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08화 (106/293)

108화

5.

힘을 흡수한다는 것. 그에 대항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수르가 밀린 건 아니었다. 상대는 분명 단단한 갑옷과 적의 힘을 흡수하는 능력을 가졌지만, 장점은 그뿐이었다.

‘검술은 그저 그래.’

처음 두 자루의 검을 봤을 때 식겁했다. 이제까지 쌍검을 쓰는 이를 상대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경험이 없다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루이 노믹스만 해도 그렇다. 고작 검술의 특징이 바뀌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상대하기가 힘들어지는데, 무기의 개수가 달라지면 당연히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데몬 나이트의 검술은 기준 이하였다. 그저 완력에만 의존하는 공격이었다.

콰앙!

‘위력은 대단하군.’

물론 그 위력은 검이 아니라 도끼, 둔기에 버금갈 정도로 무시무시했지만.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공기가 울렸고, 바닥을 내리치기라고 할 때면 쩌적! 바닥 위에 거미줄마냥 금이 갔다.

하지만 문수르에게 만큼은 위력적인 공격이 못 됐다.

문제는 공격이었다.

‘직접 타격은 안 된다.’

일단 직접 창이 닿는 식의 타격을 할 경우 힘이 빨려 들어간다. 힘을 빼앗기는 것도 빼앗기는 거지만 힘이 빨린다는 과정 자체가 몸에 무리를 줬다. 그렇다면 남은 건 거리를 벌린 채 원거리 공격을 하는 것.

‘스파이럴 어택은 안 통하는데.’

그러나 앞서 스파이럴 어택을 사용했을 때 제대로 타격을 주지 못했다.

오러 스피어는 공격범위가 길어지지만, 엄연히 직접 타격이다. 순수한 오러로 만들어진 오러 스피어는 오히려 더 빠르게 흡수된다. 스파이럴 어택도 안 되고, 오러 스피어도 안 된다.

‘라이트 드라이브?’

위력을 한 곳에 집중하는 라이트 드라이브.

하지만 결국 라이트 드라이브도 근접공격이다. 힘이 흡수 당하는 건 매한가지다.

그럼 답은 나온다.

‘빌그락스.’

스파이럴 어택과 라이트 드라이브를 합친 기술, 빌그락스가 필요하다.

하지만 라이트 드라이브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문수르가 과연 지금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빌그락스를 쓸 수 있을까?

‘가능할까?’

짧게 고민하는 문수르.

쿵, 쿵!

그런 문수르의 틈을 노리고 데몬 나이트가 두 자루의 검을 무섭게 휘두르며 다가왔다.

문수르가 거리를 벌리고자 했다.

“어어, 이쪽으로 온다.”

“피해, 피해.”

그러자 문수르와 데몬 나이트의 싸움을 지켜보던 귀족들이 빠르게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문수르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살짝 흘렀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는 귀족이 생길 지도 모른다.’

데몬 나이트는 어찌 됐건 본질은 흑마법사가 만들어낸 생명체다. 눈앞에 걸리적거리는 게 있으면 양해를 구하기보다는 검부터 휘두를 놈이다. 살만 뒤룩뒤룩 찐 귀족이 과연 그 검을 막아낼 수 있을까? 처참하게 도륙되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의 전장이라 할 수 있는 파티장은 문수르에게 그다지 유리하지 못했다. 거리를 벌려 싸워야 하는 문수르 입장에서는 사방이 방해물이다.

더군다나 데몬 나이트에게는 귀족 따윈 언제든지 벨 수 있는 방해물이겠지만, 문수르는 그렇게 못한다. 문수르가 거추장스럽다고 귀족을 베는 순간 정치적 문제가 되니까.

최악의 상황이다.

‘빌그락스.’

그 상황에서 떠오르는 건 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 그것뿐이었다.

‘가능할까?’

다시 자문하는 문수르. 그러나 문수르의 기억이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해주었다.

‘그때…….’

문수르의 기억, 문수르가 이제까지 써왔던 소설 속의 구절 하나.

‘그래.’

위기에 빠진 주인공의 케케묵은 말.

‘절체절명의 순간이니까 시도할 가치가 있다.’

스무 개의 계단. 하나씩 밟고 올라야 한다면, 열아홉 번째 계단을 밟지 않고 스무 번째 계단을 밟을 수는 없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극한, 말 그대로 한계 끝에 다다랐기에,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다.

