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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맨-44화 (44/293)

44화

7.

강철운은 유망주였다. 그것도 보통 유망주가 아니었다. 그가 야구계의 명문고인 군산상고에 막 들어왔을 때, 강철운이 만난 사람은 군산상고 야구부 감독이 아니라, 전라도를 연고로 한 프로야구구단 기아 타이거즈의 스카우터였다.

스카우터는 말했다.

“이 녀석 졸업 때가 기대되는군.”

그 말은 곧 장미빛 미래를 암시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 감독, 이 녀석 잘 좀 부탁하오. 뭐, 우리가 뽑아갈지 안 뽑아갈지는 드래프트 지명권에서 달라지겠지만.”

감독 역시 강철운을 눈 여겨 봤고, 또한 그런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듯 강철운은 고교 입학 후부터 엄청난 속도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교 야구에서 1년이란 벽은 엄청난 벽이다. 때문에 1학년이 주전 자리를 차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제 막 고교 야구에 입문한 강철운의 실력은 대단했다. 거기에 언제나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노력파이기도 했다. 심지어 7월 말에 열리는 봉황대기 고교야구 대회에 주전이냐, 아니냐 그런 논의가 진행될 정도였다. 다른 학교도 아니고, 고교야구의 명문고인 군산상고에서 1학년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여줬던 이들인 대부분이 훗날 프로에서도 엄청난 두각을 나타내고는 했다.

그런 주변의 반응에 강철원은 더 자극을 받고, 더욱 열심히 했다. 매일매일 훈련을 받다가 구토를 하면서도, 결코 훈련을 포기하거나 쉬는 날이 없었다.

오히려 야구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매일 지독한 훈련을 받는 것이 기쁠 정도였다.

여동생이 쓰러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철운은 설마 자신이 비운의 드라마 주인공 같은 인생을 살게 될 줄을 몰랐다.

사실 철운은 그렇게 좋은 가정집 아이는 아니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티끌만큼도 없었고, 생계는 어머니가 책임지셨다.

그런 와중에 여동생이 쓰러졌다. 간에 문제가 필요해 간이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술비는 있었다. 어머니가 평생 모아온 돈…… 그거면 수술은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았다.

문제가 되는 건 이식자였다. 철운은 거기서 감히 말할 수가 없었다. 자기 간을 떼어 주겠다는 말은, 죽어도 나오질 않았다.

‘간을 떼어주면…… 내 야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여기서 야구를 포기하는 게 맞는 건가? 그럼 우리 가정은?’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만약 평범한 학생이었다면 어머니 대신 간을 기증했을 터. 간 전부를 떼는 것도 아니고 일부만 떼는 거니까…….

하지만 운동선수에게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하물며 강철원은 집의 미래이기도 했다. 그가 야구 선수로 성공하는 것만이 집안을 제대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기회였다.

그 때문에 강철원은 기증의 기자도 꺼내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가 바로 기증자로 나섰으니까.

운 좋게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불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수술비는 지불하더라도, 수술 직후 어머니의 몸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여동생의 회복속도도 더뎠다.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못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병원비 지출이 많아지자 자연스럽게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 무렵이었다.

군산상고 야구부를 다니면서 내일 먹을 아침식사를 걱정 하던 강철운에게 청호고 교감이 장학생 혜택과 적지 않은 거금을 제안했던 것이 말이다.

“이봐 철운 군.”

“예.”

“주 감독이 마음에 드나?”

문수의 질문에 강철운은 별 다른 고민이나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예.”

철운은 생각한다. 그는 배신자다. 결국 돈을 받고 자신을 나름 지원해주고, 믿어준 군산상고를 배신한 배신자!

그러나 그런 강철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준 인물이 바로 주정희 감독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어쩌면 강철운은 야구를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진짜? 솔직히 내가 보기엔 그만한 꼴통이신 분도 대한민국에 많지 않으실 것 같은데?”

때문에 그는 이런 게 싫었다. 주정희 감독에 대한 세간의 평가들. 결코 좋지 못한 표현들로 가득한 그 평가들이 말이다.

“……원래 그렇게까지 꽉 막힌 분은 아니셨습니다.”

“오호.”

하지만 평소에는 그런 이들을 봐도 강철운은 모른 척 넘어갔다.

