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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맨-59화 (59/293)

59화

6.

모든 것에는 순리라는 이름의 단계가 있는 법이다. 그 순리 그대로 올라가는 길을 정도(正道)라 부르며, 반대로 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이용해 올라가는 길을 사도(邪道)라고 부른다.

문수르가 걸어왔던 길은 당연히 사도였다.

그의 육신은 온갖 약물 등의 도움으로 급속도로 발달했다. 그렇게 육체가 발달하자, 단전은 그런 육체에 맞추어 빠르게 발달했다. 덕분에 단전 내 오러의 양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여기까지는 좋다. 너무 좋아서 무어라 설명하거나, 태클을 걸 사항이 없을 정도다.

오히려 이 정도면 이게 사도가 아니라,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그 누구라도 문수르와 같은 길을 걷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가는 법이다.

순리가 아니라, 사도를 걸어온 문수르의 몸뚱이는 당연히 순시를 거른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이었다.

그럼 대체 문수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이미 한계까지 성장한 몸뚱이. 새로운 깨달음 없이는 더 이상의 발전이 불가능한 몸뚱이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문수르는 꾸준히 성장했다. 단전은 커져갔고, 오러의 양은 늘어나갔다.

보통은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수련을 하고, 훈련을 해도 더 이상의 성장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문수르가 그것이 가능했던 건 역시 로이드의 도움이 컸다. 로이드는 어떻게든 문수르를 성장시키기 위한 훈련법을 만들었다. 체계적이면서도 확실한 효과를 가진 로이드의 방식은 문수르의 한계를 무시한 채 그를 계속 성장시켰다.

그리고 실제로도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결코 긍정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로이드가 한 일은 이미 한계까지 부풀어오른 풍선에 바람을 더 불어 넣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다음은?

처음에는 더 커지겠지. 한계보다 더 커지겠지.

하지만 종국에는?

뻐엉!

터지고 마는 거다.

“으으…….”

단전이 터져버렸다. 그 여파로 문수르는 코피를 흘렸다.

정신도 혼미해졌다. 문수르는 균형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오, 오러가…….’

단전을 가득 채웠던 오러가 마치 구멍 난 풍선에서 빠져나오는 공기마냥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단전 속의 오러만 빠져나오는 게 아니었다. 온몸 곳곳에 퍼져있던 오러들이 단전을 통해서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오러를 이용해 신체능력을 극대화시켰던 문수르였기에, 그 여파는 더 컸다. 신체 능력이 급격히 약화되자, 몸이 그 상황을 견뎌내기 위해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덜덜덜!

식어버린 몸뚱이를 어떻게든 달구기 위해 문수르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 경고, 경고!

한편 로이드는 심각해진 문수르가 정신을 잃지 않도록, 계속해서 말을 걸어줬다.

물론 말만 건 건 아니었다.

- 상황 레벨 5. 강제로 전기 충격을 가합니다.

파지직!

로이드가 노크 클락에 있는 특수한 기능을 이용해, 강제로 문수르의 온몸에 전류를 집어넣었다.

찌릿찌릿!

문수르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부들부들!

경련이 일어난 후에는 다시금 몸이 떨렸다.

로이드는 강제로 전기 충격을 줘서라도 문수르가 정신을 잃지 않도록, 그의 신체능력을 어떻게든 살리려고 했다.

효과는 있었다.

‘좀 더!’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 욕이 절나오는 통증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 통증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좀 더 세게!’

문수르도 알고 있다. 지금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렇게 문수르가 생각으로 로이드에게 명령했고.

- 전력의 강도를 더 높입니다.

로이드 역시 곧바로 경고음을 내뱉은 다음.

파지직!

더욱더 강력한 전류를 흘려보냈다.

파바밧!

문수르의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동시에 문수르의 몸뚱이가 마치 방금 잡은 물고기의 그것처럼 펄떡였다. 문수르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푸홧!”

잠시 트인 숨통.

하지만 다시금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문수르는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았다.

‘기절하면 안 돼!’

기절하면 끝이다. 인생이 끝이다.

‘움직여!’

그러나 문수르의 몸뚱이는 여전히 문수르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오우거가 포악한 미소를 지으며 문수르를 바라보았다. 놈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크오오!

문수르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더 이상 이제까지처럼 쥐새끼처럼 피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후우웅!

망설임 따윈 없었다. 오우거는 거대한 몽둥이를 하늘 높게 늘었고, 문수르를 향해 내리찍었다.

문수르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생겨났다. 문수르는 이 상황에서, 두 눈을 질끈 감는 행위 따윈 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눈을 부릅뜨며 자신을 향해 오는 몽둥이를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버텨보자!’

이제까지 단련된 육신을 믿었다. 물론 무사하진 못하겠지, 하지만 적어도 작금의 상황에서 절망하고 싶진 않았다.

버티는 거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버티는 거다.

그 순간 오우거의 몽둥이가 떨어졌다.

쿠웅!

거친 굉음이 터졌다.

