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46화. 박살>
1.
체가스 자작은 입을 다물었다.
“부이 경의 시체가 맞는가?”
“예, 맞습니다.”
“사인(死因)은…….”
“검이 심장을 뚫었습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분명한 살인입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기가스 파일럿 중 한 명인 부이 경, 그가 시체로 발견됐다고 했으니까.
기가스 파일럿은 곧 오러 나이트란 의미다. 오러를 쓴다는 건 인간을 초월한 초인이 된다는 의미다. 그런 초인적이 힘과 지구력이 있으니까 기가스란 어마어마한 괴물을 다룰 수 있는 거다.
그런데 그런 오러 나이트가 시체가 됐다.
그것도 무슨 병이나, 사고로 인해서 시체가 된 것도 아니다. 어느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
심지어 검에 찔렸다.
그 누구보다 검을 잘 쓰는 기사가 검에 당한 것이다.
체가스 자작은 놀라거나, 화가 나거나 하진 않았다. 보통 기사가 죽었다면 오히려 거칠게 화를 냈을 것이다. 대체 평소 단련을 어떻게 했기에 암살이나 당하냐고! 그래서 일을 맡길 수나 있겠냐고!
그러나 오러 나이트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대체 누가 부이 경을 살해한 것이냐?”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니? 살해당한 장소에 흔적이 남았을 것 아니냐? 그런데 모르겠다니?”
“극히 사소한 흔적 정도만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어느 순간부터 흔적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게 아니라 못 찾은 거겠지. 당장 가서 다시 조사해!”
체가스 자작이 비명을 내지르듯 호통을 쳤다.
병사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 체가스 자작 앞에서 무슨 말을 하든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병사들이 물러났다.
이내 임시 막사 안에는 체가스 자작 혼자만 남았다.
덜덜덜!
그 순간, 혼자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체가스 자작은 겁에 질려 떨기 시작했다.
‘부이 경이 죽었다는 건…….’
오러 나이트가 암살을 당했다. 그렇다는 건 체가스 자작이 암살을 당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소리다.
물론 경우가 다르다.
부이 경은 솔직히 너무 방심한 면이 컸다. 틈만 나면 모습을 감추고, 어영부영 느지막하게 등장하고…… 암살자 입장에서는 가장 매력적인 먹잇감이었겠지.
기사들의 호위를 받는 체가스 자작이 암살당할 가능성은 부이 경이 암살당할 가능성과 비교하면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란 게 조금이라도 확률이 있으면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냥 돈이 걸린 도박판도 아니고 목숨이 걸린 상황인데, 보통 사람들이라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그릇의 차이가 생긴다.
그릇이 큰 자는 명확하게 상황을 직시하고, 저울질을 한 뒤에 결단을 내린다. 당연히 그 결단은 올바르다.
하지만 그릇이 작은 자는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해석한 뒤에 결단을 내린다. 그 결단은 대부분 그르다.
체가스 자작은 전자보다 후자, 그릇이 작은 자였다.
그런 체가스 자작이 내린 결단은 의외의 것이었다.
‘그래, 암살자가 암살을 시도하기 전에 일을 끝내는 거야. 이대로 강행군이다.’
모든 전력을 다해 이제르트 자작가를 공격하는 것!
체가스 자작 최대의 오판이었다.
2.
부이 경을 해치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는 허점이 많은 자였다. 수시로 무리에서 이탈하는 놈이었다. 그것만이었다면 상대하기 껄끄러웠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이점은 무리에서 이탈하는 이유였다.
그는 약에 취한 자였다. 무리에서 이탈한 뒤에 그는 이상한 가루 약을 코로 흡입한 후에 환각상태에 빠졌다.
환각 상태에 빠져 제대로 몸도 다루지 못하는 놈을 처치하는 건 제이번이나 카롤에겐 일도 아니었다.
놈을 해치웠다.
푸욱!
깔끔하게, 단칼에 처치했다.
그 후에 놈의 시체를 그대로 나뒀다.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였다.
“체가스 자작이 이 시체를 보면 평정심을 잃겠지. 무리하게 움직일 게 분명해.”
