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81화 (80/293)

81화

6.

흑마법사가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흑마법사의 손에서 검은 가루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검은 가루는 바람을 타고 공중에 흩뿌려졌다.

문수르는 숨을 멈췄다. 흑마법사가 뿌리는 그것이 독(毒)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접어든 이후로 웬만한 독에는 끄덕하지 않는 문수르지만 상대는 7서클 수준의 흑마법사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오러 마스터와 7서클의 흑마법사가 싸울 경우, 어느 한 쪽이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다.

‘작은 방심이 승패를 가른다.’

조금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는다. 문수르는 다시금 긴장의 끈을 바짝 조였다.

한편 흑마법사가 뿌린 검은 가루는 사방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검은 가루에 닿은 나무나, 땅이 묘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꿈틀꿈틀!

나무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고, 땅이 들썩거리며 땅속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라왔다.

‘데몬 트리(Demon Tree)와 오크 좀비로군.’

데몬 트리, 나무에 사악한 마력을 집어넣는 일종의 소환 마법이고, 오크 좀비는 지금 저 흑마법사의 최대 장기이자, 주력 기술이겠지.

‘둘 다 까다롭다.’

더불어 데몬 트리는 막강한 생명력, 제 아무리 뿌리를 베어도 엄청난 재생능력을 보여주는 소환물이였으며, 저 흑마법사가 만든 오크 좀비는 이미 문수르도 한 번 경험해본 적이 있다. 온몸이 박살이 나도, 어느 순간 제 몸을 수복하는 좀비, 그 이상의 존재다.

어떤 의미에서는 문수르 같은 무인(武人)들에게는 최악의 궁합이나 다름없는 몬스터다. 무인들의 물리적인 공격으로는 이러다할 피해를 주기 힘드니까.

오러를 쓴다?

물론 오러를 이용하면 제 아무리 강력한 몬스터도 쉽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쉽게 지치지도 않는다. 오러 마스터 정도면 정말 불철주야 싸우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결국 오러 마스터에게도 한계가 있다. 한계에 도달하면 지치게 되고, 지치면 패배인 것이다.

결국 이 승부, 소환물을 처치하는 걸로는 결론이 나지 않는다.

‘본체를 노린다.’

문수르가 이기기 위해서는 오크 좀비나, 데몬 트리가 아닌 흑마법사 자체를 공격해야 한다.

‘로이드, 공격 루트 계산해. 위치 추적 수시로 하고.’

- 알겠습니다.

로이드가 빠르게 흑마법사의 위치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 상대의 위치가 시시각각 이동 중입니다.

‘젠장, 역시 블링크를 쓰는군!’

그러나 만능이라고 여겨졌던 로이드 역시 마법 앞에서는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마법사들이 바보도 아니고, 오랜 세월 동안 오러를 쓸 줄 아는 무인들과 싸워오며 많은 노하우를 가지게 됐다. 그 과정에서 마법사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게 되는 마법이 있으니, 바로 5서클의 순간이동 마법 블링크다. 장거리 이동마법인 텔레포트 등에 비해서는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10∼100미터 내외에 불과하지만, 마력소모가 적고, 육탄전 및 근접전 능력이 떨어지는 마법사들이 가장 자주 애용한다.

특히 5서클 마법을 부담 없이 쓸 줄 아는 6서클 이상의 마법사들은 블링크를 거의 마음대로 쓸 수 있다. 블링크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를 사용하면 마력공급만으로도 언제든지 마법을 쓸 수 있으니까.

소환물과 오크 좀비를 이용해 적과 싸우게 만들고, 자신은 블링크를 이용해 상대와 거리를 벌린다.

최고의 조합이다.

‘마법사가 근접전에 약하다고? 확실히 개소리군.’

문수르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만약 문수르가 자기 맨몸뚱이로 이곳에 왔다면 필패(必敗)다. 그러나 결국 문수르에게는 로이드가 있다.

‘상대방도 블링크를 마음대로 쓸 수는 없을 터.’

확실히 7서클 마법사 정도 되면 마음 내킬 때마다 블링크를 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쓰고 난 다음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백 번 쓰려면 백 번 쓸 수는 있다. 하지만 1초마다 쓸 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 틈, 블링크 마법과 블링크 마법 사이의 틈을 노려야 한다.

그리고 거리를 좁히게 되면…….

‘그리고 마나 쇼크 준비해.’

마나 쇼크!

그건 문수르가 준비한…… 그리고 한석균이 만들어낸 비장의 한 수였다.

한석균은 케르빈 월드에 기가스가 판을 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한 가지를 떠올렸다.

“기가스는 결국 골렘. 거기에 마력으로 움직이는 기계. 그렇다면 마력만 없애면 그저 무거운 돌덩이에 불과하지.”

EMP 무기의 그것처럼, 상대방의 무기를 무력화시키는 것도 매우 효과적인 공격 방법이다.

