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28화 (126/293)

128화

4.

지미의 영입.

문수르 입장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소득이었다. 지미의 능력은 문수르의 예상 외로 더 대단했다. 영지 운영에 있어서 그는 영주, 그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미에게는 보통의 귀족들, 영주들이 가지는 부조리함이 없었다. 지미는 공명정대했다. 죄 앞에서는 그 어떤 차별도 두지 않았으며, 인재가 있으면 그 능력에 맞는 대우를 해주었다.

솔직히 문수르 입장에서는 가장 필요한 능력이었다. 문수르의 이상에 딱 부합되는 능력 아닌가?

‘내가 찾던 인재다.’

마구르나 해톤이 들으면 섭섭할 이야기겠지만, 문수르는 지미의 존재를 이제까지 만난 그 누구보다 귀하게 여겼다.

‘운이 좋았어.’

설마 바로 지척에 이런 대단한 인재가 숨어있었을 줄이야? 운이 좋은 정도가 아니다. 제갈공명을 얻은 유비의 마음이 이러할까? 밥을 안 먹어도 배가 절로 불렀다.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밥을 먹지 않아도 절로 부르는 문수르의 배를 단숨에 꺼지게 하는 소식이 들렸다.

“이제르트 자작님이 암살 위협을 받아?”

이제르트 자작령에서 날아온 소식. 그 소식은 문수르의 등골을 싸늘하게 식어버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제르트 자작에 대한 암살시도라니?

‘예상은 했다.’

물론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었다. 불스 백작에게도 암살 시도가 이루어졌는데, 이제르트 자작을 그냥 놔둘 리 만무하다. 이제르트 자작가는 확실히 이제 눈엣가시, 그 이상으로 커졌으니까.

불스 백작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향했던 암살 위협을 이제르트 자작가에 알려주지 않았던가?

'오히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어쩌면 오히려 한 번 암살 시도가 이루어진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이제르트 자작은 무사하다. 또한 암살 시도란 게 자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는 빅토리안 공작 파벌 측도 쉽사리 암살이라는 선택지를 고르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왜 지금이지?’

암살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성공하면 메리트는 엄청나지만, 반대로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도 적지 않다.

또한 여러 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심혈을 기울여, 가장 확실한 때에 시도해야 한다.

암살자 입장에서는 이번이 시기상으로 확실한 때라고 여겼다는 의미다.

대체 왜?

‘왜 지금이 시기상으로 확실하다는 거야?’

암살자들이 움직인 의도, 배경. 대체 그게 뭘까?

- 주인님.

“응?”

그때 로이드가 문수르를 불렀다.

“무슨 일이야?”

- 이제르트 자작령을 향하는 대규모 병력의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뭐?”

기겁할 만한 내용이었다. 문수르는 로이드에게 다그치듯 말했다.

“그걸 왜 이제 와서 말해주는 거야?”

-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중요하지 않다? 그게 말이 돼? 이제르트 자작령으로 향하는 대규모 병력이 중요하지 않다니! 누가 보더라고 전쟁하자는 거잖아!”

- 불스 백작가로 향하는 것으로 사료되었습니다.

“불스 백작가?”

이 중요한 사실을 로이드가 말해주지 않은 이유가 그 병력이 불스 백작가를 향한 병력이었다고?

그렇다는 건…….

“설마?”

- 예, 베르베 백작의 병력입니다.

로이드는 GPS시스템을 통해서 병력 이동을 확인했다. 당연히 병력의 시작점도 파악하고 있었다.

베르베 백작에서 나온 병력이었다. 이미 베르베 백작이 불스 백작과 한판 크게 전쟁을 치른다는 소문이 도는 상황. 당연히 그 병력은 불스 백작령을 향하고 있으리라 여기는 게 보통 아닌가?

