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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맨-36화 (36/293)

36화

모습을 드러낸 오크의 숫자는 백 마리를 훌쩍 넘겼다. 그것도 제법 무장이 된 놈들이었다.

반면 피조가 부리는 용병의 숫자는 딱 오십 명!

2배가 넘는 전력 차이다. 물론 훨씬 단련된 용병 쪽이 승리하겠지만, 쉬운 승리를 자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용병 무리들에게는 한 가지 임무가 더 있었다.

“화물을 지켜라!”

“놈들에게 화물을 넘겨주지 마라!”

그들은 생존이 아니라, 화물을 지키기 위해 고용된 이들이다. 그들 전부가 살아남았는데 화물이 전부 털리면, 그건 의미가 없는 일이다.

화물을 지키면서 싸운다는 건 의외로 힘든 일이다. 막말로 오크 놈들은 무식하기 짝이 없어서 자기들이 노리는 게 화물임에도 무차별적으로 화물에 불을 지르고, 수레를 박살내는 놈들이다. 그런 놈들의 우악스러움으로부터 화물을 지키는 게 쉬웠다면 이 세상에 상단이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문수르는 오크들을 보며 살짝 긴장했다.

‘이 놈들…….’

사실 백 마리의 오크는 문수르에게 그렇게 버거운 적이 아니다. 문수르에게는 실력 이전에 아주 뛰어난 어스 월드의 기술로 만든 창이 있었으니까. 내구도 걱정도 없고, 절삭력도 뛰어난 이 창의 도움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여하튼 백 마리 오크쯤은 충분히 잡을 수 있는 여력이 문수르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문수르가 긴장한 이유는 이제까지 본 오크와는 다른 종류의 오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테블스 산의 오크들과 느낌이 비슷하다.’

오크가 오크지, 무슨 차이가 있겠어? 이런 말을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런 인간들을 이제르트 자작가에 딱 일주일만 지내게 만들면 확실하게 말할 것이다.

테블스 산의 오크는 다르다!

지금 등장한 오크는 그런 테블스 산의 오크들과 느낌이 비슷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피조라는 자, 실력은 제법이다. 저 용병들도 나름 훈련되어 있다.’

피조와 그가 이끄는 전력이 나쁜 건 아니다. 용병들치고는 준수한 수준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용병들치고는 준수한 수준이다. 용병 이상은 아니라는 거다.

거기에 화물을 지켜야 한다는 핸디캡도 있다.

상단의 승리는 확실하다.

그러나 피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흠.’

여기서 문수르는 새로운 선택지를 가지게 됐다. 적당히 싸울 것인가, 아니면 열정을 다해서 싸울 것인가?

대충 싸운다고 해서 문수르가 손해 보는 건 없다.

‘느낌을 보니, 내가 이제르트 자작가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관심을 끊던데.’

더군다나 피조라는 사람은 이제르트 자작가란 말을 듣자마자 문수르는 다른 나라 사람 취급하고 있다.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 사람을 도와준다고 해서 딱히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진 않다.

상인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도와주면 고마운데, 그건 그거 이건 이거.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는 것. 그게 바로 제대로 된 이익을 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칙이다.

그렇게 보면 딱히 열과 성을 다해 도와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잠시 고민하던 문수르.

이내 그는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이제 사람 목숨까지 계산해서 노는구나.’

문수르는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힘이 있음에도,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고민하는 모습이 우습기 그지없었다.

어스 월드에서, 대한민국에서 질리도록 배웠던 게 사람 목숨은 소중하고, 귀중하단 소리였다.

그런데 지금의 문수르는 사람 목숨을 그저 별 거 아닌 편의라는 것과 동일선상에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딱히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단지 문수르는 씁쓸할 뿐이었다.

그 씁쓸함이 문수르의 결단을 느리게 만들었다. 이윽고 문수르가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전투가 시작됐다.

카앙, 카앙!

