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외전. 박문수, 구단주가 되다.>
1.
“노크 노크.”
두 번의 노크와 함께 문수의 세상이 바뀌었다.
2.
문수는 따뜻한 물이 담긴 고급스런 욕조 안에 몸을 담갔다.
“으아…… 진짜 끝내준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최근 몇 달 동안 쌓였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 진짜 이 욕실 그대로 케르빈 월드에 가져가고 싶다.’
케르빈 월드에서는…… 특히 이제르트 자작가에서는 목욕을 하는 것도 쉽진 않았다.
일단 온수조절이란 개념이 없다. 물을 끓인 후에 적당한 온도가 될 때까지 식히는 게 전부다.
‘진짜 의식주가 중요하긴 중요하구나.’
아무리 준비를 하고 갔다고 해도 케르빈 월드에서의 삶은 언제나 힘들기 그지없었다.
특히 최근까지 생활은 최악이었다.
‘젠장, 이번엔 후추를 포대로라도 가져가고 만다.’
불스 백작가에서의 사건을 생각하면 얼굴부터 확 달아올랐다.
그때였다.
- 회장님 전화입니다.
“그래? 무슨 일입니까?”
- 자네 지금 돌아온 건가? 계획대로라면 3주 전에 돌아왔어야 했을 텐데?
“이런 저런 일이 있었습니다. 특히 돈 문제가 좀 심각했습니다. 다음에 갈 때는 후추라도 한 포대 가져가야 할 것 같습니다.”
- 돈 문제? 돈이 필요했나? 하지만 저번에는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잖은가?
“알고 보니 이제르트 자작 밑에 있던 관리가 이제르트 자작 몰래 불스 백작에게서 돈을 빌렸더군요. 기가스를 담보로…… 회계를 정리하던 도중에 발견했습니다.”
- 허…….
탄식을 내뱉는 한석균.
“여하튼 당장 돈을 갚거나 대금 상환 날짜를 연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연찮게 가져간 조미료를 이용했는데…….”
- 자네가 가져간 건 화학조미료 아니었던가?
“……여하튼 정확한 내용은 로이드가 정리해서 보고할 겁니다.”
- 안 그래도 지금 보는 중이네. 그보다 돈이 문제라니……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군.
“뭐, 지나간 일입니다. 이제 당장 돈 문제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음…… 일단 보고서를 읽고 다시 연락주겠네.
돈.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석균도 많은 고민을 했다. 까놓고 말하면, 있어서 나쁠 거 없는 게 돈이다. 마음 같아서는 어스 월드에 모은 재산을 이용해 억만금이라도 쥐어서 보내주고 싶다. 그러면 문수의 활동이 훨씬 편해졌을 터.
문제는 차원 이동 시에 가져갈 수 있는 물품에는 한계가 있다. 원한다고 다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또한 차원 이동은 한 번 하고 나면 얼마 정도의 딜레이가 있다. 거기에 차원 이동 후에는 다시 차원 이동을 하기까지 충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많으면 계속해서 왔다갔다 하면 되겠지만 상황이 시급할 때는 그럴 수도 없다. 더불어 최근에는 상황이 시급한 편이었다.
그렇기에 한 번 차원 이동을 할 때 가지고 갈 물품에는 우선순위를 정해둘 수밖에 없다.
금괴 따위도 순위에 있긴 했다. 하지만 사실 케르빈 월드에서 금괴는 유용하지만, 그 가치는 어스 월드의 그것보다 훨씬 낮은 편이다. 차라리 금괴를 가져갈 바에는 동일한 크기와 무게의 GPS시스템을 더 가져가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하다못해 어스 월드에서만 제작이 가능한 기가스의 몇 가지 핵심부품을 가져가거나!
이러다 보니, 금괴에 대한 순위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금괴보다 부피가 작고 더 가치 있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보석류.
그러나 우습게도 보석 자체의 질과 세공 수준은 어스 월드보다 케르빈 월드가 더 낫다.
왜?
