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4.
병사 두 명이 끌려왔다.
그들은 모든 병사와 기사들이 볼 수 있는 연무장에 너부러졌다. 보통 때라면 누가 무슨 일이냐고 말이라도 걸어보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했다. 그들을 끌고 와 연무장에 내팽겨 친 이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포비어 경이었으니까.
이제르트 자작과 문수르를 제외하면 포비어 경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다.
더군다나 나름 착한 구석이 있는 이제르트 자작과 문수르, 그 둘과 다르게 포비어는 가차 없었다.
원래부터 가차 없었던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르트 자작과 문수르가 좋은 이미지로 남을 수 있도록, 포비어는 어느 순간부터 가차 없는 이미지를 품기 시작했다.
세상이란 건 너그러움과 포용력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누군가는 매몰차고, 혹독해야만 한다. 포비어는 욕을 먹을지언정, 자신이 비정해지기로 마음 먹었다.
이미 그런 포비어의 검에 고혼이 된 병사들이 제법 됐다.
이제르트 자작령의 특성상 언제나 명줄의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고, 결국 어느 순간 버티지 못한 병사들이 탈영을 시도하니까. 포비어는 그들을 가차 없이 벴다.
이번에도 그럴 기세였다.
포비어는 검을 차고 있었다. 평소에도 검을 차고 다니는 그지만, 오늘따라 그 검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병사들 중 일부는 고개를 돌렸다.
병사들 입장에서 동료가 잘했던 잘못했건, 그들이 죽는 장면은 솔직히 기분 좋은 장면이 아니다.
하물며 만약 그 이유가 탈영이라면…… 솔직히 욕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이제르트 자작가의 병사들 중 탈출을 꿈꾸지 않은 병사는 아마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충성심과는 다른 이야기다.
지독하고 처절한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었으니까.
츠릉!
이윽고 포비어가 검을 뽑았다.
포비어는 검에 자비를 둘 생각이 없었다.
“병사 제이번. 탈영을 시도한 죄, 사형에 처한다. 그 병사를 보고도 막지 못한 카롤은 1개월 동안 감봉한다. 불만이 있는가?”
“그래, 죽여!”
그 순간 제이번이 소리쳤다.
“죽이라고! 어차피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뒈지는 건 똑같은 거지. 고귀한 죽음? 개뿔! 이 세상 모든 죽음이 개죽음이지, 무슨 고귀한 죽음? 지랄하고 자빠졌네.”
죽기 전의 발악이었다.
병사들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제이번의 말은 병사들 가슴 속 어딘 가에는 분명 존재하는 말이었다. 모두가 그걸 당연히 여기는 건 아지만, 제이번과 같은 생각을 가슴에 조금씩이나마 심고 다닌다.
“유언은 그게 끝인가?”
포비어는 그런 제이언의 발악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포비어가 검을 들었다. 단칼에 목을 벨 것이다. 찰나의 고통도 없이 보내줄 것이다.
그것이 이제까지 이제르트 자작가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한 병사에 대해 포비어가 갖출 수 있는 마지막 예우였으니까.
쉬익!
포비어의 검이 매몰차게 움직였다.
카앙!
그 순간 기다란 무언가가 포비어의 검을 막았다.
“문수르 경!”
포비어는 자신의 검을 막은 것이 무엇인지, 막은 자의 정체가 무엇인다 단박에 파악했다.
포비어에게는 그 정도 능력은 있었으니까.
“포비어 경, 잠시 멈춰주시지요.”
“탈영을 시도했습니다. 사형이 마땅합니다.”
포비어는 우려했다. 설마 문수르가 탈영병에게까지 온정을 보여줄 생각인가?
‘그건 안 된다. 문수르 경이 제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확실한 선을 그어야 한다.’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 하는 법이다.
그 선을 지키지 못한다면, 이제르트 자작가는 모래 위의 성이 되어버린다. 언제 어느 순간 허물어질지 모른다.
그리고…….
“문수르 경, 문수르 경이 더 잘 아실 텐데, 왜 저를 막으시는 겁니까?”
“잠깐 할 일이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건 문수르다. 이제르트 자작령에서 가장 현명하고, 올바른 건 문수르다.
