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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맨-119화 (117/293)

119화

4.

바우먼 주교가 문수르를 찾아갔다. 성큼성큼, 그의 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병사들의 제지에도 그는 막무가내였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주교님, 이러시면 큰 문제가 됩니다.”

병사들은 바우먼 주교 앞을 막으면서도 곤란한 기색이 역력했다. 바우먼 주교가 그들의 어깨를 밀치면, 그들은 어설프게라도 밀려나는 연기를 해야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바우먼 주교는 영주나 기사에 버금가는 높으신 분이었으니까.

감히 앞길을 가로 막거나 혹은 그들을 포박하는 일 따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비키시오. 내 영주 대리를 꼭 만나야하겠소.”

바우먼 주교의 소란.

그 소란에 문수르가 오히려 바우먼 주교를 찾아왔다. 문수르가 일을 하는 영주의 집무실로 가는 길목에서 바우먼 주교와 문수르가 만났다. 문수르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바우먼 주교님 아니십니까?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문수르 경! 지금 웃음이 나오시오?”

“웃음이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이고, 미덕인데 웃는 게 최고 아닙니다.”

비웃음이다.

누구든 알 수 있다. 지금 문수르가 바우먼 주교를 향해 짓고 있는 웃음이 비웃음이란 사실을 말이다.

바우먼 주교의 앞을 막던 병사들이 주변으로 물러났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것이다.

바우먼 주교 역시 눈빛이 바뀌었다. 사람을 현혹하고, 사람을 농락하는 게 사제란 직업이다. 사람을 다루는 직업이다. 바우먼 주교가 이 분위기를 읽지 못할 리 만무했다.

“어찌하여 우리 교단에 내는 기부금에 세금을 먹이는 것이오? 신이 두렵지도 않소?”

“기부금에 대해서는 세금을 매긴 적이 없습니다.”

“교인들이 알려줬소! 헬라 교단에 기부를 하려면 더 많은 작물을 세금으로 바쳐야 한다고!”

“영주의 땅에서 소작을 하는 소작농에게 세금을 부여하는 건 왕이 영주에게 보장한 권리 아닙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신성한 신에게 세금을 매기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요, 배덕이오!”

문수르는 짧게 웃었다.

“하하.”

여러 가지 의미를 함포한 웃음이었다. 바우먼 주교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가만 생각하니 눈앞의 사내, 문수르란 자. 보통 사람이 아니다. 단순한 영주 대리인이 아니다. 평범한 기사가 아니다.

‘오러 마스터…….’

콩탄 왕국의 세 번째 오러 마스터!

혼자 몸으로 병사 수백 쯤은 가차없이 벨 수 있는 엄청난 무력의 소유자다.

그런 그가 내뿜는 기세, 헬라 교의 주교란 직함을 빼면 보잘 것 없는 바우먼 주교가 버틸 수 있을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꿀꺽!

바우먼 주교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문수르는 그런 바우먼 주교의 눈을 노려보며 말했다.

“제가 신께 무슨 죄를 지었고, 어떠한 배덕을 저질렀단 말입니까? 저는 헬라 신을 존경하고, 그분을 믿고 따르는 사제 분들을 존중합니다. 저는 단 한 번도 헬라 신께 세금을 달라 한 적이 없으며, 그분들을 믿고 따르는 사제 분들에게 세금을 내라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헬라 교를 위해 영지의 일부를 신께 헌납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땅에서 나는 모든 것은 오롯하게 헬라 교의 것입니다.”

“그, 그건…….”

머릿속에는 할 말이 가득 찼는데 그 말이 도무지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말에서 밀려서?

아니다.

기세에게 밀렸다. 문수르가 의도적으로 내뿜는 기세 앞에서 바우먼 주교가 힘을 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영지민들에게 영주가 세금을 매긴 것이 문제가 됩니까?”

궤변이다.

지금 문수르는 분명 헬라 교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다. 정면으로 싸움을 거는 건 아니지만 분명 싸움을 걸고 있다.

그러나 바우먼 주교는 그 사실을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꾸짖을 수가 없었다.

만약 그걸 꾸짖으면…….

꿀꺽!

바우먼 주교의 두 눈에 들어온 한 자루의 창, 문수르가 펜마냥 가볍게 쥐고 있는 저 창이 자신을 단숨에 고깃덩이로 만들 것 같았다.

“내가…… 내가 잠시 착각을 한 모양이오.”

착각!

