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57화 (155/293)

157화

<45화. 초전.>

1.

카롤은 자신을 찾아온 제이번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이번은 카롤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애절하게 말했다.

“카롤, 너 밖에 없다.”

“제이번, 이게 무슨 일이야?”

“지금 날 도와줄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카롤은 제이번의 갑작스런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사실 카롤이 제이번을 이렇게 보는 건 정말 오랜 만의 일이었다. 제이번이 끌려가듯 문수르의 손에 잡혀가 지옥 훈련을 받은 이후로 본 적이 없었다.

그 다음에는 알게 모르게 벽이 생겼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이미 소문이 났다. 문수르의 훈련을 받은 이들이 오러 나이트가 되었다는 소문이 말이다오러 나이트라면 기사 작위를 정식으로 받지 않았어도 기사 대우를 받게 된다.

실제로 이제르트 자작가의 기사들은 문수르의 훈련을 통과한 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강이 아주 무너졌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단지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또한 문수르는 그들을 따로 관리하고, 훈련시켰다. 오러 나이트일 뿐이지, 아직 기가스 파일럿은 아니었으니까. 기가스 파일럿으로 낙점된 이들은 다시 지옥훈련을 받았다.

그 와중에 기가스 파일럿으로 낙점되지 못한 제이번의 존재가 붕 떠버리고 말았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카롤은 제이번의 얼굴은 몇 번 스쳐가듯 봤지만, 그동안 만나서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그 전까지는 훈련이 끝나고 여유가 생기면 같이 어깨동무를 한 채 술집에 찾아가 질리도록 술을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이였기에 카롤은 알게 모르게 허무함을 느꼈다.

그런 친구가.

가장 친했던 친구가 갑작스레 등장했다.

무릎을 꿇을 채로 말이다.

“카롤,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친구의 모습은 몇 달 전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탈영을 각오했을 때는 자포자기 했던 모습이 있었다.

그냥 모든 걸 내려놓은 느낌.

될 대로 되라, 그런 느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필사적이다.’

무언가에 굉장히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느낌이 났다. 아니, 그냥 단순한 느낌이 아니다.

마치 그 필사적인 오우라가 눈에 보이는 느낌이다.

카롤은 짐작했다.

‘무언가 있구나.’

무언가가 있으며, 지금 제이번은 그 무언가에 목숨을 걸었다.

‘처음이군.’

더불어 제이번과 테블스 산을 바라 보는 땅에서 오랜 세월 같이 친구로 지내왔지만 제이번이 이렇게 무언가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카롤은 각오했다.

‘그래.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자.’

친구가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그걸 거절하는 건 친구의 도리가 아닐 터.

“제대로 설명을 해봐.”

“내게 기회가 생겼어.”

“기회?”

“나…… 이번 일만 잘하면 기가스 파일럿이 될 수 있어.”

기가스 파일럿이란 말에 카롤의 표정이 굳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제르트 자작가에 기가스가 많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공사판에도 기가스를 대동할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러나 기가스가 제 아무리 눈에 치일 정도로 많다고 해도 일반 병사들에게 기가스 파일럿이 된다는 건 꿈 같은 일이다. 아니, 꿈도 제대로 꾸기 힘들다. 워낙 현실성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지금 제이번이 기가스 파일럿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것도 탈영 경력까지 있는 그가!

“정확히 무슨 일인지 말해봐.”

보다 확실한 설명이 필요했다.

꿀꺽!

제이번은 침을 한 번 삼킨 후에 설명을 시작했다. 그 설명을 듣는 카롤의 표정이 굳어지기 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

문수르가 포비어를 찾아왔다.

특별한 이유를 가진 채로 말이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문수르는 그 자리에서 말했다.

탈영을 시도했던 제이번을 체가스 자작과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에 투입하겠다고.

포비어는 문수르의 계획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위험하다.’

처음 그 계획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든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

‘굉장히 위험하다.’

물론 문수르는 그 계획만 그냥 툭, 던져놓진 않았다.

