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51화 (149/293)

151화

<43화. 선공.>

1.

페스로 제국.

케르빈 월드의 절대자다.

혹자는 말한다.

만약 기가스의 시대가 오지 않았다면, 페스로 제국이 진즉에 세상을 정복했을 거라고.

기가스가 탄생한 배경에는 사실 페스로 제국의 어마어마한 전력을 상대하기 위한 다른 국가들의 필사의 염원이 있었다. 수적으로 밀리니 새로운 병기, 보다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습게도 시간이 흐른 뒤에 케르빈 월드에서 가장 강력한 기가스 전력을 보유하게 된 나라는 페스로 제국이 됐다.

3배 급 기가스.

다른 나라는 한 대조차 보유하는 것이 어려운 그 강력한 기가스를 페스로 제국은 10대나 보유하고 있다.

그뿐인가?

페스로 제국이 보유한 기가스의 머릿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금방이라도 페스로 제국이 대륙 전체를 지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오히려 기가스의 시대가 오면서 페스로 제국의 정치 상황은 더욱 혼란해졌다.

기가스란 전력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기존에 페스로 제국의 귀족들이 가지고 있던 세력 구도가 무너진 것이다.

이런 정치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때문에 페스로 제국은 주변국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맺기보다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물론 단순히 정치적 문제점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건 아니었다. 그건 현제 페스로 제국의 황제, 카이탄 황제의 정치적 성향이 그런 방향을 원했던 부분도 크다.

그리고 지금 그 카이탄 황제가 황위를 물려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권력개편의 시기가 온 것이다.

2.

아히만트 백작은 마차에 탄 채 자신의 영지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마차 안에는 아히만트 백작 말고 한 사람이 더 타있었다. 학사풍 외모를 가진 사내였다.

“이야기는 잘되셨습니까?”

“흥. 빅토리안 공작이 내 말을 무시할 것 같으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빅토리안 공작은 움직인다.”

“그렇다면 조만간 콩탄 왕국에 전쟁이 일어나겠군요.”

“그렇지.”

아히만트 백작은 미소를 지었다.

“빅토리안 공작 입장에서 지금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은 전쟁밖에 없을 테니.”

무슨 말일까?

“콩탄 왕국이 시끄러워지겠군요.”

“폐하께서도 바라는 바 아닌가?”

“예, 맞습니다.”

전쟁!

아히만트 백작은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의 협박을 받은 빅토리안 공작이 전쟁을 일으킬 거란 사실을 말이다.

‘내 말을 거부할 수는 없을 테니.’

빅토리안 공작은 절대 아히만트 백작의 말을 거부할 수 없다.

아히만트 백작의 말을 무시하고 슈페언 백작과 계속해서 손을 잡는다? 사실 그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러나 빅토리안 공작은 알고 있다.

아히만트 백작이 이미 콩탄 왕국에 관심을 가진 상황에서, 빅토리안 공작이 아히만트 백작이 내민 손을 거부했을 때 아히만트 백작이 다음 교섭 상대로 누굴 고를지 말이다.

제이머스 후작!

아히만트 백작은 당연히 제이머스 후작 편을 들 것이다.

아히만트 백작을 등에 업은 제이머스 후작은 빅토리안 공작 파벌을 압도할 정도로 강력해진다.

아히만트 백작이 뒤를 봐준다, 그 이야기만 나와도 대부분의 이들이 제이머스 후작 밑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슈페언 백작은 어떻게 나올까?

여기서 빅토리안 공작의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슈페언 백작은 빅토리안 공작을 후원해주지 않는다. 슈페언 백작이 편을 드는 건 필로스 왕이다.

필로스 왕은 빅토리안 공작이 여기서 더 강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 말이 친왕파지, 솔직히 빅토리안 공작의 입김은 필로스 왕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그럼 어떻게 될까?

필로스 왕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빅토리안 공작과 함께 제이머스 후작과 싸우든가.

아니면 빅토리안 공작을 내치고, 제이머스 후작을 회유하던가.

솔직히 아히만트 백작이 제이머스 후작을 후원한다고 치면 이제까지의 전력은 무의미해진다. 승패를 가늠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필로스 왕은 제이머스 후작을 회유하고자 할 것이다. 아히만트 백작과 제이머스 후작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다. 제이머스 후작에게 자리를 약속해주는 것이다.

제이머스 후작은 그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터. 물론 조건을 걸 것이다.

빅토리안 공작을 버리는 것.

믈론 빅토리안 공작은 이 경우에 아히만트 백작과 손을 잡게 될 테고, 그럼 다시 전쟁 구도가 반복되는 것이긴 하다.

