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4.
문수르의 창은 위력적이다. 창이 아니라 드릴 같다. 강력한 회전을 동반하면서 날아오는 창은 위력도 위력이지만, 쳐내기도 쉽지 않다. 닿는 모든 공격을 튕겨내 버리니까.
‘큭!’
아이어는 이를 물었다.
빗발치는 문수르의 창속에서 그는 어떻게든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 문수르는 조금 여유를 가지게 됐다.
기가스를 상대했을 때와 달리, 지금 아이어와 문수르 사이에는 엄청난 벽이 존재했다. 문수르가 작정하고 방심을 하지 않는 이상 결코 허물어지지 않을 벽이었다.
때문에 문수르는 의문이었다.
‘이런 실력자가 내 아이언히트를 저 꼴로 만들었다고?’
아이어란 자는 참으로 특이한 자였다.
‘대체 정체가 뭐야?’
그의 공격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방어도 그다지 대단하지 못하다. 그러나 카운터 공격, 그것 하나만큼은 문수르의 뒷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문수르의 무인 본능이 저절로 반응할 정도로 말이다.
지금 문수르가 강력한 한방 기술을 쓰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기술이 강력할수록 카운터를 맞았을 때의 충격이 더 크다. 분명 문수르가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런 공포감을 가질 정도로 아이어의 카운터 공격은 엄청났다.
‘이상한 자다.’
이상하고, 아니고 그건 물론 지금 당장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눈앞의 인물이 적장이란 사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아이어는 이를 물었다.
‘아쉽다.’
목숨이 걸린 이 절체절명의 순간, 그가 느끼는 감정은 분함이 아니라 아쉬움이었다.
‘내 일생에서 과연 이런 실력자와 겨룰 수 있는 있긴 했을까?’
보우런 남작가의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어.
보통 사생아는 사생아란 신분이 밝혀지는 순간 살해당한다. 당연한 일이다. 사생아도 어쨌거나 이런저런 명분으로 치장하면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자다. 폭탄 같은 존재다. 언제 어느 순간 사생아가 힘을 키워 가문의 주인 자리를 강탈할 지도 모른다.
보우런 남작에게는 정실부인에게서 낳은 아들이 둘이나 있었다. 사생아 따위를 용납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죽었어야 하는 목숨, 그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건 아이어가 가지고 있던 무재였다.
보우런 남작은 그 재능이 아까웠다. 그렇다고 보우런 남작이 아이어의 무재를 키우기 위해 아낌없이 베풀었던 건 아니었다. 아이어가 얻은 기회는 대련을 할 수 있는 기회, 그뿐이었다.
기본기를 제대로 배운 적은 없다.
말이 대련이지, 기본기도 없는 아이가 무엇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피하는데 급급했다.
반격이 뭔지 제대로 몰랐다. 단지 틈이 보이면 살기 위해 그 틈을 파고들었을 뿐이다.
그것이 지금의 아이어를 만들었다.
보우런 남작은 이를 물었다.
‘빌어먹을.’
그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지금 전장은 결코 보우런 남작가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호의? 그런 표현을 쓰는 게 우스울 따름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명명백백, 보우런 남작가의 대패였다.
‘아이어, 이 바보 같은 새끼.’
특히 가장 믿었던 아이어의 패배는 보우런 남작의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녀석이 질 줄은 감히 상상도 못했다.
‘내가 놈에게 얼마나 많이 베풀어주었는데!’
때문에 보우런 남작은 아이어가 배은망덕했다. 사생아로 태어난 놈은 자식 취급은커녕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할 팔자였다. 하지만 가잔 무재가 제법 있어 데려와 키웠는데 이런 식으로 자신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다니? 그것도 이렇게 가장 중요한 순간에!
‘차라리 받아들이질 말았어야 했다.’
보우런 남작에게 아이어는 소모품이었다. 때문에 보우런 남작은 아이어에게 제대로 된 검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가문의 비전 검법? 후계자도 아닐 놈에게 그런 걸 가르쳐주는 귀족은 세상 천지에 어디에도 없다.
아이어는 그저 기회를 받았을 뿐이다. 보우런 남작가의 기사들과 대련할 수 있는 기회, 그것만으로도 녀석의 처지를 생각했을 때는 감히 꿈도 못 꿀 기회였다.
