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7.
기가스.
마법이 만들어낸 절대 병기.
발전의 발전을 거듭한 기가스는 이제 3세대 기가스마저 등장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기가스의 발전에 놀란다. 날이갈수록 더 강력한 기가스가 등장한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그 발전은 가소로울 뿐이다.
문수르, 그에게 케르빈 월드의 기가스는 아직도 미숙하기 그지없는 수준에 불과하다.
기가스 자체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기가스 자체의 발전은 놀랍다. 애초에 기가스를 만든 것 자체가 신기하다. 고작 중세 시대의 문명을 가진 세계가 마법, 그 하나만으로 그런 병기를 만든 건 기적에 가깝다.
그러나 기가스가 아닌 그 외적인 부분은 어떨까?
기가스는 병기다.
병기가 가장 위력적일 때는 그 어느 때도 아니다. 바로 전략과 전술을 둘렀을 때다.
문수르는 전략과 전술이 극도로 발전한 어스 월드에서 살았다. 또한 전술과 전략에 대한 훈련과 교육도 받았다. 그런 문수르가 봤을 때 케르빈 월드의 기가스는 그냥 강력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래서 문수르는 만들었다.
기가스를 기반으로 하는 전술을, 기가스의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전략을, 전법을 말이다.
7대의 아이언히트.
그들은 단순히 몰려오는 적과 싸우지 않았다.
포메이션을 만들었다. 사각은 존재하지 않으며, 여차할 때는 서로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포메이션이다.
이 포메이션을 이용하면 가장 위험한 상황…… 적에게 포위 당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역할도 분담했다.
보통 기가스들은 검과 방패로만 무장한다. 물론 워낙 막강한 힘을 가진 기가스에게는 검과 방패만 쥐어줘도 성벽을 무너뜨리고 학살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검과 방패는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등장한 인간의 무기 아닌가?
하지만 기가스란 대단한 병기를 만들고 고작 검과 방패, 그 두 가지만 사용하는 건 아쉽지 않은가?
가장 먼저 창을 만들었다.
단순히 휘두르기 위해서 만든 창이 아니었다. 그 창은 바닥에 꽂을 수 있도록 설치됐다.
비스듬히, 대각선을 그리듯 설치된 창은 달려오는 적에게 무시무시한 방해물이 된다.
적의 움직임에 제약을 걸 수 있다.
그리고 검과 방패, 두 가지를 나누었다.
방어를 책임지는 방패병과 공격을 책임지는 병사를 구분해 운영하는 건 이미 무수히 많이 사용된 전법이다.
문수르는 그 전략을 아이언히트에 적용시켰다. 여건이 되면 다수의 아이언히트 확보가 가능하기에 떠올릴 수 있는 전술이었다.
이건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더군다나 아이언히트에 지급된 방패는 그저 사각 형태의 단면적인 방패가 아니었다.
곡선마냥 휘어져 있다.
이 방패 4개를 합치면, 원에 가까운 방어진이 만들어진다.
이 방벽을 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최악의 경우, 적을 상대로 시간을 끌어야 하는 경우 사용되는 전술이다. 말 그대로 움직이는 성벽이다.
몇 가지 장치를 설치한 이후, 아이언히트들은 방패를 앞세워 원진을 만들었다.
데스나이트들이 그 방패를 향해 돌진했다.
꽈앙, 꽈앙!
몬스터들로 만들어진 데스나이트들의 돌진력은 엄청났다. 말을 탄 기사의 그것보다 곱절 이상으로 강했다. 제 아무리 0.6배 급이라고 하지만, 기가스인 아이언히트의 동체가 충격이 밀릴 정도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방패는 굳건했다.
이 방패 역시 특수하게 제작된 방패다. 그저 좋은 철을 가져다가 만든 방패가 아니다.
정면에서 오는 데미지를 사방으로 분산하고, 그렇게 해서 분산된 데미지를 다시 내부에서 감소시킨다.
밀릴 뿐이지, 부셔지진 않는다.
