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34화 (34/293)

34화

<10화. 불스 백작가로 가는 길>

1.

늦은 밤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밤. 문수르는 이 고요한 밤이 언제나 신기했다.

‘내가 살던 세상에선 이런 밤이 없었지.’

오히려 낮보다 화려하던 밤이 존재하던 세계. 판타지 소설가로 언제나 소설에 칠흑 같은 어둠을 표현하고는 했지만, 막상 그 칠흑 같은 어둠이 뭔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칠흑 같은 어둠이다.

그리고 이 칠흑 같은 어둠이 이제르트 자작가의 현재 상황이기도 하다. 어디에도 희망의 빛조차 없는 최악의 상황.

‘이곳에서 내가 희망의 빛이 되어야지.’

각오를 다진 문수르가 등 뒤에 서있던 이제르트 자작을 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도록 하지요.”

“조심하게.”

“별 문제 있겠습니까?”

“생각보다 가는 길이 쉽진 않을 걸세. 내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해서 미안할 따름이네.”

“아닙니다.”

“후우…… 마음 같아선 환송식이라고 해주고 싶지만…….”

“괜찮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보다 제가 해드린 충고는 꼭 명심하셔야 합니다.”

“알겠네.”

문수르는 이제르트 자작과의 대화를 끝으로 곧장 이제르트 자작령을 떠났다.

2.

기가스의 등장은 인류의 많은 역사를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 막강한 무기의 등장은 전쟁의 판도를 바꾸었고, 영지 운영부터 병력 운영까지 많은 것을 바꾸었다.

하지만 이 변화가 전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누군가는 말했다.

“기가스의 등장으로 인간은 막강한 무기를 가지게 되었으나, 인류가 얻는 자원의 양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그리고 현재 대부분의 철 따위의 군수자원들은 기가스를 만드는데 사용되고 있다. 일반 병사나 기사 전력은 오히려 예전만 못하다.”

보통 사람이 이런 말을 해다면 알지도 못하는 놈이 나댄다! 라고 손가락질을 받았겠지만, 이 말을 한 자는 그 호전적이고, 전투에 있어서는 대륙 역사 속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난 페스로 제국, 그 제국에서도 최고 전략가라 불리는 비윰 후작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에, 세상은 이 말을 단순한 헛소리로 치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누군가는 조사해봤다.

과연 기가스의 등장 이후로 인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과연 인류는 예전보다 윤택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는지.

대답은?

“정말 몬스터가 끊이질 않는군.”

- GPS시스템의 여력이 남지 않아 주변 탐색이 힘듭니다.

“알아, 알아. 그냥 투정 좀 부린 거야.”

그저 특별한 것 없는 길. 잘 정비된 길 위에서 한 사내가 긴 창을 든 채 오크 수십여 마리와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쉬익!

사내가 창을 휘두를 때마다 오크들의 사지가 하나씩 잘려나갔다. 재수 없는 모은 목이 잘려나갔다.

슈욱!

혹은 사내는 창을 내찔렀다. 직석으로 뻗은 사내의 창은 다른 것도 아닌, 오크의 심장만을 정확히 파괴했다.

“으으! 인간 강하다!”

“오크, 도망친다!”

처음 숫자의 절반이 되었을 무렵에야 오크들은 자신들의 불리함을 느끼고 도망쳤다.

그런 오크들의 뒤를 사내, 문수르는 뒤쫓지 않았다.

“쳇.”

마음 같아선 도망치는 오크 놈들의 뒤를 쫓아 놈들의 뒤통수를 창으로 박살내고 싶었다.

사실 문수르는 케르빈 월드에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오크에 대해서는 이러다할 악의나, 적의는 없었다. 사실 한편으로는 기대감도 품고 있었다. 명색이 판타지 소설가였던 문수르다. 그런 몬스터를, 소설 속의 존재를 가까이에서 본다는 것 자체가 설렜다.

하지만 현실은 역시 현실이었다. 첫 만남부터 최악이었다. 땅굴을 파고, 성벽을 무너뜨리고…… 그 이후는 더 최악이었다.

