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01화 (100/293)

101화

4.

말론은 목에 핏대를 세웠다.

“글쎄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인간과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평소 나름 점잖게 말하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는 어떻게든 부족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 말론이 호우투 부족으로 돌아온 뒤에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을 때는 반대의견이 대다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과의 공조라니!

인간하고 접촉하고 심지어 인간을 위해 일을 한 말론에게 벌을 주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말론은 계속해서 설득했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러나 드워프 부족들이 오랜 세월 안고 살아온 인간에 대한 공포심과 분노가 쉽게 설득될 리 만무했다. 당장 말론이 감옥에 갇히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였다.

“젠장!”

하루이틀 설득으로는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아니, 몇 년에 걸쳐서 설득을 한다고 해도 과연 답이 나올까?

‘빌어먹을! 이건 하늘이 준 기회거늘!’

이제르트 자작령의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한 말론이다. 이제르트 자작령이 당장 전력(戰力)이 급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런데 몇 년 동안 부족원들을 설득하느라 시간을 보낸다니? 의미 없는 짓이다.

‘당장. 최소 한 달 내에.’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이런 인간을 만나고, 이런 기회를 붙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해야 한다.

그때였다.

“나 혼자로는 안 된다.”

말론은 결단이 빨랐다. 자신만으로는 결코 호우투 부족을 설득할 수 없다는 걸 인정했다. 그리고 그걸 인정하자마자 말론은 한 명의 사내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문수르, 그라면 답을 줄지도 모르지.”

말론이 다시금 이제르트 자작령으로 향했다.

탈라트 부족과의 협의를 끝내고 영지로 돌아왔을 때 말론이 문수르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수르, 부탁이 있네.”

말론은 전후사정을 설명해줬다. 이야기를 들은 문수르는 짧게 고민했다. 사실 문수르라고 해서 확실하게 호우투 부족을 설득할 무언가가 있을 리 만무하다.

단지 문수르에게는 이제르트 자작령의 호의를 보여줄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만 있을 뿐이었다.

‘호의라.’

지금은 그 호의도 필요한 상황.

‘가만!’

그 순간 문수르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드워프는 맥주를 좋아하지요?”

“당연하지. 눈깔이 돌아갈 정도지.”

“드워프는 맥주도 잘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물론일세. 세상에서 가장 맥주를 잘 만드는 종족은 그 무엇도 아닌 드워프일 걸세! 이건 내 장담하지.”

“그럼 호우투 부족에는 맥주가 많습니까?”

“그건…….”

사실 드워프는 맥주를 잘 만든다. 그리고 아주 많이 만든다. 맥주를 물처럼 마시는 종족이 바로 드워프다. 그러나 드워프는 농사에 재주가 별로 없다. 정확히 말하면 농사를 할 만한 성격이 못 된다. 농사란 게 자연의 섭리에 따라 수확물을 거둬야 하는데, 직접 제 손으로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야 성에 차는 드워프 족에게 농사만큼 지루한 것도 없다.

여기에 호우투 부족은 지하에서 생활을 한다. 생존을 위해 택한 방법이다. 물론 그들의 기술력 덕분에 지하에서의 삶은 오히려 지상에서 사는 인간들의 그것보다 훨씬 쾌적하지만 지하에서 농사는 불가능하다. 그뿐인가? 테블스 산의 땅이 기름지긴 기름지지만, 농사란 게 한두 달 한다고 뚝딱 결과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온갖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땅에서 농사를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주변에 인간들이 있어서 알게 모르게 이런저런 거래를 해서라도 식량을 구할 수 있는가? 가장 근처에 있는 인간이라고는 이제르트 자작령의 영지민이 전부였고,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제르트 자작령은 자기 영지민들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을 정도로 빈곤한 영지였다.

이런 이유로 호우투 부족은 맥주를 제대로 만들어 먹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비단 맥주뿐만이 아니라, 식량 문제로 많은 곤란함을 겪는 게 사실이다.

“흠.”

여기서 문수르는 몇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이제르트 자작령에서 우호의 표시로 식량을 지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조건은 없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말 그대로입니다. 조건 없이 식량을 지원해드리겠습니다. 그건 가능하겠습니까?”

“그야…… 준다는 걸 마다할 이유는 없겠지.”

문수르는 곧바로 이제르트 자작과 논의를 거쳐, 호우투 부족에 지원해줄 식량을 모았다.

한편 말론은 다시금 호우투 부족으로 돌아가 다시금 작금의 상황을 설명해줬다.

이제르트 자작이 호우투 부족에 식량을 지원해준다는 이야기가 호우투 부족 내에서는 다시 찬반이 엇갈렸다. 이번에는 말론이 무작정 인간과의 공조를 주장했던 때와는 다르게 찬반이 비등비등하게 나뉘었다.

“인간이 주는 호의라니! 혹시 다른 꿍꿍이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받지 않는 게 맞다.”

