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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맨-84화 (83/293)

84화

2.

말론은 도무지 자신의 손에 잡힌 물체의 재질을 알 수가 없었다. 2백 년이 넘는 드워프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그 재질의 정체조차 알 수 없는 경우는 말이다.

‘대체 이게 무엇인가?’

너무 놀랐다.

처음에는 이것이 무엇인지 자력으로 알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말론은 인정해야 했다.

‘내가 아무리 보고 뜯어봐도 이것의 정체를 알기란 불가능하다.’

혼자서 이 괴상한 재질의 정체를 알아내는 건 결코 불가능하단 사실을, 그리고 그걸 알아내기 위해선…….

‘인간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인간 문수르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말론은 여기서 잠시 뜸을 들였다.

인간은 인간이다. 이 세상에는 믿을 만한 인간보다 믿을 수 없는 인간이 훨씬 많다.

더불어 인간은 탐욕스럽고, 비열하며, 머리까지 좋다.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자존심 따위는 바닥에도 던지고, 체면 따위나 명예도 쓰레기통에 넣을 족속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인간들 중에서는 확실히 믿을 만한 인간이 있긴 있다.

‘끄응!’

긴 고뇌 끝에 말론이 기어코 입을 열었다.

“자네, 나랑 대화를 하고 싶다고 했나?”

문수르, 드디어 그에게 제대로 된 기회가 온 것이다.

문수르와 말론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마 드워프와 인간이 이렇게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광경은 칼란 왕국에서도 보기 힘들 것이다.

오랜 대화 끝에 말론은 문수르란 인간에게 호기심을 그리고 어떠한 사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인간이 어쩌면 내게 생긴 기회일 지도 모른다.’

언제나 생각했던 호우투 부족의 미래, 드워프의 미래. 막연했던 그 미래에 대한 해답이 문수르에게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당장 호우투 부족의 미래를 걸고 도박을 할 자격이 말론에게는 없었다. 그러나 말론에게는 적어도 자기 의지대로 문수르를 따라가, 그가 어떠한 인간인지, 그에게 자신의 미래를 맡겨도 되는 건지 그걸 가늠할 자격은 충분히 있었다.

결정이 난 것이다.

“자네를 따라가겠네.”

“정말이십니까?”

“일단 확실히 말하지. 어디까지나 호우투 부족이 아닌, 말론 호우투란 개인이 자네를 따라가는 것이네.”

“하하하, 아무렴 어떻습니까? 말론 님과 같은 훌륭한 드워프 분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가슴이 벅차오르는데.”

문수르는 드디어 처음으로 드워프와 손을 잡았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 죽을 지경이었다.

3.

문수르가 돌아왔다.

“문수르 경이 왔다. 성문을 내려라!”

성문 위를 지키던 병사들이 문수르를 발견하자마자 매우 기뻐하며 소리쳤다. 그 병사의 말에 성문 전체가 들썩거렸다. 또투 부족과의 전쟁 이후 가뜩이나 거대했던 문수르의 존재감은 불스 백작과의 담판을 지은 이후로 이제 이제르트 자작령에서 절대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문수르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존재만으로도 병사들의 사기가 달라지는 수준이 된 것이다.

말론은 살짝 놀랐다.

‘이런 인간이 있었나?’

나름 몇 백 년을 살아온 말론이다. 인간과 최대한 관계를 피하고, 도망치듯 살아왔지만 인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개중에서 나름 영웅 소리를 듣는 강자, 실력자들을 본 적도 있다. 인간들 사이에서 치열한 전쟁, 그 속에서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이 보여주는 위엄을 직접 두 눈으로 본 적도 있다.

하지만 문수르의 그것처럼 존재만으로 인간의 모든 기질이 바뀌게 만드는 자는 딱 한 번 봤다.

‘그래, 백 년 전 표트르란 인간.’

표트르.

페스로 제국 황가에서 태어나 혼자의 힘으로 그 위대한 황권을 쟁취했던 자.

