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6.
문수르가 돌아왔다.
이제르트 자작령은 때아닌 축제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영지민들은 이제르트 자작령이 돌아왔다는 소식 자체에 환호했다. 그들에게 문수르는 더 이상 한 명의 기사가 아니었다.
비단 영지민뿐만이 아니었다. 병사들 그리고 기사들까지! 심지어 탈라트 부족과 호우투 부족의 일부도 문수르의 방문을 반겼다. 그들 전부를 엮는 중심에 문수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기뻐하는 것과 반대로 문수르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문수르는 비공개 회의를 진행했다. 이제르트 자작과 포비어 경 그리고 폐욤과 가누스, 말론만이 참석하는 회의였다. 겉으로는 회의가 아니라 약소하게 만찬을 즐긴다고 포장했다.
‘베르베 백작에게 회심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결과적으로 방심하게 만들어야 한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알리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최근 보우런 남작가와 전쟁을 치렀는데, 곧바로 베르베 백작가와 전쟁을 치른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 영지민들의 분위기는 뒤숭숭해질 것이다.
물론 보통 영지의 영지민들보다는 나을 것이다. 테블스 산의 몬스터와 쉴 틈 없이 전쟁을 치러오고, 그걸 버텨온 자들이 바로 이제르트 자작령의 영지민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세상 그 누가 전쟁을 좋아한단 말인가?
전쟁을 좋아하는 자는 막상 전쟁에서는 칼 한 번 쥐고 흔들지 않은 채 가장 안전한 곳에서 호의호식하는 자들뿐이다. 문제는 그들이 전쟁을 즐기기 때문에 세상에 전쟁이 끊이질 않는다는 거겠지.
더군다나 보우런 남작과 베르베 백작의 이름값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보우런 남작은 솔직히 콩탄 왕국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빅토리안 공작이 나름 뒤를 봐주는 남작에 불과하다. 그에게서 빅토리안 공작이란 타이틀을 빼면, 제법 힘 좀 있는 남작만 남는다. 남작은 결국 제 아무리 날고 기고 발악을 해도 남작이다.
하지만 베르베 백작은? 빅토리안 공작이란 이름이 없어도 그는 콩탄 왕국 백작들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자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막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자다. 빅토리안 공작의 오른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자다.
그런 그가 병력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은, 제 아무리 몬스터와의 전쟁으로 단련된 이제르트 자작령의 영지민이라고 해도 패닉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단 영지민 뿐만이 아니었다.
“음.”
“생각보다 심각한 일입니다.”
이제르트 자작과 포비어 경은 문수르의 말을 듣는 순간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인간들의 세상, 콩탄 왕국의 현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는 말론과 폐욤 그리고 가누스는 제대로 상황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분위기는 이해할 수 있었다.
문수르가 그들에게 보다 정확한 설명을 해주었다. 그제야 그들의 표정도 굳었다.
“방법이 없는가?”
말론이 물었다.
“기가스 전력에서 너무 밀립니다.”
현재 이제르트 자작가가 보유한 기가스는 총 7대다. 포비어가 다루는 1배 급 기가스 1대와 0.6배 급 기가스 아이언히트 6대.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가뜩이나 파일럿도 부족하지 않습니까?”
기가스 파일럿의 부재!
현재 이제르트 자작령 내에 정말 제대로 기가스를 다룰 줄 아는 파일럿은 많지 않다.
인간 쪽에서는 문수르와 포비어.
엘프 쪽에서는 가누스와 히스티.
드워프 쪽에서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론이나 다른 힘 좋은 드워프가 말 그대로 힘을 이용해 간신히 기가스를 운전할 순 있다. 그러나 기가스의 진짜 전력을 100퍼센트 끌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아이어를 포함해도, 결국 정말 제대로 기가스를 다줄 줄 아는 파일럿은 5명에 불과한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기가스를 다루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오러 나이트, 오러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니까.
반면 지금까지 로이드가 확인한 베르베 백작의 기가스는 8대나 된다. 개중에 2배 급 기가스만 3대다.
‘양에서도 부족한데, 질적으로도 딸린다.’
아이언히트는 결국 제 아무리 치장을 해도 0.6배 급 기가스다. 단가가 저렴하다느니, 유지비가 저렴하다느니, 이런저런 경제적 관점은 결국 경제적 관점에 불과하다. 전쟁에선 절대적인 전력만이 유효하다.
그렇다고 일반 병력에서 우세한가? 그것 역시 아니다.