드워프 때문이다. 드워프의 세공능력은 어스 월드의 과학력 이상으로 뛰어나며, 예술적이다. 만약 케르빈 월드에서 드워프가 가공하고 세공한 보석을 어스 월드에 가져오면 가격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반대로 어스 월드의 보석은 케르빈 월드에 가져가서 판다고 해도 본래 가치의 1/10도 받기 힘들다. 아주 돈이 급하다면야 가져가겠지만, 저번에 케르빈 월드로 갔을 때는 불스 백작가에 진 빚의 존재를 모르던 상황이었다. 단지 이제르트 자작가의 재정이 좀 빈약하구나…… 하는 정도였지. 그래서 보석 역시 순위에서 밀렸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쓸만한 건 후추와 같은 조미료였다. 그러나 이 부분도 사실 달리 생각하면 후추를 사다가 가져갈 필요는 없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후추나무를 가져가다가 후추열매를 재배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실제로 현재 이제르트 자작령에서는 주요 작물 외에도 후추를 비롯한 여러 가지 것들을 재배 중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만 흐르면 수확이 될 테고, 그때가면 적지 않은 목돈을 만질 수 있을 터.
그게 아니더라도 한 번의 수확시기만 버틴다면, 이제르트 자작가는 더 이상 식량 걱정,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금괴나, 보석 따위를 가져갈 생각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그 쇼를 하게 된 거지.’
불스 백작의 심중도 모르는 상황.
거기서 문수는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기 먹고 살려고 가져갔던 화학조미료로 쇼를 한 것이다.
물론 나름 자신감은 있었다. 문수에게 있어 후추 따위보다는 화학조미료가 훨씬 뛰어난 인류의 발명품이었으니까.
‘어설펐지.’
이제 와서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다. 만약 불스 백작이 이제르트 자작가에 좋지 못한 의도를 품고 있었다면, 스프를 먹는 순간 불스 백작이 수저를 던지며 거세게 분노했을 것이고, 기가스는 알짤 없이 빼앗겼을 것이다.
‘운이 좋았어.’
말 그대로 천운이 따라준 셈이다.
‘하지만 덕분에 당장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됐다.’
심지어 5만 골드란 거금도 생겼다. 3년 후 일괄변제 해야 하는 금액이긴 하지만, 3년 후라면 이제르트 자작가도 5만 골드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다.
‘일단 급한 불은 껐다.’
재정 상황을 정리했고, 빚 문제를 해결했다. 이리아의 수술도 성공적이었고, 작물 재배도 순조롭다. 병사들의 훈련방식도 잘 먹히고 있었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건 몬스터의 침입 정도인데…… 사실 몬스터 침입은 이제르트 자작령의 일상 같은 거라 굳이 문수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문수의 가르침을 받은 포비어의 실력이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현재 이제르트 자작가의 전력은 문수가 가기 전보다 훨씬 강해진 상황이다.
“조금은 쉬어도 되겠지.”
보통은 노크 클락이 다시 충전되자마자 곧장 떠나야겠지만, 사실 지금 당장 케르빈 월드로 간다고 해서 문수가 할 일이 많은 건 아니다.
그리고 당장 갈 수도 없다. 노크 클락이 충전되기 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니까.
“일단 뷔페부터 가볼까?”
3.
뷔페에서 열심히 식사 중이던 문수. 그런 그에게 한석균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 식사 중인가?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 일은 없네. 단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이지. 일단 이 말부터 해야겠군. 수고했네. 로이드의 보고서는 전부 읽었네.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잘 넘어갔어.
“뭐 대단한 건 아니었습니다.”
- 대단한 일이었네. 설마 화학조미료 따위로 그 위기를 벗어나려 하다니? 나는 상상도 못했을 걸세.
여기서 문수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지금 이걸 칭찬이라고 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비꼬는 건가?
“제가 실수한 겁니까?”
