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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맨-45화 (45/293)

45화

8.

솔직히 박문수, 그는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한국 내에서 그가 가지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대기업 총수들도 박문수 앞에서 감히 함부로 야야! 거리지 못한다. 박문수 뒤에 존재하는 한석균의 존재감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박문수를 상대로 나이 어리다고 대뜸 반말을 하는 주정희의 모습은 과격하다 못해 파격적으로 보일 정도다.

하지만 여기서 문수는 알 수 있었다.

‘나를 시험하는구나.’

처음 만났을 때 주정희는 단호하고, 퉁명스럽게 말을 뱉긴 했지만 예의를 잃진 않았다. 상대방이 헛것이던, 아니던 간에 최소한의 선은 지켰다.

그런데 지금 그 최소한의 선을 넘어갔다.

만약 눈앞의 인물이 한 번 보는 것으로 끝날 상대였다면 그런 수작을 부릴 필요가 없었을 터.

즉, 주정희는 문수를 한 번 보고 끝낼 상대가 아니라, 좀 더 이야기를 나누게 될 사람으로 봤다는 의미다.

‘반쯤 넘어왔군.’

여기서 문수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건지.’

취미 삼아 하려는 야구구단 운영에 어느 순간 집착하고 있다. 사실 문수는 이럴 때가 아니다. 조만간 노크 클락의 충전이 끝나면, 곧바로 케르빈 월드로 가야 한다.

아마도 4일 정도…… 그 정도 남았을 것이다. 4일 후에 케르빈 월드로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케르빈 월드로 떠나면 그곳에 곧 겨울이 올 테니까. 케르빈 월드에서의 겨울은 혹독한 시기다. 혹독한 시기이기에 언제 어느 순간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케르빈 월드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준비도 해야 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곧바로 기지개를 펼 준비를 말이다.

‘정신 차리자.’

문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문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새로 만들게 될 신생 구단의 구단주가 되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정희는 대답했다.

“난 더 이상 프로야구계에 미련이 없다.”

아무래도 주정희가 프로야구계에서 얻은 상처는 큰 모양이다. 문수는 그런 주정희에게 말했다.

“미련으로 하라는 게 아닙니다.”

말과 함께 문수가 꺼내기 시작한 것은 계약서였다. 마치 책으로 착각될 법할 정도로 많은 양의 계약서. 문수는 그 계약서를 흔들며 말했다.

“사실 당신을 감독직에 앉히려고 사람들을 시켜 이 계약서를 만들었습니다. 온갖 감언이설로 치장한 계약서입니다. 예를 들면 매년 FA에서 원하는 선수를 무조건 영입해준다거나, 해외 전지훈련은 원하는 기간 동안 원하는 만큼 가능하고, 선수 및 코치진들의 성과급에 대한 것, 선수 복직, 직원 복지, 2군 구장 등……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 내용의 계약서였는데…….”

그 계약서, 책처럼 두꺼운 계약서를 문수는 양손으로 찢어버렸다.

주정희의 눈이 커졌다. 저 두꺼운 종이뭉치를 그저 손으로 찢는 게 가능한가?

“솔직히 지금 이 계약서는 의미가 없을 것 같군요.”

“흥.”

그러나 이내 다시금 퉁명스런 반응을 보이는 주정희. 그런 주정희이게 문수는 말했다.

“야구를 취미로 삼는 건 좋다. 하지만 프로라면 이기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승부에서 승리하는 것이 전부다. 이게 당신 지론 맞습니까?”

“지론이 아니라 당연한 말이다.”

“그럼 프로야구를 두고 저랑 승부합시다.”

“뭣이라?”

“전폭적인 지원을 해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상상하는 그 이상, 코치진? 백 명이든 천 명이든 좋습니다. 2군 구장? 내키면 3군 구장까지 지어드리죠. 선수들? 내키는 대로 데려와도 좋습니다. 전지훈련 비용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숙박비? 필요하시면 호텔 하나 구매해서 준비해드리죠. 비행기? 전용기 구해드릴까요? 외국인 용병? 뒷돈 써서 메이저 리그 최고의 투수라도 데려올 수 있습니다. 욕이야 무지하게 먹겠지만.”

“결국 감언이설이군.”

감언이설이라는 계약서를 찢은 후에 다시 감언이설? 우습지도 않다.

하지만 문수의 의도는 달랐다.

“이걸 감언이설로 들으셨다면 실망입니다. 이건 감언이설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말입니다.”

“흥, 뭐가 무시무시하다는 거지?”

“이 정도 지원을 해주는데, 3년 안에 우승하지 못한다면 그건 주 감독님의 무능을 증명하는 꼴이 될 테니까요. 당신을 이제까지 그렇게 고집불통으로 만든 것도 결국 야구에 대한 자신감 때문 아닙니까? 내 야구가 정답이다, 내 야구가 최고다.”

