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32화. 헬라 교.>
1.
콘돌은 생각보다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사실 문수르는 콘돌을 예쁘장한 타입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선입견이긴 하지만, 귀족가의 시동으로 지내는 아이들은 외모가 일정 수준 이상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이거…….’
물론 보통 외모였다면 굳이 험악하다, 아니다 이런 말을 꺼내진 않았을 것이다.
‘나도 겁나는데?’
- 저도 겁납니다.
문제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죽을 정도, 심지어 오러 마스터인 문수르와 인공지능인 로이드마저 겁을 먹을 정도다. 각진 얼굴, 번뜩이는 눈동자, 덥수룩한 수염!
“제가 콘돌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목소리도 외모에 딸 걸맞은 매우 걸걸한 목소리였다.
“문수르라고 합니다.”
문수르는 인사를 받으면서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향한 미소였다.
‘나도 아직 멀었군. 외모로 상대를 판단하다니.’
외모가 세상에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외모로 잠시나마 평가한 것에 문수르는 속으로 사과를 했다.
어쨌거나 이후 문수르와 콘돌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이야기의 시작은 고아원에 대한 문제였다. 문수르는 콘돌이 놀랄 정도로 쉽게쉽게 이야기를 진행했다.
“고아원을 지어드리고, 이제르트 자작령에서 재정적으로 지원도 해드리겠습니다.”
콘돌이 기쁘다 못해 너무 놀라 뭐라고 말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문수르는 조건을 걸었다.
“대신에 고아원에서 고아뿐만이 아니라, 영지의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게 될 겁니다.”
“교육? 무슨 교육을 말씀하는지…….”
“일단은 당장 가장 기본적인 교육, 글을 읽고 쓰는 교육부터 시작해야겠지요. 그 교육을 콘돌, 당신이 총괄해줬으면 합니다.”
콘돌은 머리가 아주 좋은 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영리함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없는 재정으로 단체를 이끄는 노하우도 있었다. 이제까지 그 고아들을 데리고 버텨온 게 그 증거다. 결정적으로 콘돌을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 때문에 글을 읽고, 쓸 줄 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제, 제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문수르의 제안에 콘돌은 당장 사양부터 했다. 그는 자신이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콘돌은 문수르의 말 자체를 이해 못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평민을 위한 교육이라니?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다. 교육이란 건 높으신 분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
문수르는 그런 콘돌에게 가볍게 설명을 해줬다. 사실 콘돌이 굳이 문수르가 추구하는 교육의 중요성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단지 고아원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일을 한다는 개념, 그런 개념으로 접근만 해도 문수르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문수르가 몇 번 더 말하자, 콘돌은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뱉지 못했다. 결국 뭐가 되었건 문수르는 높으신 분이었으니까.
2.
고아원 겸 학교, 문수르는 그것에 교육원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콘돌은 교육원장이 된 셈이다.
딱히 건물을 새롭게 지을 필요도 없었다. 보우런 남작이 영지를 떠나면서 많은 사람이 같이 영지를 떠났다. 덕분에 이제르트 부속령에는 사람 없는 집이 넘쳐났다. 개중에 보우런 남작이 쓰던 큼지막한 저택을 교육원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이 부분이 사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이었다. 보우런 남작이 저택은 내성에 위치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교육원이 등장하면서 영지민들이 내성으로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내성은 영주의 가족들 그리고 영주를 모시는 기사들과 그 가족들, 마지막으로 성에서 일을 하는 하인, 하녀들과 병사들 정도만 거주가 가능한 곳으로 일반 영지민들의 접근이 굉장히 힘든 곳이었다.
그런 곳을 개방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교육원이란 곳이 단순히 고아들을 모으는 더러운 장소가 아니라, 굉장히 중요한 장소라는 인식이 박혔다. 문수르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뭐, 아무렴 어때.’
문수르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3.
헬라 교.
콩탄 왕국 전역에 퍼져있는 종교다. 최근 들어서는 교세가 더욱더 커지고 있는 중이었다.
특히 콩탄 왕국 일부 지역에서 전염병이 퍼졌는데, 그 과정에서 헬라 교단이 많은 도움을 주면서 헬라 교단의 명성이 커졌다. 헬라 교단이 그 명성을 가만 놔둘 리 만무했다.
그런 헬라 교단의 신전이 이제르트 부속령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문수르라는 자, 아직까지 신전에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습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이제르트 부속령 내에 위치한 헬라 교단의 신전을 책임지는 바우먼 주교는 신전 내의 모든 사제들을 모아두고 일장연설을 펼쳤다.
“이것은 우리들에 대한 모욕이며, 헬라 신에 대한 모욕입니다. 필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바우먼 주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
바우먼 주교는 이제까지 다달이 보우런 남작으로부터 뒷돈을 받았다. 뒷돈을 받는 이유는 간단했다. 영지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헬라 교의 신관을 포섭해서 나쁠 게 없으니까.
