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78화 (77/293)

78화

<19화. 호우투 부족.>

1.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문수르의 인사에 이제르트 자작은 근심 어린 표정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게. 그 무엇보다 문수르 경, 자네의 목숨이 중요하니, 문제가 생길 경우엔 목숨을 구할 생각만 하게.”

“감사합니다.”

짧은 인사. 그것을 끝으로 문수르는 인간들의 발을 거부하는 테블스 산 안으로 들어갔다.

2.

테블스 산을 처음 접하는 이들은 말한다.

“생각보다 별 거 아니군. 의외로 몬스터도 적고, 대부분 오크 따위 아닌가? 기껏해야 오우거 정도. 이 정도면 기가스 한 대면 충분히 정벌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테블스 산의 초입은 별 거 아니다. 하지만 그런 소리는 얼마 지나면 쏙 들어가 버린다. 테블스 산의 무서운 점은 단순히 몬스터가 많은 것, 그게 아니다. 정말 무서운 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알 수 없는 몬스터들,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조차 않은 몬스터들이 득실거릴 뿐더러,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들이 많다. 그뿐인가? 테블스 산에 있는 물이나, 음식 따위를 먹으면 이상한 괴질 따위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짧게 며칠 정도, 식량을 가지고 들어갔다 나오는 경우라면 모를까, 장기적으로 머물게 될 시에는 엄청난 문제점이 따른다.

물론 정말 무서운 건, 결국 몬스터이긴 하다. 산 깊숙이 들어가면 오우거의 변종이라고 할 수 있는 트윈 헤드 오우거도 있으며, 정말 기가스조차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자이언트 오우거의 존재가 확인된 적도 있다.

어쨌거나 그런 땅에 인간이 혼자 들어간다는 건, 어찌 보면 미친 짓을 보일 법도 하다.

“생각보다 지낼 만하네.”

그러나 테블스 산 안으로 들어온 문수르의 표정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벌써 한달 째군.”

테블스 산에 들어온지 한 달. 하지만 문수르의 꼴은 산 속에서 한 달 동안 자급자족하며 지낸 것 치고는 말끔했다.

“서바이벌 키트, 의외로 괜찮네.”

모든 건 한석균이 챙겨준 서바이벌 키트 덕분이었다. 서바이벌 키드 덕분에 먹는 걱정, 잠자리 걱정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문수르의 마음에 쏙 든 건 경보 레이더 시스템이었다.

- 현재 몬스터 무리가 이동 중입니다.

“그래? 그럼 좀 쉬자.”

테블스 산의 우거진 숲에서는 GPS시스템의 효능이 줄어든다. GPS시스템에 투시 능력은 없으니까 그래서 나온 게 경보 레이더 시스템이었다. 레이더의 그것처럼, 문수르 주변으로 반경 1킬로미터 내의 살아 움직이는 물체를 파악할 수 있다. 숲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이 경보 레이더 시스템 덕분에 문수르는 이러다할 전투 없이 테블스 산을 탐색할 수 있었다.

‘자이언트 오우거를 만났을 땐 식겁했지.’

특히 일주일 전, 경보 레이더 시스템이 없었다면 문수르는 자이언트 오우거와 한 판 전쟁을 치렀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자이언트 오우거…… 말로만 들었다. 하지만 놈은 말로만 듣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몬스터였다.

‘그 정도로 은밀하게 매복을 할 수 있다니?’

보통 오우거하면, 성질이 더럽고 흉포한 탓에 온갖 난리를 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자이언트 오우거는 달랐다. 오우거보다 덩치는 1.5배 이상 더 큰 놈이 은밀하게 숲 속, 땅 속에서 숨어 있다가 먹잇감이 오면 그때서야 움직이는 것이다.

놈은 문수르를 노리고 있었다. 반대로 문수르는 놈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오러 마스터의 감각을 피할 정도…… 단순히 은신 능력이 뛰어난 게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해.’

생각해보면 소름 끼치는 일이다. 오러 마스터의 감각은 엄청난 수준인데, 그 감각마저 속일 수 있다니?

만약 경보 레이더 시스템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문수르는 자이언트 오우거로부터 도망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후우.”