실제로 동선도 불스 백작령을 향하고 있었다. 병력 이동이란 게 그리 단순한 게 아니다. 이동 자체에도 돈이 들 뿐더러, 병력이 많아지면 이동 루트가 제한되어 있다. 케르빈 월드에 무슨 8차선 왕복 도로가 깔려 있는 것도 아니고, 잘 정비된 도로라고 해도 수레 정도가 무리 없이 굴러갈 정도의 도로지, 대단한 도로가 아니다.

더군다나 도로를 관리하는 건 영주의 권한인데, 모든 영주가 길을 깨끗하게 다지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그깟 도로에 돈을 뭐하러 써! 그런 생각을 가진 영주도 적지 않다.

로이드도 그 사실을 알 수 있기에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었다.

베르베 백장의 병력이 불스 백작령을 향한다는 걸!

그런데 갑작스레 불스 백작령을 지나친 것이다. 로이드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아니, 로이드가 있으니까 그나마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거겠지.

“대체 뭐지?”

왜?

대체 무슨 이유로 병력을 돌린 거지?

‘명분이 없을 텐데?’

무엇보다 베르베 백작에게는 명분이 없다. 불스 백작가를 치는 것도, 이제르트 자작가를 치는 것도…… 그에게는 그들을 공격할 명분이 조금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무리하게 병력을 운영한다?

‘아니야.’

그 순간 문수르는 깨달았다.

‘명분 같은 걸 일일이 신경 쓸 생각이 없다, 이 말이군.’

명분, 그건 비슷한 상대를 적으로 두었을 때나 필요한 단어다. 자기 발밑에 있는 놈을 상대할 때 명분 따위는 필요 없다. 무차별적인 폭력만으로도 충분하다. 무식하게 상대를 주먹으로 때려눕힌다고 해도 그걸 가지고 뭐라 할 이는 없을 테니까.

“젠장!”

베르베 백작의 의중이 어느 정도 파악됐다.

“무식하게 밀고 들어오겠다는 의미로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장 이제르트 자작령으로 가야 한다.’

베르베 백작의 병력은 불스 백작가를 상대하기 위한 수준의 병력이다. 불스 백작가의 저력은 엄청나다. 보유한 기가스의 숫자부터가 다르다. 베르베 백작이 그런 불스 백작가의 저력을 알고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보우런 남작만 하더라도 1배 급 기가스 2대에 2배 급 기가스 1대를 이끌고 나왔다. 베르베 백작의 전력은 최소 그 곱절일 것이다.

지금 이제르트 자작령의 전력으로는 버겁다.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기에 문수르가 이제르트 자작령에 있어야 한다. 아직 확실한 방법을 찾은 건 아니지만, 그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문수르가 필요하니까.

5.

문수르는 이제르트 부속령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이제르트 부속령에 대한 관리는 지르미오에게 모든 걸 맡기자.’

위험한 일이긴 했지만 문수르는 지미를 영주 대리로 임명했다.

“이건 시험입니다.”

대신에 지미에게 전후사정을 완벽하게 설명해주진 않았다. 솔직히 사람 마음이란 건 아무도 모르는 법 아닌가? 지금 당장 지미가 문수르에게 고개를 숙였고, 문수르가 보기에 지미가 자신이 원하던 인재인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사람 마음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때문에 문수르는 지미에게 긴장감을 심어주기로 했다. 시험이란 표현을 꺼낸 건 그 때문이었다.

“당신이 정말 능력이 있는지, 사람을 이끌어가고 동시에 당신이 말했던 것을 지킬 수 있는지 시험해보겠습니다.”

구실은 적당했다.

지미에게 영주 대리의 자격을 줬으니, 이제르트 부속령 내에서 지미는 워하는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사람들도 마음대로 뽑을 수 있다. 그는 그 과정에서 보여줘야 한다.

자신이 말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을!

“기대에 보답해드리겠습니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지미는 이런 문수르의 태도가 그저 감격스러울 따름이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자신에게 이런 파격적인 기회를 준다니?

문수르가 그 정도로 자신을 믿어주고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준다는 사실에 몸이 달아오를 정도였다.

‘아이어와 마구르는 남겨둬야겠지.’