그 자리에서, 그런 말을 뱉는 이 앞에서 무슨 말을 하던 그건 변명일 수밖에 없을 터. 주정희 감독은 그런 걸 가장 싫어했다. 변명은 아무리 해도 변명일 뿐이다. 모든 건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보통 사람들, 그저 야구를 사랑하거나 혹은 야구 외적인 요인으로 주정희 감독을 만나는 이들이 주정희 감독을 비난하는 건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재벌들, 야구계를 좌지우지하는 돈 많은 권력자들이 주정희 감독을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주정희 감독 성격이 무뚝뚝하고 사회성이 조금은 결여된 게 맞지만, 이 정도로 극단적인 꼴통이 된 건 결국 그들 때문이었으니까.

‘이런 자들이 감독님을 욕할 자격은 없다.’

돈만 믿고, 권력만 믿고, 힘만 믿고 사람을 찍어 누르는 자들. 그런 자들의 욕심과 소리 없는 폭력이 주정희 감독을 그렇게 만들었다..

때문에 철운은 저도 모르게 말했다.

“평생 야구를 위해 살아온 사람에게, 이기는 것이 당연한 프로의 세계에서 야구를 갈고 닦은 분에게 고의적으로 패배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야구를 빼앗으면 그 사람에게는 어떤 반응이 나올 것 같습니까?”

“응?”

“세간에는…… 세간에는 감독님이 그저 프론트와의 마찰 때문에 경질됐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프론트에선 흥행을 이유로 감독님에게 의도적인 패배를 강요하셨습니다. 당연히 감독님은 거절하셨습니다. 어림도 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그러자 그 구단 프론트가 한 짓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선수들을 선동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기어코…… 그 팀은 일부러 고의적으로 지는 게임을 했습니다. 감독님은 그 모든 과정을 팀을 아우르는 자리에서, 감독 자리에서 보셨습니다. 그때 감독님이 어떤 감정을 느끼셨을 것 같습니까?”

문수는 철운의 설명에 잠시 생각해봤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군.’

주정희 감독이 프로야구 감독으로 재직하며 겪은 비하인드 스토리는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 스토리가 있을 줄은 몰랐다. 하긴, 고의적인 패배, 그런 게 알려지면 그 야구단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지탄을 받을 터. 알려지면 안 되는 이야기, 말 그대로 비하인드 스토리다.

하지만 문수는 일단 다른 걸 생각해봤다. 과연 그때 주정희 감독의 심정이 어땠을까?

‘배신감이 들까? 아니야.’

야구에 대한 외골수적인 집착 그리고 그 집착에 따른 노력. 평생을 그런 것들로만 뭉쳐진 채 살아온 이에게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 연출됐을 때, 아마 배신감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느낄 틈도 없었을 것이다.

“그냥 미쳐버릴 것 같군.”

“맞습니다. 실제로 감독님은 지금도…… 헛것이나 환상이 보이시는 등, 정신적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가끔 허공에 대고 이야기를 하시거나,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르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과 대화를 꺼리시는 것도 그런 점 때문입니다. 언제 자신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니까…… 반대로 눈앞에 대화를 하는 상대가 진짜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가니까…… 단답형으로 무뚝뚝하게 대화를 하시는 거죠.”

이제야 조금 납득이 간다.

‘내가 사람인지 의심을 한 거군.’

언제 미쳐버릴지 모르는 상황에선 결국 극도로 사람과의 접촉 자체를 꺼리게 될 수밖에 없다.

사회성이 결여됐다? 정확히 말한다면 자기 스스로 사회와 단절시킨 거겠지.

‘그런데도 야구부 감독을 해?’

그럼에도 야구를 포기하지 않은 건, 야구에 대한 열정과 열망이란 것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대단한 인간이군.’

솔직히 이쯤 되면 감탄할 수밖에 없다.

“흠.”

“……오늘 일은 그냥 없던 걸로 해주십시오.”

“응? 갑자기 왜?”

“제가 잠시 이상해진 겁니다. 그냥 없던 일로 해주십시오.”

순간 철운이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사실 그는 부끄러웠다. 문수의 말에, 유혹에 넘어가 이런 자리를 갖는 것 자체가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생각을 접고 이 자리를 나와야 한다.

“아니, 잠깐.”

그런 철운을 문수가 잡았다.

