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불스 백작가 내에서의 생활은 특별할 게 없었다. 불스 백작의 성에 위치한 방 하나를 배정 받았다. 때가 되면 하녀들이 식사를 가져왔으니, 문수르 입장에선 그냥 먹고 자고, 먹고 자면 끝이었다.
물론 특별한 상황…… 예를 들면 문수르가 몰래 성으로 나와 섬을 탐색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기사들이 대기하긴 했지만, 그런 기사들의 대기가 무색하게 문수르는 방에 박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워낙 두문불출하다 보니까, 몇몇 기사들은 걱정했다.
“저 놈, 언제까지 여기 있을 생각이지?”
“설마 백작가에 눌러 붙으려는 건가?”
그런 의심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런 그들의 의심과는 다르게 문수르는 지금 필사적으로 자신의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음……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 세계 요리는 맛이 없어.”
- 한국인은 간이 센 걸 좋아하니까요.
“싱겁다, 그런 개념 이전에 조리법 자체가 정말 구식이야. 그냥 생으로 먹거나, 아니면 튀겨 먹는 느낌이야. 맛이 없다고. 무미무취. 거기에 빵은 딱딱하고, 풍미도 없지. 솔직히 이제르트 자작가는 워낙 먹을 게 없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불스 백작 정도 되는 양반이 먹는 게 이 정도 수준일 줄은 몰랐지.”
- 일부러 주인님보고 빨리 꺼지라는 의미에서 맛없게 만드는 게 아닐까요?
“그게 말이 되냐?”
장난스러운 대화 같지만, 지금 이들이 나누는 대화의 중심에 있는 요리가 바로 문수르가 계획한 일의 핵심 포인트였다.
‘지금 내가 불스 백작을 상대로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건 그 무엇도 아닌 요리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불스 백작 입장에서 이제르트 자작가는 있으나 마나한 영지나 다름없다. 오히려 여러 정치적인 상황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제르트 자작가를 적으로 취급하는 게 이익이다. 그런 불스 백작을 상대로 어떠한 식이든 협상을 하려면 그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이제르트 자작가가 뭘 해야 불스 백작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뇌물? 지금 당장 이제르트 자작가를 운영할 자금조차 없다.
강력한 기사? 안타깝지만 불스 백작가 휘하에도 실력 좋은 기사들은 넘쳐난다. 무엇보다 불스 백작은 8대나 되는 기가스를 보유했다. 달리 말하면 그 휘하에 오러 나이트가 8명이란 소리다.
여자? 미인계란 말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다.
그럼 대체 뭐로 불스 백작의 관심을 끌어야 할까?
‘요리. 이거 밖에 없다.’
그렇다.
음식!
문수르가 불스 백작의 관심을 끌기 위한 핵심 포인트로 잡은 게 바로 요리였다.
무슨 개소리냐, 요리 따위로 어떻게 백작의 관심을 끌 수 있겠냐,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맛있는 음식이 가지는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다.
애초에 인간의 3대 욕구가 무엇이던가? 수면욕, 식욕, 성욕이다.
인간은 평생 맛있는 걸 먹고 싶어 하는 존재다. 막말로 맛있는 걸 싫어하는 인간이 있나?
불스 백작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터. 뭐, 미식을 위해 사치를 부리지 않고 검소하게 지내는 양반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맛있는 음식을 싫어하는 건 아닐 것이다.
문수르 입장에서는 그런 불스 백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이 바로 요리였다.
- 뭘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그럼 대체 문수르는 무슨 요리를 준비해왔을까? 그가 만들 수 있는 요리는 무궁무진하다. 따로 요리를 배운 건 아니지만, 그의 곁에는 만능 요리사라고 할 수 있는 로이드가 있으니까.
어스 월드에 존재하는 모든 요리! 양식, 한식, 중식, 일식 등… 수만 가지의 요리를 만들 수 있다.
단지…….
“내가 지금 여기서 피자를 만들 수 있겠냐, 초밥을 만들 수 있겠냐? 그게 아니면 신선로 같은 걸 만들 수 있겠냐? 재료가 없는데.”
지금 문수르 수중에 요리재료라고 불릴 만한 건 거의 없다. 당연한 일이다. 어스 월드에서 케르빈 월드로 넘어올 때 가지고 올 수 있는 물품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맛있는 거 좀 먹고 싶다고 음식 재료를 가지고 오는데 기회를 허비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져온 게 하나 있다.