오크들의 투박한 무기와 용병들의 번듯한 무기가 충돌하며 거친 쇳소리와 함께 불통을 토해냈다.

마치 불꽃놀이를 하듯, 사방에서 튀어오르는 불똥 사이로는.

푸홧!

“크허허…….”

비명 소리와 붉은 핏줄기가 솟아오르며, 마치 축제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듯했다.

“이 녀석…… 보통 오크가 아니다!”

방금 막 오크의 머리통을 검으로 내리쳐 두 조각을 낸 용병 한 명이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인간 먹는다!”

그 순간 그 소리를 지를 용병을 향해 오크의 도끼가 섬뜩한 호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도끼날의 이가 대부분이 빠진 탓에 둔기에 가까운 도끼였지만, 오크의 근력을 생각하면 사람 몸뚱이를 박살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헉!”

그제야 도끼의 존재를 파악한 용병이 기겁했다.

방어를 해야 한다.

방패를 들까? 검을 들까?

‘늦어!’

하지만 뭐를 하든, 오크의 도끼가 몸통에 박히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용병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이렇게 죽는 건가?’

카앙!

그 순간 들려오는 반가운 쇳소리.

“전장에서 한 눈 팔지 마라.”

“피, 피조 대장……!”

“대장이 아니라 경이라니까.”

피조 날렌.

어느새 그가 용병을 향해 날아오던 도끼를 막아냈다. 동시에 그의 검이 날렵하게 움직였다. 오크는 아마 피조의 검이 어떤 식으로 날아왔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푹!

피조의 검은 오크의 눈알을 찌르고, 그 너머에 있는 두개골 속의 뇌를 헤집었다.

힘들게 사지를 자를 필요도 없다. 어렵게 그 단단한 두개골을 박살낼 필요도 없다. 눈알 너머에는 뇌가 있고, 그걸 박살내면 제 아무리 생명력 질긴 오크라고 해도 뒈질 수밖에 없으니까.

“정신 차려라.”

“대…… 아니, 피조 경. 이 오크들은 좀 다릅니다.”

“알아.”

용병이 아는 걸 피조가 모를 리 만무하다.

‘젠장, 어디서 이런 오크 놈들이 왔지?’

평소와 다른 오크의 등장에 놀랐지만, 그렇다고 당황하지는 않았다. 보다 강력한 오크가 등장한 것도 문제지만, 여기서 무리의 리더인 피조가 당황하면 그게 진짜 큰 문제가 된다.

‘화물의 일부는 포기한다.’

그리고 작금의 상황에서 필요한 건, 용병들이 가지는 핸디캡을 없애는 것이다.

어차피 용병이 다 죽으면 화물은 없다.

그럴 바엔 화물의 일부를 포기해서라도 용병과 남은 화물을 지키는 게 최선이다.

전부를 지킬 수 없을 땐, 적은 거라도 지키는 것. 그걸 하느냐, 못 하느냐. 그게 바로 삼류 상인과 이류 상인이 차이점이다.

‘탈보 남작님의 말이었지.’

그걸 피조에게 가르쳐준 인물이 바로 탈보 상단의 주인, 탈보 남작이었다.

피조의 주군이기도 한 탈보 남작. 피조는 돈 때문에 다른 귀족들의 러브콜을 무시하고 탈보 남작의 휘하로 들어왔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돈 때문에 그의 밑에서 일을 하는 건 아니었다.

탈보 남작과 몇 년 동안 같이 일을 하면서, 피조 역시 상인인 탈보 남작을 존경했다.

‘이번 일을 성공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런 탈보 남작이 병상에 누웠다. 그런 그를 대신해서 피조가 상단을 이끄는 중이었다.

“모두들 후방과 전방의 화물을 포기하라!”

이윽고 피조가 결단을 내렸다.

