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42화 (140/293)

142화

<40화. 지옥으로.>

1.

여름이 시작됐다.

이제르트 자작령의 여름은 올해 유독 무더웠다. 자신의 저택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문수르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빌어먹을 더위…… 여기 올 때 에어컨을 가져왔어야 했어.”

-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로이드가 문수르의 말에 태클을 걸었다. 평소라면 어느 정도 말장난을 치겠지만 문수르는 그럴 힘이 없었다.

이윽고 문수르의 얼굴 위로 걱정하는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문수르는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 날씨에 테블스 산에 들어가면 과연 시원할까?”

- 시원하긴 할 겁니다.

“진짜?”

-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등골이 싸늘할 테니, 적어도 더위 때문에 불평불만을 뱉을 여유는 없을 테니까요.

그 말에 문수르는 실소 짓는 대신 울상을 지었다. 이윽고 문수르의 입에서 긴 한숨이 나왔다.

“테블스 산이라…….”

2.

이제르트 자작령.

베르베 백작과의 전투를 치른 직후 이제르트 자작령은 여러 문제를 떠안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다름 아니라 성벽이 무너진 것이었다. 테블스 산을 바라보는 북쪽 성벽이 무너졌다. 처음에는 몬스터 수가 적었다. 다름 아니라 오크 부족과 오우거들이 깽판을 친 탓에 이제르트 자작령 근처에 모여들었던 몬스터들이 죄다 도망갔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오히려 몬스터들이 활개치기 시작했다.

일단 테블스 산의 몬스터들의 주식이라 할 수 있는 오크들의 개체 수가 줄었다. 일종의 식량부족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오우거들이 사라졌다.

오우거는 자기 영역이 굉장히 넓다. 덩치가 덩치인자라 먹는 양이 적지 않은데, 보통 몬스터들은 오우거의 냄새만 맡아도 꽁무니를 빼고는 하니까. 자연스럽게 오우거들이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보다 넓은 영역을 사냥터로 가지게 됐다.

이런 오우거들이 서로의 영역을 구축하게 되면, 다른 몬스터들은 그 오우거들의 영역 경계선면에서만 활동하게 된다. 몬스터들이 일정 지역에만 몰리는 거다. 그럼 몬스터들끼리 싸우게 되고, 자연스럽게 몬스터들의 개체 수가 조절된다.

그런데 오우거가 사라지자, 몬스터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이 이제르트 자작령 근방까지 영역을 확대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와중에 무너진 성벽은 제대로 복구가 되지 않았다. 성벽을 복구하는 게 아니라, 다시금 신축하려는 계획 때문이었다.

몬스터들이 미친 듯이 덤벼들었고, 이제르트 자작령에는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물론 위기는 아니었다.

이제르트 자작령의 전력은 굉장히 강해진 상황이었다. 기가스도 그렇지만, 병사들의 실력이 날이 갈수록 업그레이드되고 있었다. 활을 배우고, 검을 배우고, 창을 배웠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문수르는 따로 서바이벌 훈련도 시켰다. 당장 써먹지는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서바이벌 능력이었으니까. 오지에서 살아남는 방법, 아주 원시적인 도구를 이용해서 생존에 써먹는 방법은 기술력이 떨어지는 케르빈 월드에 아주 필요한 훈련이었다.

오러를 쓰진 못하지만 수준급 궁술에 창과 검을 동시에 다룰 수 있고, 방패도 쓸 줄 알며, 생존 능력까지 가진 병사!

말이 병사지, 까놓고 말해서 오러를 어설프게 쓰는 허세뿐인 기사들보다 더 유용한 전력이었다.

다 좋다.

다 좋은데 여기서도 문제가 생겼다.

병사들이 내부적으로 알게 모르게 불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실력은 좋아지는데 대우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르트 자작가의 훈련은 고약하기로는 콩탄 왕국, 더 나아가 케르빈 월드 제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어떻게 그런 훈련법을 만들어 내는지, 제 아무리 훈련을 반복해도 만날 훈련을 버티지 못해 먹은 것을 게워낼 지경이다.

이뿐인가?