그때를 생각하며 다시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문수르. 이후 문수르가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젠장.”

문수르의 입에서 쓴소리가 나왔다. 그런 문수르의 앞에는 다름 아니라 시체로 만들어진 작은 산이 있었다.

“또 이 시체더미로군.”

시체의 정체는 오크들이었다. 그 숫자는 대략 백여 마리 정도로 파악했다. 그러나 단순히 시체가 쌓인 게 아니었다. 오크들의 시체는 토막 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냥 토막 난 게 아니라 아주 날카로운 무언가에 썰려 토막 난 시체들…….

“흑마법사 새끼들인 대체 정신이 어떤 구조인 거야?”

흑마법사의 흔적이다.

흑마법사가 오크들을 상대로 생체 실험을 한 흔적이었다. 문수르는 이런 흔적을 테블스 산내에서만 벌써 아홉 번이나 발견했다. 지금 것까지 합치면 열 번째다.

솔직히 처음에 테블스 산 안으로 들어왔을 때는 걱정했다. 확신은 하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흑마법사의 흔적을 찾는 게 힘들면 어떡하지?

그러나 그 걱정은 기우였다. 테블스 산 깊숙이 들어올수록 흑마법사의 흔적은 도처에 깔려 있었다.

“너무 노골적이군.”

숨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하다 못해 숨기려는 생각이 있었으면 땅이라도 파서 시체를 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도 없이, 그저 시체를 쌓아두기만 한다.

“대체 오크들로 뭘 하려는 거지?”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문수르가 발견한 시체는 모두 오크의 시체였다. 테블스 산에 몬스터 종류가 얼마나 많은데 하필 오크들만 가지고 생체실험을 하는 것일까?

의중을 알 수 없다.

‘그리고 벌써 열 번째 흔적을 발견했는데, 아직 흑마법사의 꼬리는 찾지 못했어.’

더 안타까운 사실은 이렇게 흑마법사의 흔적이 도처에 깔려있음에도 정작 흑마법사의 옷자락조차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경보 레이더 시스템에 GPS시스템까지, 마법보다 더 사기 같은 도우미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흑마법사를 찾지 못한 것이다.

“일단 체크는 해둬야겠지.”

- 체크했습니다.

“멀티 글라스에 지도랑 시체 더미가 발견된 장소 좀 다시 출력해줘.”

- 알겠습니다.

그래도 흔적은 흔적이다. 문수르는 다시 정보를 토대로 계획을 세우고, 이동 루트를 설정했다.

그때였다.

- 살아있는 생명체의 움직임이 파악됐습니다.

경보 레이더 시스템이 작동했다. 문수르는 슬그머니, 모습을 감출 준비를 했다. 테블스 산에서는 전투를 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최선이다. 싸워봤자 남는 게 없다. 오히려 한 번 전투를 치른 후에는 온몸에 피 냄새, 몬스터 냄새 따위가 배기게 되고, 그러면 다른 몬스터들이 그 냄새를 맡고 모여들게 된다.

악순환의 반복, 그래서 테블스 산이 무서운 것이다. 전투를 한 번 치르면,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인 것이다.

‘이번에는 어디로 피할까?’

문수르가 로이드에게 물었다. 로이드라면 최적의 도주 루트를 알려줄 테니까.

- 주인님.

“응?”

그러나 로이드의 반응이 이상했다.

- GPS시스템과 경보 레이더 시스템의 정보를 취합한 결과, 현재 두 부류의 생명체가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두 부류? 몬스터가 서로 싸우는 건가?”

몬스터끼리의 싸움…… 테블스 산에서는 너무나 보기 쉬운 광경이다.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왜 로이드는 이 사실을 굳이 짚고 넘어가는 것일까? 평소에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던 주제에?

“무슨 일이야?”

- 아무래도 그 중 하나가…… 주인님께서 애타게 찾던 드워프 족으로 추측됩니다.

“뭐?”

순간 문수르는 심장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드워프란 단어는 문수르에게 그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문수르의 모든 계획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

그런 드워프가 있다고?

“확실해?”