솔직히 보통 방법으로는 도무지 이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이제르트 자작령의 성벽이다. 여차하면 성벽을 토대로 버티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제르트 자작령의 성벽은 테블스 산을 마주보는 방향만 두텁고, 그 후방은 굉장히 조촐하다. 이제르트 자작령의 재정 상황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전체적인 방어력을 올리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으니까.
“음.”
그때였다.
“저기 말일세.”
침묵을 고수하던 말론이 입을 열었다.
“어, 그러니까…….”
그는 뜸을 들이고 있었다. 아니, 망설이고 있었다. 과연 그 말을 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문수르가 말론을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무엇이든지 가감 없이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러니까…….”
후우!
말론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긴 한숨. 말론은 고개를 푹 숙였다. 누가 보더라도 말론, 그가 무언가 잘못한 게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내가 숨겨둔 게 있네.”
그제야 진실을 고백하는 말론.
“이제르트 자작 몰래 내가 따로 기가스를 만들고 있었네. 그러니까…… 영지에 기가스 파일럿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이언히트를 제조할 재료로…… 다른 걸 만들었네.”
현재 이제르트 자작가 내의 기가스 제조에 대한 대부분의 업무는 말론이 총괄하고 있다. 이제르트 팩토리가 모든 업무를 담당하니까.
더불어 꾸준히 아이언히트를 비롯해 기가스의 연구 및 개발을 진행하기 위해 이제르트 팩토리엔 투자가 이루어진다. 말론이 돈 좀 달라고 하면 이제르트 자작은 있는 돈 없는 돈 모아서 준다. 이제르트 자작은 딱히 말론이 하는 일이 관여를 안 했다. 존중의 표시였다.
그런데 말론이 그 돈을 가지고 다른 일을 한 것이다.
크게 혼이 나도…… 아니, 혼이 나는 정도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공금 횡령 아닌가?
“무얼 만드셨다는 겁니까?”
“그게…….”
말론이 문수르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순간 문수르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거구나!’
드워프.
이 세상에서 호기심 하면 따라갈 종족이 없는 장인들이다. 한 번 무언가에 꽂히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해내고 마는 종족!
그렇다면 말론은 과연 뭐에 꽂혔을까? 그의 무궁무진한 호기심을 자극한 게 대체 뭘까?
‘기가스를 만들었구나!’
기가스다.
그것도 그냥 기가스가 아니다. 아이언히트나 기존의 기가스 따위가 아니라 문수르가 보여준 설계도!
‘3배 급 기가스를 만들었어!’
대마법사 한석균이 자신의 마법지식과 어스 월드의 문명의 지식을 이용해 만든 3배 급 기가스!
MX시스템을 무리 없이 수용하고, MX시스템의 힘을 제대로 끌어낼 수 있는 기가스!
“메가히트를 만드셨습니까?”
“그게…… 잘 만든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긴 하네.”
“완성도는 얼마나 됩니까?”
“80퍼센트 정도 되네.”
“그게 가능합니까? 메가히트를 만들려면 최소한 10만 골드가 넘는 재료가 들어갈 텐데요?”
10만 골드!
아이언히트 1대의 제작 단가가 2천 골드 수준이다. 그리고 보통 1배 급 기가스의 제조 단가는 1만 골드 정도. 2배 급은 여기서 곱절의 곱절이 넘어가게 되면서 4만 골드가 넘어간다.
그렇다면 3배 급은?
돈이 있어도 만들지 못한다. 3배 급 기가스는 지금 페스로 제국이 10여 대 정도 보유한 게 전부다. 최고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만든 역작이다. 제작비를 굳이 따지자면 100만 골드는 나올 것이다. 제국이니까 가능한 엄청난 기체인 것이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았던가?
너무 돈이 많이 들어가서 문수르는 메가히트의 제조를 포기하고, 대신 단가를 훨씬 낮추고 양산이 가능한 아이언히트를 개발했다.
더군다나 지금 이제르트 자작령 사정으로는 아이언히트로 대량생산하는 게 쉽지 않은 수준이다.
그런데 메가히트를 만들었다고?
그것도 80퍼센트나?
“왜 2배 급 기가스 1대가 왔잖아. 그걸 좀 개조하고…… 그리고 내가 우리 부족이 숨겨둔 자원을 몰래 썼지.”
“아!”
그 순간 떠오르는 2배 급 기가스!
바로 아이어가 쓰던 기가스다.
문수르와의 싸움해서 파손되긴 했지만, 영지전에서 이긴 이제르트 자작가가 그 파손된 기가스를 그대로 가지게 됐다. 당연하다. 적어도 보우런 남작에게 허락된 수레 한 대에 들어갈 만한 크기는 아니었으니까.
파손된 기가스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단가보다 수리비가 더 저렴할 뿐더러, 그게 아니더라도 기가스의 부품은 그 자체로도 큰돈이 된다.
