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02화 (101/293)

102화

<27화. 빅토리안 공작가.>

1.

“포비어 경, 잘 부탁하겠습니다.”

“정말 혼자 가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모든 이들과 인사가 끝냈을 때, 문수르는 따로 포비어를 찾아왔다. 그 자리에서 문수르는 많은 것을 말했다. 이야기는 길었고, 그 이야기가 방금 막 끝났다.

“뭐, 문제 될 게 있겠습니까?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저는…… 그 세계에 대해서 모르지만 적어도 이 세상 어디보다 잔혹한 세상이란 것쯤은 압니다.”

정치의 세계.

애초에 그 세계에 발조차 내딛지 못했던 포비어는 그 정치란 게 얼마나 삼엄한지 자세히는 모른다. 그러나 평민 출신의 기사로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고작 정치의 잔해 따위에 가로 막혀 많은 울분을 삼켰었던 경험이 있다. 그때마다 느꼈다.

자신을 이토록 서럽게 만드는 이들이 서슬이 퍼렇다 말하는 정치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건지, 그 세계가 얼마나 무자비한 세계인지.

그런 세계에 문수르는 혼자 몸으로 가는 것이다. 그것도 그 자신이 아니라, 이제르트 자작을 위해서 말이다.

“큰 일은 없을 겁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어디 가서 맞고 올 실력은 아니잖습니까?”

“그리 말씀하시면서도, 저번에 페르코 아카데미에서 돌아오셨을 때는 큰 상처를 입고 돌아오셨지요.”

“하하.”

문수르는 짧게 웃었다.

“그때 이리아 아가씨가 참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나중에 아가씨를 한 번 찾아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크흠.”

문수르가 말을 돌렸다.

“어쨌거나 제가 부탁한 일은 잘 처리해주십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목숨을 걸고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실 말씀이라도?”

무언가 말하려던 문수르가 말을 삼키며 미소를 지었다.

“그건 다녀와서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문수르는 빅토리안 공작가로 떠났다.

2.

불스 백작은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도착한 한 장의 편지 때문이었다.

최근 많은 편지가 그에게 왔다. 온갖 귀족들이 그를 회유하기 위해 보낸 편지였다. 그 편지들 대부분이 달콤하기 그지없는 것들이었다. 지위를, 명예를, 향락을 보장해주는 보증수표 같은 것들이었다.

그것들 중에 독을 품은 것이 하나 있었다.

“흠.”

진짜 독이 묻은 편지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런 것이었다면 오히려 불스 백작은 허허 웃으며 넘겼을 것이다. 그 정도 위협에 눈 하나 깜박할 위인이었다면 애초에 지금까지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터.

독보다 더 독한 것을 품고 있었다.

그건 정보란 이름의 독이었다.

“설마.”

편지의 내용.

“빅토리안 공작이 흑마법사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제는 이런 수법으로 나를 떠보겠다는 건가? 고작 이런 수작으로 내가 흔들릴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그건 바로 빅토리안 공작이 흑마법사라는 내용의 괴문서였다.

본래 문수르는 불스 백작가에서 불스 백작 일행과 함께 빅토리안 공작가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계획을 문수르가 바꿨다. 문수르가 이런저런 사정을 이유로 동행이 아니라 빅토리안 공작가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불스 백작은 그 이유를 파고들지 않았다. 굳이 고슴도치를 건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거겠지.

문수르가 따로 이동하기로 마음 먹은 건 다름 아니라 수련 때문이었다.

‘빅토리안 공작가에서 필시 결투가 이루어질 것이다.’

문수르가 콩탄 왕국의 세 번째 오러 마스터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최소 한 번 이상의 결투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만약 한 번 이상, 서너 번의 결투가 이어질 경우 개중에 문수르의 목숨을 노리는 자가 있을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노믹스와 같은 실력자가 나오지 말란 보장은 없지.’

만약 그때 문수르가 그래왔던 것처럼 어느 실력자가…… 노믹스 정도의 실력자가 문수르를 노린다면? 솔직히 말해서 문수르는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어쩌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걸 위해서 문수르는 다시금 자신을 연마할 생각이었다. 고작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수련기간이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미 그에 맞추어 로이드에게 매뉴얼도 요청한 상황이었다.

- 주인님, 정말 훈련 매뉴얼을 따르실 생각이십니까?