그런 그를 역사는 폭군(暴君)이라 불렀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학살도, 파괴도, 절망도 서슴지 않고 부리던 자.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걸 자기 멋대로 할 만큼의 힘과 지략과 권력과 능력을 가진 자였다.

그는 고작 9년 남짓한 기간 동안 황위에 올랐을 뿐이지만, 그 기간 동안 그저 황제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국과 왕국의 무수히 많은 자들이 죽었다.

그래서 폭군이라 불렸다.

문수르의 기질이 폭군 표트르와 똑같다는 건 아니지만, 단순히 존재만으로도 인간의 기질을 이리도 바꿀 수 있다는 점은 비슷했다.

더불어 어떠한 역사가는 말한다. 폭군 표트르가 무수히 많은 학살을 했던 건 사실이지만, 당시 그가 황위에 머물지 않았다면 무너져가던 페스로 제국은 확실하게 끝장났을 거라고. 표르트 황제의 폭정이 오히려 무너지고, 사분오열되던 페스로 제국을 하나로 뭉친 거라고.

한편 문수르는 병사들의 기세보다는 나름 어느 정도 보수가 진행되는 성벽에 만족했다.

‘그래 그렇게 돈을 발랐는데, 성벽은 멀쩡해야지.’

동시에 문수르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제 슬슬 전력이 안정되면, 농지 확보를 위해서 테블스 산도 개간해야 하고.’

드워프가 왔다.

이로써 문수르는 이제까지 이론적으로만 있었던 모든 것을 현실에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이제까지 이제르트 자작령의 변화는 놀라왔지만, 앞으로의 변화와 비교했을 때 그 변화는 있으나마나한 수준, 아주 미약한 변화에 불과할 것이다.

‘1년 안에 이제르트 자작령을 반석에 올려놓겠다.’

머릿속에 가득했던…… 하지만 현실에 부딪쳐 어찌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더불어 문수르가 가지고 있던 웅심(雄心) 역시 폭발했다. 한석균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문수르 역시 궁금했다. 이제르트 자작령이 어떻게 변할지, 이 시대가 어떻게 변할지!

그리고 그런 시대를 자신의 손으로 이끌고 간다는 사실이!

이런 사실에 심장이 미치지 않을 이가 있을까?

“들어가시지요.”

문수르는 자신의 심장을 미치게 해줄 말론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말론은 느꼈다.

‘문수르란 인간, 이제까지 연기를 했구나.’

순수하고, 해맑은 느낌이었던 문수르. 그러나 지금 말론의 눈에 비친 문수르는 그 누구보다 뜨겁게, 그 무엇보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의 화신이었다.

“흥!”

그 순간 말론은 저도 모르게 콧방귀를 뀌었다.

‘불을 무서워하면 드워프가 아니지.’

말론, 그 역시 보통 드워프들과는 다른 마음을 가진 자였다.

이제르트 자작은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문수르 경의 능력은 인정한다.’

문수르가 대단한 인간인 건 알고 있다. 이제까지 그가 보여준 일들은 단순히 업적 차원을 넘어서 기적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문수르가 대뜸 테블스 산에 들어가서 흑마법사를 잡겠다고 했을 때, 이제르트 자작은 살짝 의심했다. 제 아무리 문수르라도 그건 힘들지 않을까?

그런데 흑마법사를 잡아왔다.

심지어 문수르는 숙원이나 다름없었던 드워프까지 데려오는데에 성공했다.

“이제르트 자작님, 이쪽은 호우투 부족의 말론 님이십니다.”

문수르는 이제르트 자작 앞에 말론 호우투를 정중하게 소개했다. 그런 문수르의 모습에 이제르트 자작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래, 그렇게 나와달라는 의미로군.’

정중하게 소개한다는 것, 그것은 이제르트 자작으로 하여금 말론을 정중하게 대접해달라는 의미였다.

칼란 왕국 소속이 아닌 보통 귀족에게 드워프나, 엘프는 노예와 비슷한 존재들이다. 때문에 귀족들이 드워프나 노예를 정중하게 대접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애초에 귀족과 드워프 또는 엘프 사이의 만남이 상호존중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뿐더러, 오히려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것은 오랜 세월 인간들의, 특히 귀족들의 머리에 뿌리를 내린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르트 자작은 그 상식에 얽매이는 귀족이 아니었다.

