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7.
쿵쿵!
로이드의 도움을 받는 엘프의 발걸음을 가볍다 못해, 거의 하늘을 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엘프는 등에 문수를 업고 있었다. 결코 작은 체격도, 가벼운 몸무게도 아닌 문수르를 업고 있음에도 엘프는 나뭇가지를 밟으며, 나무 사이를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 놀랍게도 오우거와의 거리는 점차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까지 뿌리치기조차 힘들었던 오우거를 따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엘프 등에 매미마냥 달라붙은 문수르는 끙끙, 앓는 신음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일시적으로 좋아졌던 몸의 상태가 다시금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애초에 일시적으로 호전이라도 보인 것이 기적이었다. 만약 그 잠시나마의 호전이 없었다면……, 지금 문수르는 시체였을 지도 모른다.
‘대체 왜지?’
몸 상태가 너무 좋지 못하다.
그러나 문수르는 도무지 자신의 몸 상태가 왜 이렇게 됐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우거와의 전투에서 피격을 당한 적도 없었고, 그렇다고 오러를 무리하게 사용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오러의 사용량은 평소 훈련 때만도 못했다.
그런데 몸에 문제가 생겼다.
그것도 심각한 문제였다.
‘내겐 힘이 필요하다.’
여기서 만약 다시금 힘을 되찾지 못한다면? 큰일이 난다. 아무리 문수르에게 온갖 재주가 있다고 해도 무질서한 케르빈 월드에서 문수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본연의 힘이다.
‘고쳐야 한다.’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 한 가지만 생각하진 않았다. 몸도 챙겨야겠지만, 지금 기회도 살려야겠지.
‘엘프 머리카락에서는 풋풋한 냄새가 나는군.’
자신이 매달린 엘프의 머리칼 속에 코를 파묻은 문수르는 후각을 자극하는 풋풋한 잎사귀 냄새를 맡으며 현재 상황을 파악했다.
일단 엘프와 나름 우호적인 관계가 된 거 같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엘프가 문수르를 버리지 않고 간 것만 보더라도 적대관계는 아닐 것이다.
자, 그럼 이제 필요한 건?
‘이 엘프를 통해 호감도를 쌓고, 그 다음에 드워프 부족과의 만남을 이끌어내는 거다.’
드워프 부족을 이끌어낸다. 여기까지는 한석균 역시 몇 차례 예시를 들었던 부분이다.
그러나 문수르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문수르는 엘프 부족을 자신의 계획에 동참시킬 생각이었다.
‘회장님은 엘프가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만…….’
분명 한석균은 말했다. 엘프는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으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문수르의 생각은 달랐다.
‘이익이 되냐, 안 되냐,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이제르트 자작가의 사정, 앞으로의 미래 등을 생각했을 때 이익이 된다고 품고, 이익이 안 된다고 버리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그것보다 필요한 건 다른 관점이다.
‘어떻게 하면 이익을 뽑아낼 수 있을까?’
엘프 부족을 이용하면 충분히 이익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문수르는 한석균에게 말해주진 않았지만, 엘프를 상정해두고 계획을 하나 진행 중이었다.
‘회장님과 약속은 이제르트 자작가를 콩탄 왕국의 반석에, 막강한 귀족가로 만드는 것이다.’
문수르에게 있어 이제르트 자작가의 부흥은 퀘스트 같은 거다.
그러나 케르빈 월드에서 지내면서, 문수르는 자신의 행동이, 그것들이 만드는 결과물들이 단순한 게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문수르는 소원했다.
‘내가 떠난 후에도, 수십 년을 넘어 수백 년 동안 이제르트 자작가가,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삶기를 소원한다.’
그가 떠난 후에도 오랜 시간 동안 훌륭하게 유지될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이란 건 믿을 수 없다. 원래가 그렇다. 이제까지 인간의 역사가 인간의 본성을 증명해준다. 문수르가 사라지고 나면, 이제르트 자작가는 명문으로 남을지 몰라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점차 과거로 회귀할 것이다.