더군다나 오랜 연습을 통해 호흡을 마친 이제르트 자작가의 파일럿들은 합동공격이 가능했다.
적이 공격을 하고 물러나는 순간, 방패가 틈을 만들고, 그 틈 사이를 비집고 창이 튀어나왔다.
콰직!
아이언히트의 창 공격이다. 검을 휘둘러 성벽을 무너뜨리는 거대한 거인이 창을 휘두르는 것이다.
보통 몬스터는 그냥 날아가 버린다.
그나마 데스나이트였기에, 그 공격을 맞고 뒤로 넘어지는 수준에서 끝날 뿐이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이제르트 자작가의 파일럿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타격이 거의 없잖아?’
공격을 하는데, 통하지 않는다.
보통 경우라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제르트 자작가의 파일럿들도 당황했다.
중요한 건 당황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당황한 이후 얼마만큼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는가, 그것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 이제르트 자작가의 파일럿들은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차피 막으면 된다.”
“이제까지 별꼴을 다 봤는데, 더 이상한 꼴을 본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지.”
테블스 산의 몬스터들,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은 몬스터들,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몬스터들을 상대해온 이제르트 자작가의 파일럿들 만큼 빠르게 상황에 적응하는 병사도 없을 것이다.
그 무렵 문수르는 빠르게 데스나이트 무리들을 휘젓고 있었다.
쿠웅, 쿠웅!
드래곤 파이터는 엄청난 속도로 전장을 초토화시켰다. 드래곤 파이터의 거대한 창이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수십 그루의 나무가 날아갔다. 그 어떤 데스나이트도 드래곤 파이터의 창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런 드래곤 파이터를 잡기 위해 무려 30여 기가 넘는 데스나이트가 달려 들었다.
더불어 7대의 아이언히트에 달려든 데스나이트 역시 비슷한 30여 기.
‘아직 부족해.’
남은 40여 기의 데스나이트들. 그들이 노리는 건 다름 아니라 이제르트 자작령의 성벽이었다.
그들마저 끌어와야 한다.
‘시간을 더 끌어야 해.’
기가스로도 쉽게 어찌하지 못하는 데스나이트 40여 기가 성벽을 넘으면 어떤 일이 생길지 상상조차 안 된다.
물론 성벽을 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새롭게 건축된 성벽이다. 드워프가 작업에 참가했고, 기가스를 공사에 투입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성벽은 케르빈 월드의 그 어떤 성벽보다 높고, 굳건했다.
부수는 것도, 넘는 것도 모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로이드, 지원 병력은?”
- 이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장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 9분 32초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생각보다 늦군.”
- 최소 수치입니다.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후우!”
절로 탄식이 나온다.
하지만 한숨을 내뱉는 것과는 다르게 문수르의 팔은 다시금 와이어를 잡아 당기고 있었다.
드래곤 파이터가 다시금 움직였다. 데스나이트 무리들을 해치며 다른 데스나이트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콰앙, 콰앙!
드래곤 파이터의 창이 그렇게 굉음을 토해냈다.
8.
메르디아 삼왕녀는 느꼈다.
‘마법이다.’
마법사인 그녀는 강력한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떠한 마법이 사용된 것이다.
‘기가스는 아니야.’
기가스 역시 마법으로 만들어진 병기다. 또한 기가스는 어마어마한 마력을 이용해 움직인다.
그러나 기가스가 내뿜는 마력과 마법이 내뿜는 마력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다. 마법사는 그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할루이 이제르트의 마법인가?”
메르디아 삼왕녀는 이 마력이 할루이 이제르트와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메르비, 앞장 서세요.”
“알겠습니다.”
메르디아 삼왕녀는 곧바로 시녀인 메르비와 함께 움직였다.
세르비와 메르비.
당연한 말이지만 메르디아 삼왕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시는 그 둘은 보통 시비가 아니었다.
왕가가 특별히 키운 시녀다. 전투력은 물론 암살자의 기술도 배울 만큼 배운 시녀들이었다.