“뭐가 문제야? 그 매뉴얼을 만들어준 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로이드, 너잖아?”

- 제가 만들었지만 이 훈련 매뉴얼대로 하다가는 빅토리안 공작가에 도착하기도 전에 골병이 드실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진즉에 매뉴얼을 잘 만들던가! 왜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사람 겁먹게!”

- 정말 하실 줄은 몰랐죠.

요즘 들어 자주 깐죽거리는 로이드다.

“로이드, 조만간 기가스 만들고 여력 좀 남으면 너를 위한 몸뚱이를 만들 생각이야.”

- 딱히 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해서라도 때려야지 속이 시원할 것 같아.”

- 그런가요? 그럼 기대하겠습니다.

“그래, 꼭 기대해라.”

로이드의 깐죽거림을 뒤로하고, 문수르는 곧바로 수련에 들어갔다.

문수르의 수련은 기본적인 것보다 시작됐다. 순수한 육체의 단련! 그리고 단순한 기술의 반복수행! 걸을 때마다 보법을 수련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단전에서 오러를 끄집어냈다. 한계까지 힘을 쥐어 짜내고, 휴식을 가진 후에 힘을 쥐어 짜내기 시작했다.

단순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문수르의 몸에서는 땀이 마르는 날이 없었다. 언제나 탈진할 때까지 몸을 혹사시킨 탓에 언제나 하늘이 노랗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래도 기분은 편했다.

‘설마 내가 이런 훈련을 즐기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무(武)와는 거리가 먼 인생이라 여겼는데, 이제는 이게 더 편한 인생이 되어버렸다.

문수르는 짧게 실소를 머금었다.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군.”

문수르는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 소리를 다시 한 번 더 내뱉게 될 줄은 말이다.

3.

그곳은 지하였다. 땅을 파고, 그 안을 시커먼 벽돌로 채워 넣은 탓에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어둠이 지독한 것이었다. 그 지독한 어둠을 밝히는 건 작은 촛불 하나였다. 초는 대부분 타 들어간 탓에 심지조차 얼마 남지 않아 있었다.

그 촛불 사이로 두 개의 인형(人形)이 아른거렸다.

“으으…… 날 죽여라…….”

한 명은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그걸 과연 의자에 앉았다고 표현하는 게 옳은 표현일까?

두 다리가 잘려나가 있었다. 무릎에서 좀 더 윗부분이. 절단면은 추잡하기 그지없었다. 날카로운 도검 따위…… 여하튼 날카로운 무언가로 절단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주 투박한 것, 이가 빠지고, 녹이 쓸어버린 쇠붙이 따위로 잘근잘근, 마치 나무에 톱질을 하듯 잘려나간 면이었다.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사람의 피륙, 살덩이를, 근육을 잘 들지도 않는 칼로 억지로 자르는 과정이라니?

하물며 그렇게 계속해서 뼈까지 잘랐을 것이다. 아니, 뼈에 도달했을 때는 절단이 아니라 분쇄과정이었겠지. 산 채로 살점이 뜯히고, 근육이 긁히며, 뼈가 갉히는 느낌…… 인간이라면 이성을 잃고 그 고통만으로 이미 죽음을 맞이했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

그러나 두 다리를 잃고, 심지어 손가락은 손톱이 전부 빠진 것도 모자라 망치 따위로 손가락 하나하나의 끝을 박살이 난 채 이빨마저 대부분이 뽑힌 사내는 살아있었다.

목소리마저 내고 있었다.

“나를 죽여라…… 제발…… 제발 나를 죽여라.”

그 사내의 절규 어린 소원에 어둠 한 구석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흐흐,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인가 어찌 그렇게 죽는 소리를 내뱉는가? 강철 심장을 가졌다는 제르둔 후작의 이름값이 아까울 따름이군. 으하하! 참으로 아까워.”

“워…… 원하는 건 뭐든지 해주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 말해라. 무엇이든 해주겠다. 무엇이든…… 제발 그러니 나를 죽여라.”

“흐흐흐…… 이제부터 시작이라니까. 이제부터 산 채로 배를 갈라 장기를 뽑아낼 것이다. 그것을 하나하나 그대 눈앞에 꺼내줄 거야. 그리고 잘근잘근 씹어 먹을 것이다. 그뿐인가? 마지막엔 그대의 심장을 뽑을 거야. 으하하! 정말 궁금하군. 강철 심장이란 제르둔 후작의 심장이 정말 강철인지 아닌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섬뜩한 소리였다.

