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20화 (118/293)

120화

6.

이제르트 자작이 이제르트 부속령을 찾아왔다. 성대한 파티가 치러졌다. 영지민들은 환호했다.

문수르는 기다렸다는 듯이 식량을 배급하기 시작했다. 물론 식량을 배급할 때마다 한 마디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이제르트 자작님께서 하사하시는 식량입니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이제르트 자작, 그가 준 음식이란 말을 꼭 말하도록 배급하는 병사들에게 알려줬다.

덕분에 이제르트 자작의 인기는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았다. 영지민들에게 최고의 영주는 그 무엇도 아닌,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영주였으니까.

당연히 바우먼 주교가 어떻게든 문수르와 이제르트 자작의 평판을 떨어뜨리기 위해 부린 수작들은 무용지물이 됐다.

“젠장!”

이쯤 되면 바우먼 주교도 알 수 있다.

“빌어먹을 놈들!”

자신이 무슨 수를 써도 이미 기울어버린 상황을 뒤집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떻게 하지?”

처음에는 이런 상황을 만든 문수르가 죽이도록 미웠다. 그러나 이제르트 자작이 부속령에 방문한 이후 오히려 솟아오르는 그들의 인기 앞에서 바우먼 주교의 생각은 바뀌었다.

더 이상 자신의 이익이나 권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제르트 부속령에서 철수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건 안 돼.’

이제르트 부속령에서 나간다는 것. 그건 바우먼 주교에게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일단 이제르트 부속령에서 헬라 교단이 철수하게 되면 그 모든 책임은 바우먼 주교가 지게 된다. 신전 관리를 못한 주교를 너그럽게 용서해줄 정도로 헬라 교단의 인품은 넓지 못하다. 주교 직위는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영지의 신전에서 주교로 활동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헬라 교단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대신전으로 돌아가 온갖 잡일이나 처리하다가 늙어 죽겠지.

그러나 차라리 여기까지는 그나마 버틸 만하다.

문제가 되는 건 헬라 교단이 바우먼 주교의 행적을 되짚는 것이다.

헬라 교단은 바보가 아니다. 멀쩡히 운영되던 신전이 갑자기 문제가 생긴다면 필시 이유가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테고, 조사는 굉장히 다각도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조사를 하게 되면 금방 들통 날 것이다. 바우먼 주교가 신전의 기부금 중 일부를 자신의 뒷주머니로 챙겼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게 들통 나면 단순히 신전에서 잡무나 하는 것으로 끝날 리가 없다.

주교직이 박탈 될 수도 있다.

신도가 신전에서 쫓기면, 단순히 일자리를 잃는 게 아니다. 세상이 손가락질을 하고, 그 누구도 보살펴주지 않는다.

바우먼 주교가 다른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상황이 오면 미래는 뻔하다.

굶어 죽거나 아니면 어느 비렁뱅이에게 맞아 죽거나.

“후우, 후우.”

바우먼 주교는 일단 숨을 골랐다.

이쯤 되면 바우먼 주교가 고개를 숙이는 한이 있더라도 자리를 보전해야 한다.

‘계기가 필요해.’

뒷돈을 받지 않아도 좋다. 신전에 내는 기부금이 조금 줄어들어도 좋다.

그러나 결코 이제르트 부속령에서 쫓겨나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

이제르트 자작은 지친 기색을 보이며 자리에 앉았다.

“어디 편찮으신 곳이라고 있으십니까?”

문수르가 조심히 물었다. 솔직히 문수르가 보기에도 이제르트 자작은 강행군을 했다.

이제르트 자작령으로부터 이곳, 이제르트 부속령까지 최대한 빠른 속도로 말을 타고 왔다.

그 후에 여독을 풀 틈도 없이 곧바로 이제르트 부속령 곳곳을 누비며 영지민들을 만났다.

그게 끝난 후에는 부속령의 성에 돌아와 여러 중요한 일들을 결재하고, 처리했다.

그 와중에 제대로 잠조차 자지 못했으니, 피곤할 수밖에.

“별 거 아니네.”

하지만 이제르트 자작은 담담하게 넘어갔다. 이런 일로 앓는 소리를 내뱉는다는 건…… 더군다나 문수르 앞에서 그런 소리를 내뱉는다는 건 너무 염치 없는 짓이었으니까.

“그보다 불스 백작으로부터 편지가 왔네.”

“불스 백작? 내용이 어떻게 됩니까?”

“누군가 불스 백작을 상대로 암살 시도를 했다는 내용이더군. 암살자를 잡았으나, 얻은 정보는 없다고 했네.”

암살!

