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4.
계속해서 통화를 하던 김자운이 무언가 결정이 난 듯, 통화를 멈췄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정이 났습니다. 일단 바로 이동하도록 하죠.”
김자운의 안내를 따라 커피숍에 나왔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고급 세단이었다.
커피숍 밖에 세워진 거대한 세단의 등장에 김자운을 주제로 소곤거리던 여자들과 남자들의 시선이 180도 바뀌었다. 노골적이기까지 한 그들의 시선에 문수는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김자운 역시 자신을 향했던 시선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런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기는 듯이 말했다.
“제가 이래서 한국에선 비싼 차를 탑니다.”
그렇게 고급 세단을 타고 곧장 이동을 시작한 문수와 김자운. 문수가 목적지에 대해 물어보기도 전에 김자운은 바로 문수가 궁금해 할 부분에 대한 답변을 해줬다.
“현재 주정희, 그분은 청호고 야구부 감독으로 재직 중이십니다.”
“청호고?”
청호고란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문수.
“처음 들어보시죠?”
“고교야구까지 일일이 챙겨볼 정도의 야구팬은 아니긴 하지만, 너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2년 전에 야구부가 만들어진 인문계 학교입니다. 참고로 그 야구부를 만든 게 주정희 전 감독이죠.”
그 이야기를 들은 문수는 살짝 쓴 웃음을 머금었다. 김자운은 그런 문수의 쓴웃음이 담은 의미마저 파악했다.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사실 주정희 전 감독쯤 되면, 대학야구부 감독직도 레벨에 안 맞습니다만…… 아구계 주류라 불리는 어디에서도 주정희 감독을 받아주진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한국 야구계가 편협하군요.”
“편협한 정도가 아니지요. 학연, 지연이 보통이 아닌 게 야구계 아닙니까? 심지어 지역 연고로 야구단을 운영하니까요. 더군다나 대학야구나, 고교야구나 결국 최종 목적지는 프로 구단 입단인데, 그런 구단이 마음먹고 사람 하나 매장시키려면, 못할 것도 없지요.”
“그래도 주정희 전 감독, 그분은 나름 프로야구계에서도 명장으로 소문났던 분 아닙니까?”
“사실 프론트와 마찰로 경질된 감독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만…… 주정희 전 감독의 경우에는 여러 상황이 복합적으로 꼬였습니다.”
“음?”
“근래 들어 야구 인기가 늘어나면서, 야구 구단 프론트가 받는 압박감이 커졌습니다. 여기에 10구단 창단이니 뭐니, 선수협 쪽에서는 선수 처우 개선이니 뭐니, 사실 야구 구단의 모기업인 대기업의 입지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기업 입장에서는 나름 본보기가 필요했습니다. 자신들한테 대들면 야구계에서 매장을 당한다! 뭐 이런 본보기가요. 주정희 전 감독은 그런 본보기로 가장 제격이었습니다. 학연도 없고, 지연도 없고, 성격도 모났고…… 심지어 친구조차 많지 않았으니까요.”
듣다 보니 이제 화가 날 지경이다.
그러니까 자기들 밥그릇 건들면 가만 안 두겠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그렇게 매장시킨 건가?
“대기업이란 게 생각보다 옹졸하군요.”
문수가 퉁명스럽게 내뱉은 푸념.
김자운은 그런 푸념에까지 대답을 해줬다.
“그 반대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옹졸하지 못한 기업은 절대 대기업이 될 수 없습니다.”
옹졸하지 못하면 대기업이 될 수 없다?
그 말에 문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듣다보니 좀 웃기긴 하다. 사실 김자운이나, 문수나 한국 최고의 대기업 소속 아니었던가?
“한석균 회장님은 그럼 옹졸함의 끝판왕이겠군요?”
여기서 문수는 김자운이 자신의 말에 꽤나 당황할 거라고 생각했다. 한석균 회장을 신처럼 떠받드는 그의 입장에서는 가장 곤란한 질문일 테니까.
“한 회장님 정도면 옹졸한 수준을 넘으신 분이죠. 끝판왕 정도로 그분의 옹졸함을 표현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김자운의 반응은 문수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문수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까지 끄덕이지 않은가?
