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46화 (46/293)

46화

<12화. 겨울나기.>

1.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르트 자작령이 테블스 산 앞에 진을 친 이후로 혹독하지 않은 겨울은 없었지만, 올해는 유독 혹독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이제르트 자작은 앞으로 겨울을 보낼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한숨부터 나왔다.

“돈이 돈 같지가 않군. 물보다 더 쉬이 세어나가는 기분이야.”

몇 달 전.

문수르가 불스 백작가에서 돌아왔을 때, 문수르가 가져온 선물은 엄청난 것이었다.

일단 기가스가 담보로 잡고 있던 5천 골드의 빚이 탕감됐다.

그분인가? 문수르는 불스 백작으로부터 무려 5만 골드라는 거금마저 대출 받는데 성공했다.

어떻게든 돈을 빌려보려고 사방팔방 안 찔러본적이 없었던 이제르트 자작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문수르 경! 대체 어떤 마법을 부렸기에 불스 백작을 설득하는데 성공한 것이오? 심지어 5만 골드라니?”

그런 이제르트 자작의 칭찬 앞에서 문수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뭐 딱히 한 건 없습니다.”

“허허, 문수르 경은 너무 예의를 차리는 게 흠 아닌 흠이외다.”

사실 문수르는 정말 한 게 없긴 했다. 사실상 불스 백작은 문수르와 교섭하기 전부터 이제르트 자작가를 자신의 정치적 욕심을 위해 이용하기로 어느 정도 결심한 상황이었으니까.

오히려 문수르가 어설프게 만든 그 스프 요리 탓에 판이 깨질뻔했다.

‘진짜 운이 좋았어.’

문수르는 아직도 불스 백작이 자신의 요리를 보고 맛이 없다고 말하는 때를 떠올리면 등골이 싸늘하게 식었다. 거기서 정말 일이 틀어졌다면 이제르트 자작가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을 것이다.

뭐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일단 당장 담보로 잡혀있던 기가스가 차압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소득인 건 분명했고, 여기에 추가로 받은 5만 골드는 정말 메마른 땅 위의 소나기나 다름없었다.

물론 누군가는 말한다. 3년 후에 5만 골드를 갚지 못한다면 이제르트 자작가가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이제르트 자작은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큰 걱정이 조금도 없었다.

‘어차피 당장 내일도 기약할 수 없는 영지다. 3년 후의 미래에는…… 그래, 차라리 내가 희생해서 나를 따르는 이들이 3년 후의 미래라도 볼 수 있다면 그 희생이 대수일까?’

이미 자신의 사리사욕은 버린 인물이다.

오히려 이제는 이름뿐인 가문을 담보로 거금을 빌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빌리고 싶다.

그러나 문제는 5만 골드라는 돈이 메마른 땅을 적셔주기는 했는데 소나기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한 번 오고 가는 비, 소나기.

돈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일단 가장 급했던 부분은 병력 유지비였다. 당장 용병들에게 밀려있던 일당을 지급했고, 병사들에게는 봉급을 지급했다.

여기에 추가로 새로운 무기나 방어구를 구입했으며, 기가스의 주요 부품을 구매하는 데에는 돈이 뭉텅뭉텅 빠져나갔다.

결국에 이제르트 자작이 식량 구매를 위해 문수르를 찾아갔을 때.

“밀을 사시겠다고요?”

“그러네. 아무래도 우리 영지 내에서의 수확량이 많지 못하니, 식량을 구매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금 우리 영지를 먹여 살릴 만큼의 밀을 살 돈이 없습니다만?”

이제르트 자작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말 그대로입니다. 용병들 잔금 지급하고, 거기에 새롭게 계약하면서 계약금 지급했고, 병사들 봉급도 지급했고, 기사들은 스스로 나서서 영지에 도움을 주기 위해 봉급을 받지 않았지만 대신에 무구들을 보수 및 구매했습니다. 특히 기가스 쪽이 돈이 많이 빠졌습니다. 이리저리 하다 보니까 5만 골드가 금방 바닥을 보이더라고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맞는 말이기 이전에 이제르트 자작은 문수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상 예산 및 회계 담당은 이제 전적으로 문수르가 담당하고 있다. 때문에 영지에 돈 쓸 일이 필요하면 이제르트 자작도 문수르를 찾아왔다.

그런 문수르의 역할 중 하나가 무엇인가?

예산을 허투루 쓰지 않고, 우선순위를 정해 가장 중요한 일에 먼저 쓰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문수르는 돈을 요구하는 족족 퍼다 주는 바람에 결국 예산에 구멍을 낸 것이다.

물론 문수르가 허튼 곳에 돈을 쓴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식량구매를 위한 예산 정도는 남겨두는 게 상식 아닌가?

‘끄응……!’