즉, 필로스 왕이 골라야 하는 건, 전쟁을 함께할 파트너로 제이머스 후작을 고르느냐, 빅토리안 공작을 고르느냐, 그 점이다.

문제는 필로스 왕이 빅토리안 공작의 권력을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점이다.

필로스 왕은 기왕 상대를 무너뜨려야 한다면, 빅토리안 공작을 무너뜨리고 싶어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런 상황이 된다면, 빅토리안 공작은 다시 아히만트 백작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건데…….

미친 짓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아히만트 백작과 손을 잡는 게 낫다. 그때 가서 손을 내민다면 아히만트 백작이 곱게 잡아줄 리 만무하다.

빅토리안 공작 정도라면 그 정도 상황까진 금방 유추해낼 것이다.

더불어 아히만트 백작 역시 그 사실을 노리고 필로스 왕이 아니라 빅토리안 공작을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이다.

결국 빅토리안 공작은 아히만트 백작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전쟁은 피할 수 없지.”

아히만트 백작은 웃었다.

애초에 그가 콩탄 왕국의 정세에 개입한 이상, 누가 됐건 간에 전쟁은 일어난다.

슈페언 백작을 따르느냐, 아히만트 백작을 따르느냐.

둘 모두를 따르거나, 둘 모두를 거절하거나. 그런 선택지는 고를 수 없다.

그 누구든 어느 한쪽을 골라야 한다.

콩탄 왕국의 내분, 정치적 혼란…… 이 모든 걸 원하는 건 다름 아니라 페스로 제국의 황제다.

더 나아가 페스로 제국이 원하는 건 단순히 콩탄 황국의 정치적 혼란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콩탄 왕국의 파멸이다.

“페스로 제국에게 속국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블랙 소드.

아히만트 백작은 흑검을 들고 전장에서 싸워왔다. 그는 황제의 검이었다. 황제가 원하는 전쟁에서 그는 황제의 검이 되어 활약했다. 황제가 요구하는 모든 승리를 거둬왔다.

그러나 그것도 이미 오래 전의 이야기다.

페스로 제국이 전쟁 대신 화합을, 점령 대신 속국을 택하면서 전쟁이 줄어들었다아히만트 백작은 그게 너무나도 싫었다.

전장이 사라진다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정치와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 정쟁 따위는 생각만으로도 짜증이 났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다시금 페스로 제국을 전쟁의 화신으로 만들 기회가 말이다.

“처참하게 뭉개주지.”

콩탄 왕국, 아히만트 백작에겐 그저 무너뜨려야 할 적국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3.

빅토리안 공작은 측근들을 불렀다.

베르베 백작을 제외한 모두가 참석했다.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베르베 백작의 일은 아직 해를 넘기지 못한 상황이었다.

특히 보우런 남작의 분위기가 가장 좋지 못했다.

그가 영지를 되찾기 위해 시도했던 모든 방법은 물거품이 됐다. 더군다나 보우런 남작은 간접적으로 베르베 백작의 일에 관계된 상황이었다.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전쟁을 준비하도록.”

그런 그들에게 빅토리안 공작은 짧게 말했다.

측근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이머스 후작을 무너뜨린다.”

“그건…….”

제이머스 후작을 무너뜨리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걸 위해서 이제까지 뛰어왔다.

그러나 적어도 정치적으로 무너뜨려야지, 전쟁을 통해 무너뜨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전쟁에는 명분이 필요하니까.

명분이 있어야 왕의 허락을 받을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반대로 왕의 허락을 먼저 받고, 그것을 명분 삼아 전쟁을 치르던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명분은 없다. 제이머스 후작은 정치적으로 약점이 없다.

또한 제이머스 후작 역시 친왕파 귀족이다. 이제르트 자작 때와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제르트 자작은 필로스 왕에게 눈엣가시, 없으면 더 속이 시원한 가문이지만, 제이머스 후작가는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는 세력이다.

무엇보다 필로스 왕은 제이머스 후작과 빅토리안 공작 사이의 파벌 경쟁이 더 오래 되기를 소원한다. 그 둘이 서로 싸우면서 세력을 갉아먹는 게 왕권유지에 더 도움이 되니까.

그리고 그 전쟁이란 어디까지나 정치적 전쟁.

물리적인 전쟁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빅토리안 공작과 제이머스 후작이 서로 싸우게 되면 그건 단순한 정쟁의 차원을 넘어서 내분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콩탄 왕국이 자중지란에 빠지게 된다.

결국 지금 빅토리안 공작이 무작정 전쟁을 치른다는 건…… 왕과 반목하겠다는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선택이다.

왕과 반목한다는 건, 반란이나 다름 없는 일이다.

