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4.
문수르는 열심히 뛰었다.
열심히 뛰는 문수르의 시야에는 그가 앞으로 발을 내딛어야 할 장소가, 그가 발을 밟아야 하는 장소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멀티 글라스를 통해서 말이다.
‘좋아.’
문수르는 그렇게 보이는 것에 최대한 충실했다. 그런 문수르의 움직임 앞에선 숲 속에 우거진 나무 따위는 감히 방해물이 되지 못했다.
파밧!
오히려 문수르는 나무를 디딤돌 삼으며, 가속을 했다. 누가 보면 문수르가 엘프로 보일 정도였다.
순식간이었다.
- 오우거의 인식 범위 안에 들어왔습니다. 추격 루트를 종료합니다.
“좋았어.”
문수르가 오우거가 있는 장소까지 도달했다. 오우거의 거대한 몸뚱이가 눈에 확 들어왔다.
문수르는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후웁!”
숨을 고르며, 단전에서 오러를 끌어 올렸다. 끄집어낸 오러는 문수르의 창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우우웅!
오러를 머금은 문수르의 창이 기괴한 울음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확실하게 승부를 본다.”
그리고 각오를 다진 문수르의 손바닥 안에서, 오러를 머금은 창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전동 드라이버의 그것처럼, 나선으로 회전하기 시작하는 창. 창이 머금기 시작한 오러 역시 덩달아 나선 형태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문수르의 손 안에서 소용돌이가 생겼다.
문수르는 그 상태로, 여전히 엘프에 눈이 팔려있는 오우거를 바라보며 창을 들었다.
그리고 겨누었다.
그러자 멀티 글라스 속의 오우거의 몸뚱이 위로 마치 게임 속의 그것처럼, 표적지가 출력됐다.
- 타깃 포인트 지정 완료.
그리고 문수르는 총을 쏘듯.
- 파이어(Fire)!
로이드의 외침에 창을 내찔렀다.
쉬익!
그러자 창에서는 푸르스름한 소용돌이가 튀어나왔다. 거대한 화살처럼 생긴 그 소용돌이가 오우거를 향해 날아갔다.
스파이럴 어택(Spiral Attack)!
페르수스 창법의 기술 중 하나다. 창에 회전력을 더해 관통력을 높이는 기술로, 오러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단순한 오러 블레이드가 아닌, 화살의 그것처럼 강력한 관통력을 지닌 오러 블레이드를 날릴 수 있게 된다.
문수르가 가장 열중했던 기술이며, 페르수스 창법의 기초 중의 기초이기도 했다.
이윽고 문수르가 날린 스파이럴 어택이 오우거의 머리통에 명중했다.
콰앙!
마치 둔중한 돌로 사람 머리는 때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오우거의 목이 크게 휘청거렸다.
동시에 오우거의 머리에서는 피가 튀어 올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오우가는 피부도 질기지만, 놈의 두개골은 무지막지하게 단단하다. 박치기로 성벽을 무너뜨리고도 옅은 상처만 남는 놈이 바로 오우거란 놈이다.
물론 문수르의 공격이 아주 소용이 없었던 건 아니다. 문수르는 이 일격에 오우거를 죽일 수 있으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문수르가 노린 건 두 가지였다.
- 오우거가 주인님을 적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줘야지.”
하나, 오우거의 시선을 끈다. 지금 오우거는 엘프에 신경이 팔려있다. 성벽 너머에 넘쳐나는 인간이란 먹잇감을 포기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한 가지에 꽂힌 오우거의 집념은 무시무시하다. 그런 놈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보다 확실한 타격…… 단순히 물리적 타격보다는 정신적 타격을 줘야 한다.
생존본능이 강력한 오우거에게 머리를 공격당하는 건 가장 위험한 공격이기도 하다.
그걸 자극한 것이다.
둘, 오우거의 약점이 바로 머리는 사실이다. 보통은 그 단단한 두개골 때문에 오우거의 머리를 노리는 건 미련한 짓이라고 한다. 기가스 정도 되어야지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오우거의 두개골은 결과적으로 여러 개의 뼈가 결합되어 있다. 그 결합점을 노리면, 충분히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래서 타깃 포인트를 잡는 것이다. 로이드가 실시간으로 오우거의 두상을 파악해, 놈의 그 결합점을 파악하면 문수르가 스파이럴 어택으로 그 결합점을 노리는 것이다.
‘이제까지 전투 데이터에 따르면, 결합점 세 곳을 스파이럴 어택으로 타격할 경우에, 놈의 두개골 사이에 틈이 벌어진다. 그때는 강력한 공격을 하면 충분히 뇌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두터운 가죽, 질긴 생명력. 기가스가 아니면 오러 마스터 정도만이 상대할 수 있는 오우거를 문수르가 상대하기 위해 내놓은 방법이다.
그리고 이게 문수르가 할 수 있는 공략법의 전부였다.
- 두 번째 타깃 포인트 지정이 끝났습니다.
