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46화 (144/293)

146화

4.

원정대의 지원자들이 검을 휘둘렀다.

처음에는 모두가 어느 정도 무리 없이 검을 휘둘렀다. 이천 번 무렵까진 자세가 흐트러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가장 의욕이 떨어지던 제이번마저도 이천 번까지는 무리 없이 휘둘렀다.

이천 번을 넘긴 후부터 문제가 생겼다.

“헉…… 헉…….”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체력 저하였다.

지원자들이 휘두르는 검은 보통 일반 검이 아니었다. 특별하게 만들어 그 무게가 보통 검의 2배에 다다르는 검이었다. 이천 번이나 휘두른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2배의 무게를 가진 검의 무서움은 체력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어!”

곳곳에서 휘청거리는 이들이 속출했다.

체력이 떨어지면 몸은 떨어진 체력에 맞추어 밸런스를 찾으려고 한다. 그 밸런스를 찾는데 가장 먼저 이용되는 건 다름 아니라 축적된 경험이다. 하나의 무기를 오래 연마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기에 익숙해지면 체력이 떨어져도 그에 맞게 몸이 균형을 찾는 게 쉽다.

그러나 지금 지급된 무기는 무겁다. 몸이 밸런스를 쉽게 찾지 못했다. 밸런스가 무너지면?

쿵!

넘어지게 된다.

“으으…….”

넘어진 자는 일어섰다.

그러자 그 지원자의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 넘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버텼던 자리가 갑자기 풀려버린 것이다.

넘어진다는 것, 밸런스가 한 번에 무너졌다는 소리다.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이 끊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계 이상으로 당겨져도 끊어지지만 않는다면 고무줄은 어느 정도 자신의 형태를 찾아간다. 그러나 끊긴 고무줄은 결코 자신의 형태를 되찾을 수 없다.

넘어진 지원자의 상황이 그랬다.

“괜찮습니까?”

처음으로 넘어진 자.

문수르가 그에게 물었다. 넘어진 지원자는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습니다.”

“그럼 계속 하세요.”

“예?”

저도 모르게 반문을 하는 지원자. 문수르는 그런 지원자를 섬뜩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대답은 그걸로 충분했다.

“아, 알겠습니다.”

지원자가 다시 검을 들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꿀꺽!

그 지원자의 모습에 다른 지원자들은 침을 삼켰다. 가뜩이나 땅속이어서 그런지, 침 넘어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훈련은 계속됐다.

그 누구도 힘들다는 소리를 뱉지 못했다. 문수르의 기세가 삼엄한 것도 이유였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니라 겁에 질린 탓이었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다음에는 정신력이 소모되기 시작했다. 몸이 힘드니, 마음도 힘들 수밖에 없다.

마음이 지치자 감각이 예민해졌다. 그냥 예민해지면 차라리 낫다.

두근두근!

지원자들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귀에 들리는 심장의 박동 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거대한 굉음으로 변했다.

쿠궁! 쿠궁!

‘지, 지진인가?’

지진에 난 듯했다. 마치 땅이 울리는 것 같았다.

그건 착각이었다.

하지만 착각을 겪는 사람에게는 그저 착각이라고 단순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서, 설마 땅이 무너지는 건가?’

처음 들어올 때부터 무덤 훈련소란 이름이 꺼림칙했다. 거기에 파놓은 굴을 따라 들어온 땅속 지하세계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허술하고, 부실했다. 당장 이 위에서 기가스가 움직인다면 땅이 무너질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걱정은 안 했다.

이제르트 자작가의 병사들이고, 기사들이니까. 이보다 더한 위험 속에서도 버텨왔던 그들이다.

그러나 정신이 지치고, 착각이 시작되자, 그들이 품고 살아왔던 용맹(勇猛)함은 사라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지원자들이 공황상태에 빠져 허둥지둥 대는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불안감을 참았다.

목을 뚫고 나오려는 공포를 꾸역꾸역 삼켰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이미 바닥난 체력이 다시 한 번 소모됐다. 이번에 소모되는 건 체력이 아니었다. 아마도 생명력…… 그것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생명력은 긁어내고 싶어서 긁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만약 생명력을 소모해서 버티고자 한다면, 육체는 살기 위해서 다른 방법을 찾는다.

그 방법이란…….

털썩!

바로 기절하는 것이었다.

5.

모두가 기절했다.