더군다나 문수르가 남기고 갈 발자국은 너무 크고, 뚜렷하기에, 그 여파도 적지 않을 터.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때문에 문수르는 자신이 떠난 후에도 자신의 의지를 지켜주고, 이어가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엘프가 딱이다.’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사며, 고지식하며, 때문에 보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엘프들. 그들이라면 문수르가 떠난 후에도 문수르의 의지를 이어나가며 또한 문수르의 유산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건 괜한 짓일 수도 있다. 허세나, 자기만족에 불과할 수도 있다. 문수르와 한석균의 계약은 어디까지나 이제르트 자작가의 부흥, 그것뿐이니까. 문수르가 굳이 그 다음을, 다른 인간들의 미래를 고려할 필요는 없다.
단지 그럼에도 문수르가 그런 선택을, 그런 계획을 세우는 건, 그 역시 사람이기 때문이다.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간다는 희망이, 목표가 그렇게 썩을 목표는 아니지 않은가?
‘뭐, 수틀리면 포기하는 거지만.’
거기서 문수르는 정신을 잃었다.
- ……격을…….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문수르는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으음…… 로이드?’
- ……격을 가하겠습니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로이드였다. 문수르는 흐릿한 로이드의 목소리에 재차 물었다.
‘로이드 제대로 말해.’
- 전기 충격을 가하겠습니다.
이제 제대로 들리는 로이드의 목소리.
‘자, 잠깐!’
문수르가 기겁하자마자.
찌릿찌릿!
문수르의 전신에 전기가 흘렀다. 문수르는 오뚜기마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퍽!
동시에 무언가가 문수르의 어깨를 내리찍었다.
“윽!”
문수르는 힘없이 바닥에 너부러졌다. 동시에 무언가가 문수르를 위에서 아래로 짓누르고 있었다.
‘엘프다.’
그 짧은 순간에 문수르는 자신의 어깨를 가격한 것이 검집이란 것과, 그 검집을 휘두른 인물이 엘프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동시에 그 엘프가 처음 보는 엘프라는 것 역시 파악했다.
‘엘프 부족의 마을에 왔구나.’
상황 역시 빠르게 정리됐다.
문수르를 구해준 엘프가 자신이 사는 마을까지 문수르를 데리고 온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노릇. 때문에 감시자를 붙인 것이다.
‘적의를 보일 필요는 없다.’
여기서 괜히 강하게 나가만, 오히려 국물도 없다. 더군다나 강하게 나가기엔 문수르의 몸 상태는 여전히 나빴다.
‘크윽…… 단전이……!’
힘을 쓰려고 하자 배가, 단전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오러를 쓰는 것도 아니고, 그저 힘 좀 쓰려고 했을 뿐인데!
‘창을 들기는커녕, 이런 상태면…… 일상생활도 불가능하겠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문수르의 입에서는 복잡한 머릿속과는 다르게 작금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말이 흘러나왔다.
“내 이름은 문수르. 이제르트 자작가의 기사다.”
엘프어로 내뱉는 말.
“알고 있다.”
그러자 콩탄어로 대답이 날아왔다.
문수르의 눈이 커졌다.
‘로이드,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
- 방금 엘프가 사용한 언어는 콩탄 왕국의 공식 언어인 콩탄어가 맞습니다.
엘프어가 아니라 콩탄 왕국의 인간들이 쓰는 콩탄어를 쓴다?
사실 이해 못할 건 아니다. 현재 케르빈 월드의 주도권은 인간이 잡고 있는 만큼, 엘프가 보다 효율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인간들의 말을 쓰는 것쯤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더군다나 엘프의 수명은 길다. 인간들의 언어는 물론 드워프들의 언어나, 다른 언어를 배워도 충분히 시간이 남을 정도다.
‘잠깐.’
그래, 좋다. 인간 말을 쓰든 말든. 오히려 감사할 뿐이다. 사실 문수르는 엘프어가 익숙하지 못하다. 그래도 평소와는 다르게 딱딱한 어조가 나오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지금 엘프는 말했다.
‘나를 알고 있어?’
대체 엘프가 어떻게 자신을 알고 있단 말인가?
그제야 문수르는 떠올렸다.
‘엘프를 쫓던 오우거가 괜히 성벽 근처에서 포착된 게 아니었어. 그 엘프의 목적이 바로 우리 영지였어.’