이제르트 자작은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제르트 자작은 결코 문수르를 나무라지거나, 그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애초에 5만 골드라는 돈조차 문수르가 없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테니까.

‘문수르 경의 선택을 따른다.’

한편으로는 문수르에게 다른 무슨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문수르는 결단을 내린 것일 수도 있다.

지금 당장 이제르트 자작가에 필요한 건 쉽게 말하면 빵과 칼이다. 빵은 먹을 식량, 칼은 몬스터와 싸울 병력.

빵과 칼이 둘 다 있으면 좋겠지만, 이제르트 자작가의 사정을 생각하면 어느 한쪽을 골라야 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 선택은 과감할 필요성이 있다. 어설프게 선택을 했다가는 이도저도 아닌 꼴이 될 테니까.

여기서 문수르는 칼을 선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빵을 선택하지 않았기에 당장 겨울이 끝나면 적지 않은 숫자의 영지민이 배고픔과 굶주림에 죽어가겠지만, 반대로 영지는 지켜낼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잔인하지만 어쩌면 옳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배부르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래, 문수르 경이 나를 대신해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는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자다. 그런 그가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필시 엄청난 각오와 고뇌가 있었을 터.’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니, 이제르트 자작은 문수르가 다시금 대단해 보였다.

밤중에 그가 했을 고뇌와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물론 문수르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지만.

‘식량이야 문제될 거 없잖아?’

사실 그는 빵이 있었다.

2.

이제르트 자작이 식량 구매를 요청했다 퇴짜를 맞았다. 그 이후 이제르트 자작은 오히려 문수르에게 가엽다는 눈빛을 보내며 아무런 말없이 방을 나갔다.

“이제르트 자작이 왜 날 가엽게 보는 거지?”

문수르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후 문수르는 곧장 로이드를 불렀다.

“고구마는 어때?”

문수르의 말에 그동안 문수르가 없는 사이 고구마 밭을 감시하고 있던 로이드가 입을 열었다.

-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이제 곧 수확을 해도 문제가 없을 듯합니다.

“그래?”

문수르는 일찌감치 여러 밭을 골라 여러 종류의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떤 작물이 이제르트 자작령의 땅에 잘 맞는지, 어떤 걸 주력으로 삼고 재배하는 게 나을지 비교하기 위해 작물들을 심었다가, 어느 순간부터 문수르는 아예 고구마 재배를 위한 밭을 따로 만들었다. 그 밭의 크기는 상당했다. 애초에 이제르트 자작가는 농지보다 농지에서 농사를 할 농지민의 숫자가 적은 곳이었으니까. 땅은 넘쳐났다.

그럼 대체 왜 갑작스레 고구마를 주력 작물로 삼은 걸까?

“지금 고구마 밭 좀 볼 수 있어?”

- 가능합니다.

멀티 글라스를 통해 밭의 상황을 살펴본 문수르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진짜 생각 이상으로 잘 자라네. 이거 예상보다 훨씬 크게 자란 것 같다?”

- 어스 월드보다 대략 수확량이 4.9배 정도 높습니다.

“헉? 4.9배? 그게 말이 돼?”

고구마 재배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고구마의 싹을 키운다. 그렇게 해서 자라난 싹을 모종으로 삼아서 땅에 심는 거다.

그 후에 잘 관리하면, 고구마가 열리게 된다. 이후 그 고구마를 이용해 다시 싹을 키우고, 모종을 만든 후에 심고…… 이걸 반복하다 보면 고구마 밭이 나오는 거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고구마에서 싹이 나기까지도 시간이 걸리고 그 싹을 모종으로 심은 후에 그 모종에서 다시 고구마가 자라기까지도 시간이 걸린다.

영지에 도움이 될 정도의 양을 수확하려면 적어도 한해 정도는 밭을 키우는 데에 주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문수르가 가져온 고구마가 자라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 아무래도 케르빈 월드의 마나가 고구마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 듯싶습니다.

물론 보통 고구마는 아니었다.

품종 개량은 물론 유전자 조작까지 해서 만들어낸 고구마다. 하이테크의 결정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말이다. 성장 속도도 빠르고, 크기도 남다르며, 맛도 좋고, 병해충에도 강한 말 그대로 슈퍼 고구마!

그런데 그 슈퍼 고구마에 케르빈 월드의 충만한 마나가 적용되니, 더 강력해졌다.

- 심지어 잡초도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그건 좀 심하네.”

심지어 잡초마저 짓누를 정도다.

- 성장 속도가 주인님보다 더 빠른 듯합니다.

“야! 그 말은 할 필요가 없잖아?”

- 최근 주인님이 다른 일에만 관심을 가지시고, 수련은 게을리 하시기에 직언 좀 했습니다.

“젠장.”

