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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맨-113화 (111/293)

113화

3.

전장이 이제르트 자작가 쪽에게 유리하게 흘러갔을 때, 보우런 남작은 당황하지 않았다.

“흥. 어디서 조잡한 기가스를 지원 받은 모양이군.”

기가스가 3대나 나왔을 때는 놀랐다. 하지만 놀람은 잠시였다. 모습을 보인 기가스는 보통 기가스보다 그 키가 1미터나 작았다. 체격도 전체적으로 작았다. 보우런 남작 입장에서는 기가스 취급도 받지 못할 반쪽짜리 기가스였다.

무엇보다 보우런 남작가 진영에는 아직 전장에 드러나지 않은 진짜 병기가 있었다.

“깃발을 흔들어라.”

보우런 남작이 침착하게 전황을 지휘했다. 병사 한 명이 거대한 깃발을 휘둘렀다.

그러자 멀찌감치 떨어진 장소에서 누군가가 화답하듯 깃발을 펄럭이기 시작했다.

쿠웅!

동시에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대기 중이던 기가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숲속에 숨은 기가스의 온몸에는 나뭇가지들이 가득했다. 굉장히 먼 거리에 있던 탓에 그 동체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움직이는 순간, 기가스의 존재를 확인하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2배 급 기가스에 탑승한 기가스 파일럿 아이어 보우런은 오러를 쥐어짜냈다. 2배 급 기가스는 그 거대함만큼이나, 보통 힘으로는 결코 다룰 수가 없었다. 오러 나이트라고 해도 있는 오러를 최대치까지 쥐어 짜내야지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이다.

고작 기본적인 움직임, 그것만으로도 이미 아이어 보우런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러나 아이어는 그 땀방울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기필코 승리한다.’

승리!

그 두 글자를 위해선 아이어는 자신의 목숨도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서 이제까지 살아남았다. 남작가의 사생아로 태어나 버림받지 않은 채 보우런 남작의 곁에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러 나이트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단 사실, 단지 그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보우런 남작이 오러 나이트를 필요로 하는 건 전장에서의 승리를 원했기 때문이다.

만약 승리하지 못한다면 보우런 남작에게 있어 아이어는 아무런 가치 없는 피붙이 불과할 것이다.

“오케이.”

2배 급 기가스가 움직였을 때, 문수르도 반응했다. 제 아무리 숨기고자 했어도, GPS시스템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아예 건물 안에다 숨기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후우!”

기가스 안에 탑승한 문수르가 숨을 골랐다.

문수르는 손가락을 움직여봤다. 손가락에 연결된 와이어들이 문수르의 손가락에 맞추어 같이 움직였다. 움직일 때마다 와이어는 당장이라도 문수르의 손가락을 뽑을 기세였다. 문수르의 팔 근육에 힘줄이 돋아났다. 제 아무리 문수르라도 오러의 도움 없이는 기가스를 움직일 수 없다.

- 전투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한편 로이드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이미 멀티 글라스를 착용한 문수르다. 문수르의 시선은 보통 기가스 파일럿의 좁은 시아와는 전혀 비교가 불가능했다. 180도가 보이는 게 아니다. 문수는 마음만 먹으면 360도 전체를 볼 수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멀티 글라스 위로는 문수르가 이동해야 하는 모든 이동경로와 주변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출력되고 있었다.

‘게임하는 기분이군.’

마치 거대한 게임기 속에 들어가 슈팅게임을 하는 것 같다.

- 게임이 아닙니다.

“알고 있어.”

- 동전 넣는다고 ‘이어가기’ 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조심하십시오.

“알고 있다니까.”

로이드는 그런 문수르에게 톡 말 한 마디를 쏘았다. 정말로 문수르를 지적하려고 그런 말을 쏘아 붙인 건 아니었다. 적당히 긴장을 풀기 위해서 내뱉은 말이었다.

‘좋아.’

긴장을 풀고, 다시금 아이언히트를 움직이기 시작하는 문수르.

“일단 출력은 2배 급으로.”

문수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언히트에 탑재된 MX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MX시스템에서 흘러나온 마나는 단숨에 아이언히트의 전신을 달구기 시작했다.