그리고 문수르 역시 비정할 땐 비정해지는 사내다. 관리들의 비리가 적발됐을 때 그가 어떤 결정을 내렸던가? 비리를 저지른 관리들의 목을 베어버렸다. 인력의 공백이 생기는 일이었음에도 과감하게 잘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문수르는 좋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런 문수르의 명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이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다.
그걸 알기에 포비어는 검을 회수했다.
츠륵!
검을 검집에 넣었다.
“말씀하시지요.”
“조만간 테블스 산 개간사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문수르의 그 목소리는 연무장에 모인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제법 컸다.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테블스 산을 개간해?’
‘지금도 하고 있잖아? 그거랑 좀 다른 건가?’
‘다른 거겠지?’
테블스 산 개간사업은 지금 진행 중이다. 기가스를 움직여 몬스터들을 처치한 후에 나무를 자르고, 땅을 확보하는 식으로 말이다. 엘프들을 위한 땅의 경우에는 나무를 그대로 놔둔 채 몬스터만 처치한다.
그런 식으로 이제까지 개간한 땅이 적지 않다. 그 개간한 땅을 이제르트 자작령에 편입시키고, 지금 성벽을 그 땅까지 확장공사하는 중이다. 병사들이 모를 리 만무하다.
그런데 다시 개간사업이란 말이 문수르의 입에서 나왔다.
기존의 개간사업이라면 굳이 이런 말을…… 특히나 이런 장소에서 할 이유는 없었을 터.
“보다 효율적인 개간사업을 위해 테블스 산 지형 파악을 위해 원정대를 조직할 생각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포비어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위험합니다!”
지금까지 개간사업은 아이언히트를 앞세운 채 조심스럽게 이루어졌다. 차츰차츰 땅을 넓혔다.
그 강력한 기가스를 보유했음에도 일을 그렇게 진행한 이유는 테블스 산이 그렇게 위험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몬스터, 한 개체가 위험한 게 아니다. 테블스 산에는 온갖 몬스터들이 무리를 지어 우글러린다.
솔직히 오우거 서너 마리쯤은 이제 이제르트 자작령에 제대로 된 위협조차 주지 못한다.
하지만 테블스 산에 있는 오우거의 숫자 전부를 합치면 백 마리를 훌쩍 넘긴다.
그뿐인가?
오크만 기본적으로 만 단위로 거주한다. 거기에 그 외의 몬스터들도 다수 존재한다.
무리하게 개간사업을 진행하다보면 그런 몬스터들과 전면전을 벌이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점진적으로 개간사업을 진행한 것이다.
그런데 아예 테블스 산 안으로 원정대를 보내겠다고?
문수르가 혼자 테블스 산 안으로 들어가는 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문수르가 어디 가서 제 한 몸 지키지 못할 실력자도 아니고, 그에겐 충분한 능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숫자가 많아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희생자가 필연적으로 생긴다. 제 아무리 이제르트 자작가의 병사들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 수준에는 한계가 있다.
“원정대를 조직 후에 훈련을 시킬 겁니다. 저번에 했던 서바이벌 훈련의 업그레이드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훈련에는 찬성하지만…… 원정대를 조직해 테블스 산에 보내는 건 위험합니다. 혹여 몬스터들을 자극이라도 하면 이제르트 자작가가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물며 아직 성벽도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대로 된 원정대는 겨울에 보낼 겁니다. 그 전에 원정대를 따로 구성해 훈련을 시킬 예정입니다.”
그 말에도 포비어는 여전이 납득을 못했다.
훈련 자체라면 찬성이다. 그러나 그 목적은 여전히 이해불가다.
무엇보다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것.
“그게 탈영병에 대한 처벌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 탈영병을 훈련에 참가시킬 생각입니다.”
“예?”
기겁하는 포비어. 너무 기겁한 나머지 말을 잠시 잊었다.
문수르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제이번에게 다가갔다. 문수르가 자세를 낮췄다. 제이번의 눈이 문수르의 눈과 부딪쳤다. 제이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문수르의 별명…… 착한 악마다.
착한 것 같지만 그 본질은 악마란 소리다.
“죽을 각오로 탈영을 시도한 거겠지요?”
“그, 그게…….”
포비어 앞에서도 기세 좋았던 제이번이지만 문수르 앞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사실 문수르와 포비어는 급이 다르다.
포비어도 분명 무서운 기사다. 대단한 실력의 기사다. 거기에 비정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문수르는…… 홀로 전설을 썼던 자다. 포비어가 무서운 인간이라면, 문수르는 사람 같지가 않다.
