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07화 (293/293)

107화

4.

두 번째 날.

문수르는 낌새가 좋지 못함을 느꼈다.

‘온다.’

불스 백작의 언질이 아니었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살의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살의는 오롯하게 문수르를 향하고 있었다. 문수르는 긴장했다.

‘보통은 넘는다.’

오러 마스터는 아니다. 그건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오러 마스터에 버금가는 강함을 가진 무언가다.

“하하, 그래서 내가 말이야…….”

“어머, 그러셨군요.”

“호호, 정말 멋지시네요.”

귓가로는 귀족들의 허영심이 맴돌고, 등줄기로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상황은 순식간이 벌어졌다.

채앵!

창문이 깨지며 무언가가 파티장 내부로 난입했다. 갑작스런 이 소란에 파티에 참석한 귀족들이 가장 먼저 보인 행동은 비명을 지르거나, 당황하거나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응?”

물음표.

귀족들은 도무지 지금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질 못했다. 당연했다. 이곳은 파티장이었다. 콩탄 왕국 최고의 귀족, 빅토리안 공작가가 주최한 파티 말이다. 뛰어난 기사들과 잘 훈련된 병사들이 지키는 이곳에 침입자 따위가 들어올 리 만무하다. 그런 건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

이 순간 문수르는 빅토리안 공작을 바라봤다. 빅토리안 공작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빅토리안 공작이 무슨 생각을 하든, 이건 문수르를 엮어내기 위해 만든 리얼리티 쇼다. 피할 방법은 없다. 그러면 빨리 끝내는 게 정답이다.

문수르가 움직였다.

파티 둘째 날이 시작되었을 때 불스 백작은 말해줬다.

“자네 창은 파티장 내에 동쪽에 위치한 갑옷 장식 중 하나가 들고 있을 걸세.”

뛰어난 연출이다. 문수르가 빠르게 갑옷 장식이 들고 있던 자신의 창을 회수했다.

“꺄악!”

그러는 사이 귀족들이 상황을 파악했다. 침입자의 등장에 기겁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빠른 반응이군.’

짧게 혀를 찬 문수르. 문수르는 파티장 내부를 가득 채우기 시작한 혼란 속에서 침입자를 살펴봤다.

검은색 갑옷을 입은 채 손에는 두 자루의 검을 들고 있었다. 체격은 꽤나 컸다. 신장은 2미터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어깨 넓이는 그런 신장이 작아 보일 정도로 컸다.

‘사람이라면 대단한 거인이군.’

신체 조건이 대단하다.

‘일단 가볍게 한 방.’

문수르의 손아귀에서 창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상대의 간을 보기에는 스파이럴 어택만큼 좋은 공격도 없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고, 위력적이기까지 하다.

휘리릭!

문수르의 창이 단숨에 폭풍을 토해냈다. 폭풍은 검은 갑옷을 입은 침입자를 향해 날아갔고.

콰앙!

이내 침입자의 몸뚱이를 멀리 날려버렸다. 이 광경에 혼란에 빠져있던 귀족들의 얼굴이 반색됐다.

“오오!”

“문수르 경이 나섰군.”

누군가 말했다.

“콩탄 왕국의 세 번째 오러 마스터란 게 정말 진짜인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겠어.”

그 말을 들은 문수르는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정말 대단한 쇼야.’

잡념은 거기까지.

문수르의 스파이럴 어택에 맞고 날아간 검은 갑옷의 기사는 의외로 멀쩡했다. 단순히 기사가 멀쩡한 수준이 아니었다. 기사의 검은 갑옷에는 흠집 정도만 생겼다.

문수르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 갑옷, 보통 갑옷은 아니군.’

스파이럴 어택은 오러 블레이드를 기반으로 하는 공격이다. 그 위력이 오러 웨폰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충분히 위력적이다. 거기에 나선으로 강력하게 회전하는 공격은 대상이 무엇이 됐건 드릴처럼 판다. 그 질기다는 오우거의 가죽조차 뚫을 정도다. 보통 갑옷은 정말 무참하게 파괴된다.

‘오러 스피어를 꺼내라, 이건가?’

저 정도 갑옷을 깨기 위해서는 결국 오러 블레이드보다 상위의 기술인 오러 웨폰 류의 공격이 필요할 터. 오러 웨폰을 사용한다는 건 곧 오러 마스터란 의미다.

‘좋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그걸 증명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

문수르가 창에 오러를 집중시켰다.

우웅!

창이 오러를 머금기 시작했다. 이윽고 문수르의 기다란 창에서 4미터짜리 오러가 솟아올랐다. 솟아오른 오러는 이윽고 창의 형태를 띠었다. 누가 보더라도 분명한 오러 웨폰이었다.

