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62화 (62/293)

62화

9.

‘꿈인가?’

문수르는 꿈을 꾸고 있었다.

‘음?’

그의 꿈속에는 처음 보는 인간이 있었다.

흑색 빛의 긴 머리를 말 꼬랑지마냥 질끈 묶은 사내였다. 그러나 느낌은 말이 아니라 늑대의 그것 같았다. 특히 눈빛이 그랬다. 사내의 눈빛은 늑대의 그것 같았다.

‘나를 보고 있군.’

늑대 눈을 가진 사내는 문수르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먹잇감을 바라보듯, 당장 목덜미를 물어뜯어버릴 기세로 말이다.

‘처음 보는데…….’

사나운 기세의 사내, 아무리 봐도 문수르의 기억 속에는 없다.

하지만 문수르는 어느 순간부터 사내가 누구인지, 사내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페르수스……?’

페르수스.

케르빈 월드에서 신창(神槍)이라 불리며, 역사상 가자 위대한 창술가로 불리는 자.

그리고 단신으로 무수히 많은 영주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며, 자신의 가공한 창술을 이용해 두터운 성벽을 무너뜨리며, 언제나 승리했던 자!

때문에 붙었던 그의 또 다름 별명은 바로 성벽파괴자!

전쟁을 즐겼고, 전쟁을 행했던 자.

하지만 결국 죽기 직전까지 단 한 명의 제자도 두지 못한 탓에 세상 그 누구도 그의 진전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런 그가, 문수르조차 한석균에게 간략한 이야기만 들은 게 전부였던 그가 지금 문수르의 눈앞에 있었다.

‘꿈이군.’

그것이 문수르가 지금의 상황을 꿈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살다보니 별 꿈을 다 꾸는군.’

우습다.

본 적도 없는 인간, 심지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초상화도 보지 못했던 인간이 눈앞에 있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

‘저 모습도 그저 내 상상이겠지.’

아마도 지금 눈앞에 있는 페르수스의 존재는 문수르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일종의 가짜일 것이다.

그러니까 꿈이라는 거다. 꿈에서만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할 테니까.

‘지금 꿈이나 꿀 때가 아니다.’

문수르는 꿈에서 깨어나려고 했다. 이걸 꿈이라고 자각했으니, 이제 점차 꿈에서 깨기 시작할 터.

그때였다.

- 꿈이 아니다.

페르수스가 입을 열었다. 문수르는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는 지금 문수르가 보고 있는 페르수스의 입이 아니라, 등 뒤에서 아니 하늘 위에서 들려왔다.

‘뭐지?’

- 나의 창을 이어 받은 자여.

‘뭐야?’

- 그대를 시험하겠다.

‘뭐?’

뭐지, 뭐야, 뭐…… 문수르의 입에서는 그딴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그 정도로 문수르는 지금 상황에 당황하고 있었다.

아니, 여긴 꿈이라고!

“이게 무슨 병신 같은…….”

그 순간 문수르는 자각했다.

“헉!”

지금 문수르는 이 꿈에서 깨어날 수가 없었다. 문수르는 기겁하며 제 손으로 뺨을 후려쳤다.

짜악!

격한 소리가 났다. 문수르는 두개골을 박살낼 각오로 뺨을 후려쳤으니, 당연한 소리였다.

“으으…….”

고통도 상당했다. 뺨의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간 느낌이었다. 그래서 문수르는 더 기겁했다.

“고, 고통이 느껴져?”

고통이다. 그것도 정말 지독할 정도의 고통이다. 거기에 아직까지 꿈에서 깨어날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렇다면 이게 꿈이 아닌 건가? 지금 문수르가 꿈이 아닌 현실을 겪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 고통조차 꿈인 건가?

문수르는 당황했다. 살아생전 온갖 신기한 경험을 했던 그다. 보통 인간은 결코 경험하지 못할 차원이동까지 경험 중인 그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지금 같은 경우는 감히 상상조차 못했었다.

그러나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스윽!

페르수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페르수스의 손은 맨손이었다. 문수르는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문수르의 손에는 창이 잡혀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맨손이었던 손에 창이 생긴 것이다.

‘대체 꿈인지 생시인지…….’

이렇게 보면 또 꿈같다. 꿈이 아니라면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으니까.

쭈삣쭈삣!

그러나 페르수스의 몸에서 뿜어지는 어떠한 기운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은 꿈의 그것이라고는 보기 힘든 것이었다.

너무 현실 같다.

아니, 현실 그 이상의 무언가로 느껴졌다.

그 순간 문수르의 두 눈이 커졌다.

“저, 저게…….”

맨손이었던 페르수스의 손에서 푸르스름한 기운, 오러가 뿜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3미터까지 길쭉한 창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수르는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창을 들고 자세를 취했다.

파앗!

순식간이었다.

한 번의 도약으로 수십여 미터의 거리를 좁힌 페르수스. 문수르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도약이 아니다.’

아니, 정정한다.

도약이란 점프를 말하는 거다. 하지만 방금 전 페르수스는 점프를 하지 않았다. 마치 스케이트를 타고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단숨에 거리를 좁힌 것이었다. 그걸 도약이라고 표현할 순 없을 터.

순간 문수르의 눈앞으로 섬뜩한 날을 품은 오러의 창이, 오러 소드가 아닌 오러 피어스가 날아왔다.

차앙!

반사적으로 창을 휘둘렀다. 거친 쇳소리가 났다. 그러나 문수르의 창이 페르수스의 오러 피어스를 쳐내는 순간 오러 피어스는 거친 소리와 함께 마치 젤리의 그것처럼 허물어졌다.