어쨌거나 수확 가능한 고구마의 양이 보통이 아니다. 물론 이제르트 자작령의 영지민들 전부를 겨울 내내 먹여살릴 정도는 안 된다.

하지만 이제르트 자작령에 식량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농사를 안 하는 것도 아니고, 겨울에 대비해 이제르트 자작이 나름 열심히 비축해둔 식량이 있다.

그 식량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정도는 된다. 배부르게 겨울을 보낼 수는 없을지라도, 배고픔에 죽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근데 잡초까지 무시할 정도면…… 퇴비도 안 주고, 밭을 따로 관리해주는 것도 아닌데 대단하긴 대단하다.”

-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좋은 게 좋다?

로이드의 말에 문수르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고구마가 이런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는 건,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문수르가 가져온 슈퍼 고구마가 케르빈 월드의 생태계를 농락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케르빈 월드에 좋을 지는 미지수지.’

슈퍼 고구마가 이제르트 자작령에는 아주 큰 도움이 되겠지만, 과연 케르빈 월드 전체를 놓고 봤을 때도 좋은 일일까?

언젠가는 기어코 이 고구마는 콩탄 왕국은 물론 케르빈 월드 전역에서 주요 작물로 재배될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확량을 보이는 이 고구마를 인간이 그냥 지나칠 리 만무하다.

그 다음에는?

과연 대륙 곳곳에 뿌려진 슈퍼 고구마가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까?

결과는 모른다.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수도 있다. 반대로 정말 암담한 결과가 나올수도 있다.

어쩌면 수백 년 후에는 고구마 괴물이 등장해서 사람을 잡아 먹을 지도 모른다.

‘그건 좀 무섭네.’

인간을 먹고 성장하는 고구마라…… 그쯤 되면 생태계 유린 정도가 아니라, 생태계의 혼돈 파괴 망각 수준일 터.

‘내가 고려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문수르는 각오를 다졌다. 수백 년 후의 미래를 꿈꾸며 이 자리에 온 게 아니다.

그는 당장의 이제르트 자작가를 부흥시키기에 이 자리에 있다.

“그럼 고구마를 수확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수확량이 많아서 나 혼자는 힘들겠는데?”

- 일손이 필요하십니까?

“뭐 괜찮은 일손이 있어?”

- 있다 뿐이겠습니까, 연무장에 지금 일꾼들이 이미 준비운동도 마친 상황인데.

“어쩜 나랑 생각이 똑같냐?”

문수르가 일꾼으로 병사들을 데려가기 위해 연무장을 찾았을 때.

“응?”

문수르는 웬지 연무장에 있는 사람의 숫자가 예전보다 훨씬 많은 것처럼 보였다.

‘착각인가?’

처음에는 그냥 간만에 오는 연무장이라서 그렇게 보이는가, 해서 넘어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람이 늘었네?”

“헙! 문수르 경!”

기사들은 갑작스런 문수르의 등장에 기겁을 했다.

“문수르 경, 인기척이라고 내고 접근하시오.”

“요즘 들어 문수르 경의 발소리는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않을 정도외다.”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최근 들어 문수르의 발소리는 고양이의 그것마냥 작아지기 시작했다. 문수르가 익힌 마나 호흡법이 궤도에 오르면서 문수르의 몸속 곳곳에 나무 줄기마냥 마나의 통로가 뻗어나갔다.

보통은 마나 호흡법이 이렇게까지 좋은 결과물을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문수르가 익힌 마나 호흡법은 그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애초에 문수르가 익힌 마나 호흡법은 신창 페르누스, 케르빈 월드의 역사 속에서도 손꼽히던 최강자가 익힌 마나 호흡법 아니던가? 진짜 숨만 쉬는 것만으로도 몸이 좋아진다는 게 허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반면 문수르는 막상 자신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했다.

‘내 발소리가 그렇게 작은가?’

본인 입장에서는 당연한 변화다. 괜히 본인이 본인의 변화를 모르는 게 아니다.

“그보다 연무장에 사람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제 착각이 아니지요?”

“아, 다름 아니라 용병들 중 일부가 훈련에 참가하기 시작했소.”

“용병들이?”

용병이란 말에 문수르의 머리 위에 딱 2명의 용병이 떠올랐다. 한 명은 처음 만나자마자 문수르에게 맞아 기절한 로드게스.

‘그 양반은 그때 이후로 코빼기도 안 보이던데?’

사실 그때 이후로 로드게스를 만난 적이 없다. 문수르가 딱히 그를 일부러 피한 건 아니니까, 아마도 로드게스 쪽에서 피한 모양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다름 아니라 소피아란 여자 용병.

‘그 아가씨는 이리저리 뛰는 건 봤어도 얼굴 본 적은 꽤 됐네? 아, 맞다. 하프 엘프였지?’

