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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맨-80화 (79/293)

80화

5.

말론은 곧바로 자신의 부족으로 돌아갔다. 상황이 좋지 못했으니까. 가장 우려하던 흑마법사가 드디어 호우투 부족의 영역 안에 들어온 것이다.

‘하루 빨리 짐을 싸서 다른 광산을 찾아 이동해야 한다.’

테블스 산이라는 혹독한 몬스터들의 땅에서 이제까지 호우투 부족이 나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빠른 판단과 대응 덕분이었다. 호우투 부족은 나름 융통성이 있었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오랜 시간 지내온 영역을 벗어날 정도의 융통성 말이다.

그러나 그 융통성 외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니라 드워프 부족의 짧은 다리였다.

‘지금 당장 짐을 싼다고 해도 얼마나 이동할 수 있을까?’

짧은 다리.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드워프 부족의 가장 큰 약점, 드워프 부족이 이제까지 인간에게 사냥을 당해왔으며, 결국 인간들로부터 도망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니라 짧은 다리다.

상식적으로 드워프는 기술력이 엄청나다. 인간의 그것과는 비교도 될 수 없다. 드워프가 대충 만든 무구가 인간들 사이에서는 보검, 보구 소리를 듣는다. 보검, 보구가 왜 보검 보구겠는가? 보통 무기로는 쉽게 해할 수 없고 반대로 보검을 휘두르면 보통 무구 따위는 작살이 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드워프는 강하다. 전투능력은 인간하고 비교도 안 되고, 지구력도 장난 아니다. 드워프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하루 종일 싸울 수 있다. 여기에 부족원 대부분이 엄청난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힘도 무지막지하게 세다.

이뿐인가? 드워프는 나름 사회가 구축되어 있다. 부족이 따로따로 지내는 엘프들과는 다르게, 드워프는 기회가 되면 다른 부족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충분히 한다. 한때는 드워프 왕국도 있었다. 왕을 뽑고, 그 왕을 따르는 성정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상식적으로 드워프가 세상을 지배하진 못해도, 인간들에게 사냥감 취급당하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어디 하나 인간들에 비해 부족한 게 없는 그들인데 왜 이런 꼴로 살게 된 껄까?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짧은 다리, 그로부터 생기는 기동력의 부재 때문이었다. 다리가 짧다 보니, 말을 탈 수도 없다.

기동력의 부재는 생각보다 매우 중요한 문제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에 대한 대응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특히 전쟁에서 기동력은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기동력이 없는 군대는 공성(攻城)은 물론 수성(守成)에서도 불리한 법이다.

때문에 어느 군사(軍師)는 말한다.

만약 드워프 평균 신장이 20센티미터만 더 컸어도, 인간이 드워프를 노예 부리듯 부리는 시대는 오지 않았을 거라고.

그리고 드워프들 역시 이런 자신들의 짧은 다리를 매우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말론도 마찬가지였다.

도망치는 건 도망치는 건데, 과연 도망치는 데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혹여 그 흑마법사가 호우투 부족을 노린다면? 이제까지야 오크들만 노리던 흑마법사였지만, 갑자기 취향이 바뀌어서 드워프를 노린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않은가?

거기에 기동력이 느리니, 이주할 장소를 찾아도 거기까지 가는 동안 많은 문제가 생긴다.

테블스 산은 몬스터 소굴이다. 드워프의 강력한 힘으로도 어찌 못하는 몬스터들이 우글우글 거린다. 특히 오크 놈들! 오크 놈들은 드워프를 보면 입에 거품을 문다. 오크들에게 있어 드워프를 공격해 무기를 얻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니까.

특히 테블스 산의 오크들은 보통 오크들과 그 머릿수 자체가 다르다. 아무래도 오크들 역시 테블스 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 뭉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골치 아프군.’

그런 말론의 머릿속에 인간 문수르에 대한 생각은 티끌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문수르는 고민했다.

‘일단 지금 일의 우선관계를 정하자.’

문수르의 앞에는 지금 두 마리의 토끼가 등장했다. 흑마법사와 드워프. 한쪽은 토끼치고는 무시무시하지만, 일단 문수르가 가장 원하는 것 두 개가 등장했다.

기쁜 일이다.

‘둘 다 잡으려고 했다간 놓친다.’

그러나 냉정하게 봤을 때 현재 문수르의 재량으로는 그 중 하나만 얻는 것도 벅차다.

결국 문수르는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순위를 정하면 흑마법사를 처치하는 게 우선이다.’

