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72화 (170/293)

172화

<50화. 데스나이트.>

1.

데스나이트.

기가스가 등장하기 이전 시대, 기사와 마법사들이 단신(單身)으로만 영웅담을 써내려가던 시대.

그 시대에서 데스나이트는 악몽이었으며, 공포였다.

검과 마법, 그 사이에는 오묘한 벽이 있다. 쉽게 넘을 수 없고, 쉽게 융화되지도 않는 벽이다.

데스나이트는 그런 벽을 허물기 위해 만들어진 생명체였다.

고고한 기사, 전생에 끝없는 수련을 통해 제 육신을 보석보다 더 값진 것으로 만든 기사. 그 기사를 타락시킨 후에 온갖 마법적 시술을 통해서 연마시키면 탄생하는 것이 바로 데스나이트다.

기사의 능력과 마법사의 강력함을 둘 다 가진 데스나이트는 기사와 마법사들 모두에게 상대하기 껄끄러운 생명체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존재지만, 사실 데스나이트가 활약했던 적은 역사를 돌아보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가장 큰 이유는 오러 마스터 또는 그에 근접한 경지까지 연마한 기사의 영혼을 타락시키는 게 쉽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그 정도로 스스로를 연마한 기사가 어설픈 유혹 앞에 타락할 리 만무하다.

또한 사후 영혼을 타락시키고자 한다고 해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데스나이트에 대한 공포 때문에 대부분의 기사들은 죽음을 맞이한 이후 장례를 치를 때 몇 가지 과정을 거친다. 흑마법사가 기사의 시체를 어찌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한 방법이었다. 지금은 당연한 예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데스나이트가 등장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데스나이트의 강함은 어느 정도일까?

육체의 능력과 기량은 오러 마스터 급.

대신에 몇 개의 강력한 흑마법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마법 공격과 물리 공격에 대해서는 절대적 방어력을 지닌다.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데스나이트 하나를 처치하기 위해서는 오러 마스터 세 명이 동시에 달라붙어야 승산을 점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기가스 시절 이전의 이야기다.

아무리 데스나이트가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기가스의 무지막지함 앞에서는 한 수 접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기가스의 시대가 시작된 이후 그 어떤 흑마법사도 데스나이트에 대한 관심을 가지진 않았다. 학문적으로는 관심을 가질 지 몰라도 굳이 데스나이트를 만들기 위해 온갖 수고와 노력을 감수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데스나이트가 이제르트 자작령에 등장한 것이다.

2.

백하고도 아홉.

로이드가 파악한 데스나이트의 숫자였다. 문수르는 그 수치를 보며 이를 물었다.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를…… 데스나이트로 만들었군.”

데스나이트.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 가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좋은 시체를 구하는 게 힘들다면, 그 시체를 직접 만드는 건 어떨까?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다.

대량생산, 부분생산…… 그와 같이 극도의 효율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어스 월드의 문명에서 살아왔던 문수르다.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다. 더군다나 오러 마스터에 가깝게 육체를 단련한다는 것…… 힘들긴 해도 의외로 오래 걸리진 않는다.

문수르가 그 증거다.

문수르는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5년이란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문수르가 특이 케이스라고?

물론 그게 맞다.

그러나 결국 결과가 나왔다. 굉장히 힘들고 어렵고 가능성이 낮은 방법이라고 해도 결과가 나온다는 건 가능하다는 의미다. 0퍼센트와 0에 가까운 확률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더군다나 오러 마스터가 아니라, 육체 자체만 그에 근접하게 만들면 된다.

영혼의 타락?

반대로 아예 타락한 영혼을 가져다 쓰면 안 되나?

여하튼 문수르는 이런 생각을 했다. 진심으로 한 건 아니다. 그냥 장난스럽게…… 호기심 많은 아이가 동화 속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의문을 던지듯 했던 생각이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한 인간이 케르빈 월드에도 있었다.

더불어 그 인간의 직업이 흑마법사인 모양이다.

“그래, 몬스터를 이용했어.”

