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4.
문수르는 드워프의 존재를 발견하고 희열을 느꼈다.
‘정말이다.’
정말 너무 찾고 싶었던 존재다. 이제까지 문수르가 가진 엄청난 것들을, 하지만 정작 케르빈 월드의 부족한 기술력 때문에 감히 보여주지 못했던 것들을 구현해줄 수 있는 장인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문수르는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알고 있다. 여기서 드워프를 도와주는 게 호감을 쌓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란 것쯤은 말이다. 제 아무리 사람에게 적대적인 드워프라고 해도 자신을 도와준 이에게 대뜸 도끼부터 휘두르진 않을 터.
‘젠장, 어디 있지?’
문제는 문수르의 경보 레이더 시스템에 잡힌 또 다른 존재였다. 무언가가 잡혔었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순간 그 존재가 사라졌다는 것! 소멸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모습을 감춘 것이다.
‘단순히 오크 좀비가 등장했을 리가 없다. 분명 이 근처에 흑마법사의 흔적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문수르는 그 무언가가 흑마법사 본인 또는 그와 관계된 끄나풀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그렇기에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금 이 상황은 일종의 함정일 수도 있었으니까. 움직일 때 움직이더라도 그 존재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파악하고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그때였다.
- 찾았습니다.
로이드가 기어코 그 무언가의 위치를 파악했다. 문수르가 창을 고쳐 잡았다.
그 순간 문수르의 눈에, 로이드가 찾은 적의 모습이 보였다.
‘엘프?’
처음에는 그 형태를 보고 엘프인 줄 알았다. 그러나 문수르는 그게 엘프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파악했다.
‘느낌이 다르다.’
만약 엘프를 처음 보는 거였다면, 착각했을 것이다. 상대가 엘프라고 말이다. 그러나 문수르는 엘프를 처음 보는 게 아니었다. 아니, 처음 보고 아니고 수준을 떠나서 엘프 부족의 마을에서 며칠 동안을 지냈다. 그렇기에 문수르는 확신했다.
‘느낌이 엘프와는 전혀 다르다!’
겉모습은 엘프랑 비슷하다. 하지만 풍기는 기운은 엘프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흑마법사 본인인가?’
문수르는 두 번째 부분을 고려했다. 상대가 흑마법사인가, 아닌가? 그걸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 무기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아니야.”
그러나 이어지는 로이드의 설명에 문수르는 곧장 몸을 날렸다. 마법사는 무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호신 무기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등장한 엘프는 매우 큰 검을 들고 있었다.
확실하다.
그 엘프는 흑마법사 본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수르가 해야 하는 일은 하나.
‘엘프를 제압하고, 드워프를 구출한다.’
문수르가 빠르게 움직였다. 작정한 문수르의 움직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삽시간에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혔다.
문수르의 갑작스런 등장에 상대도 놀란 모양이다. 상대의 눈이 화등잔마냥 커졌다.
그 순간 서로가 서로를 보며 생각했다.
‘인간?’
‘다크 엘프?’
그 생각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곧바로 다크 엘프는 검을 휘둘렀고, 문수르 역시 창을 휘둘렀다.
카앙!
두 자루의 무기가 충돌하며 거친 소리를 토해냈다.
쫑긋!
그 순간 그 소리를 들은 건 그 누구도 아닌 드워프, 말론이었다.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를 드워프가 놓칠 리 만무하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드워프의 귀는 엘프보다 훨씬 밝다.
“누구냐!”
말론은 오크 좀비와 싸우는 중임에도 그 병장기의 충돌 소리에 반사적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다크 엘프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반대로 문수르는 눈빛 대신 창끝을 날카롭게 휘둘렀다.
쉬익!
짧은 방심, 하지만 문수르 정도 되는 고수 앞에서의 그 짧은 방심이 허용될 리 만무하다.
서걱!
문수르의 창은 순식간에 다크 엘프의 손목을 베었다. 그나마 다크 엘프의 반응이 빠른 탓에 손목에서 그친 것이다. 문수르는 이것저것 재지 않고 단숨에 상대의 허리를 베려고 했다.