- 비꼬는 것처럼 들렸나? 비꼬는 건 아니네. 사실상 그 상황에서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도 밖에 없었지. 어떻게 보면 그 일은 내 실수라고 할 수 있네. 케르빈 월드에서 사용할 물품의 개발 및 지원은 내 담당이니까. 돈이 급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당장 금전적인 부분에 대한 지원을 못한 내 실수인 게지.
만약 문수가 자기 먹고 살려고 화학조미료라도 가져가지 않았다면, 문수 입장에서는 그런 어설픈 작전을 쓸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 억지로 보석이라도 가져갔어야 했네. 하다못해 금괴라도 한 덩이 쥐어줬어야 했어. 그게 얼마나 한다고…….
한석균은 자책했다. 문수는 그런 그의 자책이 우스우면서도 무섭게 느껴졌다.
‘금괴가 비싸긴 한데…….’
금괴가 결코 싼 건 아니다.
- 어쨌거나 수고했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계산을 하도록 하지.
“계산? 무슨 말씀이십니까?”
- 말하지 않았던가? 자네와 나는 거래를 하는 사이네. 자네가 성과를 올렸으면 그에 맞는 보답을 해줘야지.
“보답이라…….”
- 뭔가 원하는 게 있나?
한석균의 말에 문수는 잠시 고민했다. 사실 당장 무언가 급한 게 있는 건 아니다.
딱히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어디 놀러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사실 당장 하고 싶은 건 배 터지게 먹고, 푹신한 침대 위에서 늘어지게 자는 거다. 케르빈 월드에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것들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굳이 준다고 하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 순간 문수의 머리에 위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야구 구단하나 가지고 싶군요.”
- 음? 야구 구단?
“아니, 뭐…… 심심해서 그럽니다.”
야구 구단 운영.
사실 예전부터 야구팬이었던 문수는 야구 구단 운영을 해보고 싶긴 했다. 물론 진지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게임처럼 말이다. 실제로도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는 게임은 얼마든지 있으며, 많은 이들이 그런 종류의 게임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너무 갑작스럽습니까?”
- 갑자기 야구라니…… 뭐 아무렴 좋네. 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하게. 원하는 팀이 있나? 메이저리그 쪽을 알아봐주면 되겠나?
“메이저리그까지 가서 할 생각은 없습니다.”
- 그럼 한국에서?
“뭐, 그런 거죠.”
- 노크 클락이 충전되는 즉시 다시 케르빈 월드로 가야 하는 만큼, 빨리 처리할 수 있도록 사람을 붙여주겠네.
이 와중에 한석균은 당근만 주지 않았다.
노크 클락이 충전되는 즉시 케르빈 월드로 간다…… 확실한 제약을 걸어두는 걸 잊지 않았다.
문수는 그런 한석균의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문수에게 어스 월드에서의 생활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노크 클락이 충전되는 시기 동안만이다. 그 외의 나머지 생활은 좋든 싫든 케르빈 월드에서 보내야 한다.
그것이 한석균과 문수 사이의 거래 내용이다.
그렇기에 문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한석균이 보낸 사람은 한 명이었다.
키는 160센티미터 정도. 하지만 신장과는 다르게 꽤나 살이 찐 모습이 고도비만은 될 듯싶었다.
거기에 나름 정장을 입었는데, 아무래도 몸매 자체가 정장의 맵시와는 거리가 먼 탓에 그 모습에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실제로 커피숍에서 여성들이나, 남성들 몇 명은 그런 사내를 보며 비웃음 비슷한 머금으며 자기들끼리 수근거렸다.
반면 한석균은 눈앞의 우스꽝스러운 사람을 결코 우습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 날 도와줄 도우미인가?’
그는 그 누구도 아닌 한석균, 그가 보낸 사람이다. 필시 어수룩한 사람을 보내진 않았을 터.
더군다나 한석균 휘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에서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 대접을 받는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분명하다.
“만나 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김자운이라고 합니다.”
사내의 이름은 김자운.
그는 문수를 보자마자 커피숍이란 공간이란 것도 잊은 듯 그 자리에서 허리를 깊게 숙였다.