드래곤 파이터에서 몰려오는 데스나이트의 정체를 확실하게 파악한 문수르는 암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 데스나이트의 정체는 인간이 아니었다. 몬스터들이었다. 오크부터 시작해서 트롤, 놀 따위들이었다.

‘또투, 놈을 만든 자의 작품인가?’

몬스터로 데스나이트를 만든다.

그냥 보면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수르는 경험이 있다.

또투!

오크인 주제에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접어든 존재. 놈을 만든 흑마법사라면 다른 몬스터를 오러 마스터 또는 그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단지 필요한 건 시간 그리고 물자겠지.

“로이드.”

- 예, 주인님.

“데스나이트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것들, 시간 등을 돈으로 환산해보면 어떻게 되지?”

- 자료가 정확하지 않아 오차가 크게 생길 수 있습니다.

“오차라도 좋아. 대략적으로.”

- 한 기를 만드는 데에 시간상으로는 12년, 금전적으로는 2천 6백 골드 정도가 소모될 듯합니다.

“아이언히트 대당 생산단가가 2천 골드니까…….”

- 최근 제조 과정의 발전과 기술자의 증대로 인해 현재 아이언히트의 생산단가는 1천 8백 골드로 줄어들었습니다.

“어쨌거나 저기 이제르트 자작령을 향해 달려오는 데스나이트보다 아이언히트가 더 저렴하다는 거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돈이 넘쳐나는 흑마법사가 이제르트 자작령을 노리는 모양이다.

문수르는 숨을 골랐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다.

‘힘든 하루가 되겠군.’

3.

전투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전투의 선봉에 나선 건 문수르였다. 문수르의 드래곤 파이터 외에 선봉에 설만한 기체는 없다.

드래곤 파이터는 강력했다.

3배 급 이상의 출력!

그런 출력을 하루 종일 뿜어대도 결코 마르지 않는 MX시스템!

여기에 로이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문수르에게 적수라는 건 찾아볼 수가 없었다.

드래곤 파이터가 거대한 창을 휘둘렀다.

파각!

한 방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며 그 돌진력을 그대로 실은 드래곤 파이터의 창이 가진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데스나이트 한 기는 그렇게 박살이 났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문수르는 곧장 다시금 창을 휘둘렀을 때.

카앙!

이번에는 데스나이트가 제 몸뚱이로 문수르의 창을 막아냈다. 물론 그냥 막아낸 건 아니었다.

쿵, 쿵!

문수르의 창에 맞은 데스나이트가 날아갔다.

데스나이트의 키는 대략 3미터에서 4미터 사이. 반면 드래곤 파이터의 신장은 7미터다. 2배 이상의 차이다. 어른과 아이의 신장 차이다. 힘의 차이는 그 이상이다.

데스나이트 한 기가 드래곤 파이터의 공격을 확실하게 막아내고 버틴다는 건 불가능하다.

“젠장, 생각보다 더 단단하군.”

그러나 맞고 달아간 데스나이트는 그 검은 갑옷이 꽤나 볼품 없이 찌그러졌을 뿐, 나머지는 무사했다.

이 엄청난 신장 차이, 파워 차이가 있음에도 고작 갑옷이 찌끄러지는 선에서 멈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슈슈슈!

데스나이트의 갑옷은 느리지만 자가회복능력마저 가지고 있었다.

빠득!

문수르는 이를 갈았다.

“이 데스나이트 다섯 기만 있어도 기가스 한 대쯤은 요리할 수 있겠군.”

다섯 기로 기가스 한 대를 상대한다는 건, 지금 20대의 기가스와 맞먹는 전력을 상대한다는 의미다. 아무래도 로이드의 예상이 틀렸다. 이놈들을 아이언히트 다섯 대로 막을 수 있다고?

어림도 없는 일이다.

문수르는 결단을 내렸다.

‘지금 7대의 아이언히트로는 어림도 없다.’

현재 전장에 나온 아이언히트는 7대다. 보통 몬스터들을 상대라면 무려 7대나 된다, 그런 표현을 쓰겠지만 지금 이 백여 기의 데스나이트가 상대라면 고작 7대 밖에 없다, 그런 표현을 써야 한다.