“어디까지나 호의라면 받아도 괜찮지 않은가? 무엇보다 지금 당장 부족 내에 식량이 부족한 것도 현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논의됐고, 논의 방향은 어느 순간부터 이제르트 자작가로부터 식량을 지원 받되, 호우투 부족의 위치가 탄로 나지 않는 방법을 강구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이제르트 자작가의 원조가 시작됐다.

문수르는 이 과정에서 고구마와 맥주를 포함시켰다. 여기서 문수르가 포함시킨 맥주는 보통 맥주가 아니었다.

‘본래는 상품화를 염두에 두고 만든 맥주지만…….’

술은 매우 좋은 상품이다. 잘만 다루면 큰 돈이 된다. 때문에 문수르는 이제르트 자작령 내에서 온갖 술을 만들 생각이었다. 와인, 맥주부터 시작해서 막걸리 등 어스 월드의 온갖 주류를 만들 수 있는 만큼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일단 케르빈 월드에 가장 친숙하면서도 생산이 쉬운 맥주부터 만들어두었는데 그 중 일부분을 호우투 부족에 보내준 것이다.

이게 제대로 먹혔다.

식량을 지원 받은 호우투 부족 내에서 이제르트 자작가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단순히 이제트르 자작가의 원조에 감사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단 어떤 생물이든, 배가 불러지면 기분이 좋아지는 법이다. 여기에 약간의 음주를 섞으면 분위기가 풀어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말론은 이 분위기를 틈 타 다시금 이제르트 자작가와의 공조를 주장했다.

물론 당장 말론의 말이 통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무조건 반대하던 분위기에서 그래도 한 번 논의는 해보자, 하는 분위기가 조금씩 형성되기 시작했다.

말론은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자신의 의견에 조금이라도 동의하는 자가 있으면 그들을 포섭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한 명씩 자신의 편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 문수르와 말론은 몇 가지 대화를 나눴다.

“꼭 호우투 부족 전체가 도와줄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언히트가 기존 기가스에 비해 생산 단가도 저렴하고, 생산 속도도 빠르다고 하나, 그래도 이제르트 자작가의 사정 등을 고려해봤을 때 당장 양산 체제를 구축하는 건 어렵습니다. 결과적으로 드워프 장인 열 분 정도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말론은 그렇게 자신과 의견을 같이하는 드워프들을 모았다. 여차하면 호우투 부족을 나가 그들이 이제르트 자작과 거래를 할 생각이었다. 문수르는 여기서도 확답을 해줬다.

“합의나 협의는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그 결과 말론을 포함한 열한 명의 드워프들이 문수르가 만든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됐다.

5.

이제르트 자작가의 성 내에 자리가 마련됐다.

호우투 부족의 대표는 아니지만, 호우투 부족 출신의 드워프 열한 명이 테블스 동맹에 가입을 원했다. 탈라트 부족 역시 몇 가지 논의 끝에 테블스 동맹에 가입했다.

문수르는 가장 먼저 아이언히트 제조 및 양도에 대한 것을 논의했다.

그 이후에는 동맹의 다른 역할에 대해서 설명했다.

“테블스 동맹은 단순히 아이언히트란 기가스 생산이 아닌 모든 활동 전반에 걸쳐서 영향을 미칠 겁니다. 일단 당장 식량난을 겪고 있는 호우투 부족에 대한 지원은 주기적으로 지속될 겁니다. 특히 아이언히트 생산과는 별도로, 아이언히트 제조 작업에 참가하시는 모든 드워프 분들에게는 임금을 지급할 예정입니다. 더불어 엘프 마법사 분들 역시 임금을 지불할 예정입니다.”

동시에 자리를 함께한 이제르트 자작은 그 자리에서 이종족 차별 금지법을 발표했다.

이제르트 자작령 내에서만 유효한 법령이었지만, 그래도 이종족을 노예로 삼거나 혹은 이종족이란 이유로 차별을 할 경우에는 최고 사형에까지 이르게 한다는 법령이었다.

이 사실에 반대하는 드워프나, 엘프는 없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것들을 논의했다. 문수르는 최대한 엘프와 드워프에 대한 편의를 봐주기로 했다. 사실 아쉬운 건 그 누구도 아닌 문수르였으니까.

그런 문수르의 호의 덕분이었을까?

엘프와 드워프 역시 빠르게 합의를 해줬다. 테블스 동맹이 결성되고 바로 나흘 후부터 아이언히트 제조에 들어간 것이다.

아이언히트 제조가 시작됐다.

제조 과정은 초기부터 거침이 없었다. 이미 모든 과정에 대한 계획 및 설계는 끝난 상황이었다. 필요한 건 그 과정에 필요한 노동력이었다. 당장 드워프 장인 열한 명이 투입됐고, 여기에 탈라트 부족 출신의 마법사 일곱 명이 투입됐다.

특히 기가스 제조에 필요한 마법관련 부분이 그 어느 작업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다.