그렇다고 문수르가 지미만 그냥 놔둔 건 아니었다. 최소한의 견제 대책은 마련해둬야 한다.

마구르와 아이어, 그 둘은 혹여 지미가 마음을 돌린다고 해도 어느 정도 견제를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 둘을 이제르트 부속령에 남겼다.

“저는 잠시 이제르트 자작님을 뵙고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영지를 잘 부탁하겠습니다. 마구르는 지르미오를 도와주십시오.”

결국 이제르트 자작령으로는 문수르 혼자 떠났다. 문수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다른 이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베르베 백작은 은밀하게 이동 중이다. 더군다나 세상 이들은 베르베 백작이 불스 백작가를 노린다고 알고 있다. 아마도 지금 베르베 백작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겠지.’

회심의 준비도 상대방이 알고 역으로 이용하면 방심으로 만들 수 있는 법이다.

지금 문수르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써야 하는 상황!

정보를 숨기고, 역으로 찌르는 방법도 당연히 써야 한다.

문수르는 곧바로 이제르트 자작령으로 향했다.

베르베 백작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번듯한 이제르트 자작령의 모습이 들어왔다.

“생각보다 번듯하군.”

지옥의 땅, 테블스 산.

그 테블스 산을 품고 있는 죽음의 땅, 이제르트 자작령.

하지만 세간의 소문과 다르게 이제르트 자작령은 의외로 번듯했다. 성벽은 굳건했고, 멀리서만 바라봤음에도 영지에는 분명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흐흐.”

그 순간 베르베 백작이 미소를 지었다.

“어떤 방법을 써서 엘프와 드워프를 꼬득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베르베 백작.

사실 그가 갑작스레 이제르트 자작령을 힘으로 짓밟으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솔직히 명분 따윈 필요없다고 해도, 주변의 시선이란 건 무시 못하는 법이다. 또한 이번에 명분 없이 이제르트 자작령을 칠 경우, 나중에 문제가 될 지 모른다.

빅토리안 공작 파벌이 대세를 휘어잡으면 다시 논공행상이 이루어질 텐데, 그때 가서 베르베 백작이 무리하게 이제르트 자작가를 공격한 것을 다른 귀족이 물고 늘어질 경우…… 솔직히 정치적 손해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베르베 백작은 그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 불스 백작가로 향하던 병력을 돌려 이제르트 자작가를 공격하려고 한다.

엘프와 드워프 때문이다.

이제르트 자작령 내에서 다수의 엘프와 드워프가 발견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금광이 따로 없군. 흐흐흐, 대체 얼마나 큰 돈이 벌릴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

요즘 시대에 드워프와 엘프의 몸값은 동등한 무게의 금보다 비쌀 지경이다.

하물며 사설 노예 시장을 운영하는 베르베 백작 입장에서 드워프와 엘프를 사로잡는 순간, 모든 이익이 그의 손에 떨어지는 것이다. 보통 노예를 잡아도, 노예 시장에서 거래를 하게 되면, 이런저런 이유로 돈을 떼어줘야 하니까.

여하튼 이제르트 자작령을 점령한다는 건, 베르베 백작에게 정치적 손해 따위는 아무런 의미를 둘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이익이 보장된다는 의미다.

“좋아.”

베르베 백작은 고개를 돌렸다.

지금 그의 군대가 이곳으로 오는 중이다. 그러나 그는 따로 할 일이 있기에 먼저 몸을 움직였다.

그의 비대한 몸뚱이는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펄쩍펄쩍!

뛰는 것조차 힘들어 보일 정도로 거대한 베르베 백작의 몸뚱이가 마치 원숭이의 그것처럼 숲의 나무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훈련된 기사들조차 보여주기 힘든 몸놀림을 베르베 백작이 보여주고 있었다. 만약 다른 이들이 보았다면 경악했을 광경!

그러나 더 경악스러운 광경은 따로 있었다.

베르베 백작은 엄청난 속도로 이제르트 자작령을 지나갔다. 이윽고 그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니라 테블스 산!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지옥의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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