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7.
모두가 기절했다.
그들은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하루를 꼬박 기절한 채로 보낸 후에 간신이 정신을 차렸다.
그렇다고 제정신을 차린 건 아니었다. 기절한 동안 음식조차 먹지 못했던 그들은 몰려오는 공복감에 미칠 지경이었다.
문제는 그들의 상황이었다.
“뭐야, 이거!”
그들의 몸은 쇠사슬에 결박되어 있었다. 전신이 결박되어 있었다. 가뜩이나 먹은 것도 없고, 힘도 전부 빠진 상황이었다. 그 누구도 쇠사슬을 풀지 못했다.
쇠사슬에 묶인 채 바닥이 너부러진 지원자들 중심에는 문수르가 있었다.
“이제부터…….”
모두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파악했을 때 문수르가 입을 열었다.
“호흡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마나 호흡법.
문수르가 이제 그들에게 마나 호흡법을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전부는 아니었다.
마나를 다루는 호흡법이라기보다는 마나를 보다 쉽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호흡법이었다.
마나 호흡법이란 건, 해부를 하면 마나를 느끼 방법, 그 마나를 축적하여 오러로 바꾸는 방법, 오러를 다루는 방법,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뉘게 되니까.
문수르가 가르쳐주는 건 마나를 느끼는 방법이다. 이것 하나만으로 오러 나이트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마나를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대단한 방법이다.
‘다섯 명 정도만 마나를 느껴도 큰 성공이다.’
물론 모두가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
‘여기서 가능성이 없는 자는 포기한다.’
이제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했을 뿐이다. 이렇게 했는데도 마나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그냥 재능이 없는 거다. 천운이 따라주지 않는 이상 마나를 느낄 수 없다. 천운이란 건 결국 인간의 손을 벗어났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그런 건 문수르도 어찌할 수 없다.
문제가 되는 건 지금 지원자들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
과연 그들이 문수르의 말에 귀를 기울일까?
“숨을 마시고, 그 숨을 뱃속에 집어넣습니다. 끝까지 집어넣으세요. 그리고 참으세요. 절대 뱉지 마십시오.”
문수르의 가르침이 시작됐다.
“숨을 마시고 뱉는 게 아닙니다. 숨을 마시고, 소화하는 겁니다.”
이후에도 문수르는 그 설명을, 가르침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열세 명의 지원자 중에 문수르의 가르침을 따라하는 자는 다섯 명에 불과했다.
“젠장…….”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나머지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몇몇은 문수르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누군가는 두 눈을 감으며 일부러 잠이라도 자려고 했다.
문수르는 그런 그들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잠들면 죽습니다. 그냥 있어도 죽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을 따라하세요. 그것만이 살길입니다.”
이 순간 문수르가 할 수 있는 건 사실 하나밖에 없었다.
‘하늘에 맡긴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만든 건 문수르의 능력이다. 그러나 앞으로 일어날 결과는 하늘에 달려있다.
진인사대천명.
‘빌어먹을.’
문수르는 순간 자신의 처지에 비웃음을 머금었다. 자신을 향해 조롱을 내뱉었다.
‘소설 쓸 땐 그렇게 쉽게 쓰던 단어였는데.’
진인사대천명이란 말.
소설을 쓸 때 정말 질리도록 썼다. 뭐 넣을 단어가 없다, 싶으면 그 단어를 쑤셔 넣었다. 가끔은 그냥 단어가 멋져서 그게 아니면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그 단어를 쓰고, 어설픈 설명을 첨부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정말 하늘에 모든 걸 맡기고, 하늘의 선택을 기다리는 심정이 되니까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째서 사람들이 신을 찾는지.
어째서 사람들이 하늘에 기도를 하는지.
‘무섭다.’
눈앞의 사람들…… 이제르트 자작령에서 그 누구보다 이제르트 자작가를 사랑하고, 그에 충성하는 자들이다.