그리고 허물어진 창이 다시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상태에서 오러 피어스는 단숨에 문수르의 머리통을 관통했다.

“컥!”

머리가 박살나면서 문수르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

‘이게 바로 오러 마스터들이 사용한다면 오러 웨폰의 무서움인가?’

주마등 따위가 아닌, 방금 전 눈앞에서 일어난 무(武)의 신묘함에 대한 감탄.

문수르도 어느새 무인이 된 것이다.

진짜 숭고한 무위 앞에서 감탄할 수 있는 무인이!

죽음에 대한 후회는 그 다음이었다.

‘아…….’

이렇게 죽는 건가?

현실인지 꿈인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게 본래의 운명이었던가?

‘이제야 알 수 있겠군.’

그 순간 문수르는 미소를 지었다.

‘죽은 다음 뭐가 있는지,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아.’

언제나 궁금했다. 살아가는 모든 존재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그 궁금증을 말이다.

죽음, 과연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 그걸 보러 가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자 문수르는 나름 기대했다. 정말 사람들의 말처럼 저승이란 것이 혹은 천국과 지옥이란 것이 있는 걸까?

아니면 아무 것도 없는 걸까?

문수르는 기다렸다.

기다렸는데…….

‘왜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 그리고 왜 나는 계속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의문이 들 무렵, 문수르는 눈을 뜰 수 있었다.

죽은 놈이 눈을 뜨다니?

‘역시 꿈이었던 건가?’

이제까지 아등바등 거렸던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인가? 허탈감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올 무렵.

- 일어나라.

페르수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문수르는 또 다시 이게 꿈이 아님을 직감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페르수스가 다시 보였다. 창을 잡고 있는 그의 등장에 문수르 역시 창을 들었다.

이런저런 대화는 없었다. 페르수스는 자세를 취하자마자 공격을 시도했고, 문수르는 필사적으로 그 공격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똑같았다.

땅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이동, 그와 함께 이루어지는 날카로운 공격.

‘피한다!’

문수르는 교전 대신 회피를 택했다. 오러 피어스와 맞상대하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

쉬익!

가볍게 상체를 움직여 공격을 문수르, 이윽고 문수르의 창이 카운터를 노린 듯, 곧바로 페르수스를 향해 날아갔다.

쉬익!

그러나 페르수스 역시 너무나도 가볍게 문수르의 공격을 피했다. 이후 다시 이어지는 페르수스의 공격은…….

후웅!

손 안에서 빠르게 회전하는 오러 피어스, 확실하다.

‘스파이럴 어택!’

페르수스 창법의 기본기라 할 수 있는 스파이럴 어택!

‘한 방으로 끝낼 속셈인가?’

그걸 지금 꺼내는 걸 보면, 한 방에 문수르를 처치할 모양이다.

‘오히려 강력한 한 방 공격이면, 피하긴 더 쉽지! 더군다나 스파이럴 어택은 공격궤도가 직선적이다!’

문수르 역시 페르수스 창술을 익혔다. 때문에 스파이럴 어택의 단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페르수스의 공격에…… 수십 개의 창이 되어 알아오는 페르수스의 공격에 문수르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스파이럴 스톰……!’

오러 마스터가 된 후에야 쓸 수 있는 스파이럴 스톰!

성벽조차 무너뜨리는 스파이럴 어택의 업그레이드 공격을 보자, 문수르는 이를 물었다.

피할 수 없다.

수십 개의 총알이 날아오는 셈이다. 이걸 피하려면 그 이상 가는 몸놀림을 보여야하지만 그건 신의 경지에 접어든 자만이 가능할 터.

막는 방법은 결국 회피가 아니라 방어다.

창을 큰 원을 그리듯 돌리며 막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러 피어스를 상대로 방어는 곧 죽음이다.

방금 전에도 그랬다. 물처럼, 자유자재로 허물어졌다. 분명히 쇳덩이를 친 것 같은데, 물처럼 자유자재로 형태를 무너뜨리고, 복구할 수 있다.

‘오냐.’

이 순간 문수르는 두 눈을 부릅떴다.

‘그래, 죽어주마.’

여기가 꿈인지 지옥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죽어도 죽지 않은 장소 같다. 아니, 죽기 싫어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장소다.

그렇다면 죽어주겠다.

하지만 그냥 죽지는 않을 것이다.

‘똑똑히 보고 죽어주마.’

이치를 훔칠 것이다. 페르수스가 보여주는 모든 것, 오러 마스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의 이치를 훔칠 것이다.

콰과과!

동시에 페르수스의 창이 문수르의 온몸을 꿰뚫었다.

- 심박수 안정화. 단전 기능 100퍼센트 회복. 근육 및 뼈의 회복 및 강도 증가.

잠들어 있는 문수르.

로이드는 그런 문수르의 상태를 점검했다. 사실 이제까지 잠잠하던 로이드가 문수르의 몸 상태를 점검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 분석 결과 신체능력이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되었습니다. 이 자료를 영구저장 합니다.

문수르의 몸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로이드조차 무어라 해석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피부가 새로 나고, 뼈가 바뀌며, 근육이 변화했다.

나흘에 걸쳐 문수르의 몸은 변화를 했다. 아니, 변화라기보다는 진화에 가까운 일이었다. 육체가 마치 재조립되는 듯한 과정! 로이드의 방대한 지식으로조차 해석이 불가능할 기사(奇事)였다.

이 어마어마한 일 앞에서 로이드가 할 수 있는 건 그 과정과 결과를 기록하는 것뿐이었다.

이윽고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번쩍!

문수르가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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