더군다나 한석균은 마력을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마력을 일시적이나마 강제로 마나 상태로 바꾸는 이론을 알고 있었다.

마력이란 건 마나의 가공물이다. 쉽게 말해서 마나가 석유라면, 마력은 경유 정도로 보면 된다. 오러는 등유 같은 개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경유로 가는 자동차에 그냥 석유를 넣으면 문제가 생긴다.

마력도 마찬가지다. 마력으로 움직이던 것에 갑자기 마력이 아닌 마나를 주입하게 되면, 필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한석균은 그걸 가능케 하는 장치를 개발하는 데에 성공했다.

물론 아직 실험단계다.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그 수준이 미약하다. 마나 쇼크의 지속시간은 기껏해야 2초 남짓이고, 범위 역시 반경 3미터가 한계다. 솔직히 말해서 기가스를 상대로는 쓰기 뭐하다. 기가스 한 대 정도를 2초 정도 무력화시키는 게 전부일 테니까.

하지만 마법사라면 좀 다르다.

마법사의 경우에는 마법을 쓰다가 그 마법이 실패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리바운드 현상이 일어나며, 피해를 입으니까.

흑마법사처럼 억지로 보다 많은 마력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피해의 정도가 더 심하다.

그래서 아직 실험단계임에도 한석균은 문수르가 흑마법사를 잡는다고 했을 때, 마나 쇼크가 가능한 장치를 줬다.

문수르가 믿는 구석, 비장의 한수가 바로 이 마나 쇼크였다.

‘마나 쇼크는 1회용이다.’

더불어 아직 실험단계라 마나 쇼크는 한 번만 사용이 가능하다. 일종의 폭탄 같은 개념이니까. 한 번 사용하게 되면 그걸로 끝인 거다.

그래도 그 한 번의 마나 쇼크로 제 아무리 강력한 흑마법사도 일시적으로 무력화된다는 건, 정말 엄청난 수법이다.

더군다나 오러 마스터인 문수르에게 2초면, 상대를 아주 곤죽으로 만들 수도 있는 시간이다.

‘거리만 좁히면 된다.’

문수르는 몰려오는 오크 좀비와 데몬 트리를 산산조각 내며, 빠르게 움직이는 흑마법사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흑마법사의 움직임이 원형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더불어 흑마법사의 블링크 역시 무적은 결코 아니었다. 더군다나 소환물을 이용해 싸우는 전투 타입이다.

소환물을 무한정 소환할 수 없는 소환물 주변을 맴돌며, 소환물을 지휘해야 한다.

행동반경이 한정된단 의미다.

문수르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희소식도 없을 터!

‘가속한다.’

문수르가 승부를 걸었다. 단숨에 오러를 끌어 모은 후에, 그 모든 오러를 발에 집중했다.

콰앙!

문수르가 땅을 박차자, 땅이 거세게 파이며, 모래 구름이 피어오를 정도였다. 문수르의 이동 속도 역시 이제까지와는 전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빨라졌다.

문수르가 단숨에 흑마법사와의 거리를 좁혔다.

“흐흐흐, 멍청한 놈!”

그러나 그런 문수르를 흑마법사는 미련하다 여겼다. 달리기만으로 마법사를 잡는다는 건 무식하다 못해 멍청한 짓이다.

번쩍!

흑마법사는 잽싸게 블링크 마법을 쓰며 이동했다.

그와 동시에 문수르의 몸이 틀어졌다. 단숨에 흑마법사의 위치를 파악한 문수르는 다시금 순식간에 흑마법사와의 거리를 좁혔다.

순식간이었다.

“헉!”

흑마법사도 기겁할 정도였다.

하지만 흑마법사는 빠르게 블링크를 쓰며 거리를 좁혔다. 상대가 6서클이었다면 이렇게 빨리 다시 블링크를 쓰진 못했을 것이다. 제 아무리 악마의 힘을 빌렸다고 해도 7서클 마법사의 저력을 무시할 순 없다.

‘전력을 다했는데.’

빠득!

여기서 문수르는 살짝 이를 물었다.

상대방의 위치를 파악하는 순간, 전력을 다해 거리를 좁혔는데 실패했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보고 판단하면 늦는다.’

상대방이 움직인 다음에 움직이면 늦는다.

결국 상대방의 이동경로를 예측해야 한다.

“흥!”

보통 경우라면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문수르에게는 결국 로이드가 있었다.

‘이제부터 놈의 이동 위치를 예측해.’

- 알겠습니다.

로이드가 멀티 글라스 위로 흑마법사의 이동 경로를 예측하여 표기하기 시작했다.

파밧!

문수르는 달렸다.

‘도박이다.’

사실 이건 도박이다. 상대방이 움직일 이동경로는 대여섯 개고, 문수르의 몸뚱이는 하나다.

결국 하나를 찍어야 한다는 거다. 아무리 여러 가지 확률 놀음을 한다고 해도, 도박은 도박이다.

