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80화 (178/293)

180화

<53화. 제이머스 후작가.>

1.

제이머스 후작.

기사의 모범이며, 콩탄 왕국이 낳은 오러 마스터이자, 뛰어난 기가스 파일럿.

그런 그는 잘 알고 있다.

정치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이 많은 결점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최근 빅토리안 공작 파벌과의 전쟁은 제이머스 후작에게 많은 고민과 고뇌를 안겨줬다.

전쟁은 승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이머스 후작을 따르는 귀족들 중 상당수는 정치적 이유보다는 제이머스 후작이 가진 기질, 기사로써의 기질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많았다. 정치보다는 무력(武力)에 의미를 둔 귀족들이 많았다.

반대로 빅토리안 공작 휘하에 모인 이들은 정치 때문에 모인 이들이 상당수였다. 물론 빅토리안 공작 휘하에도 막강한 전력을 가진 귀족들이 있지만, 일부에 불과했다.

영지전이 벌어지면 대부분 제이머스 후작 파벌이 승리했다.

그러나 제이머스 후작의 정치적 입지는 전쟁이 계속될수록 오히려 줄어들고 있었다.

“좀 힘들군.”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익혔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을 평생 익혔다고 할 수도 있다.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할 자신은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오히려 궁지에 몰린다는 것은 어디서도 배운 적이 없었다.

“이게 정치인가?”

이제까지 정치에 대해서는 그다지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명분이 있고, 힘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정치의 세계는 제이머스 후작의 생각보다 더 험난하고, 어려운 세계였다.

“제르둔 후작…….”

그래서일까?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될 자였어.”

이제는 죽어버린 제르둔 후작이 떠올랐다. 그는 제이머스 후작에게 가장 부족한 정치적 부분을 메워주던 자였다. 또한 나름 마음이 맞는 지기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정치싸움에서 패배해 반역자가 되어 가문조차 구제하지 못하고 몰랐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아니, 놀랐다기보다는 슬펐다.

모함 때문에 가문의 명예마저 사라진 그의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나 역시 잘못되면 그리 끝나겠지.’

그런 제르둔 후작의 모습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제이머스 후작은 궁지에 몰렸다. 빅토리안 공작 파벌에서는 제이머스 후작 파벌에 대한 좋지 못한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 영지전에서 패배해도 온갖 수작을 부려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거나, 반대로 영지전의 책임을 제이머스 후작 파벌에 떠넘기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쳐 죽을 것이다.

더군다나 개개인의 전투력에서는 제이머스 후작 파벌이 나을지 모르지만, 세력과 지구력 면에서는 빅토리안 공작 파벌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는 모양세다.

‘결국 불스 백작,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야겠군.’

2.

불스 백작은 자신의 눈앞에 놓인 기가스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때가 왔군.’

제이머스 후작, 그로부터 편지가 왔다.

불스 백작이 했던 사전 제안에 대한 답장이었다. 제이머스 후작은 불스 백작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이번 전쟁, 전하의 마음은 빅토리안 공작으로부터 떠났다.’

정세를 바라보는 불스 백작의 눈!

그것은 제이머스 후작의 그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또한 불스 백작은 나름 변방에 웅크리면서 많은 정보망을 형성했다. 대단한 정보망은 아니지만 콩탄 왕국 전체에 걸쳐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질보단 양이지만 폭 넓은 정보망을 가졌다는 건 엄청난 일이었다.

그 정보들을 조합해 제이머스 후작이 내린 결론은 빅토리안 공작과 필로스 왕 사이에 반목 기류가 생겼다는 것!

심지어 필로스 왕은 메르디아 삼왕녀를 이제르트 자작가에 보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빅토리안 공작이 페스로 제국의 다른 귀족과 손을 잡은 거겠지.’

불스 백작의 정치적 안목은 대단했다.

때문에 불스 백작은 상황을 간단하게 분석할 수 있었다.

‘결국 빅토리안 공작만 무너뜨리면 된다.’

길게 볼 게 없다.

애초에 친왕파란 이름 아래 모인 빅토리안 공작 파벌이 필로스 왕으로부터 버림 받는다면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

파벌이란 그런 거다.

