는 GPS시스템을 통해 수시로 빅토리안 공작가의 동향을 살폈다.

이러다할 움직임은 없었다.

그래서 조촐한 병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롤로이와도 많이 친해졌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서적 교감을 나눈 덕분일까?

대화가 어렵진 않았다.

또한 롤로이는 문수르에게 많은 것을 물어봤다. 특히 영주가 가져야 하는 덕목, 능력에 대해서는 문수르가 짜증이 날 정도로 질문을 했다. 물론 문수르는 짜증을 내지 않았다.

문수르는 가르쳐줬다.

이 세계에 맞는 지식을, 자신이 원하는 영주의 모범답안지를 알려주었다.

롤로이는 우려와는 달리 문수르의 지식을 스폰지처럼, 아무런 부담 없이 흡수했다.

몇 가지 부분에서는 케르빈 월드에 만연한 정서적 가치, 도덕적 개념과 충돌하긴 했고, 그로 인해 고민을 하긴 했지만 긍정적인 방향의 고민이었다.

문수르는 롤로이의 그런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훌륭한 재목이다.’

롤로이는 아버지 이상으로 뛰어난 재목이었다. 더군다나 아버지의 성품을 그대로 물려 받았다. 더군다나 아직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 지식을 흡수하는데 이러다할 무리가 없었다. 이해도 빨랐다. 생각의 전환도 부드러웠다.

롤로이가 영주가 된다면 이제르트 자작가는 더 큰 부흥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래, 이제르트 자작가가 내 손에 달렸다.’

문수르의 역할은 롤로이가 영주가 되기 전까지, 이제르트 자작가를 콩탄 왕국의 반석에 올려놓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제르트 자작가를 지킬 것이다. 꼭 제대로 된 명문가로 다시 평가 받게 만들 것이다.’

12.

제이머스 후작령에 도착했을 때 문수르는 직감했다.

‘일이 터졌다.’

제이머스 후작령에 진입하자마자 경비가 막아섰다. 길목 중간에는 임시로 만든 듯한 천막이 있었다.

말 그대로 임시다.

최근 천막을 세운 후에 병력을 보내 제이머스 후작령을 오고가는 사람들을 검문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갑작스런 경비 병력의 증대!

아무런 이유 없이 병력을 늘리는 사람은 없다. 분명 무슨 일이 생겼다는 의미다.

만약 어느 정도 조짐이 있었다면 문수르가 눈치를 챘을 것이다. GPS시스템은 멋으로 있는 게 아니니까.

‘뭐지?’

경비는 이제르트 자작가 일행을 막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몇 가지 검문이 있었다. 큰 충돌은 없었다. 이제르트 자작가란 사실을 밝히자, 경비들은 친절하게 나왔다.

“이제르트 자작가에서 오셨습니까? 미리 언질을 들었습니다. 일행은 이게 전부입니까?”

“예.”

“곧바로 본 영지에 연락을 보내겠습니다. 안전한 여행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문수르는 묻지 않았다.

왜 이렇게 갑자기 경비가 삼엄해졌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물어보면 괜한 의심을 살 것 같았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니, 고민하지 말자.’

그러나 문수르는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괜히 섣부른 예측을 하기보다는 제이머스 후작의 말을 기다려보자.’

곧바로 제이머스 후작령의 본성을 향해 이동했다. 평소보다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제이머스 후작가에 도착했을 때 문수르는 엄청난 소식을 듣게 됐다.

그건 다름 아니라 왕도에서 왕을 암살하기 위한 암살기도가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13.

“전하께서 암살자의 공격에 당하셨네.”

제이머스 후작은 대뜸 그 말부터 했다.

아마도 그가 준비한 말은 그게 아니었을 것이다. 많은 것을 준비했을 것이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제이머스 후작가와 이제르트 후작가의 돈독한 사이를 위해서 혹은 문수르에 대한 이야기를 위해서. 하루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의 이야기거리를 준비해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가 휴지통에 들어갔다.

“당하셨습니까?”