“지금 내가 만들 수 있는 건 라면 국물 정도지.”
라면도 아니다. 만들 수 있는 건 라면 국물 정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스프 정도가 최선이다.
그럼 대체 왜 스프라는 걸까?
- 이런 이유로 조미료를 가져오신 겁니까?
“아니, 사실 내가 먹으려고 가져온 거야. 솔직히 가끔 미치도록 먹고 싶어질 때가 있으니까.”
문수르는 다름 아니라 조미료를 가져왔다. 그것도 화학조미료다. 화학조미료를 가져온 건 적은 양으로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도무지 케르빈 월드의 음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수르 입장에서는 그 화학조미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이번 여행길에 그 조미료를 가져왔다.
“뭐, 이제 백작가의 맛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됐으니까.”
그동안 주는 요리를 받아먹은 건, 조미료를 얼마나 써야 될지, 그 감을 잡기 위해서였다.
막말로 어스 월드의 현대인이…… 특히 한국인이 맛있다고 할 정도의 조미료를 넣으면, 케르빈 월드 사람에게는 미각 테러나 마찬가지다. 너무 자극적이어서 맛을 느끼지 못할 정도. 반대로 너무 싱겁게 만들면 안 만드니 못하는 결과가 나올 테고.
그래서 계속해서 불스 백작가의 요리를 맛보며, 어느 정도 간을 보는 게 적정수준일지 가늠했던 것이다.
이제 그 가늠이 끝난 것이다.
“그럼 어디 한 번 작업을 시작해볼까?”
4.
문수르가 움직였다. 집사를 통해 다시금 백작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집사는 백작이 미리 언질해둔 것처럼, 곧바로 문수르에게 백작을 면담할 기회를 줬다.
막 면담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려고 할 무렵. 문수르가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백작님께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고 싶습니다.”
별 거 아닌 부탁 같았지만, 그 부탁은 불스 백작도 깜짝 놀랄 정도로 심각한 부탁이었다.
면담이 잠시 중지됐다.
이야기를 들은 기사들 중 몇이 불스 백작에게 말했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독이 들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결코 그 부탁을 들어주셔서는 안 됩니다.”
불스 백작이 적이 많은 인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적이 없는 사람 역시 아니다.
애초에 귀족 사회라는 게, 자신은 모르는데 상대방이 원한을 가지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뿐더러, 딱히 원한 관계가 없음에도 정치적 이유,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아무런 은원관계도 없는 상대를 암살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체 모를 요리를 먹어야 한다니?
웃기는 소리다. 가장 독살 당하기 좋은 상황 아닌가?
“흠.”
불스 백작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문수르란 용병 놈이 자신을 독살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다.
‘그런데 보통 독살을 이렇게 하나?’
그러나 막상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건 좀 아니다.
만약 독살을 시도하려는 거면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놈이 요리를 만든 후에 그걸 가장 먼저 먹는 건 바로 놈이 될 것이다.
요리사가 먼저 요리를 맛보는 것! 그럼으로써 요리에 독이 없음을 증명하는 게 요리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놈이 자기 요리를 맛보지 않는다면?
볼 거 없다.
그 자리에서 대기 중이던 기사가 검을 뽑아 놈의 목을 칠 것이다. 놈의 요리에 놈의 피를 부어 그 누구도 먹지 못하는 요리로 만들어줄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을 노리고 수작을 부리는 경우도 있다. 미리 준비해둔 해독제와 함께 독이 든 요리를 먹는 경우. 하지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다 보면 정말 아무 것도 못 먹게 된다. 물조차도 마실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요리사로 나름 믿을 만한 사람을 고용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다.
반대로 만약 문수르가 요리를 만든다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감시를 받을 터.
독살이 성공할 확률 예상 이상으로 낮다.
그렇다면 만약 독살에 실패했을 경우, 리스크에 대해서 한 번 고려를 해보자.
‘독살이 실패하면, 독살을 시도했던 것만으로도 이제르트 자작가는 내 손에 몰락한다.’
볼 것도 없다.
당장 불스 백작이 병력을 이끌고 이제르트 자작령을 상대로 영지전을 벌일 것이다.
명분은 충분하다. 이제르트 자작의 대리인이 불스 백작을 독살하려고 했는데, 과연 그 이상 가는 명분이 있기는 할까? 대리인의 책임은 귀족이 지어야 하는 법이니까.
