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1.
“빨리빨리 움직여.”
“그 부품은 그쪽이 아니잖아. 아! 거기가 아니라니까! 젠장, 물러나. 내가 처리해야지.”
“라인은 아직 연결이 안 됐나?”
“지금 하는 중입니다!”
“무슨 놈의 일처리가 이렇게 굼떠! 다리고 긴 인간들이 말이야!”
이제르트 팩토리.
이제르트 자작령 내의 모든 공업이 이루어지는 곳. 케르빈 월드 내에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최첨단 기술력이 곳곳에 너부러진 곳이었지만, 오늘은 시장판보다 더 시끄러웠다.
“빨리빨리 합시다!”
그 중심에는 문수르가 있었다.
- A파트 완료되었습니다.
“좋아, A파트 마무리 인력 빼고 나머지는 B파트에 투입하겠습니다. B파트 인력들은 준비하세요.”
로이드의 도움을 받아 메가히트의 마무리 제작이 박차를 가하는 문수르. 시간은 촉박했다.
‘메가히트 만이 살길이다.’
이미 전략도 메가히트가 참전할 경우를 염두에 두고 세웠다. 메가히트가 없다면 전략도, 전술도, 작전도 세우는 의미가 없었으니까.
‘솔직히 우려는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지금이야 긴박한 상황이라 어스 월드의 기술력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내 계획은 이게 아닌데…….’
문수르의 목적.
그건 다름 아니라 이제르트 자작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대략적으로 후작가 정도 되면 반석 위에 올라섰다고 할 수 있겠지. 한석균이 원하는 건 바로 이 것이다.
여기에 문수르는 이런 이제르트 자작가가 더 오랫동안 훌륭한 가문으로 남아 치세를 이어가길 원한다.
이게 핵심이다.
‘솔직히 이 세계에 혁명이 일어나서, 계급주의가 무너지는 건 이제르트 자작가에 마냥 이롭지만은 않다.’
한석균과 문수르가 원하는 건 이제르트 자작가 강해지고 또한 그 강함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어떠한 대비책이 마련되는 거지, 케르빈 월드 전체에 혁명의 바람이니, 민주주의 그런 걸 일으키는 게 아니다.
이미 케르빈 월드로 넘어오기 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석균과 문수르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지금 문수르가 하는 일은 조금 위험하다.
‘지미를 무리해서 영주 자리에 앉혔어.’
일단 가장 염려가 되는 부분 중 하나는 지미의 존재다. 지미가 뛰어난 능력자이고, 나름 인격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숙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미는 문수르의 기준으로 봤을 때 너무 파격적이다. 그가 틀렸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제르트 부속령은 어쩌면 급격한 변화를 겪을지도 모른다. 그 변화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 그래서 문수르는 지미를 천천히 설득하고, 그에게 적당한 선을 알려주려고 했다.
‘베르베 백작만 아니었다면…….’
베르베 백작의 병력이 이제르트 자작령을 향한다는 소식만 아니었다면 지미에 대한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러지 못했다.
결국 지미는 폭탄이 되었다. 문수르에게는 지금 당장 큰 도움이 되지만, 어느 순간 문수르에게 도움 이상의 부담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지미는 혁명가다.’
지미에게는 분명 혁명가의 자질 그리고 본능이 있다. 그저 주는 기회에만 만족할 자가 아니다. 분명 어느 순간 자신의 모든 능력을 폭발시켜서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할 것이다.
만약 그때 가서 문수르의 이상과 지미의 이상이 충돌하면, 분명 그 둘은 적이 될 것이다.
‘속이 쓰리다.’
먼 훗날의 미래 일이다.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문수르 입장에서 먼 미래의 일이라고, 일어날 가능성이 낮단 이유만으로 그 문제를 그냥 뒤로 넘겨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사소한 것 하나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기술을 너무 공개했어.’
이 세상에 완전한 비밀은 없다. 사람 마음은 모르는 법이다. 또한 사람의 미래도 모르는 법이다.
지금 메가히트를 만드는 데에 사용된 기술력은 언젠가는 세상에 유출될 것이다.