그 계획을 세우기 된 배경, 이유, 그리고 진정 원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도 설명해줬다.

“기회를 주는 겁니다. 병사들에게 혹은 기사들에게 또는 다른 누군가에게. 이제르트 자작가에서는 기회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문수르는 그것이 굉장히 좋은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까지 기회를 받지 못했던 이들에게 혹은 기회를 잃어버렸던 이들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준다는 건, 그들의 충성심을 보다 높이고, 그들의 능력을 120퍼센트 발휘할 수 있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포비어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감탄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분명히 떠올렸다.

“기회를 준다는 걸 믿고 오히려 더 방탕해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가장 우려되는 것.

그건 바로 기회를 준다는 미명 하에 그가 저질렀던 죄를 덮어주고, 없애주는 일이다.

죄는 지울 수 없다.

죄를 지우는 순간, 그 죄는 죄가 아니게 된다. 죄의 흔적이 남아야 죄를 저지르지 않는 거다.

이건 어떻게든 바로 서야 하는 기강이고, 진리고, 진실이었다.

한 번 봐준다고?

그 다음은?

두 번째는?

세 번째도 있을 수 있다.

한 번 봐주면 그게 계속 누적되고, 반복되는 것이다. 아무리 아깝다고 하더라도 법은 바로 서야 한다.

“죄송합니다. 솔직히 이번 일…… 이제르트 자작님을 모시는 기사된 자격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포비어는 강하게 나갔다.

사실 그는 언제나 우려했다.

문수르는 여린 사람이다. 약한 사람이란 의미는 아니다. 여린 것과 약한 것은 다른 의니다.

심성이 착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보듬을 줄 안다.

나쁜 게 결코 아니다.

오히려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무자비한 이 세상 속에서 그런 마음을 가진다는 사실 그리고 그 마음이 변치 않는다는 사실은 존경심을 넘어서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그리고 그런 문수르의 마음은 영지를 이끌어가고, 이제르트 자작가를 부흥시키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따뜻한 배려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호감을 받아서 나쁜 경우 역시 없다.

문수르가 호감을 받는다면, 그건 곧 존경심이 될 것이고, 존경심은 충성심이 된다.

더 나아가 그 모든 건 이제르트 자작의 것이 된다.

‘그래, 그래서 내가 악인이 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무작정 좋은 일만 해서는 영지가 돌아가진 않는다. 그래서 포비어는 각오했었다.

문수르가 천사가 된다면, 본인은 악마가 되겠다고.

“이건 안 됩니다.”

그렇기에 포비어는 이번 문수르의 계획에 반대했다. 끝까지 반대할 각오를 다졌다.

문수르는 그런 포비어의 행동에 미소를 지었습니다.

“포비어 경의 의견은 잘 알겠습니다.”

포비어의 이런 반응을 문수르는 예상하고 있었다.

‘너무 예상대로라서 미안할 지경이군.’

포비어의 반응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탈영은 곧 사형, 그걸 당연시 여기는 케르빈 월드에서 탈영병의 목숨을 구해주는 건 물론 그 누구도 잡기 힘든 기회를 준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기가스 파일럿이 될 기회라니?

포비어만 해도 그렇다.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포비어는 엄청난 노력과 고난을 견딘 끝에 운 좋게 기가스 파일럿이 됐다. 그러나 그마저도 이제르트 자작가라는 험난한 땅에서 이루어진 성과였다.

제 아무리 이제르트 자작가가 보유한 기가스가 늘어났다고 해도 기가스 파일럿이 될 기회는 굉장히 소중한 것이다.

하다못해 반대로 생각해 보자.

이제르트 자작가가 기가스 파일럿을 조건으로 기사를 영입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되면 이제르트 자작가는 쉽게 기사들을 영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기사들 중에 흠이 있는 자도 있겠지만, 적어도 탈영 경력을 가진 제이번보다 나은 자들은 얼마든지 있을 터.

