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34화. 몰락자.>
1.
문수르는 두 눈을 감았다.
‘내가 실수를 한 건가?’
그런 문수르의 감은 눈 위로 며칠 동안의 일이 스쳐 지나갔다.
영지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그 소란의 근원지는 다름 아니라 헬라 신전이었다.
바우먼 주교, 그가 병에 걸려 죽은 것이다. 증상은 전염병의 그것과 똑같았다. 헬라 신전의 사제들은 그런 바우먼 주교를 치료하려고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들이 제 아무리 기도를 하고, 성수를 뿌려도 바우먼 주교의 상세는 날이갈수록 악화됐다.
나중에는 기도하는 자마저 없었다. 사제들마저 바우먼 주교와 가까이 하기를 꺼렸다.
결국 바우먼 주교는 홀로 외로이 죽었다. 그의 시체는 처참하게 불태워졌다. 헬라 신전도 고칠 수 없는 전염병이었다. 혹여 시체를 잘못 다루다가 병이 퍼지면 불상사가 일어날 테니까.
헬라 신전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곤두박질쳤다.
“어째서 바우먼 주교님이 병에 걸리신 거지?”
“바우먼 주교님이 병은 곧 헬라 신의 시험이고, 신벌이라고 하지 않으셨던가?”
“그, 그럼 바우먼 주교님이 신께 벌을 받으셨다는 말인가?”
“그럴 수도 있지.”
바우먼 주교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키기 위해 전염병을 신의 벌이라고 대대적으로 말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병에 걸려 죽었으니, 영지민들이 그에게 신벌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일. 헬라 신전의 사제들은 무어라 항변하고 싶었지만, 답이 없었다.
결국 사제들이 찾아간 건 문수르였다.
“문수르 경, 바우먼 주교님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부디 막아주십시오.”
사제들은 바우먼 주교가 죽기 했어도, 그의 명예마저 무너지는 건 원치 않았다. 단순히 바우먼 주교가 불쌍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바우먼 주교의 명예가 바닥이 떨어지면 당연히 헬라 교에 대한 믿음도 바닥에 떨어질 것이다.’
바우먼 주교가 죽은 건 안타깝지만, 헬라 교가 이제르트 부속령을 포기할 리가 없을 테고, 새로운 주교가 올 것이다. 잘하면 사제들 중 한 명이 주교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일이 진행되려면 당연히 영지 내에서 헬라 교의 대우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한다.
그런데 바우먼 주교가 정말 신벌을 받아 죽었다는 게 사실로 받아들여진다면 과연 누가 헬라 교를 믿을 것인가? 그들 말대로 따지면 신이 버린 종교가 되는 셈이다.
어떻게든 불을 꺼야 했다.
사제들은 바우먼 주교가 죽기 전 문수르가 굉장히 호의롭게 나올 걸 떠올리게는 기대를 품고 문수르에게 간청했다.
“죄송합니다만, 신벌로 죽은 자를 영주 대리가 감싸기는 뭐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문수르가 그런 그들의 말을 들어줄 리가 만무했다. 문수르는 신벌이란 단어를 강조하면서까지 사제들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신벌이라니!”
“그럼 대체 왜 바우먼 주교께서 전염병에 걸려 돌아가신 겁니까? 하물며 이제까지 신께 기도하면 얼마든지 치료되던 전염병을 왜 바우먼 주교는 고치지 못하신 겁니까?”
“그, 그야…….”
“솔직히 저는 두렵습니다. 헬라 신이 바우먼 주교를 버리고, 그에게 신벌을 줬다면 필시 이유가 있을 터. 그런데 고작 인간인 제가 나서서 바우먼 주교를 감싼다면 과연 헬라 신께서 저를 용서할지…… 요즘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문수르가 이렇게까지 나오자 사제들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었다.
동시에 문수르는 헬라 신전에 대한 맹공을 퍼부었다. 헌금에 대해서 다시 세금을 거두었을 뿐더러, 대놓고는 아니라도 헬라 신전에 이런저런 불이익을 줬다.
사제들은 머리가 부글부글 끓었지만 그뿐이었다. 여론도 그렇고, 상황도 그렇고 모든 게 헬라 교에 불리했다. 괜히 나섰다가는 오히려 더 큰 화를 입을 기세였다.
“후우.”
결과적으로 헬라 신전은 더 이상 제 역할을 못하게 됐다. 헬라 신전을 어떻게든 처리하려는 문수르 입장에서는 최고의 결과다. 헬라 교가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셈이니까.
그러나 문수르는 기뻐할 수 없었다.
