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50화 (50/293)

50화

<13화. 영지 순회.>

1.

이제르트 자작령은 부족한 병력을 채우기 위해 용병대를 꾸리고 있다. 그 용병대를 이끄는 건 A급 용병 3명이었으며, 그들은 이제르트 자작령에서 나름 기사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문수르가 드워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찾아간 이들이 바로 그 3명의 용병대장들이었다.

가장 처음에 만나고자 했던 건 로드게스였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주변에 물어보니, 그가 가장 가까운 장소에 있었을 뿐. 그러나 로드게스가 머문다는 여관에 갔을 때 로드게스는 도무지 문수르 앞에 등장하지 않았다.

온갖 변명을 하며, 오늘은 만날 수 없다고 하는 로드게스.

‘내가 왔는데 날 만나주지 않는다고?’

처음에 문수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자신은 이제르트 자작령에서 나름 이제르트 자작 다음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데, 그걸 모를 리 없는 로드게스는 고작 용병대장 주제에 문수르의 부름을 거절한다?

간이 부었거나, 간이 없거나.

문수르는 살짝 기분이 상했다. 그런 문수르의 표정을 본 로드게스의 부하가 기겁하며 말했다.

“무, 문수르 경. 로드게스 대장은 지금 문수르 경을 정말 두려워하십니다. 정말…… 정말 무례한 말이지만 부디 로드게스 대장의 마음을 헤아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발…….”

부하 용병은 애걸하듯 문수르에게 굽신거리며 말했다. 그 역시 문수르의 심기가 뒤틀려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용병의 모습에 문수르는 표정을 풀었다. 부하 용병이 이 정도로 말하는 걸 보면, 로드게스가 문수르를 정말 두려워하긴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이제 미안한 감정이 생길 지경이었다.

‘거…… 그냥 한 번 기절시킨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무서웠나?’

가만 생각하니 이번에는 좀 어처구니가 없다.

‘아니, 고작 그걸로 겁먹는 인간이 이제르트 자작령에서 용병일로 밥을 먹는단 말이야?’

여하튼 이 정도까지 나오는데 억지로 로드게스를 만날 이유는 없다. 무슨 대단한 걸 묻는 것도 아닌데.

때문에 문수르는 다음 상대를 찾았다. 그 상대는 바로 피드릭이란 인물이었다.

그는 보통 용병과는 다르게 언제나 정갈한 차림새에, 나름 정돈된 자세를 갖춘 인물이었다. 마치 기사의 그것처럼 말이다. 소문에 따르면 기사였던 적이 있으나, 좋지 못할 일로 기사였던 사실을 숨기고 용병일을 한다고 한다.

여하튼 그런 성격과 태도 때문인지, 용병대와 이제르트 자작의 병력 사이에서 접점 역할을 하는 인물이었다.

어떻게 보면 문수르가 대화를 나누기 가장 쉬운 인물이었다.

문제는…….

“문수르 경, 죄송합니다만 저는 드워프나 엘프 사냥을 무척이나 혐오하는 부류입니다. 모든 용병이 돈에만 미친 건 아닙니다. 때문에 그에 대한 지식이 제게는 없습니다.”

피드릭은 드워프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아예 그런 지식을 가지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이 사람도 안 되겠군.’

결국 문수르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건 소피아였다. 사실 문수르는 그녀를 찾아가는 걸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하프 엘프다. 문수르도 하프 엘프가 세상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알고 있다. 엘프에게도 배척 받으며, 인간들에게는 엘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자들. 인간과 엘프,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심지어 하프 엘프는 엘프와 마찬가지로 노예마냥 사냥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그녀에게 드워프 사냥은 어떻게 합니까? 그런 걸 묻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뭐, 귀까지 자른 걸 보면, 이 정도 말에 자기감정을 드러내진 않겠지.’

그렇다고 해서 일일이 상대방 사정을 봐줘야 할 만큼 문수르의 상황도 좋은 건 아니다. 되도록 인도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좋겠지만, 그게 힘들면 힘이라도 쓸 생각이다.

이거 봐주고, 저거 봐주다간 백 년이 지나도 이제르트 자작가의 처지를 바꿀 수 없을 테니까.

그렇게 문수르가 소피아를 찾아갔다. 그녀는 처음 때와 마찬가지로 차가운 표정으로 문수르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죠?”

“별 거 아닙니다. 혹시 드워프 사냥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소피아는 문수르의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사냥 방법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건가요?”

‘대단하군.’

문수르는 감탄했다. 자신의 이런 대화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으니까.

‘속에 칼을 품었어.’