마치 움직이지 않는 인형에 기름칠을 하듯, 딱딱했던 아이언히트의 움직임이 부드러워졌다.

문수르의 조작도 훨씬 편해졌다. 힘이 들긴 들지만, 와이어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은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동시에 아이언히트가 움직였다.

콰앙!

2배 급 출력, 하지만 기존 기가스보다 훨씬 작고 가벼운 아이언히트의 이동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기존 기가스보다 서너 배는 더 빨랐다.

순식간이었다.

아이어 보우런이 탑승한 2배 급 기가스, 문수르의 아이언히트가 단숨에 2배 기가스의 앞을 가로 막았다.

카앙!

그러나 반대로 가장 먼저 공격을 취한 건 아이어 보우런이었다. 아이언히트가 작은 것도 아니고, 아이언히트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했을 리 만무했다.

오히려 카운터를 노리 듯, 아이언히트와의 거리가 좁혀졌을 때 거대한 검을 휘둘렀다.

이 순간 문수르가 명령했다.

“곧바로 3배 출력으로.”

우웅!

기다렸다는 듯이 MX시스템이 마나을 내뿜기 시작했다. 동시에 문수르의 멀티 글라스 상단에 타이머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5분 12초. 그것이 문수르에게 허락된 시간이었다. 그 시간 내에 전투를 끝내든, 끝내지 못하든 문수르가 탑승한 아이언히트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문수르는 곧바로 공세를 퍼부었다. 문수르의 아이언히트는 창을 들고 있었다.

덕분에 문수르는 무리 없이 마음껏 공격을 퍼부울 수 있었다. 당장 찌르기부터 날렸다.

파바밧!

문수르의 아이언히트가 내찌르는 창은 마치 미사일 공격의 그것 같았다. 잔형을 남기며 엄청난 속도로 날라오는 공격은 상대방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위력은 그 이상이었다.

쿠웅, 쿠웅!

문수르의 창이 닿을 때마다 아이어의 기가스가 크게 요동쳤다. 분명 아이언히트의 몸집이 훨씬 작음에도, 파워에서 아이언히트가 훨씬 더 우세한 것이었다.

‘속전속결.’

힘에서 이기고, 기동력에서 이긴다. 기술에서도 이길 자신이 있다.

그런데 시간을 끄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큰 기술로 간다.’

아이언히트의 손아귀에서 창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스파이럴 어택이다.

출력이 강하면, 마나의 여력에 생긴다. 그 마나는 기가스 파일럿의 능력에 따라 오러로 변환한다.

기가스가 오러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이 경우 기가스의 위력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시무시해진다.

꽈앙!

아이언히트의 스파이럴 어택이 폭발하듯 날아갔다. 그 순간 아이어의 기가스는 몸을 틀었다.

‘헙!’

순간 숨넘어가는 소리를 뱉은 건 문수르 쪽이었다.

설마 이렇게 깔끔하게 피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기다렸어!’

말 그대로다.

상대방이 지금의 공격을 완벽하게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면 결코 보여줄 수 없는 회피였다.

회피와 동시에 아이어의 기가스가 움직였다.

콰앙!

발을 내딛으며 앞으로 전진했다.

후웅!

전진하며 대검을 휘둘렀다.

카앙!

이윽고 아이어의 대검의 아이언히트의 가슴팍을 강하게 때렸다.

“으윽……!”

문수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기가스의 약점은 두 곳이다. 하나는 동력원이 탑재된 머리. 다른 하나는 파일럿이 탑승한 가슴.

가슴팍의 충격은 문수르에게 전달됐다. 제 아무리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장치가 있다고 해도 이 정도 충격이면 기가스 파일럿에게 오는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더군다나 카운터 공격 아닌가?

문수르니까 버텨낸 것이다. 다른 파일럿이었다면 이 순간 실신을 하거나 심하면 목숨도 잃었을 것이다.

‘생각보다 능숙하군.’

이 상황에서 문수르는 당황하지 않았다. 약간의 현기증이 남았지만, 전투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문수르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시간은 계속 줄어든다.’

이 순간에서 아이언히트의 수명은 줄어들고 있다. 문수르가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바밧!

역시나 이번에도 창을 내찌르기 시작했다. 문수르의 창이 벌떼마냥 아이어의 기가스를 향해 날아왔다.