문수르가 주문한 1만 번 베기에 성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문수르는 쓰러진 지원자들을 둘러보았다.

“로이드, 기록.”

- 전부 기록 중입니다.

“가장 많이 한 사람이 누구지?”

- 운동량으로 따지면 병사 베드릭이 가장 많은 운동량을 보였습니다. 가장 적은 운동량은…….

“제이번이란 놈이겠지.”

문수르는 지원자들 전부를 꼼꼼히 체크했다. 물론 문수르가 직접한 건 아니었다. 무덤 훈련소 곳곳에 설치된 장치들을 통해 로이드가 체크한 것이다. 지원자들의 운동량을 체크했다. 또한 그들의 상태 역시 실시간으로 체크했다.

“결과는…….”

1만 번 벤 사람은 한 명도 없다.

5천 번을 벤 사람이 딱 한 명, 베드릭뿐이었다. 그마저도 후반에는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검을 들고 흐느적거렸을 뿐이다. 그걸 제외하면 5천 번을 넘긴 사람도 없다.

참혹한 결과다.

문수르의 명령을 완수한 이가 하나도 없으니까.

“만족스럽군.”

그러나 문수르는 오히려 이 결과에 만족했다.

“기절할 정도로 훈련을 할 근성은 있다는 의미로군.”

솔직히 문수르는 지원자들 중에 1만 번 검을 휘두를 수 있을 자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이유?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그는 절대 보통 기사 또는 보통 병사가 아닐 테니까.

‘오러를 다루지 않고서는 불가능하지.’

오러를 다뤄야만 가능한 일.

문수르가 주문한 훈련양은 그 정도로 엄청난 훈련양이었다. 당연히 성공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럼 대체 문수르는 왜 이런 훈련을 주문할 것일까?

“일단 어떻게든 한계를 드러내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눈앞에 있는 지원자들 중에서 순수한 능력으로 오러를 깨달을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을 가진 자는 없다.

마나 호흡법이란 건 어떻게 말하면 일종의 속성법이다. 정석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없다.

애초에 정석이란 건 순리를 뜻하니까.

마나 호흡법이 없어도 오러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건, 마나 호흡법이 정석이 아니라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재능이 없는 자가 무리하게 익히려고 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물론 문수르가 우려하는 건, 지금 지원자들이 훗날 대단한 경지…… 예를 들면 지금 문수르의 그것처럼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접어들 때 큰 곤란함을 겪게 되는 경우! 따위가 절대 아니다.

까놓고 문수르는 오러 나이트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다. 기가스를 다루는 데에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

문제가 되는 건 마나 호흡법을 익혔음에도 오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경우다.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마나 호흡법은 만능이 아니다. 좀 더 쉽게 원하는 곳에 도달해주게 해주는 장치에 불과하다.

그냥 마나 호흡법만 가르치는 것으로 모두 오러 나이트가 될 수 있다면 솔직히 문수르도 길게 고민하지 않는다.

충성심 있고, 어느 정도 재능 있는 애들만 골라서 마나 호흡법을 가르쳐주면 끝날 테니까.

문수르가 해야 하는 건 안 되는 놈들도 되게 만드는 것이다.

“며칠 정도 하면 지원자들이 나한테 덤벼들까?”

- 글쎄요, 이 기세면 내일이라도 당장 주인님께 덤벼들 기세입니다만?

그런 문수르가 기대하는 건 다름 아니라 지원자들이 결국 문수르의 요구를 버티지 못하고 문수르에게 검을 겨누는 경우다.

그 때가 오면 충분하다.

그들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의미니까.

그리고 문수르가 기다리는 그 날은…… 로이드와의 예상과는 다르게 일주일 후에 찾아왔다.

6.

“으아악!”

지원자 한 명이 괴성을 내질렀다. 지원자는 휘두르던 검을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쿵쿵!

그러더니 갑자기 벽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문수르는 무심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제이번이로군.’

가장 먼저 이성의 한계를 드러낸 자는 제이번이었다.

재미난 건 제이번의 이성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그가 취한 행동은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이었다. 자학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지원자들은 그런 제이번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이성이 한계에 도달한 상황, 극도로 체력과 심력이 소모된 상황, 그런 상황에서 인간은 이기적으로 변한다.

자기 상황에만 매달리게 된다. 주변 상황, 타인의 일에 신경 쓸 여유가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커헉!”