문수르가 발견한 그 엘프는 본래 이제르트 자작의 성 쪽으로 오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오우거의 추격을 받은 것이다. 그 후에 그 엘프가 택한 판단은 아마도 성벽을 미끼로 삼고, 자신은 도망치는 일이었겠지.
‘어째서?’
그럼 다른 의문이 생긴다.
그 엘프는 어째서 이제르트 자작령 쪽으로 향한 것일까? 이제르트 자작령에 무슨 볼일이 있다고?
“날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지만…… 아, 콩탄어로 말하겠습니다. 적어도 당장 제 목을 치지 않는 걸 보면 협상이란 걸 하고 싶어서 그런 겁니까?”
문수르의 말에 문수르를 짓누르던 힘이 더욱 세졌다.
“크윽!”
마치 강하게 부정하는 것 같은데, 옛말에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란 말이 있다.
“만약 협상을 원하신다면…… 적어도 상대방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인간 주제에…….”
엘프가 껌을 씹듯, 말을 뱉었다. 아주 악의가 제대로 담긴, 증오가 담긴 말이었다.
그러나 문수르는 쫄지 않았다. 그런 거에 쫄 정도는 아니다. 오우거가 내리찍는 몽둥이 앞에서도 두 눈을 부릅떴던 문수르다.
물론 한편으로는 로이드와 대화를 했다.
‘날 구하러 왔던 엘프의 위치를 추적해. 그리고…… GPS시스템을 이용해 주변 탐색하고. 위치 저장하고. 이제까지 일어난 일들 줄줄이 읊어봐.’
문수르가 기절한 사이 일어난 모든 일, 그 모든 일을 로이드가 기록하고 있을 터.
로이드가 곧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문수르를 짓누르고 있던 힘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문수르를 억압하고 있던 엘프가 문수르에게서 떨어졌다. 문수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윽…….”
별 거 아니다.
그저 일어나려고 했다.
‘젠장…….’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벌써 뱃속이 뒤집히는 것 같은 통증이 전신에 엄습했다.
‘이거 너무 심하잖아!’
기절할 정도의 통증이다. 문수르도 자신의 몸이 보통 상태가 아님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최악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심지어 시간이 흐를수록 더 나빠져 가고 있었다.
엘프는 그런 문수르를 보며 말했다.
“어차피 이제 힘도 못쓸 인간…….”
나지막한 중얼거림이었지만 문수르는 확실하게 들을 수 있었다.
“굳이 이렇게 무리해서 감시할 필요도 없겠지.”
엘프는 그 말을 남긴 채 방에서 나갔다. 그제야 문수르는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설마 나무 안인가?’
거대한 나무. 그 안에 마련된 방이었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나무속을 파내거나,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마치 나무 스스로가 자신의 속 안에 공간을 만들어준 느낌……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이 부드럽고, 자연스러우면서도 마치 원룸 마냥 널찍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그렇군. 나무속에 이런 식으로 살아갔던 거야.’
그제야 문수르는 로이드가 아무리 노력해도 엘프 부족의 마을을 찾을 수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예 나무속에서 생활하는 엘프들의 모습은, GPS시스템으로 봤을 때는 마을이 아니라 그저 숲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물론 로이드가 어느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지정해 샅샅이 조사하면 특이점을 파악했겠지만, 로이드의 GPS시스템은 지금 불스 백작가도 감시하고, 특히 테블스 산 전역을 조사하느라 어느 한 부분을 집중 조사할 만큼의 여력이 없었다.
이렇게 무슨 조짐이나, 단서를 찾은 후에야 집중 조사를 시도나 할 수 있는 거다.
“끄응…….”
일단 문수르는 다시 자리를 잡고,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문수르가 두 눈을 감았다. 그런 문수르의 머릿속으로는 문수르의 설명이 들어오고 있었다.
‘일단 상황 파악이 먼저다.’
============================ 작품 후기 ============================
조만간 연재 패턴이 바뛸 듯 합니다.
1주일 기준으로 연재분량은 비슷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중간중간 다른 일들이 생겨서 띄엄띄엄 연재될 것 같습니다.
1일 1연재 형식이, 아무래도 3일에 한 번 3연재, 혹은 2일에 한번 2연재 식으로 갈 듯합니다.
양해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