콰과광!

소나기마냥 퍼붓는 그 공격에 아이어의 기가스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어의 기가스는 섬뜩할 정도로 완벽한 카운터 공격을 날리고는 했다.

- 피하십시오.

로이드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당할 카운터였다. 결과적으로 로이드 때문에 카운터 공격은 대부분 무효로 돌아갔지만, 문수르는 카운터 공격이 날아올 때마다 식은땀을 흘렸다.

‘새로운 타입이다.’

정말 순수하게 카운터 공격만을 노리는 타입은 문수르도 처음 상대해봤다.

카운터 공격이라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적의 공격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과 그 공격에서 헛점을 찾아내는 능력, 최소한 두 가지의 능력이 필요하다.

어떤 능력이든 전투에 매우 큰 도움이 되는 능력이다.

때문에 문수르는 여기서 의문이었다.

‘이 정도의 카운터 공격이 가능한데 어째서 기본기는 약한 거지?’

아이어 보우런.

카운터의 귀재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기본기는 생각보다 좋지 못했다.

문수르의 공격을 방어하는 모습만 봐도 그렇다. 검을 이용해 문수르의 창을 쳐내는 방법이 굉장히 어설펐다. 제대로 배우지 못해 억지로 하는 느낌이 강했다.

궁금하다.

- 3분 남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궁금증을 품을 시간은 아니었다.

‘빠르게 움직인다.’

문수르가 이번에는 패턴을 바꿨다. 창을 내찌르면서 동시에 빠르게 아이어의 기가스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어 입장에서는 마치 전방위에서 창이 날아오는 듯한 착각을 느낄 법한 공격 방법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아이어의 기가스는 문수르의 아이언히트를 따라가지 못했다. 가뜩이나 기동력이 뛰어난 아이언히트다. 맹수가 사냥감을 가지고 장난을 치듯, 문수르의 아이언히트는 아이어의 기가스를 상대로 장난을 치는 것처럼 보였다.

차라리 그냥 장난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문수르의 공격은 기가스의 약점을 놀라우리만큼 제대로 노리고 들어왔다. 장갑 부분이 아니라 장갑과 장갑이 만나는 부분, 기가스의 부위 중 그나마 약한 부위만을 집요하게 노렸다.

- 타깃 포인트 확보.

- 공격 성공.

- 타깃 포인트 재설정.

당연히 이 모든 일 역시 로이드 덕분이었다. 로이드가 실시간으로 공격해야 할 부위를 알려주니, 문제될 게 있을 리 만무하다.

쿠웅!

기어코 문수르의 공격 앞에 아이어의 기가스가 무릎을 뚫었다. 정확히는 거대한 동체를 지지하던 무릎 부분의 부품이 상당부분 박살이 나면서 버티지 못해 무너진 것이다.

아이어의 기가스가 무릎을 꿇자, 아이언히트가 아이어의 기가스를 내려다보는 꼴이 됐다.

‘딱 좋군.’

적당한 높이였다.

기가스의 머리통을, 동력원을 한 방에 날리기에 딱 좋은 높이 말이다.

문수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기가스의 동력원을 향해 스파이럴 어택을 날렸다.

꽈앙!

문수르의 창이 단숨에 기가스의 동력원을 관통했다. 혼심의 힘을 담은 공격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파각!

아이언히트의 두 다리가 작살이 났다.

아이어 보우런.

그는 이 순간 오히려 카운터를 날리듯 대검을 휘둘러 아이언히트의 두 다리를 박살을 냈다.

강력한 공격을 위해선 하체가 안정될 수밖에 없다. 풋워크 따위가 불가능하단 의미다.

아이어는 그 점을 노리고 다리를 노린 것이다.

우웅!

동력원을 잃은 아이어의 기가스는 곧바로 무너졌다.

두 다리를 잃은 문수르의 아이언히트라고 해서 사정이 좋은 리가 만무했다.

그 둘은 동시에 기가스에서 탈출했다.

정말 동시였다.

그 둘이 기가스에서 나오는 순간, 그 둘은 동시에 서로를 마주볼 수 있었다.

아이어가 검을 뽑았다.

문수르가 창을 들었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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