사실 마법사들이 할 일은 기가스에 사용될 마법진을 계산하고, 마법진을 새기고, 마력회로를 연결하는 작업인데 가장 어려운 작업이라 할 수 있는 마법진 계산 작업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이 계획을 기획한 게 누구인가? 한석균이다. 신의 울타리를 뛰어넘을 정도로 위대한 마법사! 한석균은 이미 아이언히트 제조에 필요한 마법진 계산을 끝낸 상황이었다.

필요한 건 마법진을 새기고, 마력회로를 연결하는 작업 뿐. 그러나 마법진을 새기는 것 역시 엘프 마법사들이 마법진을 이해하고, 그걸 적당히 표시하기만 하면 드워프 장인들의 빠르게 작업을 끝냈다. 결과적으로 마법사들이 해야 하는 가장 힘든 작업은 마력회로를 연결하는 작업 정도였다. 그러나 이 작업은 앞서 말한 두 가지 작업에 비하면 그다지 대단한 노동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 부분 때문에 폐욤이 문수르를 찾아왔다.

“대체 자체는 누구에게 이런 지식을 얻은 건가?”

폐욤이 바보도 아니고, 지금 아이언히트에 사용된 마법진이 보통 마법진이 아님을 모를 리 만무하다.

아주 세련된…… 아니, 세련된 정도가 아니라 기존의 마법들보다 한 차원을 뛰어넘는 수준의 마법진이었다. 나름 뛰어난 실력의 마법사인 폐욤조차 기겁할 정도로 말이다.

보통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마법진이 아니었다. 적어도 마법이 궁극의 경지에 다다른 대마법사 정도만이 각고의 연구 끝에 내놓을 수 있는 마법이었다.

“죄송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건 아직 이르다.

문수르는 그 부분만큼은 비밀을 엄수했다. 그 때문에 의심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문수르의 모습에 폐욤은 깊게 파고들진 않았다. 어쨌거나 이번 테블스 동맹으로 인해 탈라트 부족이 얻은 이익 역시 적지 않았으니까.

그로부터 한 달 후, 7월 중순에 접어들었을 때 드디어 아이언히트 1호기가 완성이 됐다.

6.

아이언히트.

1세대 기가스, 1배 급 기가스가 보통 5미터 정도의 신장을 가지는 것에 비해 아이언히트의 신장은 4미터 정도다. 보통 기가스보다 1미터 정도, 대략 머리 하나 크기가 작은 셈이다.

신장만 작은 게 아니다. 몸의 크기도 보통 기가스에 비해서 6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출력은 0.6배 급.

그러나 이동속도는 1배 급 기가스가 보여주는 최대속도인 시속 30킬로미터보다 훨씬 빠른 시속 45킬로미터다. 기동력 면에서 무려 1배 급 기가스보다 1.5배나 빠른 것이다.

생산 단가는 훨씬 더 저렴해졌다. 특히 재료 대부분을 호우투 부족의 광산에서 난 광물을 쓴 탓에 재료비가 적게 들었다. 1배 급 기가스보다 생산단가가 1/5에 불과한 2천 골드 남짓한 액수였다.

아이언히트의 최고 장점은 바로 장갑이었다. 기존 기가스에 사용되는 철이 아니라, 문수르가 특별히 만든 합금, 일명 아르늄 합금이 사용됐다. 철에 비해서 무게는 1/2에 해당할 뿐더러 강도나 경도 등 종합적인 내구성이 철에 비해 2배 가까이 우수한 엄청난 금속이었다. 덕분에 출력이 낮음에도 엄청난 기동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감개무량하군.”

아이언히트를 바라보던 문수르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 대 생산에 2천 골드. 이제르트 자작령에서 올해 수확기가 지나가고, 다시 겨울이 지나가면 영지 수입은 최대 6만 골드까지 늘어날 것이다. 영지 운영을 위한 지출도 늘어나겠지만, 최소한 3만 골드 정도는 여유를 둘 수 있다.’

1년에 3만 골드.

매년 15대의 아이언 히트를 생산할 수 있는 액수다. 말이 15대지, 제 아무리 1배 급 기가스보다 출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막강한 전력을 보여주는 아이언히트를 15대나 가진다는 건, 1배 급 기가스를 대여섯 대 보유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겨울에 작업을 시작한다.’

문수르의 목표는 일단 아이언히트 10대를 보유하는 것이다. 10대를 보유한 다음에는?

‘테블스 산의 개간을 시작해야겠지.’

겨울 동안 테블스 산을 개간할 것이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개간할 것이다.

특히 호우투 부족과 탈라트 부족 그리고 이제르트 자작령 사이를 연결하는 부분을 확실하게 개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세 세력 사이의 교류가 활발해질 터.

물론 당장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

“문수르 경.”

“자작님, 무슨 일이십니까?”

“불스 백작가에서 편지가 왔네. 아무래도 빅토리안 공작가의 파티 때문인 것 같군.”

빅토리안 공작가의 파티.

그것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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