그러나 손목이 잘려나갔음에도 다크 엘프의 손목에서는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문수르의 눈빛이 그제야 날카롭게 변했다.
‘흑마법사하고는 확실히 어떤 연관이 있군.’
손목이 잘려나갔음에도 피를 흘리지 않는 건 일반적인 상식에서는 납득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흑마법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납득할 수 있다.
확실하다.
이 다크 엘프는 흑마법사와 관계가 있다.
‘어떻게 보면 일거양득이군.’
흑마법사의 확실한 흔적도 발견하고, 드워프와도 조우에 성공했다. 이 정도면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 순간, 이번에는 문수르가 방심하고 말았다. 문수르가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다크 엘프의 몸에서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문수르는 비슷한 경험을 했다.
“설마?”
또투와의 싸움에서 놈 역시 비슷하게 도망쳤다. 그리고 또투가 도망쳤을 때 문수르와 로이드는 놈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빠득!
문수르는 일단 아직 사라지지 않은 다크 엘프의 몸뚱이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휘잉!
오러를 머금은 창이었다. 오러 피어스, 닿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베어버리는 그 섬뜩한 창이 다크 엘프의 몸뚱이를 반으로 갈랐다.
출렁!
그러나 다크 엘프의 몸뚱이는 마치 신기루의 그것처럼 출렁거리더니 이내 사라지기 시작했다.
쿠구구!
동시에 문수르의 창이 내뿜은 예기(銳氣)에 다크 엘프의 뒤편에 있던 나무들이 잘려나가며 거친 소리를 냈다. 큼지막한 나무들이 베이며, 그 잔해들이 바닥이 떨어지자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그 속에서 문수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젠장.”
마법에 대해서, 흑마법에 대해서 그렇게 공부를 하고 왔는데 결국 짧은 방심에 놓쳤다.
이건 문수르의 실수다.
더불어 이로써 흑마법사 역시 문수르의 존재를 어떤 식으로든 파악하게 될 것이다.
이번 실수는 생각 이상으로 뼈 아팠다.
문수르의 창이 바람을 갈랐다. 동시에 문수르의 창에서 뿜어진 오러 블레이들이 오크 좀비들은 순식간에 난도질을 했다. 몸이 난도질 당한 오크 좀비들이 꾸역꾸역 제 몸을 복구하기 시작할 무렵.
문수르가 말론 앞에 등장했다.
“문수르라고 합니다.”
“인간이군.”
문수르는 자기소개를 먼저 했고, 말론은 문수르의 정체를 보자마자 눈살부터 찌푸렸다. 그 둘의 처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문수르는 어떻게든 드워프가 필요했지만, 드워프는 지금 이 상황을 결코 반갑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일단 자리가 자리인 만큼…….”
말을 뱉던 문수르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제 몸을 복구한 오크 좀비가 덤벼든 것이다.
‘베는 것으로는 부족하군.’
순간 문수르의 손 안에서 창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스파이럴 어택을 준비하는 것이다.
‘베는 게 안 되면 박살을 내면 되지.’
휘릭!
문수르가 곧바로 스파이럴 어택을 날렸다. 스파이럴 어택에 맞은 오크 좀비의 몸은 산산조각났고, 몸뚱이의 파편은 사방으로 비산했다.
꾸물꾸물!
그 후에도 놈의 몸뚱이는, 피부 조각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였지만 이전처럼 빠른 수복능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기세를 탄 문수르는 곧바로 남은 모든 오크 좀비들을 스파이럴 어택을 이용해 산산조각을 냈다.
순식간이었다.
말론을 괴롭히던 오크 좀비들을 문수르는 너무나도 쉽게, 너무나도 빨리 처치한 것이다.
그렇기에 말론의 표정은 더욱 굳었다.
‘엄청난 실력의 인간이다.’
이런 인간이 자신을 노린다면, 자신의 동족들을 노린다면 과연 동족들을 지킬 수 있을까?