“이제르트 자작이라 합니다. 땅의 일족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이제르트 자작의 모습에 말론은 제법 놀랐다.

‘이 자는 귀족 아닌가?’

귀족이 드워프에게 고개를 숙인다? 칼란 왕국이 아니면 결코 볼 수 없는 광경일 것이다.

“말론 호우투라 하오. 인간들의 예법을 몰라, 무례할 수도 있으니, 미리 사과하겠소.”

말론 역시 예의를 차렸다. 문수르는 그 모습을 보며 이야기가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이러지 말고 적당한 자리를 만들도록 하지요. 이것저것 할 이야기가 많지 않습니까?”

문수르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녀를 불러 몇 가지 주문을 했다. 하녀는 잽싸게 사라졌다.

이윽고 얼마 후의 시간이 지났을 때 하녀들이 여러 음식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개중에 눈에 띄는 건 당연히 고구마였다.

4.

“음음!”

고구마를 처음 먹어본 말론의 표정은 장관이었다. 수염으로 가득한 드워프가 이리도 다채로운 표정을 짓는지 문수르와 이제르트 자작은 처음 알았다.

“정말 맛있군.”

군고구마를 먹으며 감탄사를 내뱉는 말론의 모습에 문수르는 히죽거렸다.

‘거기서 놀라면 끝이 아니지.’

먹을 것 앞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더군다나 문수르가 이번에 준비한 건 단순히 군고구마뿐만이 아니었다.

“이것도 좀 드셔보시지요.”

“음? 이게 뭔가?”

“이제르트 자작에서만 수확되는 고구마와 감자라는 작물로 만든 요리입니다.”

“괴상한 요리군. 기름기가 많은 것 같은데…….”

“튀김입니다.”

“튀김? 그게 무슨 말인가?”

“일단 드셔보십시오.”

문수르가 준비한 새로운 요리! 그건 바로 고구마튀김과 감자튀김이었다. 고구마와 감자를 이용한 요리야 정말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개중에서 튀김을 가져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당장 있는 재료로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바삭!

“오오! 정말 맛있군.”

“음, 이건 나도 처음 먹어보는데…… 고구마튀김이란 것이 이리 맛있는데 왜 이제야 선보이는 건가?”

“하하, 고구마와 감자튀김의 진짜 맛은 그게 아닙니다. 자, 이 맥주를 곁들어 보시지요.”

바로 맥주 안주로 먹기에 제격이란 사실이다. 튀김 특유의 느끼함을 맥주가 잡아주는 건 문수르의 본래 세계에서라면 당연한 상식 아닌가?

‘후후후, 나중엔 치킨과 내가 특별히 만든 맥주를 내놓을 것이다.’

물론 그 궁극점은 치킨 맥주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 내놓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문수르가 내놓은 튀김과 맥주만으로도 이미 말론의 눈은 휘둥그레질 수박에 없었다. 가뜩이나 맥주를 좋아하는 드워프에게 이리도 훌륭한 술안주라니! 심지어 자리를 함께한 이제르트 자작 역시 이 맛에 반한 듯, 이러다할 말없이 식사에만 열중했다.

식사는 꽤나 오랫동안 그리고 매우 거칠게 진행됐다. 이제르트 자작과 말론은 서로 경쟁하듯 튀김과 맥주를 해치웠다. 문수르는 아무런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는 기다리는 것이다.

‘배가 부른 후에는 모든 게 순해지는 법이지.’

배가 부르면 호랑이도 고양이가 된다. 굳이 배를 채우는 맹수를 건드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진지한 대화는 식사가 끝난 후.

“끄억…….”

말론의 입에서 걸쭉한 트림이 나온 후에야 진행됐다.

“말론 님.”

“응?”

먹는 데에 정신이 팔린 탓에 문수르도 잊고 있던 말론.

“계속해서 그때 이야기를 이어서 하고 싶습니다. 이제르트 자작님과 함께 말입니다.”

