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17화. 격전.>
1.
오크는 인간보다 강하다. 일반적인 육체적 능력으로 인간이 오크를 상대하기란 쉽지 않다. 소위 인간들 중에서 신력(神力)을 타고난 자들 정도만이 오크를 상대할 만하다.
아주 오래 전, 인간의 문명이 제대로 구축되기 전, 역사에 기록조차 되지 않았던 시대 그리고 역사조차 기록하지 않았던 시대에서 인간은 오크들을 피해 도망쳤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
때문에 인간은 검을 들고, 갑옷을 입고, 투구를 썼다. 도구를 이용했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전술과 전략으로 한 번 더 무장을 했다. 그리고 인간이 오러를 다루게 되었을 때, 마법을 다루게 되었을 때, 오크는 더 이상 인간의 적수가 아니었다.
인간들은 오크들을 숲으로, 궁핍한 숲으로, 메마른 대지로 쫓아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인간들은 오크를 몬스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것을 훔치고, 인간들을 해치는 짐승들이라 여겼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 누구도 오크를 중대한 적이라 인지하지 않았다. 그저 위협스러운 존재, 처치해야 할 짐승쯤으로 여길 뿐이었다.
종국에 기가스가 발명되었을 때, 오크들은 더 이상 위협적인 짐승 취급조차 받지 못했다. 그저 귀찮고, 껄끄러운 짐승 정도, 단지 그 정도의 취급만 받을 뿐이었다.
하지만 한석균, 그의 생각은 달랐다.
기가스가 발명되기 이전 시대에 살아가던 위대한 마법사, 한석균. 그는 오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오크란 놈들은 무지하지. 맞는 말이야. 멍청하고, 야만스럽지. 하지만 강함이란 건 오히려 무지와 야만 속에서 더 꽃을 피우는 법이야. 제 아무리 온갖 미사여구를 붙이고, 무의 이치니, 무의 경지니 그딴 걸 논해도 결국 보다 강력한 무력은 보다 강력한 폭력에 불과하지. 이 세상에 폭력만큼 단순하고 야만스러운 게 있을까?”
때문에 그는 걱정했다.
“그렇기에 흑마법사들이 가장 먼저 실험재료를 택할 때, 그 대상이 되는 게 오크네. 오크 만큼 생명력이 질기면서도 개체 수도 많고, 잡기고 쉬운 실험재료는 많지 않으니까. 거기에 생체실험을 하지만, 인체실험은 아니지. 오히려 오크 수를 줄여주면 착한 마법사가 될 수도 있고. 흑마법사에게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지만.”
한석균이 걱정했던 건 바로 흑마법사 무리들이었다.
보통 사람들에게 흑마법사는 그저 두려운 대상일 것이다. 그러나 문수르에게는 달랐다.
문수르는 세계를 바꿀 자다. 세계의 이치를 근간부터 뒤흔들 자다. 때문에 한석균은 확신했다.
“언젠가, 자네는 분명 흑마법사를 만나게 될 걸세. 아군으로 만나는 경우는 결코 없을 걸세. 무조건 적으로 만날 거야. 그때 가면 어쩌면 오크들이 자네의 계획을 방해하는 경우가 생길 가능성도 충분하네.”
사실 그때 문수르는 한 가지가 궁금했다.
흑마법사가 위협적이란 건 알겠지만, 그 흑마법사의 위협이 꼭 오크라는 몬스터를 통해 올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을 텐데?
그럼에도 왜 오크를 운운하는 걸까?
그래서 물어봤다.
“왜 굳이 오크에 대해서 그렇게 강조하시는 겁니까? 솔직히 지금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오크는 결코 위협이 되지 못할 텐데…….”
“카라카크라는 흑마법사가 있네.”
“예?”
“케르빈 월드에서도 많은 세월이 지났을 테니…… 어쩌면 놈이 기어코 실험을 완성했을 지도 모르지.”
흑마법사 카라카크.
케르빈 월드에서는 그를 악마 제조사라고 불렀다.
2.
문수르는 확신했다.
‘감이 왔다.’
아직 근거가 확실한 건 아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느낌이 왔다.
‘또투, 놈은 흑마법사 카라카크의 작품이다.’
또투, 이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접어든 오크가 어떠한 흑마법사의 작품이란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어디까지나 문수르의 추측일 뿐이다. 그 추측도 문수르의 경험이 아니라, 문수르의 지식을 기반으로 한 추측!
그럼에도 문수르는 확신했다.
‘한 회장님의 우려가 맞았어.’
설마 했다.