용병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화물의 일부를 포기했다. 그러자 화물 전체를 포위하듯 형성했던 용병들의 포위망이 작아지면서, 보다 촘촘해졌다. 지킬 것이 줄어드니,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용병과 용병 사이의 거리가 좁아진다는 건, 그들의 틈이 좁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생존률이 늘어났다. 반대로 단단해진 전열은 오크들에게는 독이 됐다.

“인간 죽이고, 먹는다!”

“오크, 배고프다.”

인간을 향해 흉흉한 말을 내뱉으며 돌진하는 오크들. 그러나 그런 오크들에게는 전술이란 개념이 없었다. 그저 제 마음이 내키면 돌진하는 것, 그게 전부였다.

이제까지는 그렇게 돌진을 해도 대부분 1대1의 상황이 연출됐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진 용병들은 근처에 오크가 나타나면 곧바로 합공을 했다.

합공이라고 딱히 대단한 건 아니었다.

카앙!

오크의 표적이 된 이가 방패를 들어 놈의 1차 공격을 막으면푸욱!

다른 용병이 잽싸게 오크의 옆구리에 검을 박았고.

“크어!”

오크가 비명을 내지르며, 자신을 찌른 놈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마자퍼걱!

다른 용병이 오크의 목덜미를 검으로 내리 찍었다.

한 번에 목이 잘려나가진 않았지만, 오크의 몸뚱이에서는 분수마냥 피가 솟아올랐다.

용병들은 그런 오크 놈을 경계만 할뿐, 덤벼들지 않았다. 계속해서 전열을 유지한 채 오는 놈들만 상대하고 있었다.

제 아무리 오크라고 해도 몸속의 피가 무한한 건 아니다. 더군다나 의료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저 정도 출혈이면 더 이상 전장에 나올 수도 없고, 조만간 죽는다.

그때였다.

푸홧!

오크 무리들 중 일부에서 피가 솟아올랐다. 그건 분수가 아니라, 마치 폭발하는 화산 같았다.

“뭐지?”

“무슨 일이야?”

너무나도 눈에 확 들어오는 그 광경에 용병들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피조가 소리쳤다.

“정신 차려라! 눈앞의 적에 집중해라!”

전장에서 한눈을 파는 건 미친 짓이다. 자살시도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피조 역시 궁금했다.

‘저기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오크들의 무리 속에서 폭발한 화산마냥 솟아오르는 핏줄기들. 그 중심에는 창을 든 문수르가 있었다.

‘빠르게.’

문수르의 창은 수려한 궤적을 그리며 오크들을 스쳐 지나갔다. 문수르의 창에는 거침이 없었다. 마치 물을 베듯, 오크들의 몸뚱이를 너무나도 쉽게 베어냈다.

한 번에 사지가 잘려나가고, 몸통이 잘려나갔다.

당연히 한 번의 공격에 서너 마리의 오크들이 시체가 됐다. 작심한 문수르의 공격 몇 번에 수십여 마리의 오크들이 토막 난 시체가 된 채 바닥에 너부러졌다.

때문에 얼마 걸리지 않았다.

피조와 문수르가 마주보기까지는.

“저, 저자는!”

피조와 문수르 사이를 채우던 오크 무리들이 대부분 쓰러졌고, 덕분에 피조는 문수르를 볼 수 있었다.

그가 남은 오크를 너무나도 쉽게 죽이는 걸 볼 수 있었다.

꿀꺽!

‘대, 대체!’

피조는 용병 출신이다. 그리고 나름 실력도 뛰어난 용병이었다. 어디 가서 용병 피조라고 하면 기사 수준의 대접을 받았다. 실제로 기사들과의 전투에서 몇 차례나 이길 정도였다.

때문에 귀족들은 그런 피조를 자신의 기사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리고 탈보 남작의 기사가 됐다.

그런 피조이기에 알 수 있다.

‘최소 오러 나이트였나!’

문수르, 그의 무력이 최소 오러 나이트란 사실을 말이다.

============================ 작품 후기 ============================

어제 올리지 못해서, 오늘 2편 올립니다... 1일 1연재로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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