“오오, 정말 그 말이 사실이었군.”

“세 번째 오러 마스터라니?”

방금 전까리 난리법석을 떨던 귀족들의 시선이 어느새 문수르와 검은 갑옷 기사 사이를 향했다. 그들은 이 대단한 결투를 어떻게든 보기 위해 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문수르는 그런 그들에게 자신의 싸움을 보여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빠르게 끝낸다.’

문수르는 최대한의 속도로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문수르의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귀족은 이 자리에 없다. 제이머스 후작, 루이 노믹스 경이 없으니까.

‘거리를 벌리고…….’

문수르의 무기는 창이다. 검에 비해 그 길이가 당연히 길다. 그 특성 덕분에 오러 스피어의 경우에도 오러 소드에 비해 그 길이가 훨씬 길다. 오러 스피어를 구현했을 때 문수르의 창은 대략 7미터가 넘는 길이를 자랑한다.

이 정도면 채찍 이상이다. 웬만한 상대는 문수르의 공격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거리를 문수르는 제대로 이용했다. 검은 갑옷 기사와 적당한 거리를 벌린 채 찌르기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파바밧!

회전력이 담기지 않은 찌르기였지만, 무려 오러 스피어다. 단순한 찌르기보다 회전력이 담긴 스파이럴 어택보다 훨씬 강했다.

카앙, 카앙!

그러나 검은 갑옷의 기사는 그런 문수르의 공격을 두 자루의 검으로 완벽하게 방어했다.

“오러 웨폰을 막을 수 있는 무기가 있다니?”

“혹시 저 자도 오러 마스터인가?”

귀족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물며 문수르의 심정은 어떨까?

‘오러는 아닌데…….’

분명히 상대가 오러를 이용해 자신의 공격을 막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상대는 문수르의 창을 확실하게 쳐내고 있었다. 보통은 검이 통째로 잘리는 게 정상인데?

‘그럼 막을 수 없게 만들면 되겠지.’

문수르의 공격이 잠시 멈췄다. 문수르가 힘을 축적했다. 마치 터지기 직전의 용암을 억누르듯, 자신의 힘을 폭발시킴과 동시에 한계까지 억누르기 시작했다.

무엇을 준비하는 걸까?

‘슈팅 스타로 끝낸다.’

동시에 다섯 번의 스파이럴 어택을 날리는 슈팅 스타! 문수르는 동시에 세 번의 스파이럴 어택을 날리는 게 전부이지만, 적이 세 자루의 검을 쓰지 않는 이상, 기어코 하나의 공격은 막지 못할 것이다.

‘억누른다.’

문수르가 힘을 억누르며 공세가 잦아지자, 검은 갑옷의 기사는 반격을 하기 위해 문수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철컹철컹!

기사가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자, 갑옷이 기괴한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마치 갑옷 안이 비어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 순간이었다.

문수르가 기다리던 순간은 말이다.

꽈릉, 꽈앙!

문수르의 창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소리와 함께 세 개의 스파이럴 어택이 검은 갑옷의 기사를 향해 날아갔다. 막 공세로 전환했던 검은 갑옷의 기사였기에 반응이 살짝 늦었다.

카앙!

그러나 이 와중에도 검은 갑옷의 기사는 하나의 스파이럴 어택을 쳐냈다.

휘익!

그리고 다른 하나의 스파이럴 어택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몸놀림으로 피했다.

콰직!

그러나 마지막 남은 세 번째 스파이럴 어택은 기어코 검은 갑옷의 기사에 명중했다. 스파이럴 어택은 검은 갑옷 기사의 가슴팍을 뚫고 튀어나왔다. 동시에 검은 핏물이 튀어나왔다.

“우웩!”

그때였다.

문수르가 꼿꼿하게 선 채로 무언가를 토했다. 토해낸 것들에는 피가 섞여 있었다.

문수르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건 대체…….’

슈팅 스타는 제대로 먹혔다. 반대로 이제까지 문수르는 상대로 하여금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속이 울렁거려…….’

속이 울렁거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야가 흔들렸고, 몸에서 조금씩 힘이 빠져나갔다.

마치 독에 중독된 것 같다.

‘로이드!’

- 조사 중입니다. 체내에서 독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단전 내 오러의 양이 빠르게 줄었습니다. 통상 기준보다 훨씬 빠르게 오러가 소모되었습니다.

문수르의 증상.

그건 다름 아니라 오러가 갑작스레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이상 현상이었다.