물론 제이번은 빼고!
그런데 지금 일이 틀어진다면, 그들의 목숨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제르트 자작가에 충성을 바쳤던 그들의 목숨이 정말 무의미하게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게 하늘에 달린 것이다.
이 상황에서 문수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 밖에 없지 않은가?
“정신 차리세요.”
문수르는 다시 호흡법을 알려줬다. 다시금 그들이 따라할 수 있도록, 무의식에서라도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문수르의 말은 말이 아니었다.
“따라하세요, 제가 말한 걸 명심하세요. 살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건 기도였다.
8.
‘빌어먹을.’
베드릭은 미칠 것 같았다. 사실 더 이상 배고픔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물!’
베드릭은 물을 마시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쓰러지기 전 온몸에 있는 물을 땀으로 전부 배출했다. 그런 상황에서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이곳 무덤 훈련소는 건조했다. 땅 밑이면 축축할 법도 한데, 그런 게 없었다.
물먹은 걸레를 한계치까지 쥐어짜듯, 온몸의 물이 쥐어짜인 느낌이었다.
이런 상황에선 먹을 것 따윈 머리에 떠올리지도 않는다.
심각할 정도의 갈증에 그저 물만 먹고 싶을 뿐이다.
‘물!’
그런 상황에서 문수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을 마시고, 그 숨을 뱃속에 집어넣습니다. 끝까지 집어넣으세요. 그리고 참으세요. 절대 뱉지 마십시오.”
처음에는 그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아니, 솔직히 문수르의 목소리 자체만으로도 이미 짜증이 머리 끝까지 치솟아올라왔다.
‘대체 왜!’
베드릭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문수르의 의중이 대체 뭐기에 이렇게 까지 모든 이들을 힘들게 몰아붙이는 걸까?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베드릭은 문수르를 따라했다.
이제까지 베드릭은 문수르를 믿고 살아왔다. 때문에 문수르가 만들었던 훈련 매뉴얼은 전부 소화했다.
훈련을 소화하는 건 죽을 것 같았지만, 결국 그 훈련 덕분에 죽음의 땅이라는 테블스 산을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문수르의 말을 들으면 죽을 정도로 힘들다.
그러나 죽진 않는다.
그 사실을 몸으로 체득한 베드릭은 문수르의 말을 따라했다.
‘어?’
그리고 결과는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드러났다.
‘뭐지?’
문수르의 말대로 숨을 들이마셨을 때 뱃속에 있는 무언가가 그 숨을 붙잡았다.
‘헉!’
오히려 억지로 숨을 뱉으려고 해도, 뱃속에 있는 무언가가 숨을 놓아주지 않았다.
‘으윽!’
이윽고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이 순간 베드릭은 다시금 억지로 숨을 들이마셨다. 터질 것 같은 가슴에 다시금 억지로 공기를 집어넣었다.
뱃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엄청난 고통이 몰아쳤다.
‘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고통은 희열감으로 바뀌었다. 베드릭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허기가 사라졌다.
갈증도 사라졌다.
대신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뭐지?’
베드릭은 그것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문수르가 허언을 한 게 아님을, 문수르가 한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이게 살길이다.’
이 힘을 이용해야 한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허기가 사라지고, 갈증이 사라지자 베드릭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됐다.
흡! 흡!
베드릭이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9.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천운이 따랐다.’
가장 먼저 마나를 느끼기 시작한 건 베드릭이었다. 그가 마나를 느끼기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기사가 마나를 느끼기 시작했다. 문수르의 예상대로라면 기사들이 먼저 느꼈어야 했다. 두 기사가 마나를 느끼는 게 늦은 건 결코 아니었다.
‘베드릭.’
베드릭의 재능이 문수르 예상 이상으로 뛰어났을 뿐이다.
‘기억해둬야겠어.’
두 기사들이 마나를 느낀 후 네 번째로 마나를 느끼기 시작한 건 예상 외의 인물이었다.