머릿속은 불처럼 타올랐고, 가슴속은 이미 잿더미가 됐다.
그러나 보우런 남작은 이 상황에서 이 모든 걸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걸 가능케 하는 건 자존심 때문이었다.
뼛속까지 귀족인 보우런 남작은 직감했다. 지금 이 패배는 어떤 수를 써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자존심 만큼은 지킬 필요가 있었다.
이제르트 자작은 전장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그런 눈이 없었다면 몰아치는 테블스 산의 몬스터 무리들 앞에서 이제르트 자작령을 이끌 수 있었을 리가 만무하다.
이제르트 자작은 전운이 기울었음을 느꼈을 때 곧바로 부하를 시켜 전군에 명령을 전달했다.
“자리를 지켜라. 추격은 없다. 도망치는 적을 쫓지 말고 부상당한 아군을 돌보아라.”
도망치는 적을 추격하는 건 문제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후환을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해 추격전을 통해 상대의 병력을 줄이는 건 훌륭한 병법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르트 자작은 그렇게까지 해서 인명을 해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마음이 착해서?
아니다.
그런 이유 때문이 결코 아니었다.
‘이번 전쟁이 끝이 아니다.’
이제르트 자작은 알고 있다. 보우런 남작은 이제부터 만나게 될 무수히 많은 적들 중 한 명에 불과하다는 걸. 계속해서 전쟁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런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많은 걸 해치우는 게 아니다.
‘최대한 전력을 아껴야 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
이제르트 자작은 그 말이 진리임을 알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버텨야 한다.
- 전투가 끝났습니다.
로이드가 전투상황을 알려줬다. 아이어를 상대로 교전 중이던 문수르의 눈이 가늘어졌다.
‘벌써?’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나 됐다고?
적어도 하루 종일 전투가 진행될 것 같은데, 벌써 전쟁이 끝났단 말인가?
- 이제르트 자작가의 완승입니다.
‘기가스는?’
- 보우런 남작가의 기가스 2대는 이미 행동불능상태입니다. 기가스 파일럿을 생포한 상황입니다.
기가스 파일럿이 생포됐으면 이야기는 끝난 거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끝났어.’
완승이란 표현이 부족할 정도다. 대승이란 표현이 어울리겠지. 문수르조차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다.
때문에 문수르는 조금 여유를 가졌다. 승기가 이 정도로 확실하게 기울어진 이상, 지금 당장 그가 전장에 돌아갈 필요는 없다.
‘그럼 일단…….’
지금은 아이어에만 집중하면 된다.
문수르는 공격을 멈추고 아이어를 보았다. 아이어의 온몸에는 문수르의 창이 스치고 간 상처들이 가득했다. 온몸에서 땀 대신 핏물이 흘러나오는 것 같은 몰골이다. 팔다리가 잘려나가지 않은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대단하군.’
문수르가 아이어의 카운터 공격에 놀라 적극적인 공격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아이어의 능력은 가소롭지 않았다. 아니, 능력이라기보다는 재능이라고 해야 할까?
‘운이 없었군.’
제대로 된 스승 밑에서 제대로 배웠다면 뛰어난 기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운이 없어서 그렇게 되지 못했다.
‘이 세계에서는 운이 아닌 현실이지.’
그러나 이것이 케르빈 월드의 현실이었다. 핏줄, 배경, 출생 그것들로 인해 기회를 잃는 자가 너무 많다.
아이어의 현실.
굳이 문수르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승기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무리하게 사람을 해칠 필요는 없겠지.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문수르는 아이어의 정확한 정체를 모른다. 보우런 남작은 이제까지 아이어를 숨겨왔다. 이제까지 그가 3대나 되는 기가스를 보유했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았으니, 아이어의 존재에 대해 아는 자가 없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사실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보우런 남작 입장에서 전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2배 급 기가스에 아무 파일럿이나 태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믿음이 가야 한다. 믿음이 안 간다면 확실한 목줄을 쥐고 있던가.
“아이어.”
“성은 없습니까?”
“아이어 보우런.”
아이어는 순순히 대답했다.
문수르는 보우런이란 성을 듣는 순간 상황을 이해했다.
‘버린 자식이군.’
귀족가의 자식이면 다른 건 몰라도 기본기는 확실하다. 제대로 배울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아이어는 의지는 분명 있는 자다. 하지만 그는 기본기가 없다. 배울 기회가 없다는 의미다.