병사들은 이미 동요된 상태다. 일부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기사마저 암살을 당한다면? 체가스 자작도 체가스 자작이지만, 병사들의 동요는 더 커질 것이다.
병사들이 흔들리면 병력의 움직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연 기사들은 어떻게 나올까?
“이제 기사들이 악을 쓰겠지.”
당연히 군기를 잡기 위해 기사들이 강하게 나올 것이다. 병사들의 목을 치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살벌하게, 말이 아닌 피로 병사들을 다루려고 할 것이다.
더군다나 이제르트 자작령까지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이동속도면 5일 후면 이제르트 자작령의 땅을 밟게 된다. 이제르트 자작가의 대비도 염두에 두었을 터. 그런 상황에서 병사들이 군기가 빠진 상황이라면 좋을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한 번 동요된 기사들은 공포만으로는 다룰 수 있다.
오히려 그 공포가 병사들 사이의 동요를 더 부채질하게 될 것이다.
제이번은 그런 병사들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 역시 그 공포에 패배해 탈영을 시도했을 정도니까.
그렇다면 결국 기사들은 병사들을 믿지 못하게 된다.
특히 밤이 문제다.
군사력 유지를 위해서라도 이제부터 잘 먹고, 잠도 잘 자둬야 한다. 피곤한 상황에서 전투를 치르면 좋을 결과가 나올 리가 만무하다.
그런데 병사들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병사들을 보초로 서는 게 과연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잘못했다간 대량 탈영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기사들이 보초를 서게 될 수도 있어.”
그렇기에 기사들 중 몇 명이 순번을 정해서 보초를 설 것이다.
아니, 이미 기사들은 보초를 서는 중이다. 부이 경이 암살을 당한 이후로 체가스 자작의 호위를 위해 서로 순번을 정해 보초를 서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활동반경이 더 넓어질 것이다.
순찰을 하듯, 주둔지 주변을 어슬렁거리겠지.
그럼 기회가 오는 거다.
제이번과 카롤, 그 둘이 기사들을 해치울 수 있는 기회가 말이다.
3.
기회가 생겼다.
먼저 움직인 건 카롤이었다. 카롤은 기사를 보자마자 소리가 나는 것도 무시한 채 빠르게 달려갔다.
기사 역시 카롤을 발견한 지, 바로 검을 꺼냈다.
서로가 검을 휘둘렀다.
카앙!
서로의 검이 부딪치며 거친 소리를 토해냈다.
“으윽!”
한 번의 충돌, 밀리는 건 카롤이었다. 상대는 오러 나이트였다.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한 건 아니지만, 오러 나이트의 신체 능력은 일반인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하다.
신체적인 힘만으로도 크게 밀릴 수밖에 없다.
카롤은 한 번의 충돌 직후 빠르게 뒷걸음질쳤다.
이 순간 기사는 짧게 고민했다.
‘쫓을까, 말까?’
도망친다고 해도, 기사가 마음만 먹으면 눈앞의 놈을 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순간 기사의 머릿속엔 부이 경의 죽음이 떠올랐다.
체가스 자작의 닦달 때문에 부이 경의 죽음에 대해 많은 조사를 했다. 그 덕분에 부이 경을 암살한 이들의 숫자가 둘을 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상대는 숫자가 많지 않다.
‘잡는다.’
그렇다면 함정에 빠져도 크게 문제될 게 없을 터.
기사가 움직였다.
그리고 그건 기사의 오판이었다.
만약 기사 역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판단은 결코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라면 주변 병사들을 불렀을 것이다. 병사들 중 일부는 보초를 서고 있다. 기사가 목소리만 내도 병사들이 온다. 그럼 병사들과 함께 움직이면 된다. 그렇게 하면 제 아무리 상대가 함정을 숨겼다고 해도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지금 상황이 평소 상황이 아니라는 것.
특히 기사들은 병사들을 믿지 못해 보초를 서는 중이었다. 기사들 입장에서는 굴욕이나 마찬가지였다. 병사들 따위를 위해서 보초를 서다니? 병사들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다.
그리고 제이번이 노린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기사가 혼자 카롤을 쫓을 확률이 높다는 것.
때문에 배운 대로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던 제이번은 기사의 틈이 보이는 순간 검을 휘둘렀다.