훈련만 하는 게 아니라 틈만 나면 전투를 치른다. 전투는 길든, 짧든 무조건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봉급이 어느 정도 오르긴 했지만, 점차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예전에는 불만 따윈 없었다. 당장 살기 바쁜 때였으니까. 더군다나 이제르트 자작가에 모이는 이들은 대부분 떨거지들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제르트 자작령에 머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실력이 생기고, 살만해지니까 다른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나름 실력 좋은 병사들은 알고 있다. 정말 실력이 괜찮으면 영지를 떠나서 용병으로 활동하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고.

실제로 이미 이제르트 자작가의 병사들 중에 극소수이긴 하지만 몇몇은 용병이 되어 영지를 떠나기도 했다.

언제까지도 이대로 상황을 방치해뒀다간 정말 크게 폭발할지도 몰랐다.

“폭발할지도 모른다…….”

문수르도 알고 있다.

때문에 문수르는 이용해볼 생각이었다.

“그래, 차라리 극한까지 몰아 붙이면 진심이 뭔지 알 수 있겠지.”

문수르가 준비했던 계획을 시작했다.

3.

카롤은 이제르트 자작령에서 태어나, 이제까지 이제르트 자작령에서 살아온 토박이 중의 토박이다. 이제르트 자작이 오기 전부터 그는 이제르트 자작령에서 살았다.

때문에 몬스터들과 싸우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이후 이제르트 자작가에서 병사를 모집할 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지원했다. 그저 어영부영, 억지로 병사가 된 이들과는 다르게 그는 병사라는 사실에 대해 충분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문수르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고난도의 훈련은 즐거운 것이었다카롤은 토하면서도 문수르의 훈련을 소화했다. 그리고 날이갈수록 실력도 좋아졌다.

또한 이런 카롤의 모범적인 행동은 기사들에게는 총애를, 동료들에게는 존경을 사게 해줬다.

어느 순간부터 카롤은 병사들을 이끄는 리더들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기사들이 먼저 나서기보다는 카롤이 먼저 나서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렇기에 카롤은 최근 근심걱정이 많았다.

“제이번, 대체 이번에는 또 무슨 이유야?”

“무슨 이유긴, 술 먹는데 이유가 있나?”

제이번.

그는 카롤과 같은 이제르트 자작령의 몇 안 되는 토박이였다. 그러나 카롤과는 다르게 거의 반강제적으로 이제르트 자작가의 병사가 되어 이제까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해온 자였다.

그래도 친구였기에 카롤은 제이번을 자주 챙겼다. 이상할 건 없었다. 친한 친구를 챙기는 게 뭐가 이상하단 말인가?

그러나 최근 들어 제이번의 행동이 친구라고 해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술 먹는 건 좋아. 그런데 훈련을 앞두고 술 마시는 건 대체 무슨 의미야?”

“흥, 그놈의 훈련.”

“그놈의 훈련이라니!”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어제는 싸우고, 오늘은 훈련 받고, 내일은 전장에 나가고!”

주점이 순간 조용해졌다.

그 적막감에 카롤은 고개를 저었다반면 제이번의 목소리는 커졌다.

“이게 무슨 짓이야? 응? 언제까지 이런 미친 짓을 해야 하는 거야? 전쟁을 했으면 훈련을 쉬던가? 그런 것도 없이 주구장창 사람을 굴리면 미칠 수밖에 없지.”

“그래서 지금 어쩌자는 건데?”

“어쩌긴, 이 빌어먹을 병사를 때려치워야지.”

병사를 때려 친다는 말.

“지금 내 실력이면 용병으로 어디 가서 굶어죽진 않아. 아니, 오히려 그게 더 낫지. 용병이면 일만 처리하고 돈만 받으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테니까.”

“제이번!”

쉽게 뱉을 수 없는 말이다.

극소수의 병사들이 용병이 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째서 그 수가 극소수이겠는가?

영주가 바보도 아니고, 병사를 그만두고 용병을 한다고 하면 자네, 그동안 수고했네, 이건 미약하지만 그동안 열심히 한 수고비네, 이러면서 금화 몇 푼 챙겨줄 것 같은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병사가 병사직을 그만두는 경우는 둘 중 하나다.

뒈지거나 아니면 정말 사람 구실을 못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거나.

병사들이 빠져나간다는 건 영지의 군사보안 중 일부가 빠져나간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지의 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탈영은 곧 죽음이라고!

물론 그래도 시도하는 자들은 많다. 이제르트 자작령은 그 정도로 살기 힘든 땅이니까. 제 아무리 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옥석이 가려졌다고 해도, 누군 반듯한 옥인 반면 누군가는 금이 잔뜩 가고 거칠어서 상품 가치가 없는 옥이다.