필로스 왕에 대한 암살기도.

그리고…….

“그 이후 소식은 없네.”

왕도의 모든 것이 정지했다. 마치 거북이가 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등껍질 안으로 숨듯, 모든 정보루트가 폐쇄됐다. 왕도로 들어가는 사람은 있어도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로이드, 어떻게 된 거야?’

- 밤중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조짐을 몰랐어?’

- 현재 GPS시스템의 여력이 많지 않습니다. 너무 광범위한 범위를 스캔 중입니다. 더군다나 최근 빅토리안 공작가에 대한 스캔을 집중시키느라, 상대적으로 왕도에 대한 감시가 소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GPS시스템은 유능하지만 만능은 아니다.

‘어쩔 수 없지.’

로이드의 말, 문수르는 이해했다.

GPS시스템의 기능 대부분을 빅토리안 공작가 그리고 테블스 산에 집중시킨 상황이다.

당연하다.

빅토리안 공작은 가장 큰 적이고, 테블스 산에는 백여 기의 데스나이트를 만든 무시무시한 존재가 있다. 이 두 존재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감시한다는 건 바보짓이고, 미친 짓이다.

“누가 그런 짓을 한 겁니까?”

“모르네. 단지 왕도에서 전하께서 암살 기도를 당하셨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네.”

“빅토리안 공작입니까?”

문수르는 넌지시 빅토리안 공작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조심스러운 이야기였다.

제이머스 후작이 빅토리안 공작과 반목한다고 해도, 상대는 유일무이한 공작이다. 더군다나 왕의 공백이 길어진다면, 자연스럽게 그 자리는 빅토리안 공작의 될 것이다.

아무리 주변에 보는 눈이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꺼낼 말한 이름은 아니다.

더군다나 왕의 암살이다.

지금 문수르는 빅토리안 공작이 반역을 저질렀다고 물어보는 것이다.

“모르네.”

제이머스 후작은 확답을 꺼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가장 유리해진 건 빅토리안 공작이 된 건 분명한 사실이지.”

“그렇습니까?”

“사실 자네를 부른 건…… 다름 아니라 빅토리안 공작가를 치기 위해서 이제르트 자작가의 병력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네.”

“예?”

“말 그대로네. 불스 백작과 이야기를 나눴네. 이 지루한 전쟁을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방법은 빅토리안 공작가를 무너뜨리는 것, 그것뿐이라는 것을. 최근 결단을 내렸네.”

문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불스 백작. 보는 눈이 있다.’

불스 백작은 핵심을 꿰뚫었다. 아마 제이머스 후작 파벌에 들어간 것도 그 때문이겠지.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불스 백작 자신과 제이머스 후작 그리고 그 휘하의 귀족들의 힘을 합쳐 빅토리안 공작가를 기습한다면! 그러면 전쟁은 끝난다고.

문제는 명분이다.

명분이 생기기 전까지 불스 백작은 기다린 것이고, 결국 그는 기회가 왔을 때 곧바로 움직이고자 했다.

이야기는 잘 흘러갔다.

제이머스 후작이 불스 백작의 계획을 따르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이제르트 자작을 불렀다. 왕가와 긴밀한 관계가 되었을 뿐더러, 베르베 백작마저 처치한 이제르트 자작가는 강력한 전력이 있으리라 생각됐으니까.

그러나 문제가 생긴 것이다.

“빅토리안 공작의 동향은 어떻습니까?”

문수르는 말하고도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아직 이러다할 동향은 없지.’

문수르는 GPS시스템을 통해 빅토리안 공작가를 실시간 감시 중이다. 지금 문수르보다 빅토리안 공작가의 동향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어쩌면 빅토리안 공작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없네. 솔직히 오래 전부터 빅토리안 공작가의 동향을 살피는 일은 어려웠네.”

“계획은 바로 수행하실 겁니까?”

“그전에 묻지. 이제르트 자작가에서는 어느 정도의 병력을 파병할 수 있는가?”