- 정확하진 않으나, 기존에 드워프에 대해 모은 정보와 많은 부분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문수르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드워프라고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게 있다면, 일단 접촉을 해야 한다. 흑마법사도 중요하지만, 드워프도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꼭 드워프랑 만날 필요는 없다. 문수르가 원하는 건 확실한 정보다. 테블스 산에 드워프가 있는가, 없는가! 만약 정말 테블스 산에서 드워프가 살고 있다는 사실만 알더라도 문수르는 만족할 것이다

“전투가 어디서 진행 중이지?”

- 멀티 글라스에 이동 루트를 출력했습니다.

3.

130센티미터 남짓한 신장. 어린 아이와 비슷한 신장이지만, 통나무보다 더 굵직한 팔다리. 여기에 아름드리나무 같은 몸뚱이! 그런 몸뚱이보다 더 거대한 도끼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갈색 털북숭이의 존재.

드워프다.

“이 빌어먹을 오크 족속들! 대체 어디서 이놈들이 좀비처럼 튀어나오는 거야!”

드워프의 이름은 말론 호우투. 호우투 부족의 전사임과 동시에 탐색자이기도 하다.

탐색자.

드워프 부족이 인간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새로운 역할이다. 부족 밖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동시에 드워프의 문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광산 등을 찾는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드워프들이 제멋대로 이곳저곳을 싸돌아다니며, 광산을 찾으면 그 광산에 눌러 앉아 광산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채광을 하고, 지내다가 떠났지만 세상이 드워프에게 흉흉한 만큼, 어느 정도 제 몸을 지킬 수 있는 드워프만이 그런 역할을 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쉽게 말해서 드워프 중에서도 나름 한 가닥 하는 인물이란 소리다. 어디 가서 꿇릴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말론은 죽기 일보직전이었다.

쩌적!

그의 도끼질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력했다. 한 번 내리칠 때마다 상대는 장작마냥 반으로 쪼개졌다. 호쾌함과 강력함, 그 두 가지를 전부 가지고 있는 공격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말론의 도끼질에 당한 놈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크다. 그런데 도끼질에 맞으면, 몸뚱이가 갈라지고 피가 분수처럼 솟아야 하는데, 놈은 마치 진흙마냥 쪼개진 후에 스멀스멀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말론은 알고 있다.

이 오크는 지금 좀비다. 오크 좀비. 좀비 마법으로 인해 부활한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기어코 그 흑마법사의 마수가 여기가지 뻗쳤구나!’

말론의 부족, 호우투 부족이 테블스 산에 터를 잡은 지 백 년이 조금 넘었다. 말론은 호우투 부족의 탐색자로 테블스 산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다녔고, 꽤나 오래 전부터 흑마법사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흑마법사가 보통 흑마법사가 아님을 파악하고는 어떻게든 흑마법사의 활동 범위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호우투 부족의 영역과 흑마법사의 활동 범위가 겹치기 시작했다.

‘심각한 일이다.’

부족의 거주지를 옮긴다?

그게 문제다. 지금 흑마법사가 만약 호우투 부족을 노린다면, 거주지를 옮기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거다.

물론 지금 당장 시급한 건 말론, 그의 목숨이었다.

쩌적!

재차 도끼질로 오크 좀비를 두 동강 낸 말론이 짧은 다리를 열심히 놀리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일단 이 모든 걸 부족에 알려야 한다.’

부족이 어떤 결정을 내리던, 중요한 건 말론이 얻은 이 정보가 부족에 전달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말론은 열심히 달렸다. 짧은 다리가 찢어질 정도로, 온힘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드워프 부족에게 단점이 딱 하나 있다면 바로 그 짧은 다리다. 육체적 능력도 뛰어나고, 장인 능력도 뛰어나고, 용기도 넘치는 그들이지만, 달리기만큼은 신체 구조상 어찌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지금 등장한 오크 좀비들은 단순한 좀비가 아니었다. 보통 좀비 역시 신체능력이 저하되는데, 지금 등장한 오크 좀비들의 경우에는 신체능력이 본래 오크 수준, 그대로였다.

달리기로는 뿌리칠 수 없다는 의미다.

빠득!

말론은 이를 갈았다.

그 무렵…… 말론을 주시하는 시선이 있었다.

두 개의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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