그 말에 주정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문수의 말은 확실했다.

그 취급, 그 대우를 받으면서도 이제까지 야구계에 계속 남아있는 건, 자신감 때문이다.

자신의 야구가 최고라는 것을, 자신의 야구로 우승이란 것, 승리란 걸 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자신감이 없었다면 진즉에 미쳐버려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런 자신감이 없었다면 애초에 프론트 앞에서 오롯하게 폼을 잡는 것도 불가능했겠지. 부족한 자신감을 어떻게든 채우기 위해 프론트에 아부하고, 협조했을 테니까.

“제가 왜 승부를 운운하시는지 아시겠습니까? 당신 인생이 걸린 승부입니다. 물론 누군 말하겠죠. 신생 구단 주제에 3년으로 어떻게 우승을 하겠느냐? 하지만 당신은 그 누군가가 아니잖습니까?”

3년 만에 신생 구단이 우승한다? 누군가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수가 앞으로 할 지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또한 신생구단인 만큼, 리그 차원에서의 지원도 적지 않을 터.

만약 정말 주정희의 능력이 뛰어나다면, 문수의 지원을 받을 경우 우승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면, 만약 3년 안에 신생 구단을 우승시킨다면 주정희의 야구가 정답이라는 의미일 터.

그 순간 주정희가 표정을 풀었다. 그는 갑작스레 문수 앞에 고개를 숙였다.

“박문수 부회장.”

말투도 바뀌었다.

“솔직히 말하겠소. 나는 당신을 시험했소. 보통은 내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당신 같은 부류들은 나를 상대조차 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당신은 조금 다른 것 같소.”

너무나 갑작스런 반응이다. 감정기복이 하늘과 땅차이다.

하지만 문수는 이해했다.

‘야구를 하고 싶었지만, 정신병이 생길 정도의 트라우마를 겪었는데 정상적으로 보이면 그게 이상한 거지.’

주정희는 어떤 의미에서 병자다. 정신병자…… 만약 감독직을 수락하더라도 그는 몇 가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솔직히 지금 상황으로는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 자체가 힘들 테니까.

“일단 이제까지의 무례를 사과하겠소.”

“괜찮습니다.”

그러나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무례에도 염치없이 부탁하겠소. 내가 원하는 걸 마련해주시오.”

이윽고 진짜 자신의 속마음을 말하는 주정희.

“나는…….”

하지만 말을 뱉으면서도 그는 조금 부끄러웠다. 이렇게 빨리 안면을 바꾸게 되는 자신의 존재에 회의감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열망이 더 컸다. 부끄러움, 회의감보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더 컸다.

“이런 말을 이렇게 갑작스레 하는 것도 우습지만, 내게 기회를 준다면 당신 말대로 3년 안에 우승을 시켜보겠소. 최고를 만들겠소. 실패한다면, 그땐 내가 내 발로 직접 떠나리다.”

문수는 그런 주정희의 반응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것으로 대화는 끝이었다.

이제 남은 건 실무진들이 크게 만든 틀 안을 채우는 일뿐이니까.

한국 야구계가 들썩였다.

- 박문수 부회장이 10구단을 창단했습니다.

- 수원을 연고로 하며…….

- 박문수 부회장은 유래가 없을 정도의 지원을 약속하며,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 수준은 되어야 체면이 선다고…….

신생 구단의 등장!

KBO와 다른 9개 구단 관계자들은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10구단의 창단을 승인했다.

더불어 파격적인 소식은 곧바로 나왔다.

- 새로운 구단의 감독으로는 주정희 전 감독이 선임되었습니다.

비운의 야구장인 주정희 감독의 복귀!

새롭게 몰려오는 야구계의 태풍 속에 한국 야구계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문수는 TV로 보고 있었다. 그런 문수의 곁에는 휠체어에 탄 한석균 회장이 있었다.

“조금 일이 커졌습니다.”

문수는 TV를 보다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석균 회장은 그런 문수에게 말했다.

“뭐가 말인가?”

“들어가는 돈이 보통이 아니라면서요? 간단하게 취미 생활이나 하려고 했는데…….”

“후후후, 돈 때문에 그런 건가? 자네는 가끔 날 너무 우습게 볼 때가 있네.”

문수가 질색하며 손을 내저었다.

“우습게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난 자네가 다른 이유로 사과를 할 줄 알았네.”

“다른 이유? 제가 그동안 케르빈 월드에서의 임무를 망각하고 이리저리 싸돌아다닌 거 말씀이십니까?”

“알긴 아는군.”