테블스 산의 오크들은 보통 오크들이 아니었다. 놈들은 저돌적이었고, 끈질겼다. 그런 놈들 때문에 이제르트 자작가가 입는 피해는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오우거보다 더 심했다. 특히 이제르트 자작가의 회계를 맡게 된 이후로 문수르는 다짐했다.

“나중에 테블스 산을 토벌할 때 오크만큼은 죄다 싹 쓸어버릴 거야!

그 이후로 오크라면 이를 갈게 된 문수르. 이제르트 자작령 내에서 다른 일로 바쁠 때도 오크가 등장하면 가장 먼저 전선에 나가서 오크를 도륙하고는 했다.

그런 문수르가 오크를 놔준 것이다.

왜?

“아, 지친다 지쳐…….”

- 현재까지 291마리의 오크를 만났습니다.

“그 중에서 내가 몇 마리를 죽였지?”

- 뭐 많이 죽였겠지요.

“……무슨 대답이 그래?”

로이드의 장난스런 대답에 고개를 푹 숙인 문수르는 이내 한숨 섞인 투정을 내뱉었다.

“젠장, 오크 천지군. 다른 몬스터도 아니고, 오크들만 주구장창 만나게 되는 거지?”

오크를 쫓을 힘이 없다. 너무나 많이 오크들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사실 이건 문수르도 예상 외였다. 아니, 문수르가 테블스 산 같이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산도 아니다. 지금 문수르가 가는 길은 국도(國道)다. 이 국도라는 게 뭔가? 나라가 직접 관리하는 길이다. 뭐 실제로 관리하는 건 그 국도를 품고 있는 영지의 영주겠지만, 콩탄 왕국이 아주 못 사는 나라도 아니고, 영주에게 있어서도 물류운송을 위한 국도는 매우 중요하다. 국도가 끊기면, 자기 영지로 오는 물자 공급이나 운송 전부가 불가능해지니까.

그런데 그런 국도에 이렇게 몬스터가 넘쳐나다니?

“오히려 이제르트 자작령보다 심한 거 같아.”

정말 몬스터 세상이라도 된 것 같다.

- 아무래도 기가스의 등장 때문 같습니다.

“뭐?”

- 기가스에 대해 조사해본 결과, 기가스 1대를 생산할 자원과 인력이면 1천 명의 병사를 무장시킬 수 있습니다.

“응?”

- 유지비를 따지면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집니다. 기가스의 경우에는 유지 및 보수 비용 역시 적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지. 그런데?”

- 기가스의 등장은 놀라운 일이지만, 케르빈 월드의 생활수준은 기가스의 등장 전후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이 얻는 자원 수준은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자원이라는 것이 새로운 광산 따위가 발견되면 공급량이 늘긴 하지만, 사실상 순수한 자원 공급량에…… 수요를 배제한 공급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기술력이다.

어스 월드의 석유가 대표적이다. 예전에 인류는 석유가 21세기 무렵이면 고갈된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기술 발전으로 인해 새로운 유전을 찾고,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곳에서 석유 채취가 가능해지면서 인류는 여전히 석유를 쓰고 있다. 예전보다 석유 수요량이 더 늘었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케르빈 월드는 기가스 등장 이후로 딱히 자원 공급에 관한 기술력이 발전하진 않았다. 기가스를 개조해서 광산 개발에 투입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가?

즉, 케르빈 월드 전체에서 인류가 얻어내는 자원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 그 자원들 중 군수물자에 투입되는 철 따위의 자원들은 대부분 기가스 제조에 투입되고 있다.

“그럼 일반 병력들의 무장 상태가 줄어든다?”

- 아마 영주가 보유한 사병 숫자나, 기사의 숫자도 줄어들지 않을까, 추측됩니다.

“그렇다면…….”

- 현재 케르빈 월드 내의 치안 상태는 좋지 못합니다. 특히 세밀한 부분에 있어서는 더 그렇습니다.

문수르는 납득했다.

오크 수십여 마리 잡는다고 기가스를 출동시키는 건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반대로 기가스를 만들고, 유지하고, 보수하는데 재정이 투입되고, 그 재정은 사병의 숫자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충당한다. 자연스럽게 영지 내의 병력은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치안 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게 케르빈 월드의 현재 상황이었다. 기가스에 의한 전쟁, 전투가 시작되면서, 오히려 세상은 살기 더 팍팍해졌다.