“진지하게 이야기하지. 난 새로운 구단을 창단할 용의도 있고, 그 구단의 감독으로 주정희 감독, 그분을 앉히고 싶다. 장난이 아니야. 하지만 네가 말한 것처럼 지금 상황이 그렇게 좋은 편은 못 되지.”

문수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너도 솔직히 주 감독이 계속 그렇게 야인…… 아니, 폐인으로 남는 걸 원치 않을 터.”

감독직에는 주정희를 앉힐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문수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된다.

“그래서 말인데, 네가 좀 도와주면 좋겠다.”

그 말에 철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호고가 시끄러웠다.

“빨리 빨리 움직여!”

“그쪽부터 시작하면 되잖아!”

소란의 근원지는 운동장이었다. 학교 크기에 비해서 그나마 제법 큰 청호고 운동장. 그 위에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는 벌써 어느 정도 결과물이 보이고 있었다.

“지금 무슨 공사하는 거야?”

“그게…… 잔디를 까는 거 같은데?”

“잔디? 축구장 만들려고?”

“아니, 저기 보니까 축구장은 아니라…… 야구장처럼 잔디를 까는 것 같은데?”

스쳐보면 축구장마냥 잔디를 까는 듯 보였지만, 한 쪽 면에는 야구 마운드와 플레이트가 확실하게 보였다.

축구장이 아니다. 야구장이 분명했다.

“우리 야구부가 그렇게 대단하냐?”

“설마, 공식대회는 전부 1회전 탈락이었는데.”

청호고 학생들이 의문을 가질 무렵, 청호고 야구부 학생들의 놀라움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이거 뭐야?”

“그, 그보다 오늘 훈련은 어디서 하지?”

놀라움도 놀라움이지만, 한편으로는 공사판에서 훈련을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때였다.

“훈련을 어디서 하긴. 따라와라. 훈련장 구해뒀으니까.”

누군가 야구부원들을 불렀다. 야구부원들은 그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기겁했다.

“바, 박문수 부회장?”

“세계 최고 재벌의 후계자?”

이제 너무 놀라서 말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 그런 야구부원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보기에도 값비싸 보이는 버스였다. 마치 국가대표들이나 탈법한 값비싸 보이는 버스!

“앞으로 원정 경기니 뭐니, 하려면 타는 게 좋아야지.”

그 버스를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문수 앞에.

“이게 뭐하는 짓이오?”

주정희 감독이 등장했다.

평소에도 화가 난 듯한 표정인 그의 지금 표정은 흉신(凶神)의 그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표정을 본 문수는 겁먹지 않았다. 사실 사람 따위에게 겁을 먹기에는 최근 문수가 지내온 나날들이 너무 험악했다.

“공사하는 겁니다. 잔디 깔고, 원정 경기 대비해서 번듯한 버스 준비하는데 문제 있습니까? 아, 참고로 훈련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따로 훈련할 만한 장소를 구해뒀습니다.”

“필요 없소.”

“또 그 소리.”

더불어 문수도 이번에는 그냥 물러나지 않았다.

“일단 한 가지 확실하게 합시다. 난 헛것이나 환상이 아닙니다.”

동시에 문수가 소리를 질렀다.

“강철원!”

그 외침에 대기하고 있던 강철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원은 일단 주 감독을 향해 인사부터 했다. 그런 철원에게 문수가 말했다.

“내가 가짜냐 진짜냐?”

“진짜입니다.”

“봤죠? 주 감독, 솔직히 날 믿고 안 믿고는 떠나서, 제자 녀석 말 정도는 믿으시겠죠?”

주정희가 헛것의 유무를 판단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이가 강철원이었다. 주정희는 그 정도로 강철원을 아끼고 또한 믿었다.

“철원, 네 녀석…….”

그런 강철원의 모습에 주정희가 인상을 썼다. 설마 자신의 이야기를 말해준 것인가?

“감독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박문수 부회장님이 나쁘신 분은 아닙니다. 대화만이라도 한 번…… 딱 한 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놈이!”

화를 내를 강철원. 그러나 막상 주정희는 그런 강철원을 향해 손찌검을 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결국 이 상황의 원흉은 강철원, 그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박문수.”

“예, 맞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것으로 보이니 하대하겠다.”

“그러시지요.”

“그래, 어디 한 번 네가 원하는 대화라는 걸 나눠보자.”

============================ 작품 후기 ============================

이 챕터가 한 챕터 더 나오네요.

죄송합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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