문수르가 각오를 다졌다.

‘빌그릭스를 사용한다.’

이론은 안다.

단지 그게 전부라는 게 문제일 뿐.

때문에 도움을 받는다.

‘로이드, 준비해.’

- 알겠습니다.

불스 백작은 검에 대한 조예가 제법 깊다. 그는 꾸준히 검을 연마했다. 또한 기사를 보는 안목을 높이기 위해 공부도 했다. 가진 무재(武才)가 그리 출중하진 않지만, 적어도 호의호식하며 배에 기름기만 채운 귀족들과는 다르게 문수르와 침입자의 전투를 충분히 평가할 수 있었다.

‘이게 쇼라고?’

빅토리안 공작에게 미리 들은 말.

적당한 수준의 실력자를 난입시킬 테고, 그 과정에서 문수르가 오러 마스터인 걸 증명한다.

그런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걸 보니, 단순히 문수르가 오러 마스터인 걸 증명하기 위한 쇼가 아니다.

‘문수르를 죽이려 하는군.’

명백하다.

‘쇼가 아니야.’

난입자는 문수르를 죽이려고 한다. 더불어 그 일에 거슬리는 게 있으면 사정을 볼 생각이 없다. 적의와 살의, 그것이 똘똘 뭉쳐져 악의(惡意)의 형태를 띠고 있다.

‘기분 나쁘군.’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빅토리안 공작이 미치지 않은 이상, 저런 카드를 이 자리에 내보일 리가 없을 텐데?’

그래서 의문이다.

여긴 모든 귀족들이 모인 장소. 보는 눈이 많다. 혹여 누군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 문제가 된다.

그런 장소에서 저렇게 위험한 걸 풀어놓다니? 문수르를 죽이고 싶어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빅토리안 공작의 정치생명을 걸만한 사항은 결단코 아니다.

‘다른 무언가가 있어.’

때문에 의문은 곧 의심으로 바뀌었다. 빅토리안 공작이 노리는 다른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 보폭을 줄이십시오. 어깨가 틀어졌습니다. 호흡이 맞지 않습니다. 시선이 틀립니다.

로이드는 실시간으로 문수르를 지적했다.

그러는 와중에 문수르의 눈앞에서는 두 자루의 검이 무자비하게 휘날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문수르의 머리통을 박살낼 기세로 날아오는 검, 그 앞에서 몸에 맞지 않는 자세를 취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주룩!

등에서는 이미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식은땀이, 오싹해진 등줄기가 오히려 문수르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찬물로 머리를 씻은 듯했다.

‘아직 멀었다.’

그러나 한계에 도달한 건 아니었다.

‘좀 더 극한이 필요해.’

좀 더 극한의 상황에 도달해야 한다. 그래야 온몸의 기능이, 능력이 백퍼센트 발휘될 것 같다.

‘어떻게?’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극한의 상황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 의문을 던지는 순간.

콱!

문수르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세상이 캄캄해졌다.

- 주인님, 위험합니다!

귀로는 로이드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그 순간 문수르는 묘한 경험을 했다.

‘내가 보인다.’

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았으니까. 대신에 문수르는 자신 스스로를 볼 수 있었다.

막상 가장 보기 힘든 자신의 모습이, 마치 영상을 통해 제3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처럼 뚜렷하게 보였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부족하다 느꼈던 부분, 자신의 문제점이 보였다.

문수르는 게임 속 캐릭터를 조작하듯,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단점을 고쳤다.

문수르의 공격도 마치 게임의 그것처럼 너무나도 쉽게 시행됐다.

문수르의 창이 허공을 갈랐다.

소리는 없었다.

고요한 침묵이 들렸을 뿐이다. 문수르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로이드도 말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침묵은 오래 갔다. 데몬 나이트의 움직임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이윽고 문수르가 눈을 떴을 때.

- 주인님 축하합니다.

가장 먼저 로이드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런 문수르의 앞에는 처참하게 파괴된 갑옷 조각들이 너부러져 있었다.

그건 소용돌이 같은 공격이었다. 문수르의 창은 소용돌이의 중심부와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작은 점에서 시작됐지만, 그 점은 점차 커지며, 모든 걸 집어삼켰다.

빌그락스.

‘아니야.’

