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30화. 격전.>
1.
전쟁은 잔혹하다. 그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레이스가 결승점을 모르고 뛰는 레이스다. 당장 내일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그 사실을 모르는 이들에게 내일이란 아득히 먼 미래다.
멀티글라스를 착용한 문수르는 다시금 보우런 남작의 병력을 체크했다.
“사병 5백 명에 전면에 나선 기가스가 2대. 그러나 후방에 1대를 숨겨두고 있군. 기사단 전력은 열 명이 전부인가?”
보우런 남작의 병력은 생각보다 컸다. 일단 사병이 5백 명이었다. 이제르트 자작령의 사병수가 3백 명이다. 여기에 추가로 용병대 전력이 60여 명 정도. 기사의 숫자는 7명이 전부인데, 이마저도 헤인 경이 전력에서 이탈했으니, 6명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자신할 만하군.”
여기에 무엇보다 눈에 띠는 건 역시 3대나 되는 기가스의 존재다. 고작 남작가가 3대나 되는 기가스 전력을 보유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돈도 돈이지만 결과적으로 기가스 파일럿, 오러 나이트를 3명이나 보유했다는 의미니까. 이 정도면 백작 정도와도 자중을 겨룰 만하다.
“그중 한 대는 2배 급 기가스로군.”
거기다가 한 대는 2배 급 기가스다. 최신 기가스의 출력이 3배가 넘어간다고 하지만 막강한 페스로 제국에서도 최고 권력자들의 이야기다. 보통은 전선에 2배 급 기가스 정도만 나와도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한다.
사실상 이번 전투는 결국 기가스를 중심으로 한 전투가 될 것이다. 일반 보병들은 물론 제 아무리 잘 훈련된 기사단 전력이라고 해도 기가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니까.
공격하는 쪽은 기가스를 앞세운 후에 나머지 잔당들을 보병들이 처리하는 방법을 쓸 것이다.
방어하는 쪽도 다르지 않다. 기가스를 앞세워 상대편의 기가스를 막고, 들어오는 보병들을 막는다.
보우런 남작가는 당장 기가스 2대를 앞세울 것이다.
‘아이언히트 3대를 앞세운다.’
이에 대한 문수르의 답은 아이언히트 3대.
‘전투 소요시간은 15분 22초.’
시뮬레이션은 이미 끝났다. 2대의 기가스가 기세 좋게 등장하면, 대기 중인 아이언히트 3대가 움직일 것이다. 아이언히트의 출력은 약하지만, 장갑이 우수하다. 한 번의 격돌은 비등! 서로의 기가스가 적당한 파손을 입는 선에서 끝날 것이다.
이후 계속되는 격전 속에서 우세를 잡는 건 아이언히트다. 전장에서 2대3, 고작 1뿐이지만, 이 1이라는 전력적 우위는 절대적이다.
치고 박고 싸우는 와중에 보우런 남작 쪽의 기가스 한 대가 행동불능이 되는 순간, 상황은 종료다.
여기서 핵심!
‘몰래 숨어있는 기가스 1대.’
보우런 남작이 전장에 대기시키지 않은 채 멀리 떨어진 곳에 숨겨둔 기가스의 역할이 중요하다.
심지어 그 기가스가 2배 급 기가스다.
사실 이게 문수르를 가장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전장에 아이언히트 3대를 참전시키면, 남은 건 2대다.
아이언히트의 효율이 뛰어나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2배 급 기가스를 상대로는 최소 3대가 달라붙어야 한다.
여기에 문제가 한 가지 더 있다. 문수르는 1.3배 급 기가스를 이제르트 자작령에 상주시켰다. 포비어를 전장에 데려오지 않은 것이다.
‘테블스 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보통 때라면 그냥 가지고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GPS시스템을 통해 파악한 테블스 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또투 부족의 오크들이 어슬렁거리는 광경이 포착된 것이다. 당장 공격할 의사가 보이진 않았지만, 또투는 영리한 놈이다. 만약 이제르트 자작령 내에 기가스가 한 대도 없다는 걸 파악한다면 놈은 전력을 이끌고 이제르트 자작령을 공격할 것이다.
GPS시스템이라고 만능은 아니다. 몬스터의 움직임이 포착된 이상, 최소한의 전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결국 전장에 가지고 나올 수 있는 전력은 아이언히트 5대가 전부다.
여기서 문수르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1대를 희생한다.’
비싼 돈과 정성을 들여 만든 아이언히트. 목숨만큼 소중한 존재다. 문수르는 그런 아이언히트 1대를 소모할 각오를 했다.
소모한다는 개념이 무엇일까?
