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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맨-35화 (35/293)

35화

3.

줄지어 늘어선 수레들과 그 수레들 주변을 포위하며 움직이는 험악한 무리들. 그들의 정체는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상단인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상단을 발견한 문수르는 잠시 고민을 했다.

저들과 합류를 할까, 아니면 그냥 모른 척 넘어갈까? 평상시의 문수르라면 고민조차 하지 않고, 후자를 택했을 것이다. 굳이 귀찮은 일에 연루될 필요성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오크들의 계속되는 습격에 살짝 지친 문수르는 좀 편하게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물론 그 외에도 궁금증도 있었다.

‘상단이라…….’

케르빈 월드에 온 이후로 대부분의 생활을 이제르트 자작령에서 보냈다. 사실 거기까지는 좋다. 문제가 되는 건 건 이제르트 자작령이 보통의 영지들과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문수르는 몇 가지 부분에서 곤란함을 겪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상단과의 거래였다.

아무래도 이제르트 자작가가 돈이 많거나 무슨 대단한 특산품이 나오는 영지가 아니라서, 상단들 역시 이제르트 자작가와의 거래를 그렇게까지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다.

더욱이 이제르트 자작가가 처한 현실을 역으로 이용해 거의 강도에 가까운 거래를 제안하는 상인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인들은 대부분 이제르트 자작가의 관리들과 손을 잡고 비리를 저질렀다. 결과적으로 문수르가 그 부패한 관리들을 죄다 처형한 후에 이제르트 자작가를 상대로 사기를 치던 상인들 역시 자취를 감췄다.

‘이쪽으로 돌아다니는 걸 보면, 적어도 이제르트 자작가와도 충분히 거래할 여력이 있다는 건데? 거기에 상단 규모도 작은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상단과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다면 문수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상관없다.

“흠.”

잠시 고민하던 문수르.

‘내가 고민할 문제가 아니지. 저쪽에서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그냥 무시할 수도 있으니까.’

이내 그가 판단을 내렸다.

‘일단 부딪쳐보자.’

어차피 문수르가 저 상단하고 거래를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저들 입장에서 문수르는 진짜 별 볼일 없는 인간일 뿐이니까. 오히려 의심할 수도 있다. 혹시 산적이나 그런 도적, 그런 종류의 끄나풀이 아닐까, 하는 의심 말이다.

탈보 상단.

콩탄 왕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제법 규모 있는 상단으로, 탈보 남작이 운영하는 상단이기도 했다.

피조 날렌.

그는 탈보 남작을 섬기는 기사로, 기사 작위도 가지고 있는 자였다. 하지만 기사라기보다는 용병에 더 가까운 자로, 실제로 그가 탈보 남작 휘하에 들어오건 건, 돈 때문이었다. 보통 귀족의 기사로 들어가는 것보다 많은 보수를 제시해준 탈보 남작을 택한 것이다.

그게 5년 전 일.

이제는 탈보 상단 내에서도 어느 정도의 입지와 그 스스로도 탈보 상단에 투자한 돈이 있어 탈보 상단 내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중이었다.

“앞에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 그에게 용병 한 명이 말을 정보를 알려줬다. 피조는 곰곰이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길거리에서 사람 만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애초에 사람 다니라고 만든 게 길 아닌가?

“몇 명인가?”

“그게…… 한 명입니다.”

“한 명?”

그리고 그런 길을 혼자 지나간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정말입니다.”

“한 명이라니? 이 길을 혼자 걷는다고?”

그러나 지금 시대의 상식으로 길에서 혼자 걷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연한 일이다. 세상이 몬스터로 넘치는 시대에서, 감히 누가 혼자 길을 걷는단 말인가?

때문에 피조는 일단 의심부터 했다.

“베스.”

“말씀하십시오.”

“혹시 모르니까 애들 대기시키게.”

“전투…… 말입니까?”

“딱히 이상한 감은 없는데…… 미리 준비해둬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사람 목숨 걸린 일인데.”

이런 길을 혼자 다닐 정도라면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의미다. 혹은 다른 무리들과 함께 온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도적무리들이 상대의 시선을 끌기 위해 미끼마냥 사람 한 명을 앞서는 경우…… 의외로 많다. 그 사람에게 신경을 쓰는 사이 뒤를 습격하는 건 오히려 정석으로 느껴질 정도다.

“모두 움직여!”

“무기를 들고, 주변을 경계하라.”

피조의 말에 따라 용병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군대의 그것 같았다. 오랜 훈련을 거친 사병들의 그것…… 적어도 용병들에게서 볼 수 있는 빠릿빠릿함은 아니다.