바우먼 주교는 스스로 내뱉은 그 말이 너무 부끄러웠다.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결국 주먹을 앞세운 협박 앞에 자신의 신심(信心)이란 놈을 구긴 것 아닌가?

‘이게 이 자의 수준이군.’

문수르는 그런 바우먼 주교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고작 이 정도였어.’

신을 믿는 이들 중에서는 그 믿음이 지나쳐, 신을 위해서 제 목숨을 버리는 자들도 있다.

바우먼 주교가 정말 신심이 깊은 자였다면 여기서 거품을 물거나 혹은 문수르에게 목숨을 걸고 대들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자기 목숨이 아까우니까.

‘신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놈이다.’

결국 그게 바우먼 주교의 현실이었다. 정말 신에 대한 믿음이 깊어 신의 믿음을 전파하는 자가 아니라, 신이란 아이템을 가지고 장사를 하기 위해 믿음을 전파하는 자다.

사이비하고 다를 게 없다.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다.

‘이미 전쟁은 각오한 일.’

“오해가 풀렸다면 다행입니다. 부디 헬라 교와 원만한 관계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문수르가 기세를 풀었다.

허억! 바우먼 주교의 입에서 막혔던 숨이 터져나오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정신을 차린 바우먼 주교가 두 눈을 부릅뜨며 경고했다.

“그 말이 진심이길 헬라 신께 기도하겠소.”

“아무렴 신 앞에서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만약 제가 잘못된 것이라면 위대한 헬라 신께서 지금 당장이라도 제 머리 위에 벼락을 내리셨겠지요. 그게 증거 아닙니까? 제가 멀쩡하다는 것, 헬라 신을 향한 제 존중은 그런 것입니다.”

바우먼 주교의 부릅 뜬 눈이 더 커졌다.

아마 지금 문수르의 말은 이제까지 했던 그 어떤 말보다 충격적이고 치욕적일 것이다.

헬라 신을 부정해도 헬라 신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딴 게 무슨 전지전능하단 소리인가?

바우먼 주교는 문수르의 말을 그렇게 이해했다. 신을 부정하고 그 신을 믿는 사제 앞에서 그 신을 농락한 것이다.

이 얼마나 굴욕적인 일인가?

“이…… 이……!”

분노하는 바우먼 주교. 그러나 그뿐이다. 문수르가 겁난 바우먼 주교는 생각을 행동으로 표현하진 못했다.

문수르가 병사를 보았다.

“바우먼 주교님을 신전까지 모셔다드려라.”

“예!”

병사들이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바우먼 주교를 부축하려고 했다. 그 순간 바우먼 주교가 병사들이 손을 뿌리쳤다.

“혼자 갈 수 있소!”

바우먼 주교가 떠난 직후, 문수르는 곧바로 다음 행동을 했다.

“이제르트 부속령이 이제 안정된 듯 한데, 그 기념으로 크게 축제를 열도록 하지요. 참고로 이제르트 자작님께서도 조만간 이곳을 방문하실 겁니다.”

조만간 이제르트 자작이 이제르트 부속령을 방문한다. 이제르트 부속령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시키기 위함이다.

그것을 기념에 문수르는 파티를 개최할 생각이었다.

“성대하진 않지만, 풍족한 축제가 될 겁니다. 성과 마을의 주민들에게 알리세요. 조만간 이제르트 자작님의 이름으로 축제음식이 나갈 거란 사실을요.”

축제를 통해 영지민들에게 식량을 나눠 줄 것이다.

지금은 3월이 끝나가는 시기. 겨울의 막바지다. 가장 배가 고플 때다. 이제까지 문수르가 꾸준하게 이제르트 부속령의 영지민들에게 식량을 나눠줬지만, 아사(餓死)를 면할 정도다.

그런 그들에게 먹을 것은 그 무엇보다 대단한 선물이 될 것이다.

‘이 정도면 이제르트 부속령 내에서 바우먼 주교가 무슨 수작을 부리든 무의미할 것이다.’

바우먼 주교를 견제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이후 바우먼 주교가 아닌 헬라 교단이 움직일 때겠지.’

물론 앞으로 문제는 많다. 바우먼 주교가 이번 일을 겪고 가만히 있을 만무하다. 어떻게든 수작을 부릴 것이다. 하지만 그게 먹히지는 않겠지. 그렇게 자기 힘으로 어떠한 수작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면 그 다음에는 헬라 교의 힘을 빌리려 할 것이다.