필로스 왕의 힘과 배경이 나름 튼실한 지금 상황에서 필로스 왕에 등을 돌리고 빅토리안 공작 편에 설 이들이 얼마나 될까? 더군다나 빅토리안 공작 파벌에 붙은 귀족들은 리스크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리스크가 적은 빅토리안 공작 파벌에 붙은 거다.

만약 빅토리안 공작과 필로스 왕의 사이가 틀어진 게 전면에 드러난다면, 빅토리안 공작 파벌에 속한다는 건 엄청난 리스크를 짊어진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대신 빅토리안 공작이 이기면 엄청난 상을 받을 순 있겠지.

어쨌거나 결국 빅토리안 공작만 무너지면 모든 전쟁은 끝는 것이다.

그럼 이야기는 간단해지지 않은가?

‘병력을 이끌고 가면 된다. 질적으로는 절대 밀리지 않아. 하물며 필로스 전하와 빅토리안 공작이 반목하는 중이라면, 빅토리안 공작은 필로스 왕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더불어 루이 노믹스의 도움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제이머스 후작이 가지는 오러 마스터란 타이틀은 전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러 마스터.

기가스가 나온 이후로 그 가치가 줄어들긴 했지만, 그것이 가지는 상징성은 절대적이다.

결국 기가스를 움직이는 건 사람이다. 기가스 파일럿들은 기사들이다. 오러 마스터를 향한 그들의 존경심은 대단하다. 그리고 그 존경심은 전장에서 적으로 만났을 경우 절대적 공포가 되어 돌아온다.

‘여기서 문수르.’

더군다나 불스 백작에겐 카드가 하나 더 있다.

‘문수르와 이제르트 자작가의 전력도 포함시키면, 빅토리안 공작가의 기가스 파일럿들은 전쟁을 치르기도 전에 사기가 떨어지겠지.’

문수르!

콩탄 왕국의 세 번째 오러 마스터!

루이 노믹스가 나서지 않고, 제이머스 후작과 문수르가 동시에 빅토리안 공작을 공격할 경우, 빅토리안 공작가가 느끼는 압박감을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가능하다.

‘확실해.’

이 방법은 확실히 먹힌다.

제 아무리 빅토리안 공작의 세가 콩탄 왕국에서 가장 크다고 해도 그 한계는 명백하다.

제이머스 후작가, 불스 백작가 그리고 여기에 최근 가장 기세가 좋은 이제르트 자작가까지!

세 가문이 힘을 합쳐서 동시에 기습을 시도하면,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명분을 무시한 건 빅토리안 공작 쪽.’

더군다나 이제 더 이상 공격을 해야할 명분 따위를 찾을 필요는 없다.

필요한 건 승리뿐이다.

“이제르트 자작가에 편지를 보내야겠군.”

불스 백작이 미소를 지었다.

빅토리안 공작가가 무너진다면, 이후 콩탄 왕국의 귀족 사회가 새롭게 재편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제이머스 후작가는 공작가가 될 터.

그렇게 되면 후작자리에는 공석이 두 개나 생긴다.

“하하하!”

개중 하나가 불스 백작의 것이 될 것이다.

3.

겨울이 끝나간다.

데스나이트 무리들이 처들어온 이후로 석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문수르는 생각했다.

‘시간 참 빨리 흐르는군.’

정말 시간은 물처럼 흐른다.

“너무 조용해.”

그리고 지금 이제르트 자작가는 평온했다. 갑작스런 사건에 놀랐던 영지민들은 안정을 되찾았다. 이제르트 자작이 영지를 둘러보며 영지순회를 통해 영지민들을 안정시킨 것 역시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후속 공격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당장 이제르트 자작가를 무너뜨릴 것처럼 덤벼들었던 데스나이트들은 흔적을 감추었다.

‘추격도 실패했어.’

심지어 GPS시스템을 이용했음에도 추격에 실패했다. 현재까지도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대체…….’

그 일 때문에 문수르는 어스 월드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노크 클락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빌어먹을.’