이윽고 피조가 앞장섰다. 무리의 리더이기도 한 그가 위험을 감수하고 앞장서는 이유는 하나였다.

현재 무리들 중에서 가장 강하니까.

무슨 문제가 생기면 가장 확실하게 대응하고, 대처할 수 있는 무력을 소지한 자가 바로 피조였다.

피조는 길 위에 고독하게 서있는 사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상대의 무기를 가늠했고.

‘무기는 창인가?’

외형도 가늠했다.

‘체격은 제법이군.’

마지막으로 상대의 기세를 살폈다.

‘제법 단련된 자다.’

이쯤에서 피조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적의를 드러내는 건 아니었다. 마치 자신의 애병을 쓰다듬듯,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물론 속으로는 생각했다.

‘허튼 수작을 부리면 단칼에 벤다.’

상대를 무조건 공격하는 게 도리는 아니다. 그러나 상계에서 적지 않은 세월을 보내온 피조는 알고 있다. 도리가 아니더라도 살인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자신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

“한 가지만 묻지.”

거리를 잡은 후에 피조는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 원하는 게 있는가?”

“별 거 아닙니다. 혼자 가는 게 힘들어서 신세 좀 질 수 있을까, 해서 이렇게 앞길을 막았습니다.”

“단지 그것뿐인가?”

“더 해야 할 말이 필요합니까?”

씨익!

대답에 앞서 피조는 크게 웃었다. 그런 피조를 마주하는 사내, 문수르는 거기서 눈앞의 상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아주 용의주도한 타입이다.’

겉보기에는 험악한 용병 우두머리쯤으로 보이지만, 속은 전혀 다르다. 뭐라고 해야 할까? 겉보기와는 다르게 전투에서 힘보다 오히려 머리를 쓰는 타입이다.

그리고 지금 그런 사내가 문수르를 의심하고 있었다.

‘당연한 건가?’

문수르가 만약 눈앞의 상대와 같은 처지였다면, 의심이고 자시고 일단 검부터 뽑고 봤을 것이다.

애초에 몬스터들의 습격이 잦은 길을 혼자 간다는 것 자체가 비범하다는 의미인데, 그런 비범한 인물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그걸 호의로 받을 자는 없다.

‘물러나자.’

여기서 문수르는 손을 떼기로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접근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앞의 상단 무리들과 어떻게든 연줄을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다.

되면 좋고, 안 되면 안 되는 거고.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억지로 하려다가 서로 칼부림만 나면, 그게 더 손해다.

“뭐, 마음에 안 드시면 먼저 가겠습니다.”

“재미있군.”

그런 문수르의 마음을 피조는 의외로 너무나도 쉽게 꿰뚫었다.

“그러니까 혼자 가도 상관은 없는데, 우리랑 같이 가고 싶다? 가는 길목마다 몬스터가 습격하는 이 길이 자네에겐 그 정도 수준이라는 건가?”

문수르는 아차 싶었다.

‘너무 쉽게 생각했다.’

- 저쪽이 주인님보다 더 머리가 좋은 듯합니다.

‘넌 닥쳐.’

이 와중에 문수르에게 한 소리 내뱉는 로이드. 그러나 로이드의 지적은 문수르로 하여금 마음을 다시 잡게 만들었다.

‘상대는 똑같은 인간이다.’

여긴 소설 속이 아니다. 여기에 존재하는 인류는 어스 월드의 인류보다 멍청한 것도 아니다. 단지 문명적인 발전이 느릴 뿐이지. 눈앞의 상대는 어쩌면 문수르보다 똑똑할 수도 있다.

‘사실 나 자신이 그리 똑똑한 편은 아니지.’

- 주인님이 확실히 천재 타입이 아닌 건 맞습니다.

‘그래, 알아, 안다고.’

더군다나 문수르는 그 자신이 무슨 천재가 아니다. 한석균이 그를 자신의 숙원을 풀기 위한 적격자로 선택한 건, 문수르가 차원을 넘나들 경우 그걸 버틸 수 있는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수르가 무슨 엄청난 천재이거나, 그가 선택된 게 아니다.

‘상황을 쉽게 보면 안 된다. 상대가 내 의중을 파악했어.’

잠시 숨을 돌린 문수르가 생각을 고쳤다.

“뭐, 몬스터들 무리 속에서 제 한 몸 지킬 정도의 실력은 있습니다.”

“그럼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없을 텐데…….”

“상단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접근했습니다.”

문수르는 사실을 말했다. 어설프게 상대를 속일 바에는 진실을 말하는 게 낫다.

더군다나 상대에게 적의나, 악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상단에 관심이 있다?”