그러나 제르둔 후작은 그 섬뜩한 소리가 단순히 공포감을 주기 위한 허세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이제까지 봐왔으니까!

눈앞의 존재가 잘라낸 자신의 살점을 입안에 넣고 질겅질겅 씹는 과정을, 뼛조각을 잘근잘근 씹어 삼키는 과정을! 목에 꼬챙이를 찔어 넣은 후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와인잔에 담아 마시는 과정을!

‘괴물! 괴물이다!’

인간이 인육을 즐기다 못해 이로도 처참하게 인육을 즐기는 과정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심장은 네 조각을 낼 것이다.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매우 잘 드는 칼로 잘 잘라서, 하나는 구워먹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으로 씹어 먹을 것이다. 남은 두 개는 같이 요리해 제르둔 후작, 그대의 입 안에 넣어주도록 하지. 그때까지 그대는 살아남을 것이다.”

“아아……!”

제르둔 후작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이제까지 억겁의 고통을 당했는데 이게 시작이라니? 몰려오는 절망감에 당장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그래 멈춰라.’

차라리 정말로 절망감에, 공포 앞에 심장이 멈춘다면 너무나도 기쁠 것 같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제르둔 후작은 알고 있다. 자신이 눈앞의 사내가 하는 말처럼, 자신의 심장을 베어 먹기 전까지는 절대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체…… 대체 내게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오?”

제르둔 후작의 육신은 마법에 걸렸으니까.

좋은 의미에서의 마법이 결코 아니다. 그 마법이란 추악하고, 추레하고, 사악한 마법…… 바로 흑마법이었다.

그 흑마법의 힘 때문에 제르둔 후작은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상처를 품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그리고 그 흑마법을 건 자는…….

“빅토리안 공작, 대체 내게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오?”

빅토리안 공작.

콩탄 왕국의 유일한 공작이며, 콩탄 왕국에서 필로스 왕 휘하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

그가 제르둔 후작을 납치했다. 본대대로라면 단두대 아래에서 목이 떨어졌어야 할 제르둔 후작을 데려온 것이다.

처음에는 정치적 술수를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빅토리안 공작이 자신의 목숨을 이용해 아직 남은 제이머스 후작의 파벌에까지 영향을 주기 위한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빅토리안 공작은 제르둔 후작과 둘이 남았을 때, 세상으로부터 감추었던 모습을 보여줬다.

흑마법사 빅토리안 공작.

그는 지독한 마법으로 제르둔 후작을 고문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빅토리안 공작이 흑마법사란 사실에 놀랐지만, 이제는 아니다. 제르둔 후작은 빅토리안 공작이 왜 흑마법사가 됐는지, 그딴 건 추후도 알고 싶지 않았다.

알고 싶은 건 단 하나.

“대체! 대체 무엇 때문에 나에게 이런 공포를 주는 것이오?”

어째서 빅토리안 공작은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절망적인 상황을 선사하는 것일까?

정치적 앙숙이란 이유로? 이미 제르둔 후작의 정치 생명은 반역죄로 몰리는 순간 끝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굳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공포. 그래 공포가 중요한 거지.”

빅토리안 공작은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는 단지 대화 도중에 간간히 말할 뿐이었다.

“그분이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위대하신 그분이 나의 꿈에서 나에게 명령하셨다.”

순간이었다.

빅토리안 공작의 손이 제르둔 후작의 배꼽을 뚫고 들어갔다.

“웁!”

뱃속에 무언가가 들어오는 감각, 그것도 배꼽을 무자비하게 뚫으며 뱃속의 장기가 타인의 손에 의해 유린되는 감각!

이제까지 느껴본 적도 없고, 느껴보고 싶지도 않은 감각이다.

“으아악!”

절로 비명소리가 나왔다. 이 혐오스럽고 소름 돋는 느낌은 그 자체만으로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으하하!”

그 비명 소리에 빅토리안 공작은 웃었다.

“그래, 그분께서는 말씀하셨다. 제물이 필요하다고. 고귀한 피를 제물로 바치라고. 그대는 제물이다. 그분이 원하는 제단을 세우기 위해 필요한 제물이다. 으흐흐, 그대를 비롯해 모든 것들이 제물이 될 것이다. 종국에 세상은 그분을 위한 오롯한 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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