오크에 대해 그리 설명해줬을 때도, 설마 정말 오크가 이렇게까지 위험한 적이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한석균이 우려한 부분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석균은 아마 느꼈을 것이다.
불길함이란 감을!
한석균, 그는 보통의 노인이 아니다. 그저 돈만 많이 번 노인이 아니다. 그가 이룩한 부와 명예, 그 배경에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마법이란 기상천외한 능력이 있다.
차원 간에 만들어놓은 신의 울타리, 그 신의 울타리마저 넘나들 정도의 마법사, 한석균! 그의 감은 야생동물의 감, 그 이상일 것이다. 그런 그가 좋지 못한 감을 느꼈기에, 그리 설명을 해줬을 것이다.
그렇기에 문수르는 각오했다.
‘여기서 또투, 놈을 확실하게 죽인다.’
또투, 여기서 놈을 처치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문수르를 괴롭힐 것 같았다.
그러니까 여기서 확실하게 놈을 끝장낼 것이다. 놈을 확실한 시체로 만들고, 다져줄 것이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 그게 아니면 나중에 큰 코를 다칠 느낌이다. 제대로 뒤통수를 맞을 느낌이다.
오러 마스터의 감이기도 했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무인의 감!
‘그렇다면?’
확실하게 또투 놈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다름 아니라 포비어와 협공을 하는 것이다.
제 아무리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단신으로 기가스와 상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또투도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오크가 대단한 기술력으로 무장했다고 해도, 마법 공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기가스를 소유하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이야기!
더군다나 포비어 역시 또투를 찾고 있다. 지금 전장을 빠르게 움직이며, 눈에 보이는 오크들만을 박살을 내며 전장 후방 쪽으로 이동 중이다.
잘만하면 포비어와 합류하는 건 일도 아니다. 아니, 포비어가 지금 이 위치만 파악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또투는 확실하게 잡을 수 있다.
‘오냐.’
그 순간 문수르의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계획.
‘네놈을 전장으로 몰아주마.’
포비어가 찾아오도록 만드는 게 아니다. 포비어가 있는 방향으로 또투를 몰고가는 것이다.
계획이 서자마자, 문수르는 말했다.
‘로이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겠지?’
문수르 혼자 그런 계획을 성공시킨다는 건 불가능하다. 문수르가 믿는 존재는 바로 하나!
- 곧바로 동선을 계산하겠습니다.
로이드.
그 완벽한 도우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히스티는 전사다. 그녀는 오러 마스터로부터 직접 검을 배웠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검을 익혔다. 그런 그녀는 아직 오러 마스터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보는 눈만큼은 오러 마스터에 근접했다고 자신했다.
‘저런 싸움이 가능해?’
오러 마스터의 싸움을 본 적도 있다. 가누스, 그의 전투를 본 적이 열 번도 넘는다. 매우 치열한 전투였다. 많은 공부가 됐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도 오러 마스터 간의 전투였다.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정말 평생 기억해도 모자란 전투였다.
그런데 어째시일까?
‘오러 마스터 간의 전투가 왜 이렇게 일방적이지? 문수르, 저 인간 대체 정체가 뭐야?’
또투.
이미 알고 있다. 테블스 산에 거주하는 여러 오크 부족들 중에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오크로, 특히 인간들의 성인 이제르트 자작령을 상대로 묘한 움직임을 보이며, 오크에 어울리지 않게 전술과 전략에 나름 능력을 가졌다고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또투가 보여주는 능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처음 문수르가 갑자기 탈라트 부족 마을을 벗어난다고 했을 때, 사실 히스티는 의심했다.
문수르가 변명을 들어 도망치려고 한다고!
그런 문수르를 굳이 놔준 이유는 족장 폐욤이 문수르로부터 충분한 해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신목을 살린 건 아니지만, 신목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듣고, 그 방법에 납득했기 때문이다.
즉, 굳이 문수르를 잡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기에 탈라트 부족은 문수르를 놔준 것이다. 폐욤 족장은 그 정도의 융통성은 있었다.
히스티의 역할은 문수르가 돌아가는 걸 보고, 그 정보를 탈라트 부족에 전달해주는 것,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렇기에 히스티는 전장에 끼어들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문수르가 위기에 빠지더라도, 이제르트 자작가가 위험에 빠지더라도 그건 히스티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니까.
사실 그렇게 보면 지금 히스티는 탈라트 부족으로 돌아갔어야 했다. 또투 부족의 등장, 놈들이 1만의 대군을 이끌고 등장했다는 사실, 문수르를 비롯한 이제르트 자작가와 또투 부족과 싸운다는 사실, 이 정보를 빠른 시일 내에 전달해줄 필요가 있다.