역시 제이머스 후작.

이 상황에서도 확실하게 핵심을 파고 들었다. 어설프게 문수르의 화술에 넘어가지 않았다. 본질을 꿰뚫었다.

그렇다.

지금 제이머스 후작에게 중요한 건 이제르트 자작가에게 자신의 계획을 일일이 설명해주는 게 아니라, 이제르트 자작가가 얼마만큼의 병력 지원을 해줄 수 있는가, 바로 그 부분이다.

문수르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병력을 빼는 건 부담스럽다.’

이제르트 자작가의 병력은 엄청나다.

까놓고 말해서 드래곤 파이터까지 동원한다면, 문수르는 자신한다. 제이머스 후작가 정도는 무너뜨릴 수 있다고.

그러나 그 어마어마한 병력으로도 어찌하지 못하는 강력한 적이, 데스나이트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병력을 뺀다?

속이 쓰리다 못해 등골이 싸늘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뺄 수는 없지.’

그러나 이번 전쟁, 제이머스 후작의 계획은 앞으로 콩탄 왕국의 정세를 크게 바꿀 계획이다.

핵심이다.

왈가왈부 할 필요 없이 빅토리안 공작가만 무너진다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다.

‘왕의 부재.’

여기서 변수가 생겼다.

필로스 왕, 그가 멀쩡했다면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르트 자작을 부속령으로 대피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병력을 빼서 지원을 해줬을 것이다. 필로스 왕과 빅토리안 공작의 반목이 확실해진 상황에서, 명분 없이 빅토리안 공작가를 쳐도 필로스 왕이 눈을 감아줄 테니까.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필로스 왕의 부재로 인해 빅토리안 공작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힘을 얻게 됐다.

공격이 성공했다고 치자.

그 다음에는?

빅토리안 공작과 그 일가를 전부 잡아 죽이지 않는 이상, 미래를 점칠 수 없다.

‘그래, 핵심이 바꾸었다.’

이제까지는 빅토리안 공작의 지지기반인 공작가를 무너뜨리면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러나 왕의 부재 중에는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빅토리안 공작의 지지기반인 공작가는 물론 빅토리안 공작 본인,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빅토리안 공작가의 주인이 될 그의 가족들까지 싹 처치해야 한다.

그게 최선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빅토리안 공작가를 치는 것도 치는 거지만, 빅토리안 공작이 바보도 아니고 오는 적 앞에 목을 그냥 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흑마법사.’

더군다나 지금 빅토리안 공작에게는 흑마법이란 엄청난 비장의 카드가 있다.

도망치고자 한다면 빅토리안 공작을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일에 병력을 지원하는 건 좀 그렇다.

제이머스 후작의 체면을 위해서 어느 정도 병력 지원을 있겠지만, 많은 수준은 안 된다.

‘기가스 3대 정도.’

맥시멈 수치는 기가스 3대.

이 이상은 힘들다.

대신에 아이언히트가 아니라, 노획해서 만든 1배 급 기가스를 보내줄 것이다.

적은 전력은 아니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제이머스 후작 입장에서도 기가스 3개가 추가된다면 나쁠 건 없다.

문수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1배 급 기가스 3대 정도가 이제르트 자작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일 듯합니다.”

“이제르트 자작가에 기가스가 3대나 있었나?”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간신히 마련했습니다.”

“흠.”

제이머스 후작은 문수르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러나 잠시 뿐이었다.

“고맙네.”

어쨌거나 이제르트 자작가도 병력을 파병해준다. 기가스 3대,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니다. 제이머스 후작가의 기준으로 봤을 때 일개 자작가의 지원 치고는 엄청난 지원이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솔직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나눌 이야기는 없다. 공격 계획은 세워졌고, 그 계획대로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이 이상 이제르트 자작가에 정보를 주는 것 역시 의미가 없다.

이제부터는 다른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길게 말 안 하겠네.”

사적인 이야기.

“한 번 싸워보는 게 어떻겠나?”

무인 제이머스 후작의 이야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