“음!”

그러나 말론도 먹은 나이가 있다. 더군다나 이제가지 문수르와 했던 이야기는 보통 이야기가 아니었다.

문수르는 말했다.

거래를 하자고!

“그래,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거래.

특별한 단어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무수한 거래가 있지 않은가! 단지 문제는 타종족들 간에 그 거래라는 개념은 찾기 힘들다. 인간에게 있어 드워프나 엘프는 약탈과 수탈의 대상이다.

그러나 문수르는 말했다.

드워프 부족과 거래를 하고 싶다.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건 문수르의 개념에서는 아주 당연한 생각이었다. 단지 문수르가 이곳, 케르빈 월드의 사람이 아니라는 차이점만 있을 뿐.

처음 문수르의 말을 들었을 때 말론은 놀랐다.

‘거래라니…….’

그러나 놀람은 잠시였고, 말론은 문수르와 대화하면서 그에게 매료됐고, 그의 생각에 합의하기 시작했다. 말론은 이미 어느 정도 결정을 내린 상황이기도 했다.

‘거래를 할 것이다.’

호우투 부족을 대표해서 거래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말론, 개인의 자격으로 문수르와 거래를 할 생각이었다.

이제부터 논의하는 건 무엇을 줄 것이고, 무엇을 받을 것인가, 바로 그 부분이었다.

문수르는 설계도를 꺼냈다. 이제르트 자작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문수르가 이제까지 꽁꽁 숨기고 있던 설계도였다.

그런 설계도는 두 종류였다.

하나는 이제르트 자작령의 부흥을 위해 사용될 여러 물품들, 기기들의 설계도였다. 풍차라든가, 수로를 비롯해 건축까지! 다양한 장르의 설계도였다.

다른 하나는 바로…….

“문수르 경, 이건 설마?”

“허어! 이건 그거로군.”

“예, 맞습니다. 기가스의 설계도입니다.”

기가스의 설계도였다.

이제르트 자작은 놀랐다. 기가스의 설계도는 기밀 중의 기밀이다. 또한 기가스의 구조는 매우 복잡하고, 만드는 이의 목적과 성향에 의해서 많은 차이점을 가지기 때문에 멀쩡한 기가스를 완전 분해한다고 해도 설계도를 만드는 게 쉽지 않다. 문수르가 포비어의 기가스에 대해 많은 조사를 했다고 하지만, 설계도를 확실하게 만들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음!”

말론은 다른 의미로 놀랐다.

“이거, 보통 기가스가 아닌 것 같군. 아니, 이게 과연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매우 합리적이지만…….”

말론은 단숨에 문수르가 내놓은 기가스 설계도의 위대함을 그리고 부족함을 파악했다.

이 부분에서는 문수르가 놀랐다.

‘정말 드워프 능력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이런 설계도를 단숨에 꿰뚫어 볼 줄이야?’

단순한 기가스의 설계도가 아니다. 포비어의 기가스 정보를 토대로, 한석균과 로이드가 다시 만들어낸 설계도다. 케르빈 월드의 마법력에 어스 월드의 기술력이 합쳐진…… 케르빈 월드에서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공법과 기술력이 첨부된 최첨단 기가스다.

그러나 말론은 그런 기가스 설계도를 보는 순간 어느 정도 이해했다.

사실 그게 가능했던 건 말론이 기가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한 덕분이었다. 모든 드워프와 말론처럼 단숨에 문수르의 설계도를 꿰뚫어보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 부분은 오히려 문수르에게 메리트가 되면 메리트가 됐지, 손해가 되는 부분이 아니다.

“이거 만들 수 있는가?”

“드워프 족의 기술력이면 설계도 대로 만드는 건 가능하시겠죠?”

“시간은 걸리지만, 여건만 충분히 갖춰지면 설계도 대로 만드는 거야 어렵지 않지. 문제는 설계도가 타당한지 여부고…… 가장 큰 핵심은 이게 움직일 것 같진 않다는 거지. 이게 움직이려면 엄청난 마나 동력이 필요할 걸세. 적어도 보통 기가스의 5배…… 아니 6배 이상은 되어야 했군.”