헬라 교가 이제르트 부속령에서 철수한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도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다시금 병원에 사람들이 넘쳐날 때도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영지민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왔다.
“로이드, 확실히 폐기한 거지?”
- 물론입니다.
“혹여 조금이라도 문제될 소지는?”
- 0퍼센트에 가깝습니다.
“0퍼센트에 가깝다…… 그럼 0퍼센트는 아니라는 의미로군.”
- 솔직히 모든 일에 확답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문수르.
그가 바우먼 주교에게 카운터펀치를 먹이기 위해 택한 방법은 다름 아니라 전염병의 병균을 인위적은 실험을 통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여러 시료들을 여러 조건에서 배양하면 됐으니까. 백 번 시도하면 구십구 번 실패하는 일이었지만 한 번만 성공해도 충분한 일이었다.
효과는 확실했다.
전염병과 똑같은 증세 그러나 기존의 치료법은 절대 통하지 않는 새로운 병균이 나온 것이다.
그 때문에 바우먼 주교는 죽었다.
‘이건 아니다.’
바우먼 주교의 죽음에는 슬퍼하지 않는다. 문수르가 슬퍼하는 부분은 바로 자신의 행동이었다.
문수르는 케르빈 월드의 세상을 뒤집기 위해 파견된 요원이다. 이미 케르빈 월드의 역사를 크게 바꿨지만, 그래도 어느 선의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다.
하물며 인위적으로 병균을 이용해 무기로 쓰는 행위…….
“회장님이 한 소리 하겠군.”
- 뭐,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해해주시겠지요.
“글쎄…….”
솔직히 한석균이 용서해준다고 해도, 문수르의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는다. 문수르의 양심이 납득하질 못한다.
그럼에도 했다.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것만이 이제르트 부속령을 지킬 방법이라고 했으니까.
‘내가 힘이 없으니까 이런 거다.’
그러나 문수르는 본질을 알고 있다.
문수르에게 만약 강략한 힘이 있었다면, 세력이 있었다면, 권력이 있었다면 이런 짓은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힘이 없으니까 꼼수를 부린 거다. 이걸 그냥 그렇다고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너무 나태했어.”
이제까지 숨 돌릴 틈도 없이 달려왔지만 아직 멀었다. 이제 간신히 고개를 든 수준이다. 기지개조차 피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푸념이나 내뱉고 앉아있다니?
문수르는 스스로에게 반성했다.
2.
바우먼 주교의 죽음.
이제르트 부속령 밖에서 그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건 보우런 남작이었다. 그는 바우먼 주교의 죽음에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일이 꼬였다.
“차라리 그냥 자살을 할 것이지! 하필이면 병에 걸려 죽다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바우먼 주교의 죽음……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아도 생각했다.
바우먼 주교가 계속해서 이제르트 자작가를 압박할 경우, 이제르트 자작가에서 극단적으로 바우먼 주교를 암살한다는 선택지도 충분히 고를 수 있을 테니까. 그때에 맞추어 세운 계획도 있다.
그러나 병으로 죽었다니?
최악이다.
이미 소문이 돌고 있다. 바우먼 주교가 헬라 신의 노여움을 사 신벌을 받은 거라고.
전염병을 빌미로 어떻게든 이제르트 자작가를 압박하려고 했던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젠장!”
“하하하, 보우런 남작 뭘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시오?”
그런 보우런 남작을 부르는 목소리.
“베르베 백작님, 지금 고민이 안 생기겠습니까?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는데.”
베르베 백작이 등장했다. 이번 계획을 기획하고 주도한 인물이기도 했다.
전염병을 퍼뜨리는 것도 그 치료법을 바우먼 주교에게 알려준 것도 바로 그였다.
사실 그런 베르베 백작의 능력을 처음 알았을 때 보우런 남작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전염병을 무기로 쓴다니?’
상상도 못했던 무기다. 또한 굉장히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전염병을 무기로 쓴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기가스를 무기로 쓴다는 것 이상으로 무시무시한 이야기였으니까.
더군다나 굉장히 사악한 방법이다. 마치 흑마법사의 저주 처럼 말이다.
솔직히 내세울 수는 없는 무기다. 꽁꽁 감춰둬야만 하는 무기…… 세상에 알려지면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무기.
때문에 보우런 남작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깊게 파고 들지 않았다. 괜히 깊게 연관되어서 자신의 명줄까지 위협 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방법이야 그것 말고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체 무슨 방법이…….”
“이런 경우는 방법이 하나지요. 바로 정공법 말입니다.”
“정공법?”
“말 그대로 정공법 말입니다. 병력을 이끌고 이제르트 자작령을 공격하는 겁니다.”