결과적으로 성공 확률을 낮은데, 리스크는 너무 크다. 생각을 할 줄 안다면 이런 계획은 시도조차 하지 않을 터.
반대로 요리라는 게 사실상 이제르트 자작가가 불스 백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아이템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
돈? 여자? 권력? 힘? 이제르트 자작가는 감히 불스 백작을 상대로 이런 아이템을 가지고 흥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요리라면 다르다.
실제로 귀족들 사이에서 요리가 좋은 결과를 끌어내는 경우는 무지하게 많다.
애초에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별 짓을 다하는 귀족들이 가장 중요한 식욕을 즐기는 행위, 미식 행위를 보고 지나칠 리 만무하지 않은가? 맛있는 요리, 진귀한 요리를 먹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쓰는 귀족들은 콩탄 왕국에서도 넘쳐난다.
그렇기에 엄청 진귀한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는 게, 어설프게 뇌물을 주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때도 있다.
만약 문수르가 준비한 게 그거라면? 이제르트 자작가에서 문수르란 용병을 보낸 이유가 그 때문이라면?
‘뇌물 대신 요리라…….’
여기서 불스 백작의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솔직히 우리 나라의 요리는 맛이 없지. 귀족이라서 예법에 맞게 요리를 먹지만, 솔직히 좀 그래.’
불스 백작은 나름 미식을 즐긴다. 다른 귀족들처럼 매일매일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 싶을 때도 종종 있다. 사실 그 정도까지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건 불스 백작이 먹는 음식들이 워낙 맛이 없는 탓이 크다.
단순히 요리사의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불스 백작령에서 진귀한 요리재료들이 나오지 않는 탓에, 정말 제대로 미식가처럼 먹으려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해야 하지만, 솔직히 불스 백작은 그런 부분에서 돈을 쓰는 걸 탐탁지 않아 한다.
미식은 좋다. 하지만 엄청난 돈을 쓰면서까지 그 미식을 즐기고 싶진 않다.
그게 바로 불스 백작의 마음이었다.
더군다나 불스 백작은 이제르트 자작가에 충분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름 합리적인 이유만 있다면, 이제르트 자작가에게 빌려준 돈의 상환기간을 얼마든지 연장해줄 수도 있다.
상황이 이러니, 불스 백작의 마음은 문수르의 요리를 먹는 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지르 경.”
“제, 백작님.”
“그 자의 요리를 한 번 먹어보도록 하지.”
기어코 불스 백작이 결단을 내렸다. 지르 경이라 불린 사내는 그런 불스 백작을 보며 기겁하는 표정을 지었다.
“배, 백작님!”
그러나 이내 그는 스스로 포기했다.
“알겠습니다.”
이제까지 충언을 올렸다. 그럼에도 백작이 선택을 했다는 건, 그런 자신들의 마음을 이해한 후의 내린 선택이란 의미다. 이 이상 충언을 올리는 건, 충성이 아니라 무례다.
“모든 과정을 감시토록 하여 불상사가 일어나는 일은 결코 없도록 하겠습니다.”
불스 백작의 허가가 떨어졌다.
문수르는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불스 백작가의 주방은 꽤나 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진짜 별 거 없네.”
나름 이것저것 비싼 자재들을 가져다가 주방을 만든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세계에 무슨 가스레인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전자레인지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간단한 재료는 저곳에 있다.”
한편 주방에는 문수르 외에도 지르 경이란 자가 같이 있었다. 문수르의 감시역이였다.
“재료는 필요 없습니다.”
문수르는 딱히 재료가 필요 없었다. 그가 만들 건 결국 라면국물이다. 라면국물이란 표현도 웃기다. 그냥 화학조미료를 넣고 끓인 스프라고 하는 게 낫다.
원래는 식감을 위해서 고기를 넣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사실 케르빈 월드는 고기도 맛이 없다. 어스 월드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고기가 아니다.
애초에 어스 월드에서는 보다 맛있는 고기를 먹기 위해 품종을 개량하고, 사육 방식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 마블링이 넘치는 소고기가 나오고, 육질이 부드러운 돼지고기가 나오고, 맛있는 닭고기가 나왔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저 풀 먹이면서 키운 고기들이 전부다. 육질도 질기고, 도축 과정도 무식하기 그지없어 그나마 괜찮은 고기도 도축 과정에서 그 가치가 뚝뚝 떨어져나간다. 거기에 무슨 냉장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훈제 처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걸 넣으면 오히려 맛이 이상해질 것이다.