전쟁의 결과는 나중에 파악해도 늦지 않는다. 지금 중요한 건 현재의 정보를 전달해주는 거다.
그러나 그녀는 전장에서 발을 땔 수가 없었다.
‘지금 문수르, 그가 또투를 지배하고 있어.’
문수르, 그의 경악스럽기까지 한 싸움 앞에서 눈을 돌릴 수 있는 무인(武人)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또투.
놈은 강했다. 일단 신체 조건부터가 인간과는 감히 비교를 불허했다. 그 강인하다던 테블스 산의 오크들조차 가소롭게 보일 정도로 거대한 체격을 지닌 놈이었다. 정말 나름 덩치 좀 크다는 트롤과도 맨몸뚱이로 맞짱을 뜰 수 있을 정도였다.
여기에 놈은 나름 잘 제련된 갑옷을 입고 있었다. 단순히 겉보기에 그럴싸한 갑옷이 아니다. 투박한 철판으로 만든 갑옷이 아니다. 나름 실력 있는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망치를 두드려 만든 갑옷이다. 거기에 쓰고 있는 투구는 그런 갑옷조차 우습게 만들 정도로, 정말 뛰어난 실력의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역작이다.
오크가 가질 만한 무장이 아니다.
여기에 들고 있는 검, 장식 하나 없는 투박한 검이지만, 예기가 범상치가 않다. 보통 이름 있는 기사들이 들고 다니는 검들, 소위 명검이라 불리는 것들과도 비교를 불허한다.
여기에 오러를 다룰 줄 알며, 그 경지가 오러 마스터라면?
엄청난 강자다.
정말 역사에 충분히 이름을 세길 수 있을 만한 강자 중의 강자!
‘그래, 정말 강하긴, 강하군!’
문수르도 인정한다.
또투, 놈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면 솔직히 승률을 6할 이상은 잡지 못할 것이다.
10번 싸우면 4번은 오히려 문수르가 패배할 것이다.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말이다.
그러나 지금 문수르는 또투를 자유자재로, 마치 인형사가 꼭두각시 인형을 조작하듯 상대하고 있었다.
쉬익!
문수르가 창을 휘두르면.
카앙!
또투는 검을 들어 문수르의 창을 막아냈다. 동시에 문수르의 창을 쳐낸 또투가 검을 휘둘렀다.
쉬익!
그러면 문수르가 보법을 밟으며, 빠르게 자리를 이동했다.
크흥!
또투는 콧김을 내뱉으며 문수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문수르는 적당한 보법을 밟은 후에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
카앙, 카앙!
그리고 시작되는 치열한 공방!
정말 혈전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박진감 넘치는 그리고 박 터지는 싸움이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크흥!
어느새 그 둘의 전장은 나무가 우거졌던 장소가 아니라, 오크들이 울부 짖는 전장으로 바뀌었다.
문수르가 이끈 것이다.
문수르의 공격 그리고 방어 그리고 이동. 이 모든 것에 맞춰 싸우던 또투는 저도 모르는 사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왕, 나오셨다.”
“오크, 더 열심히 싸운다!”
또투의 등장에 오크들이 분기탱천하며, 이제르트 자작령의 성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또투의 존재는 그 정도였다.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오크들에게 공포와 동시에 활기를 주는 존재!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은 결코 또투가 고려했던 상황이 아니었다. 어느새 자신이 전장에 나왔다는 사실에, 또투는 당황한 듯보였다. 이 대단해 보이는 오크의 투구 사이로 흘러나오는 눈빛이 흔들렸다.
문수르는 그 눈빛을 보고 난 후에야 처음으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휴우!’
- 계속 이동 경로를 계산할까요?
‘좀만 쉬자.’
똑같은 실력,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실력. 그럼에도 결과는 문수르가 원하는 대로 나왔다.
로이드 덕분이다.
로이드가 만들어준 전투 경로가 아니었다면, 결코 이런 결과물을 문수르 혼자서는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포비어 경이 나올 때가 됐는데?’
오크들의 움직임이 묘하게 변했다는 사실을 포비어도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을 터.
조만간 포비어가 기가스를 끌고 올 것이다. 그러면 이야기는 끝이다. 또투 놈이 제 아무리 대단한 놈이라고 해도, 기가스 앞에서는 결국 몬스터에 불과할 테니까.
꽈악!
문수르는 다시 창을 쥐었다.
‘후우!’
숨을 골랐다.
‘로이드, 이제부터는 무조건 공격이다. 또투 놈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모든 공격을 퍼붓는다.’