‘제이번.’
어떤 의미에서 가장 훈련에 불성실했던 자. 그런 그가 네 번째로 마나를 느꼈다.
재능?
재능도 재능이겠지만, 아마 제이번이 마나를 느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삶에 대한 집착 때문일 것이다.
그 집착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탈영까지 했던 인물 아닌가?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
그 후 점차 마나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열 명이 마나를 느꼈다.
그러나 거기 까지였다.
‘이제 정말 한계다.’
마나를 느낀 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나를 느끼지 못한 자는 그게 불가능했다.
이제 자력으로 목숨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문수르는 두 눈을 감았다.
‘여기까지다.’
말 그대로다.
더 이상의 시도는 무의미하다. 이렇게까지 한계를 드러냈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정말 끝인 것이다.
문수르는 거기서 1차 훈련을 종료했다.
10.
세 명이 탈락했다.
그들은 곧바로 대기 중이던 헤인 경에게 넘겨졌다. 지원자들의 상태를 본 헤인 경은 울상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심하셨습니다.”
헤인이 보기에 병사들의 상태는 심각했다. 치료를 다 한다고 해도 후유증이 남을 정도다. 어쩌면 평생 안고 가야할 장애가 생길지도 몰랐다. 문수르로부터 사전에 언질을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문수르는 고개를 숙였다.
“헤인 경,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도 목숨을 걸겠습니다.”
헤인 경이 눈빛을 빛내며 병사들을 데리고 자신의 병원으로 향했다.
그 후에 훈련은 계속됐다.
쉴 틈은 없었다. 문수르는 마나를 느끼기 시작한 지원자들에게 그들이 느낀 것이 마나임을 알려줬다.
처음에는 모두가 놀랐다.
특히 기사들의 놀람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내가…… 내가 마나를 느꼈다니?”
마나를 느낀다는 것.
오러 나이트에 입문했다는 의미다. 오러 나이트는 모든 기사들의 꿈이자 목표다. 케르빈 월드를 통틀었을 때 오러 나이트의 숫자는 적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 기사들 중에 오러 나이트가 될 수 있는 숫자는 비율로 따지면 10명 중 2∼3명 꼴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그 2∼3명 안에 들게 된 것이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도 놀라기 시작했다. 오러 나이트가 무슨 의미인지,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평민들에게 입신양명을 위한 가장 절대적인 방법은 두 가지뿐이니까.
오러 나이트가 되어 기사 작위를 받거나, 마법사가 되거나.
그런데 지금 그들에게 오러 나이트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고작 첫 발을 내딛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문수르는 그들의 들뜬 마음을 진정시켰다.
“앞으로 가야할 길은 멉니다.”
문수르는 재차 경고했다. 하지만 지원자들의 표정은 이미 기대에 부푼 상황이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모를 문수르가 아니었다. 더불어 문수르도 충분히 기분이 좋았다.
‘열 명!’
솔직히 처음 이 계획을 잡았을 때 다섯 명 정도만 마나를 느껴도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려 열 명이 마나를 느낀 것이다. 앞으로 몇 가지 훈련이 더 남긴 했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노력과 훈련으로 때울 수 있는 것들이다. 마나를 느낀다는 것, 그 자체는 노력과 훈련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큰 성과였다.
- 기뻐하긴 이릅니다.
문수르까지 들뜬 마음.
- 바로 훈련 시작하죠.
그 마음을 가라앉힌 건 다름 아니라 로이드였다.
로이드의 말에 문수르는 정신을 차렸다.
‘그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구만리 중 첫 발을 내딛었을 뿐이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까진 결과를 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합니다.”
문수르가 지원자들을 이끌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훈련이 더 중요합니다.”
지원자들은 그런 문수르의 말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오러 나이트가 될 수 있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러나 그들은 잊지 말아야 했다.
문수르, 그의 별명이 착한 악마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