‘내가 가지고 온 동력원을 탑재한다.’
아이언히트는 문수르의 깜짝 제안으로 탄생한 기체다. 본래 한석균과 문수르가 제작하고자 했던 기가스는 최소 4배 급 이상의 출력을 자랑하는 괴물이었다.
그 기가스의 핵심이 될 동력원은 어스 월드에서 만든 후에 문수르가 케르빈 월드로 가져온 상황이다.
문수르는 그 동력원을 아이언히트에 탑재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언히트의 내구성으로는 절대 그 동력원, 일명 MX시스템을 버틸 수 없다. 단지 아이언히트에 사용된 기술력이나, 아이언히트의 구조가 MX시스템을 그나마 소화할 수 있을 뿐이다. 포비어의 기가스 같은 경우는 소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6분.’
시뮬레이션 결과 아이언히트에 MX시스템을 탑재할 경우 3배 급 이상의 출력을 발휘할 시 6분 정도를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승부를 낸다.’
그 승부를 낼 사람은 바로 문수르였다.
2배 급 기가스와 6분 내에 결판을 짓는 거다.
2.
전쟁은 예고 없이 시작됐다.
뿌우!
거대한 나팔소리가 들렸다. 보우런 남작가의 진영에서 들려오는 나팔소리였다.
“진격하라!”
쿠웅!
가장 먼저 진격을 시작한 건 2대의 기가스였다. 5미터가 넘어가는 거인들이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대여섯 번의 걸음걸이에 어느새 기가스는 전열(戰列)의 선두에 섰다.
“우아아!”
그 뒤로 보병들이 움직였다. 보병들은 30명이 하나의 부대가 되어 삼각형의 전열을 갖춘 채 전진했다. 열 개의 삼각형이 천천히 이제르트 자작령의 진영 쪽으로 이동했다.
이제르트 자작가도 움직였다.
아이언히트 3대가 전면에 나섰다. 병사들은 전진하지 않은 채 후방에 대기했다.
문수르의 작전이었다.
어차피 지리적 이점은 없다. 그렇다고 상대 쪽이 강력한 기동력을 무기로 삼는 기마단을 이끄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굳이 전진하는데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제 아무리 잘 훈련 받은 정예군도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긋나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다. 사람이니까. 백 명 중 한 명 꼴로 실수를 한다면, 5백의 병사들 중에서는 5명이 실수를 하게 된다.
굳이 움직여서 전열을 망가뜨릴 필요는 없다.
물론 기세가 문제이긴 하다. 미친 듯이 돌진하는 쪽과 그저 그걸 바라만 보고 있는 쪽. 보통의 경우라면 전자의 경우가 훨씬 더 기세가 달아오르게 될 터.
그 부분에 대해선 문수르는 이제르트 자작가의 병사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수성(守成), 그것만큼은 그 누구보다 많이 경험한 병사들이다.’
특히 이제르트 자작가의 병사들은 수성전에 더 특화되어 있다. 대부분 전투 경험이 몬스터를 막는 것이었으니까. 적어도 몰려오는 적에 대한 공포는 그 어느 군대보다 적다고 자신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혹독하게 살아왔다.
세상 모두가 저주 받은 땅, 버림받은 땅이라 불리는 그 땅에서 이제까지 살아남았다.
그 의지가 고작 우렁찬 기합 소리 한 번에 꺾일 리 만무하다.
“침착해라.”
이제르트 자작가의 기사들이 그런 병사들을 달랬다.
“눈을 감지 말고 직시하라.”
기사들의 말은 단편적이었다. 긴박한 상황에서 장문의 연설을 할 정도로 말재간이 좋은 기사가 이제르트 자작가에는 안타깝게도 없었다.
“이제르트 자작님의 말을 기억해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단편적이지만, 기사들의 말은 병사들의 심장에 박혔다. 병사들이 눈빛을 빛냈다.
3백여 명의 병사들 중 공포에 겁을 먹은 자는 한 명도 없었다. 특히 용병 출신의 병사들의 눈빛이 유독 불타올랐다.
이제르트 자작의 약속 때문이다. 이 전쟁이 끝난다면, 용병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이제르트 자작가의 영지민이 될 수 있다. 영지민이 되면 자연스럽게 그들은 정규균에 편성된다.
남들은 지옥이라 부르는 땅이 이제르트 자작령이지만, 그곳에서 지내본 용병들은 안다.
그 지옥이 조만간 낙원이 될 거란 사실을.
물러날 이유가 없었다.
쿠웅!
이윽고 기가스와 기가스의 충돌을 시작으로.
“우아아!”
“공격하라!”
보병들의 전투가 시작됐다.