“허?”
“한 회장님 휘하의 미래예측실이 하는 일 중 하나가 뭔지 아십니까?”
“제가 직함만 부회장이라 잘 모르겠군요.”
“사실 모르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여하튼 미래예측실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바로 미래에 성공할 만한 아이템에 대한 특허를 몰래 신청한 다음에, 다른 기업이 그 특허를 모른 채 상품을 개발하면 나중에 특허를 빌미로 그 상품이 가지는 가치를 낼름 집어삼키는 겁니다. 소위 특허괴물들이라 불리는 업체들이 하는 짓을 똑같이 하는 거죠. 미래예측실은 특허를 이용해 시장 점유, 강탈, 파괴 등을 서슴지 않고 합니다.”
김자운은 꿈만 가진 사내가 아니었다. 아니, 월가의 펀드 매니저로 활동한 것만 보더라도 그만큼 현실을 직시하며 살아왔던 인간은 세상에 많지 않을 것이다.
문수는 그런 김자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 했다.
‘역시 엘리트군.’
아부는 하지만, 틀린 걸 맞다고 말하는 성정은 아니다. 한석균이 좋아하는 타입의 인물이다. 능력 있고, 직언을 할 줄 아는 타입.
“도착했습니다.”
이윽고 김자운과 문수가 청호고에 도착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던 문수가 차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청호고라는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문수는 그 학교를 보자마자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딱 봐도 꼴통 냄새가 납니다.”
그가 보기에 청호고는 주변의 양아치 아이들만 모으는 매우 후진 학교였다.
청호고 야구부 학생들은 입에 단내가 나도록 뛰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60대로 보이는 노인 한 명이 있었다. 체격도 그다지 크지 않고, 특이점이 보이지 않는 노인이었지만 그런 노인의 방망이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뛰어! 뛰어! 입에 단내가 안 나잖아! 쓰러질 땐 쓰러지더라도 공을 잡고 쓰러져라!”
노인이 공을 치는 모습은 마치 방망이가 공을 뿜어대는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때였다.
“주 감독! 주 감독!”
깔끔하게 양복을 입은 이가 노인을 부르기 시작했다. 학교의 제법 높으신 분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런 높으신 분의 애절함이 담긴 외침에도 노인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계속해서 공을 쳤다.
“뛰어!”
“으아악!”
그리고 야구부 학생들은 그 공을 잡기 위해 비명 비슷한 함성을 내지르며 바닥을 기었다.
“아니, 주 감독! 사람이 불렀으면 시선이라도 주는 게 예의 아닙니까?”
“교감 선생님, 무슨 일이오?”
따악!
대화를 나누면서도 상대방에게는 시선따윈 조금도 주지 않은 채 계속해서 공을 치는 노인. 그가 바로 한국 프로야구 세계에서 처절하게 왕따를 당하고 있는 비운의 야구장인 주정희였다.
“무슨 일이긴 무슨 일입니까! 내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주 대단하신 분이 주 감독을 만나러 오신다고!”
“미안하지만 나는 최소한 하루 전날에 약속한 경우에만 사람을 만나오.”
“그럴 상황이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청호고의 교감은 애걸하듯 주정희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런 교감의 모습에 주정희는 한숨을 내뱉었다.
“30분 후에 가겠소.”
“아이고, 주 감독!”
주정희의 그 고집에 청호고 교감은 진절 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청호고 교감의 눈에 한 사내가 들어왔다. 젊은 사내였다. 고급스런 양복을 입고 있는 사내.
“힉!”
아무리 봐도 청호고 교감의 아들 뻘 정도로 보이는 사내였다. 그러나 그런 사내를 보자마자 청호고 교감은 기겁했다.
“박문수 부회장님!”
그는 학교가 떠나갈 듯,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이고, 교장실에서 기다리시지 그러셨습니까?”
심지어 그는 상대에게 존칭까지 쓰며 그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주정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아이들의 수비훈련을 지휘했다.
“정신 차려라!”
따악!