그리고 문수르는…….

“콜록콜록!”

살아 있었다.

오우거의 공격이 만들어낸 여파에, 폭풍에 휩쓸려 날아가는 문수르가 거칠게 기침을 토해냈다.

그런 문수르의 옆에는 뾰족한 귀를 가진 여성이 있었다.

‘엘프?’

문수르가 의문을 가지자.

- 발신기를 부착한 그 엘프입니다.

로이드가 대답을 해줬다.

- 몸 상태가 조금 호전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러를 사용하실 경우, 다시금 목숨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상황 레벨을 3으로 격하합니다.

동시에 로이드가 경고했다. 문수르의 몸 상태는 지금 막 기적적으로 좋아진 상황이었다.

문수르의 정신력 덕분이었다. 오러와 정신은 긴밀한 관계다. 문수르가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절망하지 않고, 정신을 바로 차리자, 흔들리던 오러가 간신히 균형을 찾은 것이다.

그렇다고 문수르가 정상이란 소식은 아니었다.

“쿨럭!”

이번 기침에는 피가 섞여 나왔다.

‘단전이 망가졌다.’

단전이 아주 넝마가 됐다. 거기에 오러도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로이드 말대로 이 상태에서 오러를 무리하게 운영했다가는 더 이상 손도 볼 수 없는 처지가 될 터.

‘일단…….’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문수르는 절망하지 않았다.

‘살았다.’

좋게 보자.

당장 오우거의 무시무시한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았다. 그것도 엘프의 도움으로!

“도망칩시다.”

엘프 품에 안긴 문수르는 도망치자고 말했다. 서로 대화조차 나눠본 적도 없는 상대에게 갑작스레 할 만한 말은 아니지만, 문수르는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당장 자신을 살려준다면, 상대가 오크라고 해도 볼기짝에 입이라도 맞출 용의가 있었다.

그때 엘프가 문수르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시선이 부딪치는 일은 없었다. 문수르는 현재 멀티 글라스를 착용한 상황. 엘프가 투시능력이라도 가지지 않은 이상 문수르의 눈빛을 바라보는 일은 불가능할 터.

“당신은 누구죠?”

그녀가 물었다.

문수르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신 다른 말만 했다.

“당장 도망칩시다.”

오우거는 여전하다. 놈은 오히려 또 다시 문수르를 놓쳤다는 사실에 약이 오르다 못해 그냥 이제 이성을 잃었다. 놈의 눈깔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지금 눈앞의 오우거는 절대 상대해서는 안 되는 진짜 괴물이다.

‘도망쳐야 한다.’

무조건 도망치는 게 답이다.

‘근데 도망칠 수 있을까?’

그러나 문수르는 솔직히 우려했다. 지금 자신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닌 상황. 그런 상황에서 엘프의 도움을 받아, 이 상황에서 도주할 수 있을까? 아니, 솔직히 엘프를 백퍼센트 신뢰할 수도 없다. 여차하면 엘프가 문수르를 버리고 도망칠 수도 있다

‘생각해내.’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건?

생존이다.

살기 위해선?

보다 확실한 생존 루트를 확보하는 것.

그 루트를 뚫는 건?

‘엘프다.’

몸 상태가 좋지 못한 문수르는 생존 루트를 확보해도, 결코 오우거로부터 도망치지 못한다.

반대로 지금 엘프라면?

오러를 자유자재로 쓰던 문수르가 로이드의 도움을 받아도 쉽게 따라잡지 못하던 엘프가, 로이드의 도움을 받는다면?

‘로이드.’

- 예, 주인님.

‘엘프의 움직임에 맞는 도주 루트를 설정할 수 있겠어?’

- 가능합니다.

답이 나왔다. 문수르는 멀티 글라스를 벗음과 동시에 엘프의 얼굴에 강제로 멀티 글라스를 씌었다.

엘프는 기겁했다. 갑작스레 무언가가 자신의 시야를 가리는데, 그게 기분 좋을 리 만무하다.

동시에 당황했다. 문수르의 행동은 도무지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으니까.

그 정도로 문수르는 다급했다. 자신의 행동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그걸 신경 쓸 여유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이게 알려주는 대로만 이동하면 오우거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엘프가 물었지만, 문수르는 일일이 대답해주기보다는 행동부터 먼저 했다.

덥석!

문수르는 잘 움직이지도 않는 몸뚱이를 움직이며, 엘프의 등에 업혔다. 엘프가 깜짝 놀랐다.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다 큰 남자가 연약한 여자 뒤에 매미마냥 달라붙다니? 이게 대체 무슨 조화란 말인가?

꼴이 참 이상하다.

문수르도 알고 있다. 그러나 문수르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말했다.

“설마 날 버리고 도망치려고 여기까지 일부러 온 건 아니겠지?”

“그야…….”

“그럼 가자고.”

정말 뻔뻔하기까지 한 문수르. 엘프는 그런 문수르를 등에 업은 채 정면을 바라봤다.

“아!”

그러자 엘프의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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