그 단어에 문수르는 문뜩 페르코 아카데미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 암살자……’

해톤을 암살하려고 했던 암살자! 실력이 상당했던 자다. 과연 지금 그 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대체 누가 해톤을 어떤 이유로 암살하려고 한 것일까?

그때 워낙 일이 긴박하게 지나는 바람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사실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설마…….’

문수르의 등골이 순간 오싹하게 식어버렸다.

‘만약 그 암살자가 이제르트 자작님을 노린다면?’

불스 백작을 노렸다면, 이제르트 자작을 노리지 말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생각보다 위험한 문제다.

불스 백작이야 근처에 뛰어난 기사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으니 암살 위협으로부터 벗어났겠지만, 이제르트 자작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심지어 문수르조차 이제르트 자작 옆에 없는 상황인데?

‘끄응…… 설마 암살이란 카드를 꺼내들 줄이야.’

암살이란 카드. 매우 유용한 카드다. 하지만 설마 대세를 쥔 빅토리안 공작 파벌이 그 카드를 쓸 줄은 몰랐다.

아마 불스 백작의 생각도 비슷했을 터. 때문에 경고 차원에서 이제르트 자작에게 편지를 보낸 거겠지.

‘어떻게든 대비를 해야 돼.’

이제르트 자작이 죽으면 모든 게 무용지물이 된다. 어떻게든 이제르트 자작만큼은 살려야 한다. 그리고 지금 당장 그걸 위해서 문수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다.

‘보디가드를 붙여야 해.’

문수르가 붙으면 최선이겠지만, 문수르는 할 일이 너무 많다. 조만간 상황이 안정되면 다시금 어스 월드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다른 실력자를 문수르의 호위로 붙여야 한다.

‘아이어?’

아이어.

괜찮은 실력자다. 최근 문수르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미 포비어 이상의 실력자가 됐다. 이제르트 자작 휘하의 기사들 중에서는 문수르를 제외하고 제일 강하다.

‘아니야. 아이어는 호위 타입이 아니야.’

그러나 아이어는 전장의 선두에 서서 전투를 벌이는 맹장(猛將) 타입이지, 누군가를 지키는 타입은 아니다.

결국 지금 당장 이제르트 자작을 지킬 만한 최고의 실력자는 단 한 명 뿐이다.

‘가누스 밖에 없군.’

문수르와 같은 오러 마스터! 그가 이제르트 자작의 호위를 맡아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하지만 과연 그 자존심 강하고, 인간을 싫어하는 가누스가 문수르의 호위를 맡아줄까?

‘일단 연락을 취해서 의중을 물어봐야지.’

할 일이 많아졌다.

“그보다 영지는 어떻습니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하네. 이제까지 이런 평온함이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말일세.”

“제가 도와드려야 하는데…….”

“아닐세. 이곳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문수르 경, 자네에게는 더 이상 어떠한 칭찬도 미안할 따름이네.”

이제르트 자작은 뒷말을 붙였다.

“자네가 내 사위라도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어.”

그 말에 문수르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사위라니?

그 의미를 모를 문수르가 아니다. 실제로 문수르가 아주 눈치 없는 인간도 아니고, 자신을 중심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소문은 들어서 잘 알고 있다.

이리아 아가씨가 문수르를 사모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이제르트 자작은 이리아와 문수르를 엮어주려는 마음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제르트 자작가의 기사들도 내심 그걸 바라고 있다.

솔직히 문수르는 너무 뛰어나다. 그런 문수르가 어느 순간 이제르트 자작가를 훌쩍 떠난다고 해도, 잡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문수르가 이리아 이제르트와 혼례를 치르면, 그는 꼼짝 없이 이제르트 자작가에 묶이는 처지가 될 테니까.

‘진땀이 나는군.’

하지만 문수르 입장에서는 정말 아닌 소리다.

이리아가 싫다는 건 아니다.

‘나는 이 세계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문수르는 결국 외인이다. 케르빈 월드의 존재가 아니다. 그런 문수르가 케르빈 월드에 무언가를 남긴다는 건…… 솔직히 문수르 스스로가 탐탁지 않다.

‘자식이라도 낳는다면…….’

혹여 자식을 낳는다면 왠지 책임질 수 없는 무언가를 남기는 느낌이다.

“제가 나이가 많은데 사위가 되긴 좀 그렇지 않습니까?”

“굳이 한다면야 나이가 문제될 건 없지.”

“하하…….”

“잘 생각해보게.”

의외로 강하게 나오는 이제르트 자작. 문수르는 어색한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사실 이제르트 자작이 이렇게 갑작스레 강하게 나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문수르 경도 남자 아닌가? 하물며 최근 문수르 경이 보낸 여인.’