보우런 남작이 제 아무리 영지민들의 고혈을 뜯어내도, 바우먼 주교가 영지민들을 모아 보우런 남작을 가볍게 찬양해주면, 마치 선동에 넘어가듯 영지민도 보우런 남작을 찬양하게 된다.
비단 보우런 남작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정치와 종교는 때래야 땔 수 없는 관계 아니었던가?
종교에서 이용해 먹을 게 없었다면, 뭐가 예쁘다고 신관들이 자기 영지에서 설치는 걸 놔둔단 말인가?
그러나 문수르가 이제르트 부속령의 영주 대리로 온 이후 그는 단 한 번도 헬라 교의 신선을 방문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뒷돈을 찔러주는 것도 아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런 문수르의 행동이 괘씸해서 수작을 부렸다.
영지민들을 데려다가 보우런 남작에 있을 때가 좋았다며, 슬그머니 선동을 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문수르 경이란 사람 좋으신 분 아닌가?”
“오자마자 식량부터 주지 않았는가?”
“그뿐인가? 새로운 농사법도 알려주셨지.”
“딱히 우리 같은 평민들을 해코지하시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보우런 남작님이 영주님으로 계실 때보다 살기 좋아진 건 사실인데 말이야.”
문수르가 이제까지 해온 선행. 그 선행의 수혜자가 된 이제르트 부속령의 영지민들 입장에서는 문수르는 매우매우 훌륭한 영주 대리였다. 아무리 헬라 교의 신관이 뭐라고 해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바우먼 주교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다. 그가 문수르를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은 영지민들을 선동하는 것이 전부나 다름없는데 그게 먹히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쯤 되자 바우먼 주교 입장에서는 독이 바짝 오를 수밖에 없다. 결국 바우먼 주교는 자신이 아닌, 교단의 이름을 내세우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헬라 교의 사제들을 모아 일장연설을 하게 된 배경이었다.
이제르트 부속령 내의 헬라 교가 움직인다는 이야기가 문수르의 귀에 들어왔다.
바우먼 주교가 아예 사람들을 모아두고 일장연설을 펼쳤는데 문수르가 모른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기어코 터질 게 터졌군.’
문수르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제르트 자작령 내에서야 아예 신전이 없으니, 종교와 마찰이 일어날 이유가 없었지만 이제르트 부속령은 아니다. 헬라 교의 신전을 보는 순간 이번 같은 일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헬라 교와 관계되어 이러다할 행동을 하지 않은 건, 사실상 답이 없기 때문이다.
‘헬라 교와는 척을 질 수밖에 없다.’
헬라 교의 교리 그리고 헬라 교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 등, 그 모든 것은 문수르가 추구하는 가치와 이상과 반대되고 있다. 헬라 교와 문수르의 공존은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바우먼 주교를 잠시 동안 달래면 되지 않을까, 그리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당장 상황은 모면할 수 있다. 바우먼 주교에게 뒷돈을 찔러주고, 헬라 교의 신전에 방문해서 기부금 좀 내주고, 마치 어스 월드의 정치인들마냥 영지민들 앞에서 바우먼 주교와 문수르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얼마 동안은 문수르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큰 그림을 생각하면 그건 아니지.”
그러나 오히려 나중의 이익을 고려하면 그런 행동은 문수르에게 최악이나 다름없다.
종교는 기생충보다 지독하다. 한 번 사람 몸속에 들어오면 웬만한 수단과 방법으로는 어찌하지 못하다. 암세포가 차라리 나을 정도다. 암도 치료되는 세상임에도 종교에 빠진 인간을 치료하는 방법은 없으니까.
어설프게 헬라 교와 가까이 했다가는 오히려 영지민들의 인식 속에 헬라 교의 존재가 더 깊이 박힐 것이다.
그 좋은 영주 대리인께서 가까이 하는 종교인데 당연히 좋은 종교 아닌가?
영주 대리의 눈에 들기 위해서라도 헬라 교에 봉사해야겠다.
뭐,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겠지.
그러면 나중에 가서 헬라 교의 가치를 영지민들로부터 빼내려고 해도 빼낼 수가 없다.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
지금 이제르트 부속령 내의 영지민들 사이에서 문수르에 대한 호감은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
더군다나 기사들처럼 자기 의견을 낼 수 있는 준귀족의 인물들도 없다. 사병이 전부이지만, 그들은 모두 문수르의 명령을 따르는 자들이다. 지금 문수르는 하고자 하면 뭐든 할 수 있다.
‘싸우자.’
문수르는 결단을 내렸다.
바우먼 주교와 싸울 것이다. 물론 바우먼 주교는 나중에 헬라 교 전체를 끌고 올 것이다.
그러면 제대로 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해야 하는 전쟁이다. 차라리 지금 같이 혼란 때가 일을 처리하기 좋을 것이다.