자학하던 제이번은 어느 순간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더니,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누가 보면 죽었다고 생각할 모양새였다.

‘죽었어?’

문수르는 속으로 기겁하며, 로이드에게 물었다.

- 안 죽었습니다.

‘휴우!’

로이드의 대답에 안도의 숨을 내뱉는 문수르. 물론 겉으로는 이런 속마음을 티끌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비정한 눈빛으로 제이번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눈빛이 그대로 다른 지원자들을 향했다.

“날이 갈수록 횟수가 줄어드는군요.”

말투는 참 예의바르다.

“수준하고는…….”

그런 예의바른 말투 뒤에 이어지는 나지막한 비아냥거림. 작은 목소리, 혼잣말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 지원자는 기절한 제이번을 제외하고 단 한 명도 없었다.

지원자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젠장,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젠장, 젠장!’

‘으아아악!’

지원자들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그들의 가슴 속에서는 문수르에 대한 존경심과 그의 행동에 대한 증오심이 열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이 문수르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이제르트 자작가를 위한 희생정신으로 원정대에 지원한 만큼 의외로 오래 버텼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의 이성이 툭, 하고 끊겼다.

발단은 푸르쯔란 기사였다.

문수르와 가까운 위치에 있던 그를 향해 문수르가 고의적으로 비웃음을 머금자.

“으악!”

괴성을 내지르며 문수르에게 덤벼들었다.

갑작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푸르쯔는 이미 힘이 빠질 만큼 빠져 있었다. 그런 그가 2배나 무거운 검을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더군다나 상대는 문수르다.

콩탄 왕국의 세 번째 오러 마스터!

푸르쯔의 검은 문수르에게 닿지도 못했다. 푸르쯔는 기절하듯 바닥에 쓰러졌다.

감정의 폭발.

푸르쯔의 몸은 그런 갑작스런 상황에 경련을 일으켰다.

문수르는 그런 푸르쯔 앞에 섰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음속으로 푸르쯔의 노력에, 이제까지 버틴 그 정신력이 찬사를,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행동은 달랐다.

“자기 수준이 떨어지는 걸 탓해야지, 남을 탓하는군. 푸르쯔 경, 기사라는 직위가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고작 이런 일로 상대에게 검을 휘두른다는 사실이?”

그 말.

명백한 비하 그리고 비아냥거림.

“문수르 경! 말이 심하오!”

그 말을 들은 테일러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문수르를 향해 달려왔다. 그의 눈은 붉게 충열되어 있었다.

비단 테일러만 움직인 건 아니었다. 다른 병사 출신의 지원자들도 문수르에게 다가갔다.

단 한 명!

베드릭만이 덤벼들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문수르에게 달려들려는 동료 병사의 앞을 막았다.

“이러면, 이러면 안 됩니다.”

“베드릭, 비켜!”

“이러시면…….”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도 문수르를 보호하려는 베드릭. 그런 베드릭의 모습이 오히려 병사들의 행동에 불을 붙였다.

“비키라고!”

말대신 검을 드는 지원자들.

그런 지원자들에게 맞서 싸우기 위해 베드릭 역시 검을 들었다.

동료가 서로가 서로에게 검을 겨누는 상황이 연출됐다. 문수르는 그 광경을 노려봤다.

‘여기까지군.’

이 정도면 충분하다.

‘베드릭, 그만 마지막까지 버틴 건가?’

다른 모든 이들이 무너졌을 때, 베드릭만 무너지지 않은 것. 문수르는 감탄하기보다는 오히려 놀랐다.

‘저 정도 인물이 병사의 자리에 있었구나.’

바로 지척에 저런 인재가 있었는데 다른 곳에서 인재를 찾고 있었다니?

문수르는 자신의 무능함에 대해 반성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반성할 때는 아니었다.

문수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휴식이 필요할 때군.”

그 말과 함께 문수르가 움직였다. 문수르는 당장 테일러 경부터 제압했다.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툭, 쳐도 넘어질 정도로 체력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문수르의 주먹에 복부를 강타당한 테일러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문수르의 공격!

그 모습에 다른 지원자들이 입에 거품을 물며 문수르에게 덤벼들었다. 문수르는 덤벼드는 모든 이들을 기절시켰다.

“아아…….”

베드릭은 이 모든 광경을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새로운 하루가 시작됩니다.

모두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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