어느 날 갑자기 영지에 손님이 왔다. 문수르가 보낸 손님, 그 손님은 다름 아니라 여인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문수르는 그 여인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이제르트 자작도 딱히 문수르가 말해주지 않는 걸 꼬치꼬치 캐묻고 싶진 않았다. 문수르는 믿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란 게 그리 쉽게 움직이는 게 아니지 않은가?

솔직히 이제르트 자작은 문수르가 그 여인을 연모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문수르의 사랑을 막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문수르를 연모하는 딸아이를 생각하면 절로 가슴이 아파왔다.

‘내가 염치없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딸아이를 위해서라면 아무렴 어떨까?’

반면 이런 사정을 모르는 문수르는 이제르트 자작의 말에 그저 식은땀만 흘릴 뿐이었다.

“그보다 제가 부탁한 일은 어찌 하셨습니까?”

문수르가 주제를 돌렸다.

“푸흐르 교단 말인가? 직접 푸흐르 교단에 편지를 보내긴 했지만 아직 답장이 오지 않았네. 아무래도 그들 입장에서도 이제르트 자작령에 신전을 세우고 관리하는 게 탐탁지는 않겠지.”

이제르트 자작은 푸흐르 교단에 편지를 보냈다. 이제르트 자작령에 신전을 세워줄 테니, 그 신전을 관리할 주교와 사제를 파견해달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보통 영주가 신전까지 세워준다고 하면, 대부분의 교단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하지만 이제르트 자작령은 모두가 아는 지옥의 땅!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그 땅에 오고 싶어하는 사제가 과연 있을까?

“이제르트 부속령에 대해서는…….”

“자네가 부탁하긴 했지만 그 부분은 그냥 빼놓았네. 솔직히 헬라 교단이 자리 잡고 있는 땅에 푸흐르 교단이 들어온다면, 그 피해는 우리가 짊어지게 될 테니.”

문수르는 이제르트 자작령이 안 되면 상대적으로 몬스터로부터 훨씬 안전한 이제르트 부속령에 와달라는 말을 전해 달라 했지만, 이제르트 자작은 임의로 그 내용을 뺐다.

문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르트 자작의 말이 맞다.

헬라 교단이 멀쩡한 상황에서 다른 교단의 신전이 온다면, 종교 전쟁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

‘별 수 없지. 헬라 교단이 알아서 나가도록 부채질을 하는 수밖에.’

문수르가 머리를 긁적였다.

7.

이미 문수르의 작전에 의해 궁지에 몰린 헬라 교단. 그러나 바우먼 주교는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그는 쉽게 떠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문수르는 그런 바우먼 주교의 태도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곱게 나가줄 리가 만무하지.”

이쯤 되면 문수르도 나름 강경책을 쓰기로 했다.

그 강경책은 다름 아니라 헤인 경을 내세워 헬라 교단의 모든 교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다.

일단 영지 내의 모든 병자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고아원을 만들 때처럼, 아예 저택 하나를 개조해 병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헤인 경의 치료가 시작됐다.

파격적인 의술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헤인 경은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이 병자들을 고치는 방법을 영지민들에게 설명했다. 물론 그 방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들은 백 명 중 한 명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 한 명이 파문의 시작점이 되었다.

“헤인 경은 모든 병을 고칠 줄 아신다더군.”

“글쎄 언덕 아래에 사는 아우린 부부네 자식도 고쳤다잖아.”

그리고 그 파문이 헬라 교단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헬라 교단의 사제들도 어찌하지 못한 아우린 부부네 자식을?”

“헤인 경이 말씀하시는데, 헬라 교단의 치료법은 효과가 없다고 하더군.”

어느 순간부터 헬라 교단의 치료법이, 그들의 방식이 부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바우먼 주교가 문수르에게 곤욕을 치른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헬라 교단을 향한 영지민들의 믿음이 무너진 건 아니었다.

“예끼, 이 사람아. 그런 말을 하면 헬라 신께서 노하시네, 노하셔!”

“아무렴, 헤인 경은 사람이고 헬라 신은 말 그대로 신 아니신가? 비교대상이 아닐세.”

믿음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이었다면, 애초에 종교가 등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헬라 신전에 비싼 돈 들여서 치료를 받는 것보단 헤인 경을 찾는 게 났지 않은가?”

“그야 그렇지.”

그러나 헬라 교단의 아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분명했다.

============================ 작품 후기 ============================

벌써 수요일이네요.

평일의 반이 갔네요.

모두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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