이제까지의 전투가 또투를 전장으로 유인하고, 이끌어내는 거였다면 이제부터의 전투는 또투가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공격을 퍼붓는 것이다.
- 알겠습니다.
로이드 역시 곧바로 공격 루트를 다시 계산했다.
멀티 글라스 위로 비친 또투의 온몸에 타깃 포인트가 지정됐다.
‘좋아!’
문수르는 마치 게임을 하듯, 그 타깃 포인트를 향해 빠르게 창을 내찌르기 시작했다.
쉬익, 쉬익, 쉬익!
문수르의 손에서 튀어나오는 창은, 마치 시커먼 구름이 내뱉는 소나기의 그것 같았다.
혹은 벌집에서 막 뛰쳐나온 벌떼들의 그것!
틈이 없었다. 공격 사이의 틈도 없었고, 쉴 틈도 없었다. 또투는 검을 들고 동시에 제 갑옷과 단단한 몸뚱이를 이용해 문수르의 공격을 방어하기 시작했다. 전부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버틸 수 있는 공격은 버티고자 한 것이다.
카앙, 카앙!
공방이 시작했다.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문수르의 공세 속에서 또투가 할 수 있는 건 방어 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막는데 급급해 보였다.
하지만 또투는 그 상황에서도 문수르의 창을 거세가 후려쳤다. 그 힘에 문수르의 창 궤적이 비틀리면, 그 틈을 놀리며 오러를 휘감은 검으로 문수르를 공격했다.
또투는 결코 문수르의 공격에 밀리지 않은 것이다.
문수르 역시 그런 또투의 공격이 나라올 때면 식겁했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쉬익!
아슬아슬한 차이로 간신히 공격을 피한 후에는 저도 모르게 숨을 골랐다. 그러면서 호흡이 살짝 어긋났다.
- 공격 루트 재설정합니다.
보통 경우라면 이 호흡을 다시 고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무를 연마하고, 전투를 경험한 백전노장이 아닌 이상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문수르의 경우에는 그게 없었다.
‘로이드는 사기야.’
정말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로이드의 도움은 사기 정도가 아니라, 치트키 수준이다.
‘응?’
그때였다.
‘느낌이 다르다.’
또투의 기질이 달라졌다. 이제까지 흉악하기 그지없던 놈의 기세가 변했다.
문수르는 직감했다.
‘도망치려는 거구나!’
지금 또투, 놈은 도망치려고 한다. 상황을 파악하고, 자기라고 몸을 빼려고 하는 것이다.
“어림없다!”
문수르가 곧장 공격을 퍼부었다. 문수르의 창이 빠르게 또투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주변의 오크들이 문수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제까지 이제르트 자작령의 성을 향해서만 돌진하던 놈들이 어느 새 문수르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오크들의 눈알에는 초점이 없었다. 마치 약에 취한 듯, 꿈에 취한 듯 멍한 눈으로 문수르를 향해 좀비마냥 달려들었다.
순식간이었다.
오크 무리들이 문수르를 포위했다.
빠득!
문수르는 이를 갈았다.
“어디 감히!”
눈에 초점도 없는 얼빠진 오크 따위가 문수르의 상대가 될 리가 만무하다. 문수르가 창으로 크게 원을 그렸다. 동시에 문수르의 창은 머금고 있던 오러를 뱉었다. 창을 따라 움직이던 오러는 섬뜩한 날이 되어, 마치 수면 위에 생겨난 파문마냥 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그런 문수르의 오러 블레이드에 닿은 모든 것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반으로 잘려나갔다.
오크들의 팔이, 다리가, 몸통이 단숨에 토막이 났다. 마치 가위로 머리칼을 자르듯, 문수르를 향해 달려들었던 오크들이 잘려나갔다. 단 한 번의 수에 시체가 되어버린 오크의 수가 세 자리 수를 훌쩍 넘길 정도였다.
- 놓쳤습니다.
그때 문수르의 귀에 들려온 목소리.
로이드의 목소리였다.
“뭐?”
- 또투의 몸에서 빛이 나더니, 갑작스레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마법을 이용해 모습을 감춘 것으로 생각됩니다.
“젠장!”
만능에 가까운 로이드. 하지만 그 역시 마법 앞에서는 여전히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결국 또투를 놓친 것이다.
문수르는 이를 갈았다.
쿵!
그 순간 문수르의 뒤편에서 육중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문수르는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그 육중한 발소리의 주인공을 알 수 있었다.
“문수르 경!”
포비어의 등장.
정말이지 아쉬운 타이밍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