“헉!”

6배 급 출력이란 말에 이제르트 자작은 기겁했다. 지금 가장 강력한 기가스는 제국이 보유한 3배 급 기가스다. 이 3배 급 기가스의 위력도 무시무시하다. 단 한 대로 콩탄 왕국을 점령할 정도였으니까. 여기서 출력을 0.1배 것도 무지막지하게 힘들다.

그런데 단숨에 6배 급 기가스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만약 정말 6배 급 기가스가 등장한다면…….’

이제르트 자작은 상상해봤다.

기가스는 출력이 1배 높아진다고, 2배나 강해지는 게 아니다. 산술적으로는 그렇겠지만 전술적으로는 다르다.

쉽게 말해서 1배 급 기가스 2대가 있다고 해서 2배 급 기가스를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반대로 머릿수를 이용해 전술을 펼칠 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2배 급 기가스를 잡기 위해선 1배 급 기가스가 2대 이상은 필요하다는 게 일반 논리다.

하물며 3배 급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1배 급 기가스는 제 아무리 뛰어도 3배 급 기가스를 쫓지 못한다. 그뿐인가? 단순한 공방전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3배 급 기가스와 1배 급 기가스가 서로 검을 휘두르면, 1배 급 기가스가 날아가 버린다. 어른과 애의 싸움이다.

그렇다면 6배 급이라면 어떨까?

‘제국의 3배 급 기가스들 전부와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꿈 같은 결과가 나올 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출력이 높아지면, 사용자에게도 부담이 생기지. 이 정도라면 오러 마스터가 파일럿으로 탑승해도 쉽지 않을 거야.”

“그렇습니까?”

이 와중에 말론은 문수르도 모르고 있던 문제점을 짚었다.

‘확실히 그렇겠군.’

문수르는 기가스를 만들 생각만 했지, 거기 탑승할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 했다.

한편 말론은 지금 이 설계도를 어떻게든 머릿속에 넣으려고 했다.

‘이것만 있으면…….’

그렇게 원했던 기가스의 설계도다. 그것도 보통 기가스가 아니라, 엄청난 기술력이 내포된 기가스다. 솔직히 말론은 지금 이 설계도에 나온 기술력만으로도 온몸이 근질거릴 정도였다.

떼굴떼굴!

그렇게 열심히 눈을 굴리는 말론. 그런 말론의 모습에 문수르는 미소를 지었다.

“말론 님.”

“말하게.”

“만약 이제르트 자작가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신다면, 이 설계도를 비롯해서, 원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양도를 해드리겠습니다.”

“뭣이라?”

말론이 기겁했다.

“그러니까 내가 자네들을 도와주면 이 설계도를 그냥 주겠다? 지금 그런 말을 한 건가?”

“그게 거래내용이면 안 될 게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르트 자작님?”

“흠…….”

기습적으로 바톤을 넘겨 받은 이제르트 자작.

“만약 거래에 대한 양측에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이제르트 자작가는 결코 그 거래에 토를 달지 않을 것이오. 내 이름과 가문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리다.”

이제르트 자작은 이미 문수르를 믿고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이런 일에 자신의 사견을 내세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말론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아니야.’

말론의 머릿속이 부정했다. 보통 드워프라면 이 순간 환호성을 내지르며 계약을, 거래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말론은 아니었다.

그는 한 번 더…… 여기서 한 번 더 생각을 했다.

‘고작 단순히 이것 하나만 얻으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까?’

말론은 스스로에게 물었고, 대답을 내놓았다.

“하나 묻겠소.”

“얼마든지 물어보시죠.”

“거래를 여러 번 해도 무방한가?”

한 번이 아닌 여러 번의 거래…… 그거야 말로 문수르가 가장 기대하는 물음이었다.

“물론입니다. 더불어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그렇기에 문수르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가장 원했던 것을 제시하기로 마음먹었다.

“동맹을 맺는 것도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그것은 바로 드워프 부족과의 동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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