흑마법사가 지금 작정하고 등장한 이상, 놈을 처치하는 게 최우선이다. 하지만 만약 그 흑마법사의 능력이 문수르도 어찌할 수 없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문수르는 자신이 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흑마법사를 본다고 무조건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 문수르에게 흑마법사를 찾을 수 없을 경우, 꼭 해야 하는 게 한 가지 있다.

그건 바로 흑마법사의 흔적을, 단서를 확보하는 것이다. 흑마법사를 처치해야하는 건 어디까지나 명분을 얻기 위함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전공(戰功)을 세우는 거다. 하지만 이 전공이란 게 꼭 적을 해치워야만 세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정보를 캐내고, 적을 처치하기까지 많은 공로를 한 자도 전공을 인정받는다.

잡는 게 최선이지만, 그게 안 되면 차선책도 충분히 있다는 거다.

더불어 문수르는 한 가지 비장의 수도 있었다. 흑마법사를 만날 경우, 확실하게 먹힐 비장의 수가!

‘어쨌거나 흑마법사를 찾기만 하면 된다.’

말론의 추적은 어렵지 않다. 로이드가 전담하면 되니까. 어디를 가든, 로이드는 말론을 놓치진 않을 것이다.

그럼 흑마법사를 찾은 후에 드워프 부족을 찾아가면 된다.

‘오케이.’

우선순위가 정해졌다.

남은 건 행동이다.

문수르는 오크 좀비들 주변을 맴돌았다. 오크 좀비들은 워낙 생명력이 질기고, 수복 능력이 뛰어난 탓에 어떤 몬스터를 만나도 쉽게 죽지 않았다. 더불어 문수르는 이제까지 오크 시체만 보다가, 오크 좀비를 발견한 걸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다크 엘프까지 붙인 걸 보면, 오크 좀비로 무언가 하려는 게 분명하다.’

흑마법사는 오크 좀비들을 이용해 어떠한 목적을 이루려고 한다. 그렇다면 오크 좀비 주변에서 감시를 하다 보면 흑마법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을 터.

문수르의 예상은 맞았다.

“응?”

테블스 산 이곳저곳을 떠돌며 온갖 몬스터들과 싸우던 오크 좀비들은 자신들이 죽인 몬스터의 심장만을 모았다. 그렇다고 그 심장을 먹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모은 심장들은 가죽 주머니에 보관했다.

‘심장을 모은다?’

적어도 오크 좀비들이 써먹으려고 모으는 건 아닐 터. 저 심장은 아마도 흑마법사의 마법 실험 재료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저 심장을 넣은 주머니는 언젠가 흑마법사의 손에 들어갈 것이다. 언젠가는 말이다.

‘로이드.’

- 인식했습니다.

저 주머니만 쫓으면 된다.

문수르가 그런 각오를 품은 지 보름이 지났을 때, 문수르는 처음으로 흑마법사와 조우할 수 있었다.

그 흑마법사는 검은 가죽으로 만든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문수르는 그 가죽이 오우거 가죽…… 그것도 자이언트 오우거의 가죽임을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다.

‘보통은 넘는다, 이거군.’

그 무시무시한 자이언트 오우거의 가죽을 제 옷으로 만들 정도면 보통 실력은 아니다.

‘보통 이 정도면…….’

오러 마스터를 보통은 7서클 마법사와 비교한다.

하지만 오러 마스터에도 수준이 있는 것처럼, 7서클 마법사도 그냥 단순히 7서클 마법사이냐, 7서클 마스터이냐 차이가 있다.

더불어 마법은 오러 마스터와는 다르게 그 장르와 폭이 굉장히 넓다. 상성도 여러 가지가 있다.

‘7서클 정도는 된다.’

결과적으로 문수르는 자신이 발견한 흑마법사의 실력이 7서클 수준임을 파악했다.

사실 7서클 마법사란 게 보기 쉬운 건 아니다. 정통적인 마법을 익힌 마법사들 중에 7서클 경지에 올라설 경우, 그들은 오러 마스터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

그리고 사실 그 점 때문에 재능 있는 마법사들 중 적지 않은 숫자가 흑마법에 빠지는 것이다.

개인차가 크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흑마법에 빠지게 되면…… 그러니까 악마 앞에 충성을 맹세하고 영혼을 바치게 되면 1서클 정도가 더 오르게 된다. 6서클의 마법사가 악마에게 영혼을 바치면 7서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흑마법사들 중에서는 대부분 서클이 높다. 5서클 또는 6서클 수준에서 벽에 가로 막힌 채 절망하다 악마에게 영혼을 바치는 이들이 대부분이니까. 당연히 흑마법사들도 그보다 1서클 높은 6서클이나 7서클이 대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세상 모든 것에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흑마법사는 언제나 무너질지 모른다. 본래는 6서클 정도의 그릇에 억지로 7서클의 물을 집어넣은 상태라, 상태가 굉장히 불안정하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사실 까놓고 말해서 단순히 악마에게 영혼을 바치는 것만으로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나쁠 게 없다. 자기가 나중에 책임지면 되니까.