문수는 기겁했다. 어느 정도 인사는 오고갈 줄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저자세를 취할 줄이야!
“그렇게 허리까지 숙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도움은 제가 받아야 하는데……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아닙니다. 한석균 회장님은 제 은인이십니다. 그런 그분의 후계자인데 이런 인사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절이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참은 겁니다.”
“후계자라고 하시면?”
“한석균 회장님의 장학 재단 혜택을 받았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제가 펀드 매니저가 되는 일도, 지금 회장님 밑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한석균을 은인이라고 말하는 김자운, 그는 다름 아니라 한석균이 운영하는 몇 개의 장학 재단 중 한 곳의 혜택을 받은 자였다.
그 덕분에 세계적인 명문대 경영학과를 나왔고, 이후 월가에서 엄청나게 명성을 떨치던 펀드 매니저 생활을 하다가, 3년 전부터 한석균이 운영하는 미래예측실 소속의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중이었다.
이쪽 분야에서는 최고 분석가로 꼽히는 인물로, 연봉만 10억 원이 넘으며, 매년 보너스로 받는 돈은 연봉을 우습게 만들 정도인 인물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펀드 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번 돈도 엄청난 자였다.
말 그대로 엘리트 중의 엘리트!
‘나보다 낫네.’
사실 지금이야 한석균의 후계자로 엘리트 중 엘리트들조차 손가락질 하나로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됐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엘리트와 가장 거리가 멀었던 인물로, 면접에서 딸꾹질 때문에 떨어지고 안주 살 돈이 없어서 생소주로 속을 달래던 처지다. 그때의 문수는 김자운을 보고 뚱뚱하다, 못났다, 라는 말을 감히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김자운처럼 되고 싶다고 소원하던 처지였지.
‘그런데 왜 애널리스트를 이번 일의 적격자로 붙여준 거지?’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증권가에서 일을 하는 사람을 왜 도우미로 붙여준 걸까?
“시간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본론으로 들어오도록 하겠습니다. 인수하시고 싶은 야구 구단이 있으십니까?”
“있다고 하면…… 그 구단을 인수하는 게 가능은 합니까?”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사실 한국 프로야구는 대부분 모기업이 대기업으로 수익창출을 위해 야구단을 운영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쪽에서 야구단 운영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야구단 인수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지금 인수 가능한 야구구단은 사실상 없습니다.”
김자운은 직설적이었다. 그래서 문수는 만족했다. 시간이 없는데 괜히 희박한 가능성을 가지고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논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짓도 없으니까.
“대신에 새로운 구단을 창단하는 건 가능합니다.”
“오호.”
“새로운 구단을 창단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돈입니다. 한해 수백억의 돈을 박을 수 있을 만한 재정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필요한 건 대기업들의 입에서 창단 승인이란 말이 나오도록 하는 겁니다.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둔 구단들이 반대를 한다면 한국 프로야구위원회가 아무리 새로운 구단 창단을 하려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재 박문수 부회장님이라면 두 가지 모두를 가지시고 계십니다.”
“응? 제가 부회장입니까?”
순간 문수는 자신의 호칭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듣는 말이었으니까.
문수는 모르겠지만, 이미 박문수는 한석균 회장의 후계자가 된 이후로 부회장이란 공식 직책을 가지게 되었다.
실질적으로 넘버 2라는 거다.
‘나 의외로 대단하구나.’
후계자를 알리는 자리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그때는 실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이름 뒤에 직함이 붙으니까 확실히 실감이 난다.
“예?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그런 문수의 물음에 김자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문수가 대충 얼버무렸다.
“아, 아닙니다. 그럼 새로운 구단 창단을 하려면 구단주들을 설득해야 합니까?”
“아, 그건 박문수 부회장님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당장 새로운 구단 창단을 원하신다고 하면, 곧바로 전화 몇 통으로 해결이 가능할 테니까요. 한국 대기업 총수들 중에서 한석균 회장님이 하는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애초에 대기업 총수도 될 수도 없었을 겁니다. 한석균 회장님의 영향력은 그분이 가지신 재산, 그 이상이지요.”