여자의 몸으로 A급 용병에다가 심지어 스스로 귀를 잘라 자신의 정체를 숨긴 하프 엘프.

용병이란 말을 들으니 그렇게 둘이 떠올랐다. 그 외의 나머지 사람들은 솔직히 떠오르지 않았다. 보통 용병대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규율이 있었고, 문수르는 그 규율까지 터치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런 용병들이 이제르트 자작가의 사병들이 받는 훈련에 참가하다니?

“왜 용병들이 갑작스레 훈련에 참가한 겁니까?”

“공짜로 참가한 건 아니오.”

“허, 돈을 내고 이 훈련을 받는다고요?”

“이게 다 문수르 경 덕분 아니겠소?”

“예?”

“문수르 경의 훈련 방법 덕분에 병사들이 나날이 강해지고 있소. 그걸 가장 곁에서 본 이들이 용병들이오.”

“용병들만큼 자기 실력에 목숨을 거는 이들도 없지. 애초에 자기 실력이 곧 목숨이니까. 그렇다고 마나 호흡법처럼 비전으로 전해지는 것도 아니니,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지 않소?”

이야기를 듣던 문수르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문수르의 훈련법은 제대로 먹혔다. 무식하게 굴리기보다는 적당한 휴식시간을 넣고, 훈련방식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바꾼 것만으로도 병사들의 능력이 나날이 발전됐다.

‘이것도 사실은 마나 덕분이지.’

이런 결과는 사실 케르빈 월드에 충만한 마나 덕분이기도 했다. 충만한 마나가 신체 회복과 성장을 도와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문수르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

‘이제 슬슬 효과가 떨어질 텐데?’

보통 육체 능력을 향상시킬 때 일정 기간을 주기로 루틴이란 걸 바꾸고는 한다. 몸이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 성장은 더뎌질 수밖에 없으니까.

‘좀 더 훈련강도를 세게 만들어도 괜찮겠는데?’

하지만 상황을 보니, 운동 패턴을 조금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뜯어 고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세상 모든 병사들에게 훗날 착한 악마의 수련법이라고 불리게 될 문수르 훈련법이 문수르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 그보다 병사들 좀 차출하겠습니다.”

“음? 무슨 일인가? 몬스터가 침입했나?”

“별 건 아니고, 제가 이번에 취미 삼아 작물을 좀 재배했는데 이제 겨울이 되고 해서 수확 좀 하려고 합니다. 좀 많아서 저 혼자는 힘들고 병사들 좀 데려가겠습니다.”

작물 재배, 즉 농사가 취미라는 말에 기사들이 살짝 놀랐다.

사실 그들 입장에서 농사라는 건 농노들이나 평민들이 하는 일, 말 그대로 수준 낮은 이들이 하는 일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르트 자작가의 기사들이 농사를 아주 천대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식량의 귀중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뿐더러, 가뜩이나 농사할 인력이 없어 고생하는 이제르트 자작령에서는 농노조차도 정말 귀한 대접을 받았다.

“문수르 경에게 그런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군. 대체 어떤 작물인가?”

“고구마란 겁니다.”

“고구마?”

고구마란 단어에 기사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케르빈 월드에는 감자나 고구마는 물론 그 비슷한 것들도 거의 없다. 고구마랑 비슷한 건 아예 없을 뿐더러, 감자랑 비슷한 작물이 있긴 한데 문제는 감자의 싹이 솔라닌이란 독을 품은 것과 같은 비슷한 특성도 있다는 사실이다. 일정시간이 지나면 독을 내뿜는 작물을 재배한다는 건, 케르빈 월드의 통념상 납득 불가능한 부분이다. 오히려 저주 받은 작물이라고 해서 키우는 걸 금지하는 곳도 있다.

물론 확실한 건 아니다다. 케르빈 월드는 넓으니까. 어느 곳에서는 고구마를 재배하는 경우도 있겠지.

“몇 명 정도면 되겠나?”

“한 서른 명 정도 뽑아주시죠.”

“그 정도야 뭐…….”

기사들이 곧바로 병사들을 지목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처음에는 기사들이 무슨 일을 시킬까, 조금은 겁부터 먹었지만 기사들은 한 마디에 병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문수르 경을 돕는 일이다.”

그 말에 다른 병사들마저 고개를 들며 소리쳐다.

“저도, 저도 돕겠습니다!”

“지금 막 훈련 끝났습니다!”

병사들의 너무나도 열렬한 반응. 그 반응에 오히려 놀란 건 문수르 쪽이었다.

‘대체 왜 이래? 밥 한 끼 사준 적도 없는데?’

문수르 스스로도 놀란 자신의 인기.

그 시작점에는 다름 아닌 헤인 경이 있었다.

============================ 작품 후기 ============================

날씨가 매우 춥습니다.

모두들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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