그런데 제이번에게 기회를 준다?

그럼 반대로 열심히 이제르트 자작가를 위해 노력해온 이들은 뭐가 된단 말인가?

오히려 기회를 다시 준다는 명분 하에 역차별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줄 거면 훈련 성과, 태도가 더 뛰어난 병사에게 주는 게 맞다.

애초에 제이번을 훈련에 참가시킨 것 자체가 문제였다.

문수르도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제이번에게 기회를 주는 건 잘못 됐다.

새로운 기회를 주는 모범사례? 굳이 제이번을 이용하지 않아도 그런 모범사례는 만들 수 있다.

보통 경우라면 문수르가 오히려 제이번의 목을 쳤을 것이다.

“포비어 경. 만약 이제르트 자작가가 일반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하다못해 주변 상황이 그나마 여유가 있었다면 포비어 경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따랐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이제르트 자작가가 처한 상황은 굉장히 좋지 못하다.

기가스를 양산한다?

좋아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이제르트 자작은 단순히 주변 영주들의 견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왕국 차원에서의 견제를 받을 것이다.

이제르트 자작가가 부흥하기 위해 진행했던 모든 일들은 그 정도로 위험하고 파격적인 일이다.

그나마 케르빈 월드가 중세 시대의 문명을 가진 탓에 정보가 퍼지는 속도가 극도로 느리고, 인구이동이 가뜩이나 적은 이제르트 자작령의 특성 때문에 이제까지 조용히 머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터진다.

그래서 문수르는 이번 전쟁이 차라리 반갑기도 했다.

‘이번 전쟁을 통해 단숨에 대세를 휘어잡은 후에 어떻게든 왕국의 실권을 장악해야 한다.’

여기서 주도권을 잡지 못하면 그 이후에는 계속되는 견제 속에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주도권을 잡는 게 그리 쉬울 리 만무하지 않은가?

상황이 여유롭지 못하다.

그러니까 파격이 필요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

상식적이지 못한 일!

이제르트 자작가에는 그런 게 필요하다. 정말 말도 안 되고, 심지어 부조리하고, 부당하게 느껴진다고 해도!

이제르트 자작가에서 싸우는 자들에겐 그런 최소한의 반전 기회가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포비어 경, 포비어 경이 이 모든 일을 병사들에게 설명해주면 어떻겠습니까?”

“예?”

이어지는 문수르의 제안에 포비어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자신은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는데 오히려 자신보다 그 일을 진행하라고, 주도하라고 한다.

문수르만 아니었다면 욕이라도 내뱉었을 것이다.

반대로 문수르기에 포비어는 한 번 더 생각했다.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대체 어째서…….’

문수르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이제르트 자작가를 위해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적어도 그 의도 자체는 순수하게 이제르트 자작가를 위해서 하는 일이겠지.

‘타협책이 필요하다.’

때문에 반대는 불가능하다.

문수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어떻게든 일을 진행하겠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무작정 반대하기보다는 오히려 타협을 해야 한다. 포비어는 고민했다.

‘탈영병에게 기회를 준다니.’

그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겠다. 다른 병사들도 아니고, 탈영 경력이 있는 제이번에게 이런 기회를 준다는 게.

물론 단순히 기회만 주는 건 아니다. 기회를 받기 위해서는 자격이 필요하다.

그 자격은 다름 아니라 체가스 자작가의 기사들을 암살하는 일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배신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할 터.’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방법을 써야 과연 문수르의 이 계획을 실정에 맞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

빠득!

순간 포비어가 이를 갈았다.

“알겠습니다.”

그가 결단을 내렸다.

“제가…… 제가 이 모든 작전 계획을 그리고 문수르 경의 의중을 병사에게 설명토록 하겠습니다.”

============================ 작품 후기 ============================

조언, 충고는 언제나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언제나 부족한 글이라서 죄송할 뿐입니다. ㅜㅜ보다 나은 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쓰겠습니다.

쓴 충고, 조언 언제나 감사드리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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