“저는 이것만 있으면 됩니다.”
문수르는 준비해온 화학조미료를 꺼냈다. 그 순간 지르 경이란 자의 눈빛이 빛났다.
“그게 뭐지?”
딱 봐도 의심스러운 물체였다. 한 손에 쥘 수 있을 만한 크기의 통이었는데, 색깔이 비범했다. 표면이 반질반질하고 매끄러운 게 마치 강가의 조약돌을 보는 느낌이었다. 언뜻 보면 보석처럼 보이기도 했다.
“뭐, 이런 겁니다.”
문수르는 그런 지르 경의 관심에 하얀 접시 하나 위에 자신이 꺼내든 것을 툭툭 털었다.
그러자 하얀 접시 위에 이상한 색의 가루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 문수르가 준비한 건 후추통의 그것하고 똑같은 양념통이었다. 어스 월드에서는 질리도록 볼 수 있는 것. 하지만 케르빈 월드에는 존재하지 않는 물품이었다.
이 세계는 후추라는 개념조차 없는 곳이다. 고기를 먹을 때 향신료라고는 좀 산뜻한 느낌이 나는 나뭇잎을 띄우는 게 전부다.
솔직히 기가스를 만드는 문명을 가진 세계 치고 요리에 대해서는 정말 무식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당연히 지르 경은 놀랐다.
“네놈! 이게 뭐냐!”
지르 경의 반응에 문수르는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하얀 접시 위의 가루를 손가락으로 찍어 입에 넣었다.
그 모습에 지르 경이 잠시 움찔했다. 요리를 맛보는 건 요리사의 기본이다.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데, 다짜고짜 독이지! 하고 의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별한 재료입니다. 마법을 이용해 만든 재료이기도 합니다.”
“마법?”
“예, 아주 신비한 마법이죠. 궁금하시면 한 번 드셔보시죠?”
말과 함께 하얀 접시를 지르 경 앞으로 내미는 문수르. 그런 문수르를 보며 지르 경은 잠시 고민했다.
‘아니, 차라리 독이라면 내가 먹고 증명하리라!’
하지만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놈이 수작을 부리는 거라면, 정말 독살을 시도하는 거라면 차라리 그가 먹고 죽는 게 나을 터!
“오냐.”
지르 경은 문수르가 했던 것처럼 하얀 접시 위의 가루를 손으로 찍은 후에 입에 넣었다.
“윽!”
그 순간 지르 경의 표정이 구겨졌다.
“네, 네놈! 감히 백작님에게 이런 걸 먹일 생각이냐!”
당연한 일이었다. 지르 경은 가루를 듬뿍 찍어 먹었다. 화학조미료 가루를 그렇게 찍어 먹으면 어스 월드의 사람들도 갑작스런 맛의 폭발에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하물며 싱겁게 먹는 케르빈 월드 사람들이 그렇게 먹으면, 혀가 찌릿해져 말조차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수르는 지르 경의 반응에 피식, 웃었다.
“독은 아닙니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순간 유들유들한 분위기의 문수르가 이제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살벌한 기세를 풍기며 단호하게 말했다.
“독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이상 다른 이유가 필요합니까?”
독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게 뭐든 간에, 백작은 그걸 맛볼 의무가 있다. 그게 아무리 맛없는 요리라고해도, 먹는 게 고문이라고 해도 말이다.
왜?
문수르의 요리를 맛보겠다고 허락을 내렸으니까. 귀족의 이름으로, 백작의 이름으로 말이다.
독이 아닌 이상, 무조건 먹어야 한다.
지르 경, 그에게 그걸 막을 권한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크윽!”
더군다나 문수르의 압박감은 보통이 아니었다. 문수르는 지르 경이 오러 나이트가 아니라는 걸 진즉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실력은 제법이지만, 결곡 오러를 쓰지 못하면 오러를 쓸 수 있는 실력자에겐 기세 싸움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기세 싸움에서 밀린 기사가 기세등등하게 나올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좋다.”
명분도, 기세도 잃은 지르 경은 자존심만으로 말했다.
“어디 한 번 요리를 만들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