왕녀를 위해서는 제 목숨을 얼마든지 바칠 수 있을 만큼의 충성심으로 무장한 시녀들이기도 했다.
위험에 대비해 메르비가 앞장섰다. 메르디아 삼왕녀가 그런 메르비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런 그 둘을 어둠 속에서 바라보는 눈이 있었다.
히스티.
가누스의 제자인 그녀가 메르디아 삼왕녀와 그 시녀를 감시하고 있었다.
‘살다 보니 별 일을 다하는군.’
히스티는 눈앞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두 여인을 보며 혀를 찼다.
‘저 둘은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 줄은 알고 있는 건가?’
지금 이제르트 자작령의 상황은 최악이다. 이제까지 만났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적이 왔다.
폐욤 족장마저 심각함을 느끼고 지금 이곳으로 오는 중이다. 어떻게든 한 손 거들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와중에 자기 호기심에 취해 이 위험한 사지를 돌아다니는 꼴이라니?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딱 그 말이다.
‘일단 지켜야겠지.’
히스티는 혀를 차면서도 빠르게 메르디아 삼왕녀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9.
가누스의 검이 다크 나이트를 조각냈다.
다크 나이트는 가누스에게 단 한 번의 공격도 명중시키지 못했다. 전투는 너무나도 일방적이었다. 전투가 계속될수록 다크 나이트의 갑옷은 수백 조각으로 분리됐다.
그럼에도 다크 나이트는 다시금 제 모습을 감췄다.
잘려나간 갑옷은 퍼즐을 맞추듯 제 형태를 갖추었다.
‘끝이 없겠군.’
다크 나이트의 무서움이다.
물리적인 공격은 거의 통하지 않는다. 그나마 오러를 이용한 공격이니까 그나마 갑옷이라도 자를 수 있는 거다. 보통의 검이었다면 갑옷조차 자르지 못한다.
결국 다크 나이트를 처치하려면 가누스 만으로는 안 된다.
‘족장님의 도움이 필요해.’
다크 나이트를 처치하려면 강력한 마법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이제르트 자작령 내에서 강력한 마법사는 폐욤 족장, 그뿐이다.
아마 이미 폐욤 족장이 조짐을 느끼고 움직였을 것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신 분이니까.
가누스가 해야 하는 일은 요인 보호를 위해 시간을 끄는 거다.
그때였다.
“꺄악!”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가누스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린 소리였다.
더불어 가누스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고 있었다.
‘빌어먹을!’
메르디아 삼왕녀다.
그녀의 비명소리였다.
‘히스티가 갔을 텐데?’
지금 가누스가 다크 나이트를 붙잡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제자인 히스티가 메르디아 삼왕녀의 호위로 붙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다른 엘프들이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비명 소리라니?
‘가드가 뚫린 건가?’
가누스가 이를 물었다. 지금 이 순간 그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건 메르디아 삼왕녀의 목숨이다.
‘젠장!’
그 순간 가누스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계획만 떠올랐다.
‘그 인간 계집.’
당장 메르디아 삼왕녀가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녀를 기절시킨 후에 대피소에 처넣을 것이다.
가누스가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다크 나이트가 가누스의 등을 향해 제 검을 뻗었다.
슈욱!
다크 나이트의 팔이 길어졌다. 애초에 어둠으로 만들어진 다크 나이트에게 육신의 제약이란 무의미하다.
다크 나이트의 검이 마치 화살처럼, 가누스의 등을 향해 날아왔다.
가누스는 가볍게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검이 가누스를 그치고 지나갔다.
쉬익!
그 순간 가누스가 검을 휘둘렀다.
길게 늘어난 다크 나이트의 팔이 잘렸다. 동시에 가누스가 다크 나이트의 검을 빼앗았다.
“흥!”
다크 나이트의 검을 빼앗은 가누스. 정말 보기 힘든 광경이다. 더불어 가누스의 수준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갑작스레 검을 잃어버린 다크 나이트는 가누스를 멍하니 바라봤다. 가누스는 그런 다크 나이트를 무시한 채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