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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맨-135화 (133/293)

135화

6.

자이언트 트롤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성벽만한 덩치를 가진 놈들은 등에 괴상한 것을 짊어지고 있었다. 조잡한 천을 엮어 만든 배낭 비슷한 그것 안에는 십여 마리의 오크들이 숨어 있었다.

예전에는 자이언트 트롤을 돌진시켜 해자에 빠뜨리는 수준이었던 오크들의 전술은 어느 순간부터 자이언트 트롤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수준까지 왔다.

그걸 보는 병사들은 혀를 내둘렀다. 저대로 자이언트 트롤이 성벽에 도달한 후에 등에 짊어진 오크들을 성 안으로 던진다면? 오크의 반은 죽겠지. 하지만 반은 살아서 인간들을 학살할 것이다.

“자이언트 트롤이 못오게 막아!”

“젠장, 화살을 쏴도 답이 안 나오는군.”

병사들은 열심히 활을 쐈다.

이제르트 자작가 소속의 병사들의 활실력은 제법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활의 위력은 엄청났다.

문수르는 이제르트 자작가의 전력 증대를 단순히 기가스만으로 때울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현대 무기, 아주 강력한 무기들이 존재하는 어스 월드에서도 결국 전쟁을 정리하는 건 일반 보병이었다. 제 아무리 기가스가 강력하고, 병사들의 전투력이 기가스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고 해도 사람이 하는 전쟁을 정리하고 마무리 짓는 건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문수르는 단계적인 방법을 통해 이제르트 자작가의 병사들을 단련시켰다.

검을 가르쳤고, 활을 가르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일로 바쁜 드워프들을 데려다가 병사들을 위한 병기제조를 부탁했다.

상황이 좋지 못함에도 어떻게든 일반 병사들의 전력을 높이고자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궁술을 모든 병사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다름 아니라 엘프 족, 탈라트 부족과의 교류가 있었다.

탈라트 부족의 활 제조능력 그리고 호우투 부족의 장인능력 여기에 문수르의 기술력이 합쳐지자 놀라울 정도로 위력적인 활이 탄생했다. 그런 활을 그냥 놔두는 건 너무 아까웠다. 어설프게라도 일반 병사들에게 궁술을 가르쳐, 활을 쓰도록 만들었다.

훈련기간이 길진 않았다. 아직도 어설프다. 그러나 이제르트 자작가의 병사들은 전부 활을 쏠 줄 알았다.

그 차이는 컸다.

“자이언트 트롤이 넘어간다!”

“이제 두 마리 간신히 넘어지는군.”

“화살! 화살이 부족하다!”

성벽을 방패삼아 싸울 때 활처럼 유용한 무기도 없다. 더군다나 이제르트 자작가 병사들이게 지급된 활은 위력이 상당했다. 그 대단한 테블스 산의 오크들도 화살 한 방에 뒤로 자빠질 정도였다.

화살 자체에도 나름 기술력이 숨겨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막 쓸만한 화살은 아니었다. 제조비용이 적지 않으니까. 그러나 지금 돈을 아끼다간 영지가 날아갈 판 아닌가?

한편 아이언히트에 탑승한 파일럿들은 때를 노렸다.

이미 사전에 합의가 있었다.

“아이언히트가 움직이는 건…… 성벽이 무너진 다음입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성벽이 무너지기 전에 아이언히트를 성벽 밖으로 보낸 후 성벽 너머에서 싸우는 것.

하나는 성벽이 무너진 후에 성 안에서 싸우는 것.

전자는 성벽에 대한 피해를 줄이고, 성 밖에서 싸움으로써 성 내부의 피해도 줄일 수 있다.

후자는 그 반대다. 성벽이 무너지면 그 자체만으로도 큰 타격이고, 성 내에서 싸우면 당연히 성 내부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재산피해, 인명피해가 적지 않다.

보통 때라면 전자를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당장 살아남는 게 우선인 전쟁입니다.”

문수르는 말했다.

“성 전체가 거지가 되더라도, 일단 살아남아야 합니다. 살아남는다는 건 사람의 목숨을 뜻합니다. 성벽, 건물, 병기 등……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걸 털어 넣는 한이 있어도 인명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싸워야 합니다.”