‘이건 염두에 두어야겠어.’

그동안은 별로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이 부분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그보다 불스 백작령에 대한 조사는?”

- 계속 진행 중입니다.

“뭐 특별히 발견된 건 없어?”

- 현재 8대의 기가스를 발견했습니다. 그중 4대는 2세대 타입으로 파악됩니다.

“뭐?”

순간 그 정보에 문수르는 기겁했다.

“그런 중요한 사실을 왜 지금 알려줘?”

- 지금 파악했습니다. 현재 기가스를 이동 중입니다.

“이동 중?”

이제야 GPS시스템의 일부가 불스 백작가에 도착해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기가스가 8대라니…….”

정보를 들은 문수르는 기겁했다. 기가스 8대란 전력은 무시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다.

보통 백작가 정도면 3∼4대 정도의 기가스를 보유하게 된다. 나라에서 소유할 수 있는 기가스 숫자에 제약을 둬서 그런 건 아니다. 평균적으로 백작가가 가지게 되는 저력, 자금력 등을 고려했을 때 그 정도 숫자를 운영하는 게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 보유하게 되면 재정에 문제가 생기는 거다.

그런데 8대라니?

더군다나 2세대 급이 4대라는 것, 이게 중요하다.

‘콩탄 왕국에선 기가스 보유하는 게 그리 쉽진 않은데…….’

콩탄 왕국은 현재 페스로 제국의 속국이나 다름없다. 페스로 제국은 필로스 왕을 뒤에서 조종하며 콩탄 왕국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페스로 제국과 콩탄 왕국이 이런저런 이유로 매우 우호적인 관계가 되면서, 콩탄 왕국 입장에서는 사실 그렇게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할 필요가 없게 됐다콩탄 왕국이 다른 국가에 위협을 받으면 페스로 제국이 알아서 나서줄 뿐더러, 페스로 제국 입장에서도 콩탄 왕국이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는 것보단 차라리 군사력이 없는 게 나중에 다루기 더 쉽다.

귀족들이라고 해서 사실 무리해서 기가스를 운영하고 싶진 않다. 단지 어느 정도의 기가스 전력이 없으면 다른 영주나 타국과의 싸움에서 큰 손해를 입으니까 보유하는 거지. 막말로 평화만 약속된다면 기가스는 그냥 없는 게 낫다. 기가스의 다른 별명 중 하나가 바로 돈 먹는 괴물 아니던가?

콩탄 왕국 역시 이런 시류를 벗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친왕파 귀족이 주류가 된 상황에서 페스로 제국에 알랑방귀나 뀌는 이들이 그 돈 먹는 괴물인 기가스를 무리해서 구매하고, 운영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당연한 말이지만 새로이 기가스를 구매하지 않으니까, 당연히 최신식 기가스의 구매 역시 하지 않게 된다.

현재 3세대 기가스까지 나온 상황이지만, 사실상 3세대 기가스는 아주 최신식이라고 봐야 한다. 대륙을 통틀어도 몇 대 안 된다. 결국은 최근 들어 주력으로 제조되는 기가스는 2세대나 혹은 2세대 기가스를 좀 더 무리해서 개조한 2.3배, 2.4배 급의 기가스다.

이렇기 때문에 콩탄 왕국의 귀족들은 2세대 기가스의 보유량이 타국보다 그 수치가 낮다.

그런데…… 불스 백작은 오히려 곱절에 해당하는 전력을 보유했으며, 2세대 기가스가 기가스 전력의 절반이다.

최근 들어서까지 기가스를 구매했다는 의미다.

‘어째서?’

친왕파가 되고 싶어 한다면 그럴 돈으로 뇌물을 바치는 게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다른 꿍꿍이가 있다.’

문수르는 휴식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이드, 기가스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춰.”

- 알겠습니다.

“그리고…….”

로이드에게 명령을 내리던 문수르. 그런 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이내 문수르가 창을 고쳐 잡았다.

느낀 것이다.

‘정체 모를 무리가 오고 있다.’

지금 문수르가 있는 곳으로 어떠한 무리가 오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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