‘도움이 필요하다.’

포비어의 합류가 필요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메르디아 삼왕녀가 머물고 있지만…….’

탈라트 부족과 호우투 부족.

그 두 부족이 가진 아이언히트를 데려와야 한다. 최소 10대 이상의 아이언히트가 추가 투입되어야 하다.

‘들켜도 어쩔 수 없지.’

드워프와 엘프의 정체가 메르디아 삼왕녀에게 들킬 수도 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것.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배후를 파악하는 것.

이게 가장 최우선의 과제다. 그 외의 일들은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고, 넘어갈 수 있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둬서 다행이야.”

이 순간 문수르는 자신의 조심성에 감사했다. 걱정이 많은 자신의 성격에 감사했다.

혹시 몰라 대비했다.

정말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드워프와 엘프, 두 부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사전에 합의했다.

“로이드, 발사해.”

- 알겠습니다.

순간 드래곤 파이터의 등에서 무언가가 솟아 올랐다. 초록색 빛을 가진 그것은 하늘 위로 올라가더니.

퍼엉!

밤하늘에 녹색 수를 놓았다.

그 순간 데스나이트 다섯 기가 드래곤 파이터를 처치하기 위해 동시에 합공을 시도했다.

놈들이 손에 쥔 검을 휘둘렀다. 몬스터의 근력, 데스나이트로 만들어지면서 생긴 강력한 힘!

슈슈슈!

그 힘이 담긴 검의 위력은 무지막지했다. 단단한 기가스의 장갑 위에 충분히 타격을 줄 정도다.

그러나 드래곤 파이터는 아니다.

드래곤 파이터는 모든 게 보통이 기가스와는 비교를 불가하다. 문수르는 장갑을 내주었다.

카앙, 캉!

데스나이트의 공격이 드래곤 파이터의 동체 위를 가격했다. 장갑에 깊은 상처가 났다.

그 순간 문수르가 와이어를 당겼다.

강력한 공격에는 그에 따른 반발력이 생긴다.

데스나이트라고 해서 그 물리법칙에서 자유로운 게 아니다. 놈들이 전력 그 이상을 다해 공격을 하면, 그 공격이 막혔을 때의 반발력은 놈들조차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밸런스가 무너진다.

크든 작든 밸런스가 무너지면 틈이 생긴다.

그리고 문수르에게는 그 틈을 노릴 만한 능력이 충분하다.

콰직!

문수르의 창이 데스나이트의 목에 꽂혔다. 투구와 갑옷, 그 사이의 틈을 노린 것이다.

이걸 노리는 건 의외로 힘들다.

턱을 잡아당기거나, 몸을 가볍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방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사들은 모두가 안다

갑옷과 갑옷, 그 사이의 이음새가 약점이란 사실을.

그래서 그 부분을 노리는 방법을 연마한다.

반대로 그 부분을 방어하는 방법도 연마한다.

때문에 기사들의 싸움은 어렵고, 신묘한 것이다.

그 기사들의 전투 방식을 설마 기가스를 탑승한 채로 하게 될 줄은 문수르도 몰랐다.

“로이드, 피해 상황은?”

- 데미지가 크진 않습니다. 그러나 같은 부위에 데미지가 누적될 경우 위험합니다.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드래곤 파이터가 재차 창을 휘둘렀다. 창에 맞은 데스나이트들은 축구공마냥 날아갔다. 그리고 일어났다. 드래곤 파이터의 창에 목이 뚫렸던 데스나이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통이 사라졌지만 몸뚱이를 움직이는 데에는 문제가 없는 모양이다.

하긴 어차피 시체인데 대가리의 유무는 상관없겠지.

그 순간 십여 기의 데스나이트가 드래곤 파이터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드래곤 파이터가 주요한 적임을 파악하고 드래곤 파이터부터 처치하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적당히 시간을 끌어볼까?”

문수르는 몰려든 데스나이트를 보며 이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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