로이드가 두 번째 결합점 위치를 파악했다.
“잠깐.”
그러나 문수르는 이 상황에서 단순히 오우거를 잡는 일에 눈이 팔리진 않았다.
“지금 엘프 위치는?”
- 파악 중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우거만 잡고 엘프는 놓치는 경우는 절대 맞이하고 싶지 않다.
‘엘프를 놓치면, 난 진짜 지랄한 거지.’
그거야 말로 개고생이니까.
하다못해 오우거를 잡지 못하더라도 엘프는 잡아야 한다. 그런 만큼 엘프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 파악됐습니다!
순간 로이드가 기분 좋은 사실을 알려줬다.
문수르는 당연히 오우거에 대한 사실은 잠시 뒤로 밀어 두었다. 오우거의 관심을 끌었지만, 공략은 나중이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결국 그거니까.
“좋아, 당장 엘프부터 쫓는다.”
엘프는 나무 위를 마치 달 정비된 도로처럼 달리고 있었다. 심지어 초라하기 그지없는 나뭇가지 위에서도 도약이란 걸 했다.
‘물리법칙을 무시하는군.’
문수르는 혀를 찼다.
어스 월드의 상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문수르가 어스 월드의 상식에 얽매일 인간은 아니었다. 문수르, 그 역시 이미 어스 월드의 상식과는 멀어진 인간이었으니까.
‘날 파악했다.’
문수르는 현실에 집중했다.
‘그런데 도망친다?’
지금 엘프는 문수르의 존재를 파악했다. 거기에 문수르가 자신을 도와줬다는 사실도 모를 리 없을 터.
그런데도 문수르를 피해 도망치고 있다.
‘이건 예의가 아니지.’
예의가 맞든 아니든,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문수르 입장에서 엘프는 절대 놓쳐서 안 된다.
문수르 역시 나무 위로 올라갔다.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루트를 출력해.”
- 알겠습니다.
이윽고 로이드의 도움을 받아, 문수르는 빠르게 엘프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우어어!
그 사이 화가 오를 때로 오른 오우거 역시 문수르를 쫓아 거칠게 숲을 때려 부수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꼬리를 물고, 다시 꼬리를 문 상황.
사실 가장 죽을 맛인 건 문수르다.
‘앞에선 튀고, 뒤에서는 살벌하게 지랄하고.’
심지어 엘프와의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렇게 가다가는 테블스 산 깊숙이 들어가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다시 나올 때가 문제다.
문수르가 창을 들었다.
그 순간 문수르의 창이 오러를 머금음과 동시에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스파이럴 어택이다.
“로이드.”
- 예, 주인님.
“타깃 포인트 설정해.”
- 어디로 설정하면 됩니까?
문수르가 그 스파이럴 어택으로 노리는 건 바로.
“저 엘프 뒤통수.”
엘프였다.
로이드는 반문하지 않았다. 곧바로 문수르가 원하는 결과물을 문수르가 쓰고 있는 멀티 글라스에 출력해줬다.
확실하게 타깃 포인트가 잡혔을 때, 문수르는 주저하지 않았다.
쉬익!
곧바로 창이 머금고 있던 오러를, 스파이럴 어택을 엘프의 뒤통수를 향해 날렸다.
동시에 소리쳤다.
“조심해!”
어째서일까?
왜 갑작스레 문수르가 추적하던 엘프를 공격하는 것일까?
설마 엘프를 죽이려고?
그런데 왜 조심해, 그 따위 소리를 지껄인 것일까?
그 결과는 금방 나왔다. 문수르가 스파이럴 어택을 날리자, 엘프의 귀가 쫑긋거리더니, 이내 엘프가 기겁하며 나무 아래로 몸을 날렸다. 문수르의 공격을 피한 것이다.
일부러 조심해, 그딴 소리를 지껄인 것도 이 때문이다.
“오케이.”
나무에서 떨어진 엘프를 보며 문수르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문수르는 믿었던 것이다. 엘프가 자신의 공격 정도는 피해줄 거란 사실을 말이다.
- 못 피했으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로이드가 그런 문수르에게 되물었다. 문수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땐 그거고. 이대로 놓치는 것보다는 낫지.”
추락한 엘프를 향해 곧바로 접근한 문수르. 문수르는 곧장 엘프의 손목을 잡았다.
그 순간 엘프가 단검을 꺼내, 제 손목을 잡은 문수르의 손을 내리찍으려고 했다.
퍽!
그러나 문수르가 더 빨랐다.
문수르가 가볍게 엘프의 무릎을 발로 차며, 엘프의 자세를 무너뜨리자.
휘청!
엘프의 공격은 무용지물이 됐다.
그 과정에서 문수르와 엘프는 눈을 마주볼 수 있었다. 문수르는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는 엘프의 얼굴을,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피는 피로 갚는다.”
문수르의 입에서 나온 건 다름 아니라 엘프들의 고대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