“하, 하지만 명분이 없지 않습니까?”
“하하하, 굳이 명분이 필요합니까? 생각해보십다. 우리가 왜 명분을 필요로 하는 겁니까?”
“주변 시선 때문 아닙니까? 이제르트 자작가를 아무런 명분없이 다짜고짜 공격하는 건 필로스 전하께서도 쉬이 용납하지 않으실 터인데…….”
“필로스 전하 입장에서 이제르트 자작가는 눈엣가시지요. 명분 같은 게 필요없다면 전하께서 먼저 이제르트 자작가를 세상에서 지워버렸을 겁니다.”
“그, 그건 그렇지만…….”
“이제르트 자작가를 공격하면 전하가 나서실 것 같습니까?”
“이제르트 자작가는 제이머스 후작 파벌 소속 아닙니까? 당연히 제이머스 후작이 걸고 넘어지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제이머스 후작이 이제르트 자작가를 그렇게 아낄 것 같습니까? 아낀다고 해도 적당한 미끼를 던져주면 됩니다. 무엇보다 빅토리안 공작님이 우리들 뒤에 꼿꼿이 서계신데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베르베 백작.
그의 살집 가득한 얼굴 위로 미소가 그어졌다.
“대세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보우런 남작,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이미 빅토리안 공작님께 허락을 받았습니다. 제가 직접 병력을 이끌고 이제르트 자작가를 칠 것입니다.”
“베르베 백작님께서 직접?”
“기왕 일을 처리한다면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자작가 하나 치는데 베르베 백작님까지 나설 필요가…….”
이제르트 자작가의 전력. 솔직히 예상 외로 강력한 건 사실이다. 더군다나 기괴한 기가스를 보유했다. 일반 기가스보다 능력은 떨어지지만, 그런 기가스의 숫자가 더 많다면 상황은 모른다.
더군다나 2배 급 기가스마저 무너뜨린 무언가가 이제르트 자작가에 있다.
‘그 기가스는 아이어와 전투에서 파괴됐지만…….’
물론 이제르트 자작가의 전력은 보우런 남작가와의 영지전에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상황이다. 전투가 일방적으로 끝났다고는 하지만, 이제르트 자작가가 가진 기가스 전력 상당부분이 파손됐다. 여기에 빅토리안 공작가의 입김 때문에 콩탄 왕국 내부에서는 기가스의 부품을 조달하거나, 마법사를 불러다 수리, 보수하는 것도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런 이제르트 자작가를 치는데 베르베 백작이 나선다는 건 솔직히 좀 그렇다.
주변 시선도 있지 않은가?
누가 보면 빅토리안 공작이 이제르트 자작가를 무서워해서 무리하게 힘을 쓴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더군다나 베르베 백작에게는 이제르트 자작가 따위를 치는 것보다 더 중대한 임무가 있다.
“아!”
그 순간 보우런 남작은 베르베 백작의 의중을…… 그리고 이런 베르베 백작의 계획을 승낙한 빅토리안 공작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혹시?”
“예, 맞습니다. 이제르트 자작령과 불스 백작령은 매우 가깝습니다. 더군다나 이제르트 자작가가 공격 당하는데 불스 백작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르트 자작가를 공격하는 건 정치적으로 이러다할 타격이 없다.
사실이 그렇다.
필로스 왕마저 곱게 보지 않은 귀족을 공격하는데 과연 누가 딴지를 건단 말인가?
물론 거는 귀족이 있긴 있다.
제이머스 후작 파벌, 그들 입장에서 이제르트 자작을 그냥 버리기는 힘들다. 이제르트 자작가가 제이머스 후작 파벌 아래 들어갔는데 이제르트 자작가의 곤란함을 그냥 둔다면 그 누구도 제이머스 후작과 손을 잡으려 하지 않을 테니까.
때문에 어떤 식으로는 불스 백작이 행동을 보일 터.
그러면 불스 백작과도 한 판 전쟁을 벌일 수 있는 명분이 생길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제르트 자작령을 차지하면 불스 백작 입장에서도 골치가 아파질 터.
“그런데 이제르트 자작령까지 차지하게 되면 테블스 산이 문제되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테블스 산이다.
확실히 이제르트 자작령은 그래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았다. 차지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곳을 관리하는 건 그 누구도 할 수 없다.
“굳이 제대로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나 베르베 백작,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냥 놔두면 몬스터들이 이제르트 자작령을 뛰쳐나와 불스 백작령으로 향할 텐데 말입니다.”
베르베 백작.
그의 계획은 훨씬 장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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