이제까지 친왕파 노선을 걷던 빅토리안 공작 입장에서는 최악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아히만트 백작, 그가 나를 찾아와 자신과 손을 잡다고 하더군.”

그러나 이어진 빅토리안 공작의 말에 측근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히만트 백작의 이름을 모를 리 없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측근들 역시 빅토리안 공작과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피할 수 없다.’

‘아히만트 백작이 끼어든 이상, 슈페언 백작을 따르는 이들과 아히만트 백작을 따르는 이들로 왕국은 양분될 수밖에 없다.’

어째서 갑작스레 아히만트 백작이 슈페언 백작과의 반목을 감수하고 콩탄 왕국의 정세에 끼어들었는가?

그건 사실 중요치 않다.

핵심은 아히만트 백작이 움직였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래도 전쟁은 위험합니다. 오히려 선공을 취하면 적에게 명분을 주는 꼴이 됩니다.”

“아히만트 백작과 손을 잡으신다면, 보다 긴밀한 대화를 통해 일단 보다 확실한 계획을 세우심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전쟁은 너무 극단적인 생각이다.

대세를 잡았다.

빅토리안 공작 파벌은 이 대세를 잡고 유지하기만 해도 된다.

그런데 전쟁은 이 모든 걸 물거품으로 만드는 짓이나 마찬가지다.

빅토리안 공작도 알고 있다. 전쟁을 자신이 먼저 시작하게 되면 이제까지 이룩한 모든 게 무너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했다.

‘기회일 수도 있다.’

아히만트 백작의 개입으로 인해 콩탄 왕국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내분이 일어날 것이다.

이건 콩탄 왕국 내부의 싸움이 아니다.

제국의 싸움이기도 하다.

슈페언 백작과 아히만트 백작, 페스로 제국의 두 거목이 콩탄 왕국에서 대리전을 치르는 것이다.

더불어 아히만트 백작 입장에서는 슈페언 백작이 이미 차지하고 있는 땅을 침략하는 셈이다.

‘정치적 행동을 하지 않던 아히만트 백작이 자기 의지로 정치적 행동을 한다는 건 무리가 있지.’

더군다나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아히만트 백작이 나섰다는 게 핵심이다.

‘페스로 제국의 황제가 관여된 일이다.’

이제까지 정치적 싸움이 싫어 은거하듯 살아왔던 자가 아히만트 백작이다. 그런 그가 갑자기 자기 의지로 슈페언 백작과의 정치적 대립각을 세운다? 인간은 그리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니다.

더군다나 이 세상에서 아히만트 백작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오직 페스로 제국의 황제뿐이다.

황제가 만약 정치적 분쟁을 원치 않았다면, 아히만트 백작은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반대로 말하자면 황제의 의도라는 거다.

‘황제가 원한다면, 아히만트 백작은 모든 열과 성을 다할 것이다.’

아히만트 백작의 전폭적인 지원이라면 뭐든 가능하다.

무엇보다 애초에 지금 콩탄 왕국 왕위에 앉은 필로스 왕도 정통에 따라 왕위에 오른 자가 아니다.

페스로 제국의 힘을 빌려 왕위에 오른 자다.

즉, 페스로 제국이 원하기만 하면 왕위의 주인이 바뀌는 것쯤은 일도 아니라는 거다.

여기서 빅토리안 공작이 결단을 내렸다.

‘전면전을 시작하면 내가 이긴다.’

솔직히 말해서 빅토리안 공작은 굳이 아히만트 백작의 도움이 없어도 전면전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

페스로 제국이 용납만 해준다면 말이다.

페스로 제국이 왕위의 주인이 바뀌는 걸 묵인해준다면, 빅토리안 공작은 당장이라도 반란을 할 마음이 충분했다.

마음뿐인가?

그에게는 그걸 가능케할 힘이 있었다.

기가스 전력 뿐만이 아니다.

빅토리안 공작이 기가스 전력 외에 숨겨둔 전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런데 기회가 온 것이다.

페스로 제국의 묵인을 받을 기회가, 왕위의 주인이 바뀔 기회가.

“두 번 말하지 않겠다. 전쟁을 준비하라.”

이 기회를 빅토리안 공작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히만트 백작, 네 녀석이 날 이용한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내가 제국을 이용할 것이다.’

빅토리안 공작, 그가 주사위를 던졌다.

============================ 작품 후기 ============================

본래 시놉스는 제국의 개입 부분이 좀 더 나중에 있었지만, 너무 분위기가 늘어지는 것 같아서, 과감히 삭제했습니다.

충고 및 조언은 언제나 감사히 보고, 듣고 있습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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