여기서 피조의 반응이 달라졌다. 이제까지 어느 정도 경계심을 품고 있던 그가 경계심을 풀고 문수르에게 접근했다.

“그럼 이야기가 달라지겠군. 어차피 서로 도움이나 주고받을 겸, 동행토록 하지.”

4.

피조는 생각했다.

‘이 자는 혼자다.’

문수르는 일행과 함께 온 게 아니다. 여러 가지 정황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줬다.

그렇다면 혼자 여행 중이라는 의미인데.

‘이 길을 혼자 온 것만으로도 뛰어난 실력자다.’

요즘 시대에 혼자 여행하는 여행자는 엄청난 실력자로 봐야 한다. 보통 실력으로는 안 된다. 최소한 기사 수준의 실력자. 그 정도는 되어야 자기 한 몸은 지킬 수 있다.

그런 실력자가 눈앞에서 상단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럼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상인이라면 이 과정에서 이익이 되는 방향의 선택을 해야 할 터.

그래서 피조는 문수르와 손을 잡기로 했다.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일단 동행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겠지. 무엇보다 상단에 관심이 있다는 게 마음이 걸리는군.’

특히 피조의 마음을 움직인 건 문수르가 상단에 관심을 가진다는 부분, 바로 그 사실이었다.

개인이 상단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다. 상단에서 일을 하고 싶다거나, 그런 종류가 아니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보통 상단에 관심을 가지는 부류는 대개 영지를 운영하거나 그와 관련된 자들이다.

그럼 생각해보자.

기사 급 실력을 가진 걸로 추정되는 인물이 상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기사 급 실력, 그건 즉 어디 영지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 자가 상단에 관심을 가지는 건, 영지의 관계자 입장으로 관심을 가진다는 이야기다.

‘영지와의 거래는 얼마든지 좋지.’

상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거래 대상은 영주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영주들과 되도록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상단을 운영하는데 가장 필요한 수칙 중 하나다.

상인들이 물자수송을 위해 수레 등을 이용하려면 필시 국도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 국도란 게 대륙 전체에 깨끗하게 깔린 것도 아니고, 대부분 영주가 자신의 영지 내에 만들어 관리하고는 한다.

즉, 세상은 영지와 영지로 연결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영주라도 좋다. 그가 악인이든, 선인이든, 영주와 될 수 있으면 좋은 관계를 맺어야 언제든지 이익을 낼 수 있는 거다.

피조는 그런 관점에서 문수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심정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상단에 관심을 가진다는 건…… 혹시 영지에 소속된 기사인가?”

“뭐 비슷한 겁니다.”

“오호, 그럼 자네가 모시는 영주께서 새로운 상단을 찾으시나 보군.”

“최근에 거래를 하던 상단과 조금 관계가 들어졌거든요.”

문수르 역시 그런 피조의 반응을 좋게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본심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럼 자네가 모시는 영주분의 성(姓)이 어찌 되는가?”

이윽고 이야기의 주제가 본론으로 들어왔다.

진짜 거래를 해보려고 제안을 하는 것이다. 문수르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제르트 자작님이십니다.”

“오호, 이제르트 자작님이라면…….”

자연스럽게 미사여구로 상대가 밝힌 주인된 귀족을 치레하려던 피조.

꿀꺽!

그러나 그는 곧바로 말을 하기보다는 침을 한 번 삼켰다. 그라고 모를 리가 없다.

“후, 훌륭하신 분을 주군으로 섬기고 있군.”

이제르트 자작.

그 지독한 테블스 산과 맞서 싸우는 자.

‘이거, 잘못 걸렸는데?’

모든 상인들이 기피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거래해서 남는 게 없다. 무엇보다 언제 망할지 모르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과 거래를 하는 건 상계에서는 도박이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서 피조는 적당히 결심했다.

‘대충 인사치레만 하면 되겠군.’

상대와 깊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다. 그냥 적당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적당히 헤어지면 된다.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고, 이익의 여부는 분명하게 판단하는 것.

이게 바로 상인의 논리다.

“그래, 자네의 목적지는 어떻게 되나?”

피조는 적당히 대화를 얼버무리기 위해 적당한 주제를 꺼냈다. 그 순간 피조를 바라보는 문수르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피조 역시 그런 문수르의 낌새에 긴장했다.

‘뭐지?’

혹시 자신의 의중을 파악하고 지금 시위라도 하려는 건가?

저도 모르게 경계심을 품을 무렵.

“오크들의 습격입니다. 병력을 정비하시죠.”

“뭣이라?”

문수르의 갑작스런 말. 피조는 놀라는 한편,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모두 방어태세를 갖추어라!”

피조의 말이 끝나기 무섭다.

취익!

오크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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