한숨이 나왔다. 흑마법사 일도 그렇고, 오크 좀비도 그렇고, 호우투 부족의 앞날에는 길보다 흉이 많았다.
“여기서 대화를 나누는 건 좀 그렇고……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문수르는 다시금 말론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말론은 대답 대신에 고개부터 저었다.
“자네의 도움에 감사하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죽는 한이 있어도, 인간과의 교섭은 없네. 그것이 우리 부족의 철칙이네.”
생각보다 완고한 말론의 모습에 문수르는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이마저도 문수르가 말론을 도와줬기에 나온 호의일 것이다. 만약 그냥 말론 앞에 등장했다면 대화조차도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론은 대뜸 그 큼지막한 도끼부터 날렸겠지.
‘그래, 차라리 이게 낫지.’
대뜸 칼부림부터 나는 것보단 이렇게라도 대화가 진행되는 게 나을 것이다.
‘뭐, 여기선 물러나주지.’
문수르는 순순히 물러났습니다.
“알겠습니다.”
별 다른 행동 없이 물러나는 문수르의 모습에 이번에는 말론이 살짝 놀란 듯했다.
“그보다 오크 좀비를 제대로 해치운 게 아니기 때문에, 얼른 놈들이 다시 본래 모습을 수복하기 전에 자리를 피하시는 게 좋을 듯하니다.”
“음…….”
“뒤쫓진 않겠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그 모습에 말론은 별 다른 생각없이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그 짧은 다리를 놀리며 최대한 잽싸게 자리를 피한 것이다.
문수르는 그런 드워프의 뒷모습을 잠시 동안만 볼 뿐, 이후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문수르는 어째서 이렇게 쉽게 드워프를 놓아준 것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쉽게 놓아준 게 아니다.
‘로이드.’
- 예, 주인님.
‘추적 중이지?’
- 당연하죠. 실시간으로 드워프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드워프 부족의 마을 위치도 파악이 가능할 겁니다.
씨익!
로이드의 말에 문수르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문수르, 그는 분명히 말한다.
‘내가 원하는 건 드워프 한 명이 아니다.’
그가 필요로 하는 건 다수의 드워프 장인이다. 그렇기에 문수르가 원하는 건 드워프 한 명이 아니라, 드워프 다수가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그리고 말론을 놓아주는 건 그런 드워프 마을을 찾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그럼 이제 드워프 부족의 마을에 어떤 식으로 들어갈지, 그거만 생각하면 되는 건가?’
이미 계획도 어느 정도 쓴 상황.
- 조심하십시오!
그 순간 어느새 제 몸의 수복을 마친 오크 좀비 한 마리가 문수르를 향해 몸을 날렸다.
문수르는 깜짝 놀랐다.
“뭐야?”
그러나 문수르의 몸은 반사적으로 창을 휘둘렀고, 단숨에 오크 좀비의 몸뚱이를 세 개로 토막 냈다. 동시에 문수르는 스파이럴 어택을 통해 다시금 오크 좀비의 몸뚱이를 산산조각 냈다.
“후우!”
문수르는 짧게 숨을 골랐다.
“이게 뭐지? 왜 이렇게 수복 속도가 빠른 거지?”
문수르는 놀랐다. 그는 분명 오크 좀비를 산산조각 냈다. 제 아무리 수복 능력이 있는 좀비라고 해도 이 정도면 솔직히 거의 수복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오크 좀비는 단숨에 몸을 수복해서, 공격까지 했다.
‘단순한 오크 좀비가 아니야.’
오크 좀비 자체도 그렇지만, 이 오크 좀비는 보통의 좀비와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났다.
순간 문수르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이런 오크 좀비 천 마리가 이제르트 자작령을 공격한다면, 과연 피해 없이 막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말도 안 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르트 자작령은 무려 1만 마리의 오크 대군과 전쟁도 치렀다. 오크 좀비 천 마리가 오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때문에 문수르는 그 뒤를 상상하지 않았다. 너무 소름이 돋을 것 같았으니까.
꿀꺽!
단지 침만 삼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