“넘어질 때 넘어지더라도 공을 잡고 넘어져! 몸을 던져서라도 공이 빠지는 걸 막으란 말이야!”
따악!
훈련은 계속됐다.
5.
해가 착잡하게 가라앉았을 무렵. 그 무렵이었다.
“헉헉…….”
“자리에 앉아서 숨 헐떡이지 마라. 그대로 누우면 몸이 상한다. 주장! 애들을 이끌고 마무리 런닝을 해라.”
“예! 모두 일어나! 운동장 10바퀴다!”
청호고 야구부의 훈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내, 문수는 시계를 봤다.
‘1시간 53분 걸렸군.’
30분만 기다리라던 주정희는 기어코 훈련 전부를 끝낼 때까지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대단하군.’
감탄하던 문수. 그런 그가 처음으로 주정희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박문수라고 합니다.”
“청호고 야구부 감독, 주정희요.”
“전화를 드렸는데, 혹시 못 받으셨습니까?”
“난 전화가 없소. 저번 달까지만 해도 핸드폰이 있었는데 요금이 밀려서 끊겼소.”
주정희는 정말 질릴 정도로 퉁명스러운 인간이었다. 그가 내뱉는 말에는 감정이란 게 전혀 섞여 있지 않았다.
‘장난 아닌데?’
솔직히 이정도면 보통 사람들도 상대하기 힘든 타입이다. 대화 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신경에 거슬리다니?
‘눈밖에 날만하군.’
하물며 자기보다 아랫사람들만 다루던 구단주들, 임원진들에게 주정희의 말투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아주 극도로 거슬렸을 것이다.
‘거기에 고집까지.’
심지어 자기 고집도 엄청나다. 방금 전만 해도 그렇다. 귀중한 손님이 왔다고 했음에도 결국 끝까지 야구부의 훈련을 지휘했다. 보통 경우라면 좀 쉴 법도 한데, 그런 것도 없다.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단지 융통성이 없을 뿐.
“그렇습니까?”
“길게 이야기하는 재주는 없소. 내게 원하는 게 뭐요?”
문수 역시 이런 주정희와의 대화가 그렇게까지 편하진 않았다. 하지만 개의치는 않았다.
‘사람이 이 정도 고집은 있어야지.’
왜 사람들이 주정희를 비운의 야구장인이라고 부르는지 알법했다. 이런 고집이 장인의 그것처럼 느껴지는 거겠지.
“다름 아니라 야구단을 새로이 창단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창단하려는 야구단의 감독직에…….”
“필요 없소.”
“예?”
“더 이상 그 더러운 판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소. 다른 사람이나 찾으시오.”
다짜고짜 거절부터 하는 주정희. 그런 그의 모습에 문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김자운의 예상이 맞았군. 대뜸 거절할 거란 예상이.’
김자운 마치 로이드의 그것처럼 주정희의 반응에 대한 예상을 알려줬다. 그리고 지금 주정희는 김자운의 예상과 똑같은 반응을 보여줬다.
그렇기에 문수는 자연스럽게 주정희의 말을 받아쳤다.
“더러운 판이니까 주정희, 당신이 감독으로 필요한 겁니다.”
“음?”
“저는 일단 야구팬입니다. 때문에 한국 야구계가 이렇게 계속 더러운 상태인 걸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야구계에 한 방 먹이고 싶어서 야구단 창단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문수의 그 말에 주정희의 반응은 간단했다.
지그시…….
주정희는 마치 문수를 품평하듯 지그시 바라봤다. 문수는 그런 주정희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이윽고 문수에 대한 품평이 끝난 듯, 주정희가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을 찾으시오.”
“하하…….”
이번 반응은 김자운도 예상하지 못한 것. 때문에 문수는 어설픈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힘들겠어.’
취미로 생각했던 야구단 창단은 예상보다 힘들 듯했다.
============================ 작품 후기 ============================
야구 관련 챕터는 2편 정도가 더 연재될 예정이고, 그 후에는 곧바로 케르빈 월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다음 케르빈 월드는 시간 상으로 5~6개월 정도가 흐른 상황에서 진행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