걸리면 죽음이다.

한 없이 착해 보이는 문수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가차없다.

그런데 지금 제이번이 대놓고 탈영을 운운하며, 용병이 되겠다고 소리친 것이다.

카롤은 직감했다.

‘지금 떠날 생각이구나?’

제이번은 지금 이 순간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니 훈련을 앞두고 술을 먹은 거겠지.

취기가 아니면 도저히 도망칠 각오가 서지 않을 테니까.

카롤은 그런 제이번 앞에 섰다.

“너 죽고 싶어? 탈영하다가 걸리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지금 이대로 있다간 다 죽을 판이야. 저번에도 그래, 베르베 백작가랑 전쟁을 치렀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베르베 백작가야, 콩탄 왕국에서 백작들 중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베르베 백작가!”

“하지만 이겼잖아.”

“그래, 문수르 경 덕분이 이겼지. 하지만 몬스터랑 싸우면서 동료 수십여 명이 뒈졌어. 만약 문수르 경이 없으면?”

“그건…….”

할 말이 없다.

솔직히 카롤은 제이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르트 자작가에 대한 충성심이 없다면, 이제르트 자작령이란 땅에 대한 애틋함이 없다면 솔직히 버티기 힘들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속이 타들어가더라도 그걸 이렇게 입 밖으로 내뱉으면 안 된다.

이렇게 말이 나오면 다른 이도 말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소란이 일어나게 된다.

소란이 일어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병사들이고, 영지민들이다.

“제이번, 지금 넌 술기운 때문에 헛소리를 한 거다.”

카롤은 여기서 제이번을 막고자 했다. 탈영을 하는 것보단 술 먹고 행패를 부리다 훈련에 빠지는 게 처벌을 덜 받을 테니까.

“비켜, 카롤.”

제이번은 그런 카롤의 어깨를 밀쳤다. 그순간 카롤이 제 어깨를 밀친 제이번의 팔을 잡아 당겼다.

팍!

동시에 카롤의 발이 제이번의 발목을 후려쳤다.

팔이 잡혔고, 발목이 차이면?

균형을 잃을 수밖에 없다.

“어헉!”

하물며 술기운이 제법 오른 제이번이다. 그냥 서있어도 균형을 잡지 못하는 놈이다.

쿵!

제이번은 곧바로 바닥에 추락하듯 넘어졌다. 카롤은 그런 제이번의 팔을 꺾었다.

“제이번, 잠시 기절하고 나면 정신이 들 꺼다.”

“이거 놔! 카롤, 이 개새끼야 이거 놓으라고!”

“제이번!”

그 순간 카롤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주점에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그들은 제이번과 카롤이 싸움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병사들의 싸움이었다. 일반 영지민들이 어찌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몸다툼이 시작되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보인다.

비명을 지르거나 아니면 허겁지겁 주점을 빠져나가거나.

그런데 지금은 그런 소란이 없었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제압 당한 상태에서도 발버둥을 치는 제이번을 뒤로한 채 카롤이 주변을 훑어봤다.

이 모든 건 카롤이 훈련을 통해 배운 것들이었다. 상대를 제압하는 격투술 그리고 상황에 따른 대처 방법…… 카롤은 충실히 받은 훈련은 그의 본능까지 바꿔놓았다.

이윽고 카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헉…….”

순간 카롤은 너무 기겁한 나머지, 제압하고 있던 제이번의 손을 풀어줬다.

자유가 된 제이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이번의 두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상황

제이번은 탈영할 때 써먹기 위해 숨겨 두었던 단검을 꺼냈다. 그러나 카롤은 그 단검을 보지 못했다.

이윽고 제이번이 이성을 잃은 채 카롤에게 단검을 휘두르녀는 순간!

카앙!

구석에서 식사용 나이프가 제이번의 단검에 꽂혔다. 마치 종이를 뚫듯, 제이번의 단검이 뚫린 것이다.

“으악!”

단검을 쥐고 있던 제이번은 갑작스런 그 공격에 단검을 놓치고 말았다.

“거기까지.”

그리고 이내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내.

“포, 포비어 경?”

카롤이 그 사내를 보며 저도 모르게 그 사내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 작품 후기 ============================

언제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