전쟁은 제 아무리 미사여구를 붙여도 잔혹하다.
창과 도검. 잘 벼려진 날붙이들을 있는 힘껏 휘두를 때마다 사람의 살점이 묻어난다. 마치 고기를 썰 듯, 묻어나오는 살점들에는 온갖 괴상한 것들이 달라붙어 있다. 핏덩이, 혈관 혹은 뼛조각까지. 음식점에서 나오는 고기 따위와는 전혀 다른 괴기스러운 살뭉치들이다.
그리고 피가 난무하다. 사람의 몸뚱이는 폭탄처럼 피를 토해낸다. 피는 적아를 구분하지 않는다. 아군의 피를 아군이 뒤집어쓰고, 적군의 피도 아군이 뒤집어쓴다. 자기 피를 자기가 뒤집어쓰는 경우도 다반사.
그렇게 튀아나온 살점들, 핏줄들, 핏물들 혹은 뇌수와 척수, 눈알 따위들은 어느 순간 사람 발에 밟히거나 혹은 사람 입에 들어가기도 한다.
“우웩!”
인간의 살점이, 핏물 따위가 입 안에 들어오면 본능적으로 구역질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인육,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단어 아닌가?
토악질을 하면서도 검을 휘두르고 창을 내찌른다. 살기 위해서. 방금 자기 입에 들어온 살덩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죽어!”
“이 빌어먹을 새끼들.”
“개호로 자식들!”
욕설은 뱉지만, 들리진 않는다.
이런 보병들의 전투에 비하면 기가스의 전투는 정말이지 신사적이란 말밖에 떠오르는 말이 없다.
카앙!
묵직한 쇳덩이를 마치 나무장작마냥 휘두르는 기가스의 힘은 무시무시할 정도다.
쿠웅!
그런 기가스의 힘을 그대로 버텨내는 아이언히트!
우웅, 우웅!
그러는 사이 동력원은 마나를 뿜어내며 육중한 몸뚱이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2대의 기가스와 3대의 아이언히트. 그들은 각자 따로 싸우지 않았다. 2대의 기가스는 서로 등을 마주본 채 서있었고, 3대의 아이언히트는 삼각형의 꼭짓점 형태로 2대의 기가스를 포위하듯 서있었다.
카앙, 카앙!
공방이 오고 갔다.
아이언 히트의 공세는 소나기 같았다. 3이라는 숫자상의 우위를 이용한 아이언히트의 공격이 훨씬 위력적이었다.
물론 기가스의 반격도 위력적이긴 했다.
쿠웅!
자기보다 1미터는 작은 아이언히트를 향해 기가스가 휘두르는 대검은 무자비해 보인다.
누가 보더라도 단칼에 아이언히트가 박살이 날 것 같다. 사실 그래야 어느 정도 공평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1배 급 출력의 기가스가 공격력 면에서 0.6배 급 출력의 아이언히트에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건 너무 슬픈 이야기니까.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은 불공평하다.
꽈릉!
기가스의 대검을 막은 아이언히트에는 이러다할 파손이 없었다. 장갑 부분이 깨지긴 했지만 그뿐이다. 애초에 기체의 손실을 대신해 깨지라고 만든 장갑이다.
기체의 손실은 없었다.
기술력의 차이였다.
그저 거대한 몸뚱이에 출력을 높이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 1세대 기가스.
반면 0.6배 급 기가스라고는 하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최첨단 공법이 사용된 아이언히트에는 충격 흡수 장치, 충격 분산 장치, 충격 완화 장치 등, 적의 공격을 약화시킬 기술력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거기에 아이언히트에는 기동력이 있다.
후웅!
기가스와의 결투에서 쉽게 보기 힘든 공격의 회피, 그러나 아이언히트는 그 회피라는 개념을 너무나도 쉽게 써먹었다.
그뿐인가?
아이언히트는 빠르게 2대의 기가스 주변을 움직이며, 상대방의 시야를 괴롭혔다.
기가스 내부에서는 시야가 제한된다. 거의 정면만 보이는 수준이다. 그런데 적이 좌우에서 왔다갔다 거린다면, 기가스 파일럿의 머릿속은 하얗게 질릴 수밖에.
하지만 승부는 빠르게 결정 나지 않았다. 아이언히트가 우위를 점한 건 사실이었지만, 출력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었다. 똑같이 검이 부딪치면 당연히 아이언히트가 밀려났다. 힘 대 힘으로 싸울 경우에도 당연히 아이언히트가 밀려났다.
무엇보다 출력이 약하니, 제 아무리 공격을 해도 기가스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기가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 무렵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한 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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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