이제르트 자작가의 사람들 대부분은 그 사실에 기뻐한다. 문수르의 능력이 찬사를 보낸다. 그가 쓰는 전설에 감탄을 내뱉는다.
그러나 그런 전설을 아군이 아닌 적(敵)으로 마주봤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가 몰아친다.
지금 제이번이 그랬다.
문수르는 그런 제이번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면 기회를 드리지요. 이 기회에서 살아남으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그와 함께 문수르가 옆에 있던 살짝 바라보고는…….
“이제르트 자작가를 떠나고 싶습니까? 그러면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테블스 산의 정보 수집을 위한 원정대를 조직할 겁니다. 그 원정대에 참가해 1년을 버티시면, 아무런 제약 없이 이제르트 자작가를 떠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갑작스런 선언이었다.
기사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병사들이라고 표정이 좋진 못했다.
솔직히 병사들은 이해를 못했다. 이제르트 자작가를 떠날 수 있게 해준다고? 대신에 테블스 산에 들어가서 살아남으라고?
그게 죽으란 소리랑 뭐가 다르단 말인가?
하물며 지원자를 받는단다. 어떤 미친놈이 그런 일에 지원을 하려고 할까?
“저기…….”
그때였다.
“저…… 아무나 지원해도 되는 겁니까?”
손을 들고 쭈뼛쭈뼛 병사들 사이를 헤치며 모습을 드러낸 병사의 이름은 베드릭.
아주 오래 전 문수르와 인연이 있던 병사였다.
문수르는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군.’
처음 베드릭을 만났을 때 그는 정말 많은 것이 부족한 신참 병사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칠 것 투성이였던 신참!
그러나 지금 베드릭의 몸에서는 은연 중에 기세란 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건 자부심에서 나오는 기세였다.
문수르가 기획한 훈련, 트레이닝을 조금의 부족함도 없이 소화했을 때만 가질 수 있는 자부심! 이렇게 노력했기에 적어도 당장 죽어도 후회는 하지 않으리란 자부심!
그 자부심 만큼이나 실력도 향상됐겠지.
“아무나 지원해도 좋습니다. 제이번 병사 말이 맞습니다. 어차피 죽을 것, 살 수 있는 기회라도 잡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문수르 경!”
그 말에 잠자코 있던 포비어가 기겁을 했다.
아니, 병사가 했던 그 발악을 지금 문수르가 인정하겠다는 건가? 결코 인정해서는 안 된다. 다른 이들이 인정하더라도 문수르가 인정해서는 안 된다. 문수르는 이제르트 자작가의 구심점 아닌가?
문수르는 그런 포비어를 보며 방긋, 미소를 지었다.
그 어떤 것보다 포비어을 제재하기에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포비어는 침음을 삼켰다.
그 무렵 하나둘씩 손을 들기 시작했다.
“지원하겠습니다.”
“저도, 저도 지원하겠습니다.”
의외로 숫자가 많았다. 포비어는 그 사실에 놀랐다. 지금 문수르의 말은 지옥 속에 뛰어들어 살아남으면 살려주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 제안을 받아들이다니?
‘병사들이 그 정도로 지친 건가? 사지로 뛰어드는 도박을 할 정도로?’
정말 제이번의 말대로 병사들이 궁지에 내몰려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는 것일까?
‘응?’
그러나 포비어는 조금 이상한 기색을 느꼈다.
지원한 병사들 중에는 포비어가 기억하는 얼굴이 많았다. 사고를 쳐서 기억에 남은 이들이 아니었다. 전부 타의 모범이 될 정도로 훈련에 열심히 임할 뿐더러, 전장에서도 활약을 펼쳤던 자들이었다. 포비어마저도 충분히 인정하는 실력자들이었다.
포비어가 생각하기에 그들은 불만을 가질지언정, 그 불만을 입밖으로 토로하는 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자들이 지원을 하는 걸까?
그 순간 포비어는 문수르를 바라봤다. 문수르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웃음에 포비어는 결정을 내렸다.
‘문수르 경의 일이다.’
이제까지 무수히 많은 기적을 보여준 문수르다.
그런 그가 다시 한 번 놀라운 일을 보여준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겠지.
포비어는 문수르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원정대가 조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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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벌써 금요일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