그 기술은 결코 아니었다. 빌그락스는 이렇게 큰 여파를 만들지 않는다. 적어도 한석균에게 배운 페르수스의 창술 속 빌그락스는 그랬다. 창이 아니라, 마치 작은 침으로 공격하듯, 아주 티끌만큼의 여파만 남길 뿐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진 걸까?’

스파이럴 어택은 아니다. 그보다 좀 더 업그레이드 된 느낌, 그렇다고 메가 타이푼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쁘진 않다.

‘뭐, 괜찮네.’

분명한 건 방금 전의 문수르라면 쓸 수 없었던 기술이라는 것. 문수르가 또 다시 한계를 넘었다는 사실이다.

데몬 나이트가 산산조각 난 건 덤이겠지.

그때였다.

“모두들 진정하시오.”

“사악한 흑마법사의 피조물이 난입했소이다.”

빅토리안 공작가의 기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와중에 슬그머니 몸을 피신했던 빅토리안 공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빅토리안 공작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제야 결투를 지켜보던 귀족들은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일이 잘못됐음을, 무언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음을 말이다.

‘대체 뭐야?’

‘그보다 흑마법사라니? 무슨 일이지?’

문수르의 표정도 굳어졌다.

‘흑마법사란 표현이 지금 나올 때인가?’

데몬 나이트를 만든 건 그 누구도 아닌 빅토리안 공작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빅토리안 공작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흑마법사에 대한 것을 숨겨야 할 터.

그런데 오히려 빅토리안 공작이 흑마법사를 운운하고 있다.

그때 불스 백작이 문수르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왔다.

“빅토리안 공작께서 사과하시더군.”

“사과? 무슨 사과 말입니까?”

“자신이 준비한 기사가 아니라, 다른 괴인이 난입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일세.”

불스 백작의 말을 들은 문수르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역시.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는 거군.’

빅토리안 공작.

그가 이번 일을 깜짝 이벤트로 설정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미리 사전에 결투를 약속하고 진행했다면 데몬 나이트를 쓰는 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검증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깜짝 이벤트 식으로 준비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도중에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몰랐다고 하면 되니까.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

“모두들 진정하시오!”

기사들이 웅성거리는 귀족들을 진정시킬 무렵, 빅토리안 공작이 기사들의 호위를 받은 채 문수르 앞으로 걸어왔다.

또각또각.

이윽고 빅토리안 공작이 문수르 앞에 섰을 때, 빅토리안 공작은 문수르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이런.’

문수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미안하게 됐네. 내가 준비한 건 이게 아니었네. 적당한 실력의 기사를 내세워 자네가 오러 마스터란 사실을 증명하는 순간, 깜짝 이벤트란 걸 공개할 생각이었는데…….”

빅토리안 공작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의외로 목소리가 컸다. 또한 기사들이 장내 분위기를 정리한 덕분에 주변은 고요했다. 대부분의 귀족들이 빅토리안 공작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설마 흑마법사가 나를 노리고 이런 수작을 부릴 줄은 몰랐네.”

이윽고 빅토리안 공작의 입에서 나온 흑마법사란 단어.

구석에 있는 귀족 몇 명이 웅성거렸다.

“맙소사, 흑마법사가 빅토리안 공작님을 노렸다니?”

“쯧쯧, 누군가 비겁한 술수를 썼군. 흑마법사 따위와 손을 잡고 빅토리안 공작님을 해하려 하다니.”

“역시! 이 와중에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그 모습을 보면 빅토리안 공작님의 배포에 감탄할 따름이군.”

어느새 분위기는 빅토리안 공작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별 거 아닌 듯하지만 절묘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빅토리안 공작을 흑마법사라 의심하며, 데몬 나이트가 빅토리안 공작의 술수라 생각하는 이는 없겠지.

혹여 의심한다고 하더라도 그걸 입 밖으론 내뱉는 자는 없을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콩탄 왕국의 세 번째 오러 마스터의 등장을 축하해야겠지만, 상황이 이런 만큼 축하 파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공작님의 뜻대로 하시지요.”

단 한 명, 문수르만이 빅토리안 공작의 행동을 꿰뚫어 볼 뿐이다.

그 문수르조차 나탈라와의 만남이 아니었다면, 의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해해줘서 고맙네.”

“말씀이라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하.”

빅토리안 공작의 짧은 웃음을 끝으로 파티의 두 번째 날 역시 끝이 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