그렇다면 케르빈 월드는 결국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지식 그리고 기술이 보급되면, 결국 개인 능력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온다. 그러다 보면 사회도 크게 변할 것이다.
그 혼란 속에서 과연 이제르트 자작가는 존립을 유지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문수르는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무어라 확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젠장, 다음에 올 땐 위장약이라도 가져와야지.”
- 어스 월드로 넘어갈 여유가 생기긴 하겠습니까?
“그래, 그게 문제지.”
그리고 최근 생긴 문제가 또 있다.
“회장님이 많이 궁금해 하시겠군.”
예전에는 여유가 많은 탓에 주기적으로 어스 월드에 가서 필요한 것도 보급 받고, 보고도 하고 그랬다.
그러나 최근 그럴 틈이 없었다.
바쁜 나날들이었고, 문수르가 없으면 진행되지 않는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어스 월드로 넘어가는 게 그저 잠깐 시간만 내는 걸로 가능했다면 모르겠는데, 한 번 넘어가면 최소 한 달 이상의 공백은 각오해야 한다. 지금 이제르트 자작가의 상황에서 문수르가 한 달 이상 공백기를 가지는 건 엄청난 타격이다.
“베르베 백작만 처치하면 숨통이 좀 트려나?”
문수르는 말과 함께 가슴팍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오러 마스터가 되면 병에 걸릴 걱정은 없을 것 같았는데, 위장병이 생길 기세군.”
만약 이 시대에서 자신이 죽는다면, 사인은 스트레스가 아닐까?
심히 그런 걱정이 되는 문수르였다.
2.
테블스 산은 광활하다.
최근 이제르트 자작가가 테블스 산의 일부를 개간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할 따름이다.
더군다나 아직 문수르는 테블스 산의 크기를 정확히 파악하지 조차 못했다. 겉으로 보이는 외형적인 부분은 파악했겠지만, 그 속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테블스 산에는 온갖 몬스터가 있다. 그 몬스터들 중에는 지하에서 사는 놈도, 하늘 위에서 사는 놈도 있다.
그런 몬스터들의 땅에 비대한 몸뚱이를 가진 베르베 백작이 들어왔다.
몬스터들 입장에서는 축복이었다.
“인간, 거대하다”
“고기 많은 인간이다.”
“오크 포식한다.”
베르베 백작은 그냥 길을 걸어도 워낙 비대한 살집 때문에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 사내였다.
하물며 인간고기를 그 어떤 고기보다 더 좋아하는 오크들이 그런 베르베 백작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할 리 만무했다. 오크들은 단숨에 무리를 조직한 후에 베르베 백작을 잡아먹기 위해 움직였다.
테블스 산의 오크들은 보통 오크들보다 배는 강하다. 온갖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테블스 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크들도 나름 강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오크들 수십여 마리가 베르베 백작을 포위했다. 오크들의 입에서는 침이 질질 흘러나왔다.
“인간고기 양 많다.”
“돼지보다 많다.”
“소보다 많다.”
오크들은 저 비계 가득한 인간고기를 썰어먹고, 구워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흥분한 듯했다.
베르베 백작은 그런 오크들의 무리를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흥. 이제 별 놈들이 다 꼬이는군.”
베르베 백작은 오크 무리들 앞에서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이 상황이 짜증나는 듯했다.
오크들은 그런 베르베 백작의 말뜻을 몰랐다. 안다고 해도 신경 쓸 놈들이 아니었다.
크와!
오크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동시에 베르베 백작을 향해 몸을 던졌다. 이윽고 오크들의 투박한 무기들이 베르베 백작의 몸에 닿았다.
출렁!
그 순간 기괴한 광경이 연출됐다.
출렁출렁!
베르베 백작의 거대한 살집,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계들이 오크들의 무기를 튕겨내기 시작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인간의 피륙이 날카로운 쇠붙이를 오히려 튕겨 내다니? 하물며 테블스 산의 오크들이다. 힘으로 따지면 어디 가서 지지 않는 놈들이다. 거대한 나무도 도끼로 금방 작살을 내는 놈들이 전력을 다해 휘두른 무기다. 강철에도 흠집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공격을 그냥 가볍게 튕겨내는 살집이라니?