성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최대한 적의 숫자를 줄이는 것.

아이언히트와 포비어의 기가스는 그때까지 기다렸다.

포비어는 이를 물었다.

‘성벽이 무너진다.’

문수르보다 더 먼저 이제르트 자작령에서 기가스를 이끌며 싸워온 포비어다.

그에게는 언제나 성벽이 우선이었다.

성벽이 위협 받을 때는 기가스를 이끌고 그가 최전선에서 싸웠다.

그런데 지금 그 성벽이 하염없이 무너지는 꼴을 그저 보고만 있어야 한다.

속이 쓰렸다.

‘문수르 경을 믿는다.’

그러나 포비어는 그 쓰린 속을, 아픈 마음을 비수처럼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넘쳐흐르는 그 분노를 가다듬었다.

‘그래, 넘어와라.’

이 분노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몬스터 놈들에게 퍼부을 것이다.

빠득!

포비어가 이를 갈았다.

그 순간!

콰릉!

굉음과 함께 성벽이 무너졌다. 무너진 성벽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니라 오우거였다.

크오오오!

그 무시무시한 오우거는 해자를 가볍게 건넌 후에 성벽마저 쉽게 무너뜨렸고, 종국에 표효했다.

놈의 외침이 이제르트 자작의 성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모든 생명체를 오그라들게 만드는 피어였다. 보통 생명체라면, 인간이라면 저절로 오줌을 지릴 만한 공포가 몰아쳤다.

하지만!

“네놈은 내가 잡는다!”

쿠웅!

포비어는 그 공포에 조금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드러냈다.

포비어가 달려나갔다.

1.2배 급 기가스.

1배 급 기가스를 개조해 만든 기가스다. 솔직히 이제는 구식으로 불리는 놈이다.

적어도 몇 달 전까지는 그랬다.

쿠웅, 쿠웅!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문수르는 아이언히트의 제조와 함께 포비어의 기가스를 보수하고, 개조해줬다. 동력원 자체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무의미했으니까. 그러나 마나 동력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부품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보다 가벼워졌고, 때문에 보다 빨라졌다.

그 후에 포비어는 기가스를 타고 무수히 많은 훈련을 했다. 본인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였다.

문수르는 모른다.

포비어가 어떤 훈련을 했는지, 본인을 어디까지 몰아붙였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 문수르는 바빴으니까.

하지만 만약 문수르가 포비어를 좀 더 잘 알았다면, 그의 훈련량과 그의 훈련과정을 알았다면 문수르는 결정을 달리 내렸지도 모른다.

그 정도라는 거다.

“흐아압!”

포비어, 이제 그는 그저 어설픈 기가스를 운전할 줄만 아는 오러 나이트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오러 나이트의 수준을 훌쩍 넘어 문수르와 같은 오러 마스터의 경지를 가시권 안에 든 실력자다!

7.

기가스 8대라는 건 보통 전력이 아니다. 기가스의 움직임은 제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너무 거대하고,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인간의 그것처럼 움직일 수 없다.

수적 우위는 절대적이다.

이런 수적 우위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두 가치 수칙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 적을 등 뒤에 두지 말 것.

둘, 하나의 적에 집중하지 말 것.

치고 빠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 그저 무식하게 상대하는 건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다.

문수르는 그 수칙에 철저했다.

“도주 루트는?”

- 출력했습니다.

“적의 상황은?‘

- 아직까지 치명적 손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까 쓰러진 놈이 일어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 1분 39초입니다.

로이드의 도움 그리고 드래곤 파이터의 엄청난 기동력을 이용해 문수르는 전장을 넓게 이용했다.

효과는 확실했다.

문수르 역시 상대방에게 결정적인 타격은 줄 수 없었지만 반대로 결정적인 타격 역시 입지 않았다.

‘시간싸움이다.’

결국 이런 치고 빠지기 전투가 시작되면 핵심은 그 무엇도 아닌 지구력이 되어버린다.

문수르는 눈을 돌렸다.

‘3시간 33분.’

드래곤 파이터의 운행 시간, 절묘하게도 3시간 33분이다.