어느 정도 사람 보는 눈이 생긴 탓일까? 문수르는 소피아가 속에 품은 칼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어느 정도 감안할 수 있었다.

‘이런 부류는 괜히 이리저리 찌르면 나중에 크게 혼나지. 적당히 궁금한 거만 물어보자.’

“무슨 특별한 방법이나 혹은 비법 같은 게 있는지, 그걸 알아보고 싶습니다.”

“그런 건 없어요. 대부분 드워프 사냥을 한다는 건, 가진 정보가 얼마나 확실하냐에 따라서 결과가 갈리니까요. 단지 몇 가지 중요한 점은…… 드워프를 단순히 노예로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죠. 드워프의 전투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할 뿐더러, 드워프는 대부분 부족으로 지내죠. 때문에 어설픈 머릿수로 드워프 사냥을 나갔다가는 전멸하기 십상이에요. 그래서 대부분 드워프 사냥에 나설 땐 용병들이 나서기보다는 여러 영지의 영주들이 힘을 합쳐서 사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제가 아는 건 이 정도 뿐이에요.”

“감사합니다.”

일반적인 말이다. 문수르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말. 하지만 문수르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래, 이 정도가 전부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보를 찾은 거지만, 사실 드워프가 무슨 벌레도 아니고 나무 기둥에 꿀 바르는 정도로 잡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확실히 할 수 있었다.

‘드워프의 전투력을 간과할 뻔했어.’

이제까지 문수르는 드워프를 찾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지만, 사실 찾는다고 해도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드워프의 전투력은 강하다. 기가스라도 끌고 가지 않는 이상, 단순히 힘으로 드워프 족을 상대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 더군다나 이제르트 자작령의 병력을 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GPS시스템으로 탐색을 더 해보자. 그러다 보면 드워프의 흔적을 발견할지도 모르지.’

문수르는 침착하게 상황을 생각했다.

2.

이제르트 자작이 문수르에게 말했다.

“문수르 경, 이제 슬슬 영지 내에서 자네의 얼굴을 알릴 필요가 있을 듯하네.”

갑작스런 말이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네. 솔직히 말해서 자네의 이름은 제법 알려져 있지만, 자네의 얼굴을 아는 자는 많지 않네. 그 때문에 여러 가지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번 기회에 자네가 영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얼굴을 알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걸세.”

이제르트 자작의 말에 문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도 있었구나.’

문수르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듣고 보니, 이제르트 자작의 말이 맞았다.

이 세계에 무슨 사진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이름만 안다고 해서 이야기가 끝나는 게 아니다. 얼굴도 알릴 필요성이 있다. 그래야 나중에 문수르가 혼자 움직이더라도 사람들이 그가 문수르인 걸 믿어줄 터. 까놓고 지금 이 순간 어디서 누군가는 문수르의 이름을 써서 사기를 치는 중일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이 모이면 종국에 문수르의 평판이 깎이는 것이다.

“겨울 동안은 테블스 산의 몬스터들도 잠잠해지네. 물론 먹을 게 떨어져서 난리 치는 놈들도 있지만, 동면에 드는 부류들도 있지. 그게 아니더라도 혹독한 겨울 동안 영지민들을 두루 살피지 않으면, 그들이나 나나 힘들어지네.”

이제르트 자작이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영주가 그들에게 풍족한 식량을 주진 못하더라도, 그들을 위한다는 것쯤은 보여줘야 그들도 희망을 가지지 않겠나?”

생각해보면 슬픈 이야기다. 근거 없는 희망, 고작 그것 하나에 생사가 갈리는 땅이라니?

“그럼 영지 순회를 하시는 겁니까?”

“지금 준비 중이네.”

영지라는 것이 보통은 영주가 기거하는 땅을 기점으로 내성이 있고, 그 너머에 외성이 있다. 그러나 거기서 영지가 끝나는 건 아니다. 그 밖으로는 다시 여러 마을이 위치해 있다. 그것들까지 합쳐서 영지가 되는 것이다.

영주는 이런 자신의 영지를 1년에 몇 번 정도 돌아보고는 한다.

보통은 이걸 영지 순회라고 하지만 일각에서는 영지 시찰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표현이 갈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지 순회는 말 그대로 영주가 영지민들을 보살피기 위해 하는 것이고, 영지 시찰은 영주가 영지민들을 좀 더 짜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전자가 영지민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그걸 해결해주는 거라면 후자는 영지민들에게 뇌물을 받고, 혹여 숨긴 재물은 없나, 어여쁜 여자는 없나, 혹은 취향 독특한 놈들은 어여쁜 남자아이가 없나, 그런 걸 보는 거다.