오러는 결국 생명의 원천! 그런데 어느 기준 이상의 오러가 갑작스레 빠져나가면 몸에 탈이 날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역시 이상한 일이었다. 문수르가 하수도 아니고, 오러 배분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오러 스파이럴도 그다지 많이 쓰지 않았다. 오러 스파이럴에 비해 곱절 이상의 오러를 요구하는 오러 스피어를 쓰긴 했지만, 문수르가 가진 오러의 양을 생각하면 십여 분 이상은 유지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오러가 바닥을 보이다니?

‘설마?’

그 순간 문수르는 결투 도중 느꼈던 이질적인 감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쓸만하군.”

갑작스레 침입자가 등장했을 때, 빅토리안 공작가의 기사들은 재빨리 빅토리안 공작을 데리고 피신했다. 그것은 그 누가 보더라도 이상할 것 없는 조치였다. 여기는 빅토리안 공작가의 파티장! 만약 침입자가 노리는 게 있다면 다른 귀족들이 아닌 빅토리안 공작이 목표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으니까.

그러나 빅토리안 공작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지 않았다. 그는 미리 준비해둔 방으로 이동했다. 그 방은 재미나게도 파티장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에 위치해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파티장을 내려다보는 위치의 장소였다. 덕분에 빅토리안 공작은 한 눈에 파티장 내의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귀족들의 행동, 반응 그들의 대화는 물론 지금 이 모든 상황의 중심에 있는 검은 갑옷의 기사와 문수르의 전투까지!

“정말 오러 마스터였군.”

빅토리안 공작은 일단 문수르가 오러 웨폰을 쓰는 순간, 그것을 보고 짧게 감탄했다.

루이 노믹스와 동수를 이루었다고 했을 때 오러 마스터일 거라고 추측은 했지만 그래도 역시 눈으로 직접 오러 웨폰을 봐야지 확신이 든다.

“재미난 결과가 나오겠어.”

그래서 빅토리안 공작은 기대했다.

“데몬 나이트가 과연 오러 마스터를 상대로 얼마나 버틸지, 내 예상이 맞는다면 동시에 죽는 게 답일 텐데 말이야.”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이 과연 오러 마스터를 상대로 어떠 결과물을 보여줄지 말이다.

- 데몬 나이트입니다.

로이드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 눈앞의 존재는 인간 기사가 아닙니다. 흑마법을 통해 만들어진 생명체, 데몬 나이트입니다.

로이드는 이후 데몬 나이트에 대한 몇 가지 특징을 설명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상대방의 힘을 흡수하는 능력이었다.

‘오러도 흡수가 가능한가?’

- 모르겠습니다. 흡수할 수 있는 게 단순히 마력뿐인지, 오러도 가능한 건지, 아니면 마나를 기반으로 하는 모든 힘을 흡수할 수 있는지 명확한 정보는 없습니다.

‘젠장.’

데몬 나이트는 정말 만들기 힘든 존재다. 때문에 그에 대한 정보 역시 많지 않았다. 한석균이라고 해도 한계는 있는 법이다. 더군다나 그는 흑마법사가 아니다.

“후우!”

이내 문수르가 숨을 돌렸다.

오러가 빠르게 빠져나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오러 전부가 단전에서 빠져나간 건 아니다.

문수르에게는 여전히 적지 않은 양의 오러가 남아있었다. 문제는 과연 그 오러로 눈앞의 데몬 나이트를 처치할 수 있는가, 그 사실이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겠지.

‘빅토리안 공작은 대체 무슨 꿍꿍이지? 데몬 나이트라니? 마치 자기가 흑마법사라는 걸 광고하는 꼴이 아닌가?’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흑마법사의 피조물이 모습을 드러내다니?

그 순간 문수르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이건 깜짝 이벤트지.’

지금 눈앞의 적이 흑마법사의 피조물인 데몬 나이트라고 해도, 빅토리안 공작가와 데몬 나이트 사이의 연관성은 없다. 오히려 빅토리안 공작가가 흑마법사에게 공격 당한 꼴이 되겠지. 그 누구도 데몬 나이트를 가지고 빅토리안 공작가가 흑마법사란 의심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이번 모든 일이 극히 소수만 알고 있는 일이니까.

‘재미있게 일을 꾸몄군.’

어째서 공식적인 결투를 통한 증명이 아닌, 이런 식의 깜짝 쇼를 준비했는지 이해가 된다.

‘날 죽이면 그걸로 오케이. 혹여 날 죽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의심 받을 이유는 없으니, 나쁠 건 없다는 소리군.’

꽈악!

문수르가 창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나 문수르, 그리 쉽게는 안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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