기괴한 광경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웃긴 놈들이군.”
제 무기가 튕겨나가자 당황한 오크들. 그 오크들을 향해 베르베 백작이 가볍게 주먹을 날렸다. 거대한 지방이 가득 달린 주먹은 느릿느릿하기 그지없었다.
맞아도 아프기는커녕 오히려 간지러울 정도!
그러나 베르베 백작의 주먹이 오크의 몸뚱이에 닿자.
출렁출렁!
베르베 백작의 살덩이가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고, 동시에 베르베 백작의 주먹에 맞은 오크가 오우거의 몽둥이에 맞은 듯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꾸웩!”
그냥 날아간 게 아니었다. 사지의 뼈가 전부 박살이 나고, 머리통이 폭발할 정도였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오크들이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인간 무섭다.”
“인간고기 무서운 고기다.”
뒷걸음질치던 오크들은 어느 정도 거리가 벌려지자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베르베 백작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 오크들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베르베 백작이 마음만 먹는다면 모든 오크들을 쫓아가 도륙을 낼 수도 있다.
마음 같아선 자신을 푸짐한 고기 취급한 오크놈들을 죄다 때려 죽이고 싶다.
‘아니다.’
그러나 베르베 백작은 참았다. 자신의 분노를 억눌렀다.
‘이곳에 싸우러 온 것도 아니고.’
그가 테블스 산에 온 목적은 따로 있었다.
“여기서 몬스터를 해치워주면 이제르트 자작가만 도와주는 꼴이지.”
더군다나 테블스 산의 몬스터들은 궁극적으로 이제르트 자작가를 곤란하게 만드는 아주 귀중한 골칫거리들이었다. 그런 놈들을 굳이 베르베 백작이 땀 흘리면서 처치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보다 그분은 대체 어디 계신 건지…….”
베르베 백작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베르베 백작이 엄청난 속도로 테블스 산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베르베 백작은 제 비대한 몸뚱이를 바닥이 납작하게 붙였다. 왕 앞에서도 이런 자세를 취하진 않을 것이다.
대체 누구일까?
대체 누가 앞이기에 베르베 백작이 이 정도로 저자세를 취하는 것일까?
“베르베. 그러니까 날 보고 널 도와달라는 말인가?”
그 앞에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마법사가 있었다. 그의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사이한 기운이 보통의 마법사가 아닌, 흑마법사임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 흑마법사다.
오러 마스터 오크인 또투를 마음대로 다루고, 이제르트 자작가를 바라보며 묘한 감상을 뱉었던 흑마법사!
한석균과 동시에 살았던 흑마법사 카라카크!
베르베 백작이 찾던 인물은 바로 그 흑마법사였다.
“네놈이 미쳤군. 감히 내게 부탁 따위를 하다니?”
베르베 백작은 그 흑마법사에게 부탁했다.
몬스터를 이용해 이제르트 자작령을 공격해달라고.
그에 대한 흑마법사의 대답은 분노 섞인 일갈이었다.
“네놈의 그 비루한 능력을 믿고 감히 내 앞에서 재롱이라도 부리려는 것이냐?”
흑마법사의 분노는 생각보다 강했다꿀꺽!
베르베 백작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킬 정도로,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아닙니다. 제가 감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단지 빅토리안 공작님과의 약속을 기억해달라는 의미입니다. 이번 일은 빅토리안 공작님의 대계에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부디 아량을 베풀어주십시오.”
빅토리안 공작!
그가 언급됐을 때 카라카크의 표정이 사라졌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도, 평화도 없었다.
“빅토리안 공작…….”
그 이름을 나지막하게 읊조리던 카라카크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몬스터들을 움직여주지.”
“감사합니다.”
“단지 그것뿐이다. 이제부터 당장 오크 무리들이 이제르트 자작령을 공격하러 움직일 것이다. 내가 해주는 건 단지 그것뿐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저 카라카크 님의 아량에 감사할 뿐입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라카크가 어둠을 일으켜 세우고는 그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문수르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쟁의 변수는 그렇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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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조언 및 지적, 충고에 감사드립니다.
보다 나은 글로 보답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