빅토리안 공작가와 헬라 교단은 일종의 동맹관계다.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관계. 헬라 교단 입장에서 이제르트 자작령이든, 부속령이든 공격하는 건 문제될 게 없다.

여기에 이제르트 자작령과 다르게 부속령의 사람들은 종교를 믿어왔다. 그들은 신을 섬기는 걸 당연하고, 자랑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그런 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무작정 뺏는 건 다른 식의 불만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기부금에 대해서 세금을 걷는 것만으로도 불만이 나온 상황이다.

그런 그들을 위해서 다른 종교를 마련해줘야 한다.

‘빠른 시일 내에 푸흐르 교단과 접촉해야겠어.’

이미 푸흐르 교단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들의 교리가 문수르의 이상과 잘 맞았으니까.

단지 콩탄 왕국 내에서 푸흐르 교단의 세가 크지 못한 탓에 이러다할 접점이 없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푸흐르 교단을 끌고 와야지.’

푸흐르 교단 입장에서는 그래도 콩탄 왕국에서 세를 넓히고 싶을 것이다. 어느 영주가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다면 마다하진 않을 것이다.

“아, 그렇지.”

그 순간 문수르의 머릿속에 한 사내가 떠올랐다.

“헤인 경을 데려오는 게 좋겠군.”

헬라 교가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헬라 교가 질병 치료에 앞장 선다는 부분 때문이었다.

평민들이 힐링 마법을 쓸 줄 아는 마법사를 통해 치료를 받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때문에 병에 걸리면 헬라 교부터 찾아가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다른 누군가가 병을 고쳐준다면, 헬라 교의 발언권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헤인 경이 몇 달 동안만 이제르트 부속령에서 힘써 준다면 헬라 교의 세력을 무너뜨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5.

불스 백작의 앞에는 검은 복면을 쓴 인물이 기사들에게 제압된 채 쓰러져 있었다.

“누가 사주했지?”

불스 백작은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은 없었다. 사실 복면인은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자결을 막기 위해 기사들이 이미 이빨을 다 부러뜨리고 지금도 입을 다물지 못하도록 강제로 입을 열어둔 상황이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말을 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신기할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스 백작은 다시 질문했다.

“누가 내 암살을 사주했지?”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피식, 불스 백작은 짧게 웃으며 제 손으로 제 목을 가볍게 긋는 제스쳐를 취했다.

츠릉!

기사가 검을 뽑았다.

복면인이 갑작스런 기사의 행동에 잠시 당황하는 사이.

서걱!

기사의 검이 단칼에 복면인의 목을 잘랐다.

푸홧!

목이 잘려나가며, 그 절단면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피는 복면인을 제압하고 있던 기사들의 온몸에 튀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잘려나간 목구멍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심장은 계속해서 피를 내뿜었고, 꾸역꾸역 피가 나오며 웅덩이를 만들었다.

불스 백작 앞에 작은 피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그 웅덩이 사이로 복면인의 머리가 굴러다녔다. 불스 백작의 시선이 머리 밖에 남지 않은 복면인의 시선과 마주쳤다.

시체의 눈을 바라보는 불스 백작의 눈빛은 야수의 그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 전쟁이지.”

몇 시간 전, 불스 백작의 침소로 두 명의 암살자가 들어왔다. 암살자의 등장에 대비를 해두었기에 큰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불스 백작은 솔직히 암살자의 등장에 놀랐다.

암살자를 사주한 인물이야 뻔했다. 빅토리안 공작가와 관련된 인물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정도 힘이 있는 자들이 정공법이 아닌 암살을 시도하다니?

둘 중 하나였다.

불스 백작을 아주 우습게 봤거나 그게 아니면 불스 백작을 굉장히 어려운 상대로 봤거나.

어느 것이 됐건, 불스 백작에게는 반갑지 못한 일이다.

“아무래도 빅토리안 공작가가 날 우습게 볼 것 같진 않은데…….”

불길한 느낌이 생긴다.

“이제르트 자작가의 일로 경계심이 는 모양이군.”

특히 최근 이제르트 자작가의 대승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보는 타입의 기가스가 등장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지금 이 상황에서 불스 백작은 빅토리안 공작 파벌이 아닌 문수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혹시 모르니, 편지라도 한 장 써야겠군.”

============================ 작품 후기 ============================

눈이 많이 올 줄 알았는데 수도권은 비만 엄청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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