귀족가의 자제로 태어났는데 이런 모순을 일어난다는 건, 귀족가에서 버린 자식이란 의미다. 특별한 일이 아니다. 케르빈 월드에서는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상이다.
“더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한 것 같은데, 계속 하시겠습니까?”
그 순간 문수르의 머릿속에 어떠한 그림이 그려졌다. 아이어는 문수르를 보았다.
짧게 고민한 아이어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항복을 선언할 권리 따윈 아이어에게 없었다. 죽더라도 계속해서 싸우는 게 그의 의무였다.
그때였다.
문수르가 아이어를 향해 창을 겨눈 채로 슬그머니 뒤로 걸음을 무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살짝 당황하는 아이어.
그런 그의 의문을 풀어주려는 듯, 문수르가 상황을 설명했다.
“보우런 남작이 항복을 했습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문수르의 그 물음에 아이어는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상대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것일 수도 있다. 문수르가 거짓말을 할 것 같진 않았지만 사람 속은 모르는 법 아닌가?
아이어는 계속해서 검으로 문수르를 겨누었다. 그리고 문수르가 뒤로 이동한 걸음만큼 자신이 앞으로 전진 했다. 문수르를 쉽게 보내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같이 죽는다.’
여차하면 같이 죽을 것이다.
아이어는 그 부분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문수르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면, 최소한 문수르의 팔다리 하나쯤은 가져갈 자신이 말이다.
아이어가 틈을 노렸다.
그러나 아이어의 장기는 그것 하나뿐이다. 상대가 공격을 하는 순간, 그 틈을 보고 반격하는 것뿐!
모를 때는 당하겠지만 이미 아이어의 그 유일무이한 장기이자 특기를 알고 있는 문수르가 무리를 할 필요가 있을까?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
문수르는 이번 전쟁이 끝이 아님을 알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은 아이어를 살려야 한다.
5.
시체가 너부러진 전장.
제 아무리 짧다고 해도 전쟁은 전쟁이다. 곱게 죽은 이들은 없다. 시체는 모두 인간에게 처참하게 당한 몰골이다. 사지가 잘려나가고, 내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오고, 머리가 깨져 뇌수가 튀어나오고…… 핏물이 강물마냥 흘러 다닌다.
참혹한 광경이다.
“패배를 인정하오.”
그 참혹한 광경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보우런 남작은 패자답지 않았다.
보우런 남작은 패배로 영지를 잃는다. 매우 큰 손해고, 피해다. 하지만 달리 보면 그뿐이다.
“영지에 대한 모든 권리를 양도하겠소. 한 수레의 재산만 가진 채 영지를 떠나겠소.”
목숨을 걸고 싸우는 병사들과 다르게 영주는 그래도 먹고살 건 다 챙기고 목숨마저 부지한 채 떠날 수 있다.
더군다나 보우런 남작의 뒤에는 빅토리안 공작이 있다. 그는 충분히 재기를 기대할 만한 자였다.
굳이 지금 상황에 일희일비 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보우런 남작이 이렇게 나오는데 이제르트 자작이 뭐라고 할 말은 없었다. 이제르트 자작은 분명 승자였고, 대가로 보우런 남작령을 모든 권리를 소유하게 되었으니까. 영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돈이 된다. 이번 전쟁으로 얻은 소득이 적지 않다.
‘찝찝하군.’
하지만 느낌이란 게 있다.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느낌. 승리를 하지만 개운하지 못한 느낌.
‘분명 대승인데.’
이루 말할 수 없는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이런 찝찝함이 남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보우런 남작의 권리를 인정하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제르트 자작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렇게 상황이 종료됐다. 이제르트 자작가와 보우런 남작가의 영지전은 끝난 것이다. 이것드로 두 가문의 관계는 무(無)로 돌아간 것이다.
“아이어 보우런.”
그 순간 이제르트 자작의 뒤에 서있던 문수르가 보우런 남작의 뒤에 서있던 아이어 보우런의 이름을 불렀다.
좌중의 시선이 문수르를 향했다.
이 순간 문수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대를 이제르트 자작가의 기사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승낙하시겠습니까?”
문수르.
그가 승부수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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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작가보다 똑똑한 독자님들 때문에 마음이 덜컹덜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