더불어 지금 문수르는 그 도박에 많은 배팅을 할 수 있다. 최대한 오러를 끄집어내 육체 능력을 극대화시키는데 사용했으니까. 제 아무리 오러 마스터라도 이 정도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다 보면 금방 오러가 바닥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때였다.

“어?”

“응?”

한 번의 배팅.

- 마나 쇼크 발동합니다.

그 한 번의 배팅이 성공했다. 단 한 번의 도박으로 문수르는 흑마법사와의 거리를 지척으로 좁힐 수 있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문수르와 흑마법사, 둘 다 당황했다.

흑마법사는 블링크 마법을 쓰자마자 눈앞에 등장한 문수르의 모습에!

반대로 문수르는 한 방에 흑마법사를 쫓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에!

그 순간 로이드만이 냉정하게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로이드는 곧바로 마나 쇼크를 발동시켰다.

꽈릉!

묘한 파장이 문수르의 몸에서 시작되어, 반경 3미터를 훑고 지나갔다.

“크헉!”

흑마법사는 피를 토했다.

“쿨럭!”

문수르 역시 피를 토했다. 문수르는 몰랐지만, 결국 문수르가 사용하는 오러의 근본도 마나다. 오러가 강제로 마나로 돌아가면, 문수르 역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마나 쇼크는 말 그대로 마력이나 오러 따위, 마나의 가공물을 일시적이나마 상제로 마나 상태로 돌리는 거니까.

씨익!

그러나 문수르는 웃었다.

마력도 오러도 의미가 없는 상황이라면, 결국 본래 가지고 있던 순수한 힘이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는 거다.

비루한 몸뚱이의 흑마법사와 각고의 훈련과 개조를 통해 발달한 문수르의 몸뚱이!

무엇이 더 순수한 힘을 가졌을 지는 비교할 필요도 없다.

“체크 메이트다.”

문수르의 창이 단숨에 흑마법사의 심장을 향해 날아갔다.

푸욱!

단숨에 흑마법사의 가슴을 관통하는 창. 그 창끝으로는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크허허억!”

흑마법사는 비명을 토해냈다. 이번에는 허상이 아니었다. 흑마법사 본인이었다.

“으으!”

비명을 내지르던 흑마법사의 몸뚱이가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대가였다. 악마에게 영혼을 넘긴 대가, 죽음과 동시에 악마의 비루한 노예가 되는 과정이었다.

“아, 안 돼!”

때문에 흑마법사들은 온갖 사악한 짓을 저지르고, 세상 모든 것들에게 잔혹한 죽음의 공포를 선사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죽음을 두려워하는 족속이기도 하다.

순식간이었다.

푸수수수!

문수르의 창에 꽂혔던 흑마법사의 몸뚱이가 잔해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녹아버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말이다.

“쿨럭!”

동시에 문수르의 입에서 재차 기침이 나왔다. 피가 섞인 기침이었다. 문수르가 이죽거렸다.

“젠장, 이런 말은 없었잖아.”

마나 쇼크로 자신이 이렇게 피해를 입을 줄은 몰랐다. 만약 그 피해 정도가 더 컸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실험 단계는 실험 단계군.”

이런 식이면 나중에 써먹기 뭐하다. 1대1이니까 다행이었지, 만약 주변에 다른 적이 있었다면 위험할 뻔했다.

아니, 실제로 주변에는 다른 적들이 넘쳐났다. 흑마법사가 소환한 소환물들! 만약 흑마법사가 자신의 소환물들 사이로, 오크 좀비 사이로 이동했다면, 문수르는 흑마법사를 죽임과 동시에 놈들의 공격에 노출되어 죽음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

정말 천운이 따른 셈이다.

“그럼 일단…….”

슬슬 몸에 오러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오크 좀비들이 문수르를 향해 다가왔다. 데몬 트리는 흑마법사가 죽음과 동시에 사라졌지만, 오크 좀비는 아니었다. 놈들은 모든 힘이 다 할 때까지 살아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선 처치하고 싶지만…….’

이곳이 영지였다면,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서라도 오크 좀비를 처치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긴 테블스 산. 오크 좀비와 몬스터들이 싸워 공멸하면, 나야 좋지.’

그러나 테블스 산 속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아차.”

순간 문수르가 놀라며 흑마법사가 녹아 문드러진 땅 위를 헤집기 시작했다.

그러자 땅 위에서 계약서 한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악마의 계약서다.

흑마법사가 죽었을 경우 남기는 유일한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게 문수르가 흑마법사를 잡았다는 증거가 되어줄 것이고, 불스 백작에게 발언권을 낼 수 있는 명분이 되어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다.

문수르는 준비해둔 통 안에 조심스럽게 악마의 계약서를 넣었다.

‘그럼 이제 드워프 부족을 찾으러 가면 되겠군.’

이것으로 한 가지 미션이 끝났다.

그러나 문수르는 몰랐다.

지금 이 순간 나무 사이로 그를 노려보는 검은 피부의 시선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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