문제는 불안정한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악마로부터 힘을 지원 받아야 하는데, 악마들은 대부분 아주 사악한 것들을 요구한다. 산제물, 어린 아이의 심장, 처녀의 피 따위…… 이 때문에 흑마법사들은 살기 위해 온갖 패악을 저지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정신도 타락하게 되어 미치광이가 된다.

세상이 흑마법사를 배척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 세상 천지에 좋은 흑마법사, 착한 흑마법사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느낌이 아니다.’

그러나 문수르는 여기서 살짝 이상함을 느꼈다.

또투 부족이 이제르트 자작령을 공격하던 그때, 문수르는 흑마법사의 기운을 느꼈다.

그 기운은 무시무시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흑마법사는 그때의 느낌이 나질 않는다.

한 번 해볼만 하다?

‘내가 강해져서 그런가?’

문수르 실력이 늘고, 나름 철저히 준비를 해서 그런 거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문수르는 나름 확신을 가졌다.

‘해볼만 하다.’

최악의 경우…… 문수르가 제 아무리 발악을 해도 흑마법사를 어찌하지 못하는 경우는 피한 것 같다.

그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속전속결.’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다. 흑마법사들은 보통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던전을 만들고 그 안에 온갖 함정을 설치하는데 지금 흑마법사는 그저 숲 한 가운데 있을 뿐이다.

최고의 기회다.

놓칠 필요가 있는가?

휘리릭!

순간 문수르의 손 안에서 창이 회전하며, 이윽고 거친 오러 폭풍을 토해냈다.

스파이럴 어택!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발사된 스파이럴 어택은 단숨에 흑마법사를 관통했다.

흑마법사의 몸뚱이가 공중에 붕 날았다. 아니, 붕 나는 정도가 아니었다. 폭풍에 휘말린 낙엽의 그것처럼 하염없이 농락당하고 있었다. 문수르의 눈빛이 빛났다.

‘선수필승!’

기습 공격이 제대로 먹혔다.

마법사를 상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상대가 마법 준비, 즉 캐스팅 하는 걸 막는 것이다.

지금 저 상황에서 캐스팅을 할 수 있는 마법사는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문수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문수르는 뛰었다. 흑마법사를 향해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보법을 밟으며, 단숨에 오러를 끄집어 내 전신에 퍼뜨렸다. 동시에 그 오러들의 일부를 창에 집중시켰다.

출렁!

문수르의 창에서 섬뜩한 오러 피어스가 솟아올랐다. 가뜩이나 긴 문수르의 창이 3미터, 4미터…… 아니 5미터로 길어졌다. 문수르는 그 창을 거세게 휘둘렀다.

서걱!

문수르의 창이 단숨에 흑마법사의 몸뚱이를, 가죽 로브와 함께 통째로 베어버렸다.

그 순간!

“아!”

문수르의 입에서는 짧은 탄식이.

후두두둑!

절반으로 잘려나간 가죽 로브에서는 검은 박쥐들이 튀어나와 문수르의 시야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설마!’

없다.

흑마법사가 있어야 하는 가죽 로브 안에는 아무도 없다!

“흐흐흐…… 예전부터 날 뒤쫓던 생쥐 놈이 바로 네놈이었군.”

그 순간 박쥐 떼들 사이로 음습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문수르는 목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쉬익!

창이 오러 블레이드를 뿜어냈다.

휘익휘익!

그러나 오러 블레이드는 애꿎은 허공만을 가를 뿐이었다.

‘목소리는 들렸는데?’

소리는 들리나, 형체는 어디에도 없다.

‘마법이군.’

이런 말도 안 되는 것이 가능한 건, 상대가 마법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터.

꿀꺽!

문수르는 침을 한 번 삼켰다.

‘이걸로 진정한다.’

침 한 번 삼킨 것으로 혼란스러워졌던 머릿속을, 두근두근 거리던 심장을 진정시켰다.

마음과 정신이 평온해지자, 문수르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윽고 문수르는 소리쳤다.

“내 이름은 문수르! 네놈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나, 네놈을 처단할 콩탄 왕국의 기사다!”

문수르의 외침.

그건 바로 전투의 시작, 효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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