‘헬라 교는 콩탄 왕국에서 주류다. 어차피 빅토리안 공작 파벌과 적대관계가 된 이제르트 자작가가 헬라 교의 덕을 보기란 불가능한 일이지.’
빅토리안 공작가와 이제르트 자작가.
만약 헬라 교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빅토리안 공작가를 택할 것이다.
지금 헬라 교를 도운다고 해도, 큰 판을 봤을 때 정치적 이익은 없다는 의미다. 오히려 뒤통수를 맞는 게 될 것이다.
문수르가 바우먼 주교를 찾아갔다.
바우먼 주교는 문수르가 신전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내 협박이 통했군.’
자신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문수르가 온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문수르는 바우먼 주교와의 대면 자리에서 다짜고짜 말했다.
“이렇게 바우먼 주교님과의 자리를 마련하게 된 건 다름이 아니라 세금 때문입니다.”
“세금?”
“헬라 교가 이제르트 부속령에 머물면서 이제까지 세금을 내지 않았더군요.”
그 순간 바우먼 주교가 기겁했다.
아니, 지금 세금이라니?
신성하기 그지없는 종교다. 그런 종교가 우매한 인간들의 세금제도에 간섭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신성모독이다.
“지금 위대한 신께 세금을 내라 말씀하시는 것이오?”
보통 일이 아니다.
이것은 케르빈 월드 모든 종교에 대한 모욕이며, 전쟁이다.
‘웃기네.’
문수르는 그런 바우먼 주교의 태도에 속으로는 비웃음을 머금었다. 신은 있지만 적어도 바우먼 주교가 말하는 신은 없을 것이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설마 바우먼 주교님이나, 헬라 교단에게 세금을 내라 하겠습니까?”
헬라 교단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건 사실이고 앞으로 적이 될 것도 사실이지만 종교인데 대한 세금문제는 민감하다 못해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다. 심지어 문수르가 본래 사는 한국에서도 종교인들 세금 문제 가지고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심지어 종교인들은 아직까지도 세금을 안 내고 있다.
케르빈 월드에서는 종교인에게 세금이란 금기나 마찬가지다. 문수르도 거기까지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
“제가 말씀드리는 건 다름 아니라 헬라 교를 믿는 영지민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시다시피 영지민들 중 일부가 헬라 교에 자신들이 수확한 작물을 바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오.”
“헬라 교가 소유한 토지에서 영지민들이 일품을 파는 것이나, 거기서 수확된 작물에 대해서는 세금은 일절 부과되지 않습니다만 이제르트 부속령의 땅에서 수확한 작물에 대해서는 세금이 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우먼 주교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부정은 못했다. 영주가 자기 땅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 역시 영주가 가지는 매우 중요한 권리였으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세금 문제는 그 부분입니다. 물론 영지민들이 헬라 신을 섬기는 것을 막을 생각은 없지만 영주의 땅에서 세금을 취하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입니다.”
바우먼 주교는 뭐라 대답하지 못했다.
문수르와 같이 말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기부금에 대해서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의미다. 웃긴 이야기다. 신전에 기부를 하면 그 즉시 신전, 즉 교단의 재산이 된다. 세금을 부여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여한다면?
이상한 말이다.
신전 앞에 사람을 두고 실시간으로 기부하는 영지민들로부터 세금을 받겠다는 건가?
“문수르 경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가 안 되오.”
“간단한 통보입니다. 사실 헬라 교에서는 특별히 고민할 문제가 아닙니다. 세금을 징수하는 건 영주의 권리이자 의무. 헬라 교는 세금 문제에 대해서 고민할 이유가 없습니다. 신성한 신께 세금을 요구한다는 건 가당찮은 일이잖습니까?”
“그렇지.”
“단지 영주의 영지 내에서 수확한 작물에는 세금이 붙어야 하니, 신전에 기부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해도 세금을 추징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어디까지나 영지민들의 이야기지요.”
“흠.”
바우먼 주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문제될 게 없는 것 같다.
“아, 그리고 이건 그동안 일이 바빠 찾아뵙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일종의 사례금입니다.”
순간 문수르가 품속에서 금화가 담긴 자루를 거냈다. 액수는 많지 않았다. 10골드 정도.
하지만 돈이라는 게 일단 많든 적든 주면 고마운 거다.
바우먼 주교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게 중요한 거지.’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사담(私談)이다. 핵심은 지금 문수르가 꺼낸 이 돈이다.
“하하, 뭘 이런 걸 다.”
“그럼 오늘 이야기는 잘 마친 것으로 생각하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바우먼 주교는 웃음으로 문수르를 배웅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바우먼 주교가 다시금 문수르를 찾아갔을 때 그의 얼굴에는 티끌의 웃음기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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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이네요.
눈이 많이 온다는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