그 파손된 2배 급 기가스는 말론의 손에 넘어갔다. 수리가 가능하면 수리를 하려고. 그게 아니라면 부품이라도 떼다가 써먹으려고.
그런데 말론은 그 기가스를 베이스로 해서 메가히트의 제조에 들어갔다. 그걸 위해서 이제르트 자작을 찔러 돈을 타냈다. 그걸로도 부족하자 호우투 부족이 테블스 산에서 목숨 걸고 살아오며 쌓아온 자원을 몰래 사용했다.
‘미친 양반이네.’
이제르트 자작가를 상대로 등쳐먹고, 자기 부족인 호우투 부족을 상대로는 뒤통수를 친 셈이다.
다른 그 어떤 이유가 아닌,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정말 자신의 욕망에 미치지 않고서는 이런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말 고마운 광기(狂氣)야.’
그러나 지금 문수르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맙고, 감사할 정도의 미친 짓이다.
“정말 완성도가 80퍼센트입니까?”
“모르겠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80퍼센트 정도 완성되었다고 생각되네.”
긴 말은 필요 없다.
“한 번 봅시다.”
문수르는 말론을 데리고 이제르트 팩토리로 향했다.
7미터의 신장.
어깨넓이는 기존 1배 급 기가스보다 1.5배는 더 길다. 때문에 1배 급 기가스보다 2배는 커보였다.
아직 몸 전체에 장갑을 두르지 않은 탓에 뼈대만 보이고 있다.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골조(骨組)랑 라인(Line)은 완성됐군.’
기가스를 만들 때에는 세 가지 과정을 거친다.
일단 골조를 만든다. 말 그대로 뼈대다.
이후에 라인을 설치한다. 이 라인은 여러 종류가 있다. 하나는 파일럿이 기가스를 조종할 수 있도록 기가스의 사지에 연결된 와이어 라인. 다른 하나는 기가스의 거대한 몸뚱이가 움직이는 게 가능토록 해주는 마력을 공급해주는 라인.
마지막으로 여기에 장갑을 붙이고, 동력원을 탑재해서 동기화 작업을 끝내면 기가스가 완성된다.
‘로이드, 네가 보기엔 어때?’
- 3.4배 급 출력까지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3.4배 급?’
문수르는 곧바로 로이드에게 물어봤고, 로이드는 빠르게 계산을 끝내 답을 알려줬다.
‘3배 급 기준으로 전투가능시간은?’
- 부품 중 일부가 기존 2배 급 기가스의 부품입니다. 때문에 전투가능시간은 3배 급을 기준으로 했을 때 3시간 32분 정도로 판단됩니다.
‘3시간 32분이라…….’
MX시스템은 무한에 가까운 마력 공급을 가능케 해준다.
핵심은 동체다.
동체가 한 번에 얼마만큼의 출력을 버틸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출력을 얼마 동안 버틸 수 있는가, 그 부분이다.
제대로 완성된 메가히트라면, 3배 급 출력을 23시간 동안 버틸 수 있다. 말이 23시간이지, 거의 무한에 가깝게 운영이 가능하단 소리다.
그렇게 봤을 때 말론이 만든 기가스는 제대로 된 메가히트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도 고작 2배 급 기가스의 부품하고 그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이런 걸 만들다니?’
그래도 말론의 능력은 대단하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며 이 엄청난 걸 만들었다.
‘어스 월드의 기술력을 이해한 거야.’
그것이 가능했던 건, 말론이 어스 월드의 과학을, 기술을 접하고 이해했기 때문이겠지.
‘무시무시하군.’
드워프들의 능력,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놀라울 따름이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무서울 정도다.
만약 수백, 수천 년 후에도 케르빈 월드에 드워프란 종족이 살아남는다면, 아마 그때 케르빈 월드를 지배하는 건 드워프가 아닐까?
‘아무렴 좋아.’
그러나 지금 당장 수백 년 후의 미래를 생각할 때는 아니다. 문수르는 일단 당장 상황을 바라봤다.
‘로이드, 이거 움직이게 만드는데 얼마나 걸리지?’
- 약 319시간 잡혔습니다.
‘베르베 백작의 병력이 이제르트 자작령에 도달하기까지는?’
- 현재 이동속도를 유지한다면, 약 320시간 남았습니다.
‘전투에 당장 쓸 수는 있다, 이 말이군.’
3배 급 기가스의 참전.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절대적이다.
말도 안 될 것 같았던 전황이 단숨에 역전 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문수르는 미소를 지었다.
‘역전의 기회가 왔으면 역전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