상황이 이런데 장시간 영지를 비우고 본래 세계로 돌아가 한석균을 만나는 건 아무래도 힘들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르트 부속령이 잘 돌아가는 거로군.”

최악의 소식들 속에서 그나마 희소식이라 할 수 있는 건 이제르트 제1 부속령과 제2 부속령이 잘 운영된다는 사실이다.

혹시 모를 다른 귀족의 도발 또는 공격에 노심초사했지만, 도발은 있었어도 아직까지 이러다할 공격은 없었다.

“제이머스 후작 쪽도 조용하고. 빅토리안 공작 쪽은 계속 도발만 일삼고 있고.”

콩탄 왕국의 정세는 조용해졌다.

하루가 멀다하고 빅토리안 공작 파벌과 제이머스 후작 파벌 사이에 일어났던 영지전이 잠잠해졌다.

물론 단순한 소강상태라는 느낌보다는 폭풍전야의 느낌이 강했다.

GPS시스템을 통해서 파악하는 대략적인 상황만 보더라도 병력 이동은 꾸준히 있었다.

“조만간 터지겠지.”

확실하다.

이제까지가 전초전에 불과했다면, 조만간 전면전이 일어날 것이다.

사실 전쟁이란 게 길어지면, 패자도 패자지만, 승자 역시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겨울 동안 전쟁으로 비축된 식량이 떨어져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봄을 지나, 여름까지 전쟁을 치르게 되면 막상 가을에 추수할 게 없어지고 만다. 그런 상황에서, 전쟁에 따른 긴장국면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다시 겨울을 맞이하게 되면 그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할 것이다.

어떻게든 지금 모든 전력을 모아 단판에 승부를 끝내려고 할 것이다.

‘빅토리안 공작이 선공을 취할까?’

핵심은 누가 선공을 취하느냐, 그것이다.

‘먼저 취하는 쪽이 유리하긴 유리하다.’

공격을 위한 명분을 찾을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먼저 치는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걸 반대로 이용할 수도 있다. 상대가 공격 오기를 기다리고 대비하다가 상대의 공격을 수성의 이점을 이용해 막아내는 것도 나쁘진 않은 선택이다. 이렇게 되면 공격하는 쪽도 여러 수단을 이용해 상대를 속이고, 전장을 흔들어야 한다.

‘누가 먼저 선공을 취할까?’

모두가 선공의 유리함을 알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어설프게 선공을 취하기 위해 병력을 이동하면 역으로 당할 가능성이 높다.

병력을 이동하는 척하면서도 본심은 숨겨야 한다.

‘여기서 내가 유리하군.’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이제르트 자작가의 몸값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지는 것이다.

“유리하긴 한데…….”

물론 이제르트 자작가는 현재 가장 큰 문제가 있다.

“테블스 산에 100여 기가 넘는 데스나이트를 두고 병력을 이동하는 건 무리가 있지.”

이제르트 자작가의 전력은 전쟁에서 엄청난 도움이 되겠지만, 이제르트 자작가 역시 사정이 좋지 못하다.

바로 코앞에 엄청난 병력이 있다.

다시금 데스나이트가 이제르트 자작령을 공격한다면, 그땐 과연 막을 수 있을까?

‘아이언히트를 추가 생산했지만, 여전히 기가스 파일럿은 부족한 상황이야. 여차하면 부속령 두 곳에 있는 기가스도 불러야겠지.’

데스나이트.

그게 문제다.

‘대체 어떤 흑마법사가…….’

아무리 생각해도 개인이 부린다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전력이다.

혹시 다수의 흑마법사가 힘을 모아 만들지 않았을까? 지금은 그런 의심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똑똑!

“응?”

그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수르 경, 포비어입니다.”

“아, 포비어 경. 무슨 일입니까?”

“자작님이 부르십니다.”

이제르트 자작이 문수르를 찾는 모양이다. 문수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나 보군.’

이제르트 자작이 문수르를 찾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통 일의 경우에는 이제르트 자작은 혼자 처리한다.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을 뿐더러, 문수르에게 최대한 부담을 덜 주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문수르를 불렀다는 것.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의미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문수르는 망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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