문수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전 결코 케르빈 월드의 임무에 대해서 허투루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제 목숨이 걸린 일인데 어떻게 허투루 생각하겠습니까?”

“다행이군. 하지만 사실 자네가 사과를 한다고 했어도 이번 일에 대해서는 딱히 나무랄 생각이 없었네. 솔직히 말하면 자네가 이번 일을 통해 교훈을 얻었으면 했거든.”

“교훈…… 말입니까?”

갑작스런 단어다.

교훈이라니?

“나는 자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려고 했지만, 실제로 자네가 가장 감을 잡지 못하는 게 하나 있지. 그게 뭔지 알고 있나?”

“……너무 많습니다.”

“아니, 사실 자네의 능력은 나름 출중하네.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좋고, 습득하는 능력도 빠를 뿐더러,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자네는 뛰어난 무력을 소지했고, 나름 적당한 수준의 지식도 소유하고 있지. 하지만 자네에게 부족한 게 하나 있다네. 그건 바로 돈을 쓰는 방법일세.”

“예?”

더 갑작스런 말이다. 돈을 쓰는 방법을 모른다?

“보통 사람들은 가질 필요가 없는 능력이지. 보통 사람들이라면 돈은 그냥 자기의 재량에 맞게 쓰면 되네. 여기서 말하는 보통 사람들은 그냥 일반인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소위 자산가 소리를 듣는 인간들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대기업을 이끄는 총수나, 그와 비슷한 업무를 하는 자들은 돈을 쓰는 방법을 알아야 하네.”

“회계나, 예산편성 등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확실히 큰돈을 쓰는 데에는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문수는 자신이 그 부분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한석균은 문수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로이드에게 맞기면 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사람에게 돈을 쓸 때, 그런 경우를 말하는 거네. 예산을 편성하고, 기획하고, 돈을 준비하고, 마련하고…… 하지만 결국엔 그 돈을 다루게 되는 건 사람이지. 사람을 알아야 하네. 왜 선진화된 시스템 속에서도 비리가 일어나고, 탈세가 일어나는 것 같나?”

탈세라는 것.

생각해보면 범법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굳이 탈세를 저지르려고 한다. 대부분 금전적 이익을 위해서다.

하지만 정말 그분일까? 사실 탈세를 저지른 부류 중에서는 돈이 많은 자들도 있다. 수백억 대 자산가가 고작 몇 백만, 몇 천만 원의 금전적 이익을 위해 탈세를 하기도 한다.

솔직히 납득이 안 가는 일이지 않은가? 뉴스에 나오고, 범법자 소리를 드를 바에는 그냥 납부하는 게 나은데.

반대로 칼 같이 세금을 내는 부류도 있다. 그들은 왜 칼 같이 세금을 내는 걸까?

탈세자와 납세자 사이에 법적인 제도의 차이점이라도 있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결국 그 둘의 차이점은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을 제대로 봐야하지. 돈을 쓸 땐 더더욱 중요하네. 사람이란 게 다른 건 몰라도 돈 앞에서 흔들리는 경우는 너무 많으니까. 물론 사람의 속마음만 제대로 파악하면 모든 건 편해지지. 그래서 제일 좋은 건 마법을 쓰는 것이고. 실제로 나도 마법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온 게지.”

한석균의 경우에는 그 사람 다루는 법을…… 더 나아가 마법을 이용해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사람을 꿰뚫어 볼 수 있었기에 한 세대 만에 최고의 대부호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한석균의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문수는 마법을 쓰지 못한다. 마법은 케르빈 월드에서도 선택 받은 자들만이 쓸 수 있는 것. 태생이 어스 월드인 문수는 마나 서클을 만들 수가 없다.

“그렇습니까?”

“나는 자네가 이번 야구 구단 창단과 관련해서 돈을 쓸 때 사람을 보는 법, 그걸 얻으리라 생각했네. 그래서 오히려 나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

순간 문수는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 일에 대한 한석균의 평가는 어떨까?

“회장님이 보시기엔 얻은 것 같습니까?”

“후후후, 나름 만족스러웠네.”

“다행이군요.”

부정적이진 않아서 다행이다. 그런 문수의 모습에 한석균이 질문을 건넸다.

“내가 왜 만족스러웠는지 알고 있나?”

그 말에 문수는 이번에는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그는 한석균이 원하는 대답을 알고 있었으니까.

“결과가 좋아서 그렇지 않습니까?”

한석균은 대답 대신 미소만 지었다.

============================ 작품 후기 ============================

사실 이 챕터는 짧게 끝내려고 했는데 예상 외로 길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냥 빠르게 끝내고, 내일부터 곧바로 13화 챕터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충고를 해주시는 독자분들에게 사과와 함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2012 - 10 - 31 18:17 12화 챕터 제목이 외전 형식으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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