‘살벌하군.’
새삼스럽다.
한석균이란 인간이 가지는 힘이 말이다.
“그럼 제가 해야 하는 일은 뭡니까?”
“야구단 창단의 목적은 결국 구단주가 되시는 거지요?”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야구단 운영을 통한 수익 창출이 목적은 아니시지요?”
“돈을 벌면 좋긴 하겠지만, 돈을 벌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억만금을 때려 박아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야구단을 만들고, 운영하는 게 목적이신 거죠?”
“잘 아시는군요.”
“저도 야구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보통 야구팬들이 원하는 게 뭔지는 저도 알죠.”
김자운은 빠르게 핵심을 짚어나갔다.
“그럼 결국 지금 당장 박문수 부회장님에게 필요한 건 새롭게 창단할 야구단의 감독을 정하는 일입니다. 어차피 선수층이 두텁지 않은 한국 프로야구의 세계에서 선수 수급은 하고 싶다고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게 맞는 말이다.
“혹시 마음에 둔 감독분이 계십니까?”
“없습니다.”
“그럼 혹시 주정희 전 감독을 알고 계십니까?”
“주정희? 아…….”
야구팬이었던 문수는 김자운이 말한 주정희란 이름을 빠르게 떠올릴 수 있었다.
주정희.
신고 선수 출신이지만, 선수 시절에는 별 볼일 없던 인물. 선수 시절 당시 동료들이 엄청난 별명을 이름 대신 쓰고 다녔을 때, 그의 별명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연습 벌레!
이후 너무 혹독한 훈련 때문에 부상을 입게 된 이후로 그는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제대로 된 지도자 수업을 받기 위해 세상 곳곳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 이후 코치 생활을 거쳐, 감독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워낙 자기만의 야구관이 강한 탓에 프론트와 자주 마찰을 빚었고, 결국 감독 자리에서 경질 당했다.
특이한 점은 야구의 세계에 들어온 이후로 단 한 번도 우승이란 경험을 해보지 못한 인물이기도 했다. 선수 시절에도 그랬고, 코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우습게도 가장 우승에 가까웠던 건 경질 당하기 직전이었다.
밑바닥이나 다름없었던 팀의 감독을 간신히 우승 문턱까지 올려놓았으나, 다음 해에 구단은 자신들의 명령을 듣지 않는 그를 곧바로 경질했다. 그리고 그가 경질된 그 해에 그 구단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때문에 붙은 별명이 비운의 야구장인.
더불어 그때 경질된 이후로 그 어느 야구 구단도 그를 찾지 않았다. 심지어 대학 야구부조차 그를 찾지 않았다. 한국 야구세계에서 구단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왕따나 다름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때문에 언제나 감독들이 경질 당할 때면 영입후보 0순위로 거론되기는 했지만, 그를 고용하는 구단주는 없었다.
그렇게 원치 않던 야인 인생 3년차에 접어든 주정희.
박문수와 김자운이 그를 만나러 갔을 때, 그는 어느 고등학교 야구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2012-10-27 21:45 수정. 독자분들의 의견을 반영해, 글의 전반적인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
2012 - 10 - 28 13:45 11화 챕터의 제목을 요리왕 문수르에서 불스 백작과 담판을 짓다로 변경했습니다.
11화의 경우 글 내용 및 설정이 부족해 독자분들에게 많은 혼란을 준 점, 사과드립니다 ㅜㅜ 보다 나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2화의 경우에는 야구구단 운영에 대한 챕터로 진행할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노크맨이란 글에선 어스 월드와 케르빈 월드, 두 세계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다룰 예정입니다.
굳이 야구가 주제인 건 제가 야구팬이기 때문에... 아는 게 야구 밖에 없습니다.
주정희 감독의 베이스는 당연히 야구팬분들이면 아실, 김성근 감독이 맞습니다.
참고로 소설 속에서 나오게 될 모든 것들은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그 부분은 양해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