“어느 나라에선 3을 행운의 숫자라고 하더군.”

- 행운의 숫자는 7아닙니까?

“좋게 생각하면 좋은 거지 뭐.”

로이드와 가벼운 농담으로 긴장을 푼 문수르. 그러나 머릿속은 걱정으로 가득 찼다.

‘베르베 백작가의 기가스들은 마나 충전 상태가 어느 정도지?’

지금 베르베 백작가의 기가스들의 충전상태를 알 수 있다면 전황을 좀 더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이드가 제 아무리 대단해도 그것까진 체크할 수 없었다.

‘보통 1배 급 기가스의 마나 충전이 최상일 경우 운행 가능시간은 6시간 정도.’

베르베 백작가의 기가스가 만전 상태라면, 장기전으로 가면 문수르가 불리하다.

하지만 전장에 만전 상태로 참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대부분 비포장 도로였다. 그런 도로에선 병가들이 기가스를 운반하는 게 불가능하다. 기가스가 자력으로 걸어왔을 터. 이런 부분을 고려해 확률적으로 들어가면, 베르베 백작가의 기가스들의 충전 상태는 최대치라고 해야 80퍼센트 정도. 운행 시간은 약 5시간이 채 못된다는 의미다.

‘아슬아슬하다.’

모르겠다.

너무 애매하다.

그렇기에 문수르는 속이 탔다.

차라리 확실하게 시간 끌기가 안 될 것 같으면 강공으로 가겠는데, 그게 아니니 쉽사리 결단을 내릴 수가 없다.

‘음?’

그 순간 문수르의 눈에…… 정확히는 로이드의 GPS시스템에 병력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베르베 백작가의 병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8.

‘빌어먹을!’

베르베 백작은 속이 탔다.

금방 끝나리라 생각됐던 전쟁이 예상 외의 기가스가 등장하자 판을 알 수 없게 변했다.

더군다나 처음 보는 기가스는 전면전을 할 듯 하면서도 막상 전면전은 피했다. 엄청난 기동력을 이용해 치고 빠지는 식으로 시간을 끌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시간이 끌리면 전쟁의 판도가 어찌 변할지 모른다.

패배를 생각한 건 아니다. 8대1의 싸움이다. 시간을 끌 수 있을 지언정 패배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전쟁이 단순한 승리로 끝나면 베르베 백작은 손해라는 것이다.

‘엘프와 드워프! 놈들을 잡아야 해.’

이번 전쟁에 베르베 백작이 투자한 것들은 적지 않다. 금전적으로 많은 투자를 했다.

그뿐인가?

‘하물며 그분의 도움을 받았다.’

흑마법사 카라카크! 그를 끌어들였다.

그건 보통 일이 아니다. 빅토리안 공작의 이름을 팔아 그를 움직였지만, 그와 교섭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베르베 백작에게는 부담이 상당했다.

이대로 넋 놓고 있을 순 없었다.

“모두 이제르트 자작령을 공격한다.”

베르베 백작이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진군을 시작했다.

보통 전쟁에선 기가스에게 일선을 맡기고, 그 전쟁이 끝난 후에 보병이 움직이는 게 보통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더군다나 병사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백작님, 지금 무리하게 움직이시면…….”

예비 파일럿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들도 있었다. 그들 전력이라면 성벽을 넘는 건 일도 아니다.

더군다나 테블스 산을 바라보는 북문과 달리, 남문 쪽은 성벽이 그다지 높지도 않고, 성문도 별 거 아니다. 거기에 성문 위에 이러다할 병력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넘을 수 있다.’

베르베 백작, 그의 능력이면 당장 성벽을 넘어 성문을 내리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럼 길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기가스가 열심히 싸우는 사이 성벽까지만 가면 된다. 성 안으로 들어가 엘프와 드워프들만 적당히 포획하면 된다.

베르베 백작은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반문은 듣지 않는다. 전군 이제르트 자작의 성벽으로 이동한다.”

그 움직임.

베르베 백작의 결정이 전쟁의 판도를 바꾸었다.

============================ 작품 후기 ============================

온도가 팍 떨어졌네요.

설날 전에 감기들지 않게 조심들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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