이제르트 자작의 경우에는 당연히 전자다. 애초에 이제르트 자작령에서는 쥐어짜낼 것도 없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잘 됐군.”

문수르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영지 순회가 날짜가 잡혔을 무렵, 문수르는 한 번 더 연무장에 찾아왔다. 사실 고구마 수확은 이미 끝난 상황이라서 병사를 차출할 필요는 없었다. 이번에 연무장을 찾은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문수르가 연무장에 왔을 때 문수르를 바라보는 시선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오히려 문수르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독기 비슷한 게 섞여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수르는 최근 훈련 매뉴얼을 바꿨고, 그 이후로 병사들은 다시 죽어가기 시작했다.

때문에 병사들의 눈에 비친 문수르는 악마나 다름없었다.

‘저분은 악마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악마야.’

‘그런데 착해…….’

그때부터 문수르의 별명은 알게 모르게 착한 악마가 됐다. 악마 같은 인간인데 무지하게 착하다.

여하튼 문수르는 병사들을 둘러보며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훈련은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기사들은 문수르가 훈련 매뉴얼을 갑작스레 바꿨을 때 의구심을 가졌지만, 이내 병사들이 끙끙 앓는 걸 보며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모름지기 훈련이란 건 이래야지.’

솔직히 말해서 기사들은 이렇게 병사들이 훈련하다 지쳐 쓰러지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최근 문수르의 훈련에 익숙해진 병사들이 훈련은 너무나도 쉽게 소화했다. 문수르가 계획하는 일이라서 뭐라고 할 순 없었지만,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차에 아주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훈련 매뉴얼을 가져왔으니, 기쁨의 미소를 지을 수밖에.

“이야기는 들으셨지요?”

“영지 순회 말씀이십니까? 걱정 마십시오. 이미 동행할 병사의 차출은 끝났습니다.”

영지 순회를 하는데 병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르는 법이다. 병사와 동행하는 건 당연한 일. 대신에 기사들은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본래 예전에는 세 명의 기사가 동행했었는데, 중요한 전력인 기사의 이탈은 영지 운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수르가 동행하자, 기사들을 더 동원할 필요가 없었다. 문수르의 실력은 이제 이제르트 자작가의 기사들 전부가 덤벼야 간신히 상대가 될 정도였으니까.

대신에 기사이긴 하지만, 이제는 거의 의사가 되어버린 헤인은 동행에 참가했다.

여기에 추가로 차출되는 병사가 스무 명이다.

“전부 실력 좋은 놈으로 골랐습니다.”

기사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문수르는 그런 기사를 보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 부분 때문에 논의해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예?”

“병사들을 차출하는 걸, 제 임의대로 해도 좋겠습니까?”

“그야…… 문제 될 건 없습니다만 무슨 이유라도……?”

기사는 살짝 표정을 굳었다.

사실 민감한 이야기다. 문수르의 말을 다르게 받아들이면, 자신이 뽑은 병사들의 실력을 믿지 못한다는 말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으니까.

물론 문수르는 기사의 눈을 의심하는 게 아니었다.

“사실 영지 순회라는 게 어떻게 보면 좋은 기회 아닙니까? 대부분의 병사들도 결국 영지민인데, 이런 기회가 아니면 가족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기사는 표정이 덜 풀린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말입니다, 이제르트 자작령을 어디보다 살기 좋은 영지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걸 위해서 작은 것이라고 하나둘씩 바꿔나가고자 합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지 순회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영지민들을 보살피고, 굽어 살피기 위함 아닙니까? 그런 영지 순회에 영지민인 병사들에게도 조금은 혜택을 주고 싶습니다.”

“아아…….”

그제야 기사의 표정이 풀어졌다.

“문수르 경의 말을 알겠소. 허허…… 오래 동안 병사들을 지휘했는데 문수르 경과 같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문수르 경의 말이 맞소. 사람이 가족을 만나야지. 아무렴.”

기사들이야 아내나, 자식이 성에 마련된 저택에서 머무니 문제될 게 없지만 병사들은 그게 아니었다. 병사들은 가족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실제로 탈영병 중 일부는 훈련이 고되거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가족을 보고 싶어 탈영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지 순회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영지 전체를 순회하는 만큼, 어떻게든 가족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

“문수르 경, 그 일도 내가 하겠소. 사실 몇 놈 마음에 걸리는 녀석들이 있었는데, 잘 됐군. 문수르 경, 내가 잘 추리겠소.”

자신의 말뜻을 이해해준 기사의 모습에 문수르도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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