쉬익!
갑작스런 제이번의 등장!
기사는 기겁했으나, 일단 반응했다.
날아오는 제이번의 검을 향해 자신도 맞대응하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기사는 자신했다.
‘상대가 오러 나이트가 아닌 이상 내가 확실하게 이긴다!’
설마 오러 나이트 정도 되는 자가 자신을 처치하기 위해 암살자로 위장하고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오러 나이트가 보통 존재인가?
기사 이상의 대우를 받는 자들이다. 암살과 같은 더러운 일 따위는 자기 명예를 위해서도 하지 않는 자들이다.
제이번도 알고 있다.
‘내가 오러 나이트란 건 꿈에도 모르겠지.’
그 허점을 노리고 처음부터 계획을 세운 것이다.
제이번은 딱 한 번, 오러 블레이드를 준비했다. 사실 제이번은 오러 블레이드를 여러 번 쓸 줄도 모른다. 기본 검술 능력 역시 현저히 떨어진다. 아직 오러 운영에도 미숙하다.
오러 나이트라고도 해도 눈앞의 기사와 정면 대결…… 아니, 카롤과 함께 2대1로 싸운다고 해도 승산이 낮다.
그렇기에 한 번 격돌에 승부를 보지 못하면 오히려 제이번의 패배라고 할 수 있다.
그 한 번의 격돌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제까지 준비를 했다. 농부가 씨를 뿌리듯, 발에 땀이 날 정도로 달리며 준비했다.
남은 건 수확을 하는 것뿐!
“으헙!”
제이번의 검이 푸르스름한 오러를 머금었다.
기사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피해야 한다!’
기사는 그저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을 뿐, 오러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오러를 끌어올리는 것도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기사의 머릿속에서는 피해야 한다는 말만 울려 퍼졌다.
그러나 지금 기사가 취하는 행동은 회피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사는 이미 검을 휘둘렀다.
전력으로!
모든 힘을 검에 실어 휘둘렀다.
상대를 단칼에 쪼개기 위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다. 기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렇게…….’
찰나의 순간 기사의 눈앞에 주마등이 스쳐갔다.
서걱!
오러 블레이드를 머금은 제이번의 검은 기사의 검과 함께 기사의 목을 통째로 잘라버렸다.
푸홧!
잘려나간 기사의 목에서 핏줄기가 분수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핏물을 뒤집어 쓴 제이번이 바닥에 쓰러졌다.
“으윽!”
제이번의 팔에는 큼지막한 검상이 있었다. 기사의 검을 잘려내긴 했지만, 잘리고 난 나머지 부분이 제이번의 팔에 상처를 낸 것이다. 상처는 제법 깊었다.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 대가로 기사의 목을 벴다.
“두 명!”
제이번의 눈빛이 빛났다. 고통보다 희열감이 느껴졌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온몸에 엄습했다.
“두 명!”
그리고 이제 두 명 남았다.
두 명만 죽이면 제이번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가슴당당하게 다시금 이제르트 자작가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솔직히 기가스 파일럿이 되거나, 기사가 되거나, 그건 아무래도 좋다.
제이번이 원하는 건 인정받는 것, 탈영병이란 족쇄를 벗어던지고 동등한 일원으로 대우 받는 것.
그것뿐이다.
“제이번!”
그 순간 카롤이 소리쳤다.
“조심해!”
카롤의 외침에 제이번이 반사적으로 등을 돌렸다. 그런 제이번의 등뒤에는 기사 한 명이 있었다.
기사는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언제?’
소리를 듣지도 못했는데, 대체 어느새 근처까지 접근한 거지?
놀라는 것과는 반대로 제이번의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문수르 밑에서 배운 지옥 훈련이 그의 본능을 단련시켜줬다. 본능적으로 위기로부터 도망치도록 만들었다.
푸홧!
그러나 기사가 휘두른 검을 전부 피할 수 없었다.
기사의 검이 제이번의 등에 긴 검상을 남겼다.
“크윽!”
제이번이 비명을 내질렀다.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제이번은 기사와의 거